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혐시대의 책읽기
김욱 지음 / 개마고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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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시대는 책혐(冊嫌)시대라는 김욱의 정의(定義)에 공감한다. 혐오 대상으로서의 책은 즉각적인 실용성이 떨어지는 책이고 이 문제 극복을 위해 인위적으로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처방이다. 하기야 책혐 사태를 극복할 문제로 보지 않는 사람이 책에 대한 혐오감을 표하는 것이 아닌 이상 책혐 시대에 대한 책을 쓸 이유는 없으리라.

 

저자는 좋은 책이란 세상의 진실을 이해하도록 도와 독자를 창의적으로 각성시켜주는 책이라 말한다. 책을 읽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을 바로 안 뒤 조금이나마 나은 세상이 되도록 애쓰지 않으면 책 읽기는 무용한 중노동에 지나지 않는다. 책읽기를 통해 생각이 발전하고 창의적인 단계로 접어드는 것을 생각의 진화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는 누구나 참여해야 한다.

 

책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책과 화해하기, 2장 책과 마주하기, 3장 책과 사귀기, 4장 책과 헤어지기 등이다. 책읽기는 가장 강력한 쾌락이라는 것이 저자의 전제다. 그럼에도 책읽기에 나서지 않는 사람은 맛을 몰라서일 것이다. 베스트셀러 추종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책읽기 능력을 끊임없이 키워가는 것이다. 또한 책읽기를 통해 체계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로부터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책읽기 능력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키워가야 한다는 불문율 같은 깨달음이다. 저자는 애초에 우리가 낭비 없는 성공을 꿈꿀 수 없다는 전제하에 책읽기에서 상당한 낭비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주 작은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한 사람을 전문가로 정의한 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말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책읽기 능력을 체계적으로 키워나가는 것은 자신의 문제의식으로 세상을 보고 답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을 의미한다. 책읽기를 통해 정보를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긴 호흡의 논리적 사고능력을 키워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책을 읽지 못하는 또는 읽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감수해야 하는 뇌의 피로감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책읽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습관이 되지 않아서다.

 

한국인의 평균 독서율은 OECD 평균에 가깝지만 연령대별로 상당히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16에서 24세의 독서율은 1, 25에서 34세는 5, 35에서 44세는 8, 45에서 54세는 16, 55세에서 65세는 최하위다. 저자는 말한다.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언어능력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능력이 뒤떨어진 사람들이 다른 영역에서 고도의 경쟁력을 가지리라 보기는 어렵다고.

 

우리에게는 자기 생각의 한계를 깨는 책이 필요하다. “나를 더 강하게 키우는 것은 내 틀에 박힌 생각을 지루하게 반복하는 책이 아니라 내 생각에 감히 도전하는 책들이다.”(63 페이지) 저자는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 외의 책을 읽지 않는 것을 책혐의 하나로 본다. 저자는 인문, 사회과학자들이 자연과학에 대해 무지한 것보다 자연과학자들이 인문, 사회과학에 대해 무지한 것이 사회적으로 더 심각한 문제라 생각한다.(70 페이지) 후자의 경우 사회에 이용당하는 바보가 되거나 원치 않는 죄를 지을 수 있다.

 

전공과 무관한 책읽기, 다양한 책읽기, 인간(세상)에 대한 책읽기 없이 서로 다른 사물을 결부시키는 능력은 길러지지 않는다.”(73 페이지) 인문학은 과거를 균열내고 어떻게든 인간 중심의 미래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는 중세의 지배 엘리트나 왕들이 감당했던 지적 수고와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책읽기를 통해서라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저자도 말했듯 고통 없는 재미만을 통해 뭔가를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108 페이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거나 난해한 철학 개념을 이해했을 때 느끼는 지적 희열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책읽기를 통해 재미만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재미와 함께 하는 고통이 키워드다. 상당한 습관이 되면 적응이 용이하지만 읽기 자체가 고통이고 읽기를 통해 얻은 깨달음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모순과 불합리의 장()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명구(名句)만을 탐하는 것도 문제다. 오직 관건은 책 전체와 조응하는 맥락적 연관성 내에서 드러나는 적확한 문제의식이다. 저자의 정치(精緻)한 논리는 나는 왜 책을 읽는가, 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한다. 내가 열심히 책을 읽는 이유는 내 고유의 생각의 몫을 늘리기 위해서다. 선인(先人)들이 이룩한 방대한 지적 보고(寶庫)를 섭렵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내 생각을 펼칠 수는 없다. 물론 그 생각들 위에 내 것을 얹어야 한다.

 

책읽기는 지적인 건축과정이다. 붕괴되지 않도록 해야 함은 물론 그럴 듯 해야 한다. 책읽기의 주된 특징 중 하나는 하나의 책에서 꼬리를 물고 다른 책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한비자가 신흥봉건세력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그로서 법치(法治)를 주장했다면 공자는 한비자 이전 시대의 노예주 귀족들을 대변하는 상대적 진보 이데올로그로서 예치(禮治)를 주장했다는 사실(139 페이지)이다.

 

이런 예를 종교개혁 시기의 대립에서도 볼 수 있다, 종교개혁 세력은 신흥 상공업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했고 구교 세력은 농업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는 말이다. 저자는 역사책이 모든 것의 배경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역사를 알기 전에 역사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149 페이지)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다면 우선 그 진보의 의미가 무엇이든 역사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진보한다는 관점으로 쓰였는가, 아니면 진보란 인식할 수 없고 역사란 각 시대의 독자적인 의의와 완결성을 사실로써 이해하는 것이라는 관점에 의해 쓰인 것인가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150 페이지) 조지형의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랑케 & 를 참고하면 좋다.

 

이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의 문제의식과 비교를 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쿤의 과학관(科學觀)은 근본적으로 과학적 지식의 변천 및 발전이 혁명적이라는 데 요지를 둠으로써 과학의 진보가 축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종래의 귀납주의적 과학관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김명자 번역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역자 해설 참고)

 

상설하지 않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랑케와 카의 대립은 바슐라르(불연속)와 베르그송(지속)의 대립(이정우 지음 담론의 공간참고)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저자는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것은 그저 역사 속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며 내일을 위해 역사 속 당대의 문제를 이해하고 끊임없이 묻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154 페이지)

 

저자는 철학책, 사회과학 분야의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하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저자는 자연과학책 읽기는 겉핥기라도 좋다고 말한다. 이 분야에서 나온 이야기 가운데 쿤 이야기도 있다. 이는 내가 앞서 언급한 바대로다. 저자는 과학자의 세계에서 혁명 이전에는 오리였던 것이 이후에는 토끼가 된다.“는 쿤의 말을 인용하며 이를 칸트의 물자체(物自體)에 비유한다. 칸트는 물자체는 알 수 없고 오성(悟性) 형식을 통해 사물을 인식할 뿐이라는 말을 했다.(181 페이지)

 

저자는 문학책 읽기는 허구로 진실을 이해하는 읽기로, 예술책 읽기는 책읽기 자체가 시비로 설명한다. ”예술을 접하고 심미적 즐거움을 느끼고, 다시 책읽기를 통해 심미적 안목을 깊이 있게 만들어 나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되고, 귀에 들리지 않는 많은 것들이 들리게 될 것이다.“(208 페이지) 종교, 심리학책 읽기는 인간의 무/ 의식적 현상으로 규정되었다.

 

4장은 책과 헤어지기다. 저자는 책의 신비화를 저자의 전문성에 대한 맹신을 포함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나타나는 무비판적인 활자 맹신 현상으로 정의한다.(223 페이지) 중요한 사실은 어떤 분야(심지어 자연과학 분야까지)도 관련 전문가 모두 만장일치로 동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필요한 것은 크로스 체킹이다.

 

저자는 자신의 기존 관념과 일치하지 않는 도끼 같은 책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저자든 독자든 자신의 생각을 지키려면 최소한 자신의 수준에서라도 다른 의견에 반론할 수 있어야 하고 반론할 수 없으면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잘 모르는 경우에는 당연히 겸손해야 한다.(225 페이지) 저자가 책을 쓴 배경, 상황, 의도를 집중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글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고종석의 표현)는 말을 염두에 두고 아름다운 책을 조심하자는 것이 저자의 처방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다. 자기식의 비판을 하는 일이고 글의 허점이나 모순을 발견하는 일이고 저자의 주장과 싸우는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정립해가는 일이다.(233 페이지) 저자는 읽기를 분량의 문제로 치환하지 말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중요한 말을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239 페이지)

 

각자의 책이란 생각할 거리, 살면서 마주치는 투쟁 대상이라는 말로 들린다. 동의한다. 덧붙일 말은 세상이란 책같은 것 말고 좁은 의미의 책이야말로 가장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장치라는 점이다. 저자는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책들에 관한 담론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전체를 숙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숙지란 관계들을 잘 알고 있느냐는 것이지 어떤 고립된 요소를 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며 그러므로 그것은 그 전체의 대부분을 모른다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는 어떤 책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시공을 초월해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말이다.(242 페이지)

 

독자가 하나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그 구체적 내용을 얼마나 많이 기억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총체적 맥락을 얼마나 많이 이해하느냐의 문제라는 의미다. 이는 외국어 독해 시험에서 모르는 단어가 군데군데 있더라도 제시된 전체 글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 모르는 단어들의 뜻을 유추할 수 있는 원리와 비슷하다.(243 페이지)

 

필요한 것은 다양한 책을 꾸준히 읽어 자신의 머리 속 도서관 책들간의 맥락을 이해하고 최대한 활성화시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246 페이지) 저자는 한나 모이어와 마르틴 게스만의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를 예로 들며 우리가 정작 신경 쓸 일은 두뇌의 저장용량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에서 획득하는 미래를 향한 대응능력(창의력, 판단능력)이라는 답을 제시한다.(249 페이지)

 

답이라는 말에 어폐가 있겠지만 이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말이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어떻든 베르그송이 언급한 기억에 대해 말할 상황이다. 베르그송에게 기억이란 단순한 암기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삶이 전개되는 모든 시간 속에서 지나온 과거 전체를 고스란히 보존했다가 현재의 순간으로 연장하여 적절하게 활용하는 정신의 유동성을 말한다.(김재희 지음 물질과 기억 반복과 차이의 운동성‘ 103 페이지)

 

저자는 본심(?)을 말한다. ”지식이 전혀 없는 지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252 페이지) 우리는 지혜로워지기 위해 지식을 추구해야 하고 미래를 위한 과거를 위해 책읽기를 해야 한다. 책 읽기의 완성이 글쓰기라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히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내 수준 또는 이해력을 확인 및 점검하고 사유를 형성하게 하는 글쓰기는 말이 따를 수 없는 체계성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글은 일상의 말(녹음해 재생하지 않는 한)과 달리 문제점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여지가 없다. ”글쓰기는 잔인할 정도로 자신의 한계를,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비춰준다.“(266 페이지) 저자는 생각을 완벽하게 정리한 뒤 글쓰기를 하려 하지 말고 일단 글쓰기를 해가면서 부족한 생각을 완성시키는 방법을 권한다.(267 페이지)

 

생각의 부족이나 나태함으로 아무 고민 없이 택하는 단어들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268 페이지)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현실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고전(古典)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책들이 역사의 한계를 어떻게 돌파했는지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275 페이지)

 

새겨 읽어야 한다. 저자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투쟁하며 얻은 답을 참고로 해야 한다. 스스로의 문제가 관건이다. 저자가 말하는 책으로부터의 해방이란 지식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지배하는 지혜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279 페이지) 내 이야기를 하고 내 문제에 대한 답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책을 통독하며 우리에게 지혜, 요령, 독립적 해결 능력 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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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4-19 0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내용이 너무 정리가 잘 되어서 이 책을 보지 않아도 충분한 도움이 될것 같아요!ㅎ

벤투의스케치북 2020-04-19 06:25   좋아요 0 | URL
네..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