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읽는 조선 - 공간을 통해 본 우리 역사 규장각 교양총서 1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 글항아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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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내 주요 관심사다. 서울 및 연천 해설의 연장선상에서 생긴 결과다. 서울은 한성백제와 조선, 일제하의 경성 등의 키워드로, 연천은 고구려와 고려 등의 키워드로 풀어나가고 있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펴낸 도시로 읽는 조선은 한양, 개성, 전주, 변산, 제주, 평양, 인천, 원산, 경성 등의 아홉 도시를 해명함으로써 조선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공간과 장소는 의미가 다르다. 공간은 낯설고 유동적이어서 쉽게 잡히지 않는 개념이고 장소는 공간에 주관적 가치와 의미가 부여된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책에서 다룬 아홉 도시 가운데 내게 주관적 가치와 의미가 부여된 곳은 한양, 개성, 원산, 경성 등이다. 물론 한양, 경성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고 개성, 원산은 자유롭게 갈 수 없는 곳이다. 다만 한양, 경성은 서울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만나는 곳이고 개성은 고려에 대해 공부하는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원산은 내가 사는 연천을 통과하던 경원선의 종착점이다. 한양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고려 문종대부터다. 고려는 건국 이후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서경(西京)으로, 신라의 수도 경주를 동경(東京)으로 삼아 개경(開京)과 함께 3경 체제를 구축한 데 이어 문종대에 양주를 남경(南京)으로 승격시키고 궁궐을 조성했다.

 

58세에 고려 수도 개경의 수창궁에서 즉위한 조선 태조는 천도(遷都)를 단행했다. 태조는 즉위 2년까지 고려라는 이름을 유지했다. 계룡산을 새 수도로 추천한 사람이 권중화였다. 하륜은 무악(현재의 신촌, 연희동 일대)을 추천했다. 흥미로운 점은 한성(漢城) 설계를 담당했던 정도전도 처음에는 천도에 찬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태조대에 전조후시(前朝後市) 원칙에 따라 신무문 밖에 시장을 조성했으나 지역이 좁고 바로 뒤가 막혀 있어 태종이 종로로 옮김으로써 유통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개성은 20136월 개성역사유적지구란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영조실록에서 처음으로 두문동(杜門洞) 일화가 나온다. 두문동(杜門洞)은 고려가 멸망하자 조선 시대 송도(개경, 개성) 성거산 서쪽에 고려의 신하 72명이 살던 곳이다. 72명은 공자의 제자 72현을 모델로 만든 수()로 보인다.

 

전주는 감영(監營)으로 호명되었다. 감영은 감사(監司)의 본영(本營) 즉 조선시대 8도에 파견된 관찰사(2)의 업무 공간이었다. 전주는 나주, 광주에 비해 서울에서 가까운 고을이다. ’미암일기를 쓴 유희춘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관찰사는 일상적으로 지방관의 근무를 평가하고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감찰(監察) 업무를 치르는 등 상당히 힘든 일정을 치렀다. 조선 후기 전주는 감영을 바탕으로 대도시로 성장했다.

 

사람 살기에 적합하면서도 호젓하고 풍광이 빼어난 변산은 한 면은 넓게 바다로 열려 있고 나머지 세 면은 산으로 둘러쳐져 있는 호리병 같은 곳이다. 변산반도와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이 있다. 교산 허균과 반계 유형원이다. 변산은 허균이 홍길동전을 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형원은 서른 두살 때 변산에 들어와 죽을 때까지 살았다. 변산에서 유형원이 집중적으로 저술한 책이 반계수록이다. 이 책은 토지제도를 비롯, 정치, 교육, 군사 제도 및 사회신분제 등 국가 전 분야에 걸쳐 조선의 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법제를 모색한 국가 기획서다. 이 책을 관통하는 기조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에 둔 변혁이었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등에게로 이어졌다.

 

제주는 풍부한 신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레비스트로스가 브리콜뢰르(손재주꾼)의 브리콜라주(손재주 작업 결과물)로 파악한 신화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곳이 제주다. 치밀한 계획이 아닌 무엇이든 손쉽게 사용 가능한 재료로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다.

 

평양은 평안도의 감영이 있던 곳이다. 평양 감사가 아니라 평안 감사라 해야 맞다. 감사 즉 관찰사는 도 단위의 관직이다. 평안감사가 탐관오리의 대명사가 된 것은 평양이 사행로의 주요 경유지였기 때문이다. 경유지 도처에서 사신들을 접대하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천은 일본에 의헤 설치된 조계(租界) 지역이었다. 인천은 1876(고종 13) 강화도 조약 이후 부산(1876), 원산(1880)과 함께 개항된 세 항구 중 하나다. 인천이 개항된 시기는 1883년이다.

 

영흥만에 위치한 원산은 태조 이성계의 조상인 목조(穆祖) 때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이다. 조선은 일본이 개항지로 영흥만을 요구하자 왕릉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었다. 일본이 원산을 개항지로 고집한 것은 가상의 적인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경성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조선의 500년 도읍지인 한양(한성)을 대체해 불린 이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 도시인 서울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가 20세기 초 즉 경성 시절이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독립운동과 저항, 상존하는 위험이 그 사대의 전부가 아니듯 모던함도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근대 또는 현대라는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변화와 속도를 당대인들은 모던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경성과 밀접했던 시인, 작가가 이상(李箱), 박태원 등이다. 이상은 제비 다방, 쓰루(つる; ) 다방 등을 운영했다. 상자 속에 갇힌 듯 전공이나 제한된 관심사에 매몰된 근대인을 희화화한 이상은 암울하고 무력한 식민지 시대에 비상 충동을 느꼈으리라.

 

책의 앞 부분에 이상의 오감도 이야기가 나온다. 1인의 아해부터 13인의 아해까지 등장하는 이 시에서 13이란 숫자는 조선 13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조선 8도가 13도가 된 것은 1896년 갑오개혁 이후다. 이상의 오감도는 막다른 골목이자 뚫린 골목인 식민지 시기 한반도의 공간성과 역사성을 결함시킨 작품이다.(9 페이지) 이상의 날개가 관념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좌우된 개인의 실존을 드러낸 작품이듯 오감도 역시 시대상황과 무관할 수 없는 작품이다. 도시 이야기를 다룬 여타의 다양한 책들을 읽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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