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의식의 소음 마이크로 인문학 1
김종갑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김종갑의 생각, 의식의 소음은 생각을 많이 할수록 행복할까? 묻는 책이다. 이 물음은 도전적으로 들린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그렇다. 저자는 생각을,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식 내용으로 설명한다.(14 페이지)

 

저자는 생각이 행복에 백해무익하다고 믿는다. 이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피노자와 니체의 저술들을 저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읽으면서 얻어낸 결론이라고 한다. 저자는 생각의 99퍼센트가 삶의 소음이라 생각한다.(17 페이지)

 

저자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예로 든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란 구절이 있는 이 시는 님의 생각이 목젖으로 올라올 정도로 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화자에 대한 시이다.

 

이런 면모는 김소월의 못잊어의 정서와도 통한다.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나지요?”란 구절이 그 점을 말해준다. 이 두 시인과 대조적인 시가 박재삼 시인의 아득하면 되리라이다.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 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것들이 다시/ 냉수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 오는/ 그 이상을 나는 볼 수가 없어라.//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갈증 때문에/ 마실밖에는 다른 걱정은 없어라

 

이 시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한 후에 쓴 시이지만 분위기는 다르다. 저자는 득도한 스님 같다고 화자를 표현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의 스트레스가 투입되지 않으면 부재하는 님이 현존하는 님 생각으로 승화되지 않생각으로 님을 초혼(招魂)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더욱더 님의 부재를 의식하고, 더욱더 눈물을 흘리며, 더욱더 불행해져야 한다.”(38 페이지)

 

저자는 잊을 것을 주문한다. 이는 떠난 님에게 작별을 고하지 못하는 님의 침묵이나 못잊어의 화자와 사뭇 다른 면모이다.(42 페이지) 저자가 건네는 또 다른 주문은 자신의 불행 속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명상 시간에 배워 아는 바이지만 생각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 명상을 해야 하는가?

 

부재하는 대상을 현재의 공간에 불러들이면 문제가 발생한다. 현실을 놓치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무와 꽃을 손으로 만지고 냄새 맡으며 지각하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46 페이지) 그는 현재를 즐길 뿐이다.

 

저자는 감정은 생각(이라는 음식)을 먹고 증식하는 생명체라 말한다. 아사(餓死)시켜야 하는생각에게 계속 먹이를 제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64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마음이나 생각은 주어진 환경 변화에 인류가 적응하기 위해 발달시킨 생존의 부산물이다.(74 페이지)

 

짝짓기가 본능이라면 더 좋은 조건의 짝짓기를 하려는 것이 욕망이고 그런 욕망을 따르거나 거부하는 능력이 의지이고 욕망과 의지에 대한 의식이 생각이다.(74 페이지) 우리는 진리를 탐구하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그것도 아름답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생각한다.(76 페이지)

 

주어진 상황으로부터 한 발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능력이 생각인바 그것은 생존과 불가분의 관계인데 생각이 발전을 거듭하다 보면 자율적으로 진행되는 메타 단계로 접어든다.(76 페이지)

 

니체에게 생각은 순수한 자기실현의 동력이 아니라 원한(resentment)이나 증오와 맞물려 있다.(80 페이지) 니체에게 생각은 행동과 반비례하는 것이다.(82 페이지) 여기서 귀족과 사제의 차이가 생긴다. 귀족은 모욕당할 경우 즉각 응수하지만 사제는 약자이기에 마음으로 분을 달래고 삭이게 된다.

 

내면화시키는 것이다. 마음에 담아두고서 수시로 상처 입은 감정을 은밀하게 꺼내보며 복수를 꿈꾸는 것이다.(82, 83 페이지) 문제는 생각 자체가 아니라 반동적이며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이다. 자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모욕과 상처에 의해 생각하도록 강요받는 것이 문제이다.

 

저자는 잔걱정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사소한 것을 가지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 생각의 무게에 짓눌려 등이 굽은 사람들을 소인배라 칭한다.(92 페이지)

 

새겨 들을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생각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마태복음 627)는 성경 구절도 같은 차원의 말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소인배의 고해성사 같은 시로 파악한다.

 

왜 나는 조그만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 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째 네 번째/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시의 화자는 지식인이다.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다. 하지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그는 생각을 곱씹는다. 그런데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화자를 소인배라 말할 수 있는가? 김수영이기에 높은 기대를 갖고 보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우리에게는 지각해야 할 것을 생각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114 페이지) 이런 대표적인 예가 영화 토탈 리콜이다. 이 영화에는 몸으로 체험하는 여행이 아니라 컴퓨터 정보로 여행을 하는 상품이 나온다.(116 페이지)

 

생각을 내려놓으면 무념무상의 경지에 접어든다.(117 페이지) 이런 저런 걱정, 근심 등에 사로잡히면 하늘이 하늘로 보이지 않고 바람이 바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117 페이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려면 생각하는 대신 지각해야 한다.(118 페이지)

 

지각이 외부의 자극을 수용하는 것이라면 생각은 신경세포를 거쳐 전달된 정보를 처리하는 것 즉 사후처리장치이다.(118 페이지) 생각은 지각보다 한발 늦게, 언제나 상황이 종료된 뒤에 등장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주인공 같은 사람이 지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골방에 칩거하며 생각하는 사람이다.(119 페이지)

 

저자는 생각에도 중독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124 페이지) 저자는 생각은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몸의 하녀라고 말해야 옳다고 말한다.(130 페이지)

 

저자는 가장 많은 생각의 노력이 요구되는 대화도 사실은 흐르는 물처럼 저절로 행해진다고 말한다. 상대와 호흡이 잘 맞으면 내가 생각해서 의식적으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미노처럼 상대의 말에 자극되어 나의 말이 저절로 이끌려 나오는 듯 느껴진다는 것이다.(131 페이지)

 

아무리 자유로운 사람도 생각이 자유롭지 않다. 생각으로 생각을 극복하거나 물리칠 수 없다.(139 페이지) 생각도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인데 너무 많아지면 삶이 생각으로 대체되고 그러다가 생각의 홍수에 빠져 익사할 수 있다.(141 페이지) 물론 화음(和音) 같은 생각도 있다.

 

내 경우 명상 스승으로부터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사실을 알아차리라는 말을 듣곤 했다. 생각을 하는 것에도 적용될 말이다. 그러면(알아차리면) 멈출 수 있다. 생각을 알맞게 할 수 있다. 명상에서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는 현재에 머물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저자도 없는 것(과거, 미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현실)을 감각적으로 즐기라는 말을 한다.(145 페이지) 예컨대 어떤 일을 두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찾아 없애거나 해결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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