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514일 이후 발로 품는 서울(협동조합)2019 서울 백제역사유적 시민 강좌를 들었다. 어제는 그간 풍납동 문화재활용관에서 진행된 실내 강의와 답사(몽촌토성, 방이동과 석촌동 고분) 프로그램을 마무리 짓는 공주, 부여 답사 날이었다.

 

시기로는 조선을, 지역으로는 강북을 주 영역으로 공부해온 나에게는 새로운 시간들이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이런 저런 준비를 하고 첫 버스(450)와 첫 전철(530)을 타고 출발 시각인 740분보다 조금 이른 720분에 양재역 2번 출구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공주 정지산(艇止山) 유적지, 국립공주박물관(이상 공주), 국립부여박물관, 왕흥사지(王興寺址), 백제문화단지(이상 부여) 등이었다.

 

주지하듯 백제(百濟)는 한성(漢城), 웅진(熊津), 사비(泗沘) 시기를 거쳤다. 공주대 박물관 학예 연구실장인 이현숙 님과 또 한 분의 전문가의 해설을 듣기 위해 그간 개인적으로 드문드문 찾아다니며 듣거나 읽은 한성백제박물관과 풍납토성, 몽촌토성 등에 대한 내용을 떠올리며 단편적인 기억들을 조각조각 이어야 했다.

 

사실 나는 웅진(熊津)이 지금의 공주이고 사비(泗沘)는 지금의 부여라는 사실도, 문주왕에 의해 웅진 천도가, 성왕에 의해 사비 천도가 단행된 것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어제 답사지인 공주 박물관 자료를 보고 기억해냈을 정도로 그간 백제와는 거리가 먼 시간을 보냈었다.

 

지난 2016년 문화유산 해설사 공부 중 만난 금동대향로 이야기가 내가 최근 접한 백제 관련 내용일 정도로 나는 백제에 관한 한 초학자(初學者)나 다름 없다. 정지산 유적지는 백제 시대의 제사 유적지이다. 배가 정지한 곳이라는 어의(語義)가 재미 있다. 공주가 나로 하여금 떠올리게 하는 것은 동학년 곰나루의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는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의 한 구절이다.

 

곰나루는 웅진의 우리식 표현이다. 공주, 하면 금강(錦江)을 빼놓을 수 없다. 금강은 공주에서 부여에 이르는 강이자 신동엽 시인의 장편 서사시 제목이기도 하다. 해설자께 해설하실 때 신동엽 시인의 금강이나 껍데기는 가라이야기를 하시느냐 물으려다 그만 두었다.

 

웅진 시대를 대표하는 백제 왕은 무령왕이다. 우리는 무령왕릉이 삼국 시대의 고분 중 거의 유일하게 시기는 물론 주인공이 밝혀진 고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흥덕왕릉과 태종무열왕릉도 무덤 주인공이 밝혀졌다.)

 

무덤의 주인공이 토지신에게서 땅을 구입했음을 증빙하는 서류인 묘권(墓券)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사비 즉 부여에서는 부여박물관을 보아야 하고 그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금동대향로다.

 

끌로드 모네처럼 물가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충분한 저장을 해두고 강가에 피는 꽃들의 짧고 격렬한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의 한 구절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 사비다. 물과 강이 모두 나오는 구절이고 지명이기 때문이다.(사는 물 이름 사, 비는 강 이름 비다.)

 

왕흥사는 600년 백제 법왕 또는 무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지만 2007년 왕흥사지에서 발견된 창왕 청동사리함 명문에 의거해 위덕왕 때인 577(위덕왕 24)으로 파악하기도 하는 절이다.

 

덧붙일 말은 없다. 다만 지난 해 타계한 시인 허수경 님의 글을 하나 인용하고 싶다. 고대 근동 고고학을 전공한 시인은 고고학자의 발굴은 사건이 이미 일어난 뒤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탐정의 수사와 닮은 데가 있다는 말을 했다.

 

시인에 의하면 발굴지에서 고고학자가 과거와 만나는 그림은 조각이 나 있다.(‘모래 도시를 찾아서’ 50 페이지) 그렇게 조각난 그림들을 이어 붙이는 것이 고고학자의 임무다.

 

어제 마지막 코스는 백제문화단지였다. 백제의 궁궐인 사비궁과 백제 생활문화 마을, 백제의 사찰인 능사(陵寺), 고분 공원, 위례성 등이 재현된 공간이다.

 

능사는 왕릉의 원찰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다. 제향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정경을 즐겼고 치미(鴟尾)를 보았고 하남을 위례성으로 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쓰레기라는 말을 기억하며 관련 자료를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 430분 집을 나서 답사 일정 종료 후 광화문에서 식사를 하고 책을 본 뒤 집에 도착하니 밤 1030분이었다. 18 시간의 타이트한 일정이 꿈 같이 사라져 갔다. 몹시 피곤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갖춘 백제에 대한 정확하고 박식한 지적 자산이 부럽고 놀라웠다. 참 좋은 강의와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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