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고전 문헌학 박사 배철현 교수 님의 ‘심연’은 찾음(모색)에 대한 지혜를 주는 책이다. 가령 저자는 열정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라 정의한다. 이 열정이 내면 가장 깊숙한 곳 즉 심연으로 가는 지표이다. 깨어 있음도 찾음의 차원에서 논의된다. 나의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란 존재가 보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의존적이고 종속적인 인간이기를 그치고 자신을 깊이 응시하며 새롭고도 놀라운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선 조앤 롤링(‘해리 포터’작가)도 저자의 문제의식에 잘 들어맞는 사람이다.


자신을 찾는 결정적 순간이 진실에 가깝게 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천재란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이 있음을 믿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찾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일생 동안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가장자리를 의미하는 리멘(limen) 아래에서(sub) 자신을 깊이 응시하고 자신 속에서 최선의 것을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인 천재는 숭고(崇高: sublimation)하다. 천재가 되려면 우선 명상적이고 성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심연’이 말하는 천재란 독창적인 사람, 지혜와 영감으로 빛나는 사람이다. 극장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시어터(theatre)는 무대에서 비극적인 상황에 빠져 고민하는 자신을 관조(觀照)하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우리에게는 비상식적으로 느껴지는 사례가 고대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있었다. 아테네인들이 자신들의 일가친척을 죽인 적인 크세르크세스와 함께 눈물을 흘린 것이다. 관조적인 삶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나는 이 부분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근거가 불충분하다.)


저자는 유대 지식인이 창조하다를 뜻하는 바라(bara)라는 히브리 단어로 ‘창세기’ 1장을 서술한 것을 설명하며 오늘날 그 의미가 자신의 삶에 있어서 핵심을 찾아가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지적한다.(창조란 무에서 유를 낳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핵심을 찾아가는 것이다.) 1세기의 수사학자인 롱기누스에 의해 처음 언급된 숭고(崇高)는 독자들을 이성의 경계를 넘어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한 곳으로 인도하는 수사학적인 힘’이다. 이 개념은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서서 인간의 감성과 연결된 반응으로 바뀌었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대한 경험에서 발견되는 개념으로. 경외, 두려움, 공포에 대한 반응인 숭고. 숭고함은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어느 순간 내가 없어져 무아 상태로 진입하고 오히려 그 대상이 나를 관찰하는 것을 이른다. 저자는 ‘반가사유상’ 앞에서 그것이 자신의 부산함을 관찰하는 듯 했다는 말을 한다. 저자가 말했듯 사유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응시하는 것이다. 저자는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를 인간이 극복해야 할 관습과 관행, 습관과 편견 등을 상징하는 존재로 본다.(167 페이지) 박상륭 작가가 ‘죽음의 한 연구’에서 외눈을 편견으로 설명한 것을 연상하게 하는 해석이다.


저자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새롭게 해석한다. 물론 두 갈래 길이 모두 좋아 보였다고 말한 시인에게서 단서를 얻은 것이기에 새로운 해석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즉 시인은 어떤 것이든 스스로 선택한 삶을 자기기만적으로 찬양하고 위안을 얻은 것이다. 프로스트의 시와도 통하는 내용이 진부함이란 말의 풀이이다. 서양인들에게 진부함이란 산 정상에 오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지친 나머지 중턱에서 머뭇거리는 상태를 뜻한다.


진부함과 대비되는 참신한 삶은 자신만의 고유한 문법을 만들어내는 삶이다. 저자는 우리는 종종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답을 나와 상관없는 과거의 성인이나 철학자들이 남긴 이야기에 의지해 찾으려 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내가 가야 할 길은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다는 점이다. ‘심연’은 자신을 찾는 방법에 대한 책, 스스로 설 수 있는, 그리하여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한 책이다. 빛나는 잠언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그러나 결단을 촉구하는 무거운 책이다. 종교와 신앙의 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 저자의 포스가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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