풍경의 비밀 - 문예중앙산문선
송재학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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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인의 산문을 정통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문단의 흐름 같은 것이 있는 듯 하다. 작년 가을 구입한 '검은색이란 시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 시인의 풍경의 비밀이란 산문집을 구입한 지 거의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더욱 최근 읽은 허만하 시인의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란 산문집이 좋아 나는 그런 기대감으로 풍경의 비밀에 기대를 걸게 된다.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에 시론(詩論)이 충분히 담겼듯 풍경의 비밀도 시론이 잘 정리되어 있어 기대에 부응한다.


시인은 자코메티의 조각을 본 결과를 악기가 필요할 때란 시로 남겼다. 저자는 방이 없다는 것을 사유의 공간이 좁아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방이 없던 당시 자신의 글이 미문에만 머물렀었다고 말한다.(저자는 자신이 자주 미문의 함정에 빠졌던 것은 김현을 그릇 배운 탓 즉 김현의 겉멋만을 따왔기 때문이라 말한다.) 저자는 아버지의 이른 죽음을 소재로 소래 바다는이란 시를 썼음을 밝히며 시의 중요 부분들을 해설한다.


저자가 열세살이던 때 그의 아버지는 서른 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커다란 상처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제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지 않으려 한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지상 밖 어디선가 새 살림을 꾸려가실 그분에게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손(不遜)한 의문인지 모르지만 시인의 아버지가 더 오래 사셨다면 부자관계는 어땠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단언할 수 없지만 박완서 선생의 따뜻함을 상찬하는 글을 보아서는 저자가 오이디푸스적 반감을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신에게 억압이었다는 말을 통해서, 그리고 좋은 시는 긴장과 불평 밖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자신의 시는 불평일 뿐이라는 말을 통해 시인이 어느 정도의 오이디푸스적 반감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시를 쓰지 않았다면 세계의 미묘하고 얼룩진 부분에 대한 얄팍한 증오의 포용력밖에 지니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런 미학의식이 자신의 긴장의 시학을 만들었다고 한다.(170 페이지)


저자는 몇 개월의 용맹정진을 통해 재능없음을 깨닫고 막 문학을 포기하려는 자신에게 신춘문예 당선 소식이 날아든 것은 비극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긴장이야말로 시학의 중심이라 생각한다. 평정한 상태에서는 시가 고이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진술에는 생각의 여지가 많다. 흔히 시()는 말씀 언()과 절 사()의 결합으로 칭해진다. 절제된 언어, 수행자의 평정한 언어를 의미하는 것이 시이다. 이제 시란 절제된 평정의 언어라는 고래(古來)의 정의를 버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긴장은 시를 말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임에도 긴장의 미학으로 시를 분석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저자는 좋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힘은 서로 반대되는 세력들의 밀고당김에서 생기는 것이라는 앨런 데이트의 말을 인용한다. 저자는 바슐라르를 통해 책읽기의 게으름, 삶의 게으름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게으름이란 발효에 필요한 시간을 의미한다.


저자는 자신의 책읽기는 늘 주마간산이고 생각이란 것을 정연하게 적을 수 없는 바 시론(詩論)에 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고 덧붙인다. 당연하지만 풍경의 비밀을 통해 우리는 시인이 얼마나 자기 세계를 만들기 위해 애써왔는지 알 수 있다. 이는 비단 송재학 시인만의 일은 아니다. 풍경의 비밀이란 제목을 한 그의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시란 나에게 어떤 운명을 준비하는가란 이름을 가진 시론이다. 충실히 읽는다 해도 그의 시집들을 이해하는데 직절(直截)한 도움이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시와 조금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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