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이) (포처럼) (내리) 찌는(=쬐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푹푹 찌는 날들이 아니라 폭폭(暴瀑) 찌는 날들이다. 정말이지 밤새도록 찌고 새벽부터 찐다. 김수영 시인의 '폭포'를 읽는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폭포의 이미지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생생하다. 묘사 시의 대표격이다.

 

김수영 시인의 어법대로 표현하면 햇볕은 무서운 기색도 없이 우리 머리 위를 수직으로 떨어진다는 말이 된다. 묘사가 시각적이라면 진술은 청각적이다. 묘사하지 않는다면 즉 은유를 쓰지 않는다면 햇볕은 햇볕 햇볕은 햇볕 식의 말을 해야 하리라.

 

이 경우 바다에서 보이는 일몰을 해가 끓어넘치는 금속의 대양 속에 닻을 내린 것으로 묘사한 카뮈 '이방인'(이정서 번역 '이방인' 85 페이지)과 같은 서정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철학적인 과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우리는 집을 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는 집이 아니라 색, , 그림자 등의 빛만을 보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만나 영화관에 가다'138 페이지)

 

피셔는 곰브리치가 "우리는 사물을 더이상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물을 개별적인 형태로부터 조립할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모방이 아니라 조립이다."란 말을 했음을 언급한다.('84 페이지)

 

시 쓰는 평론가 이수명은 최근 나온 '표면의 시학'이란 시론집에서 "현대시는 내용과 관념으로 포커스를 맞추어나가기보다는 형식과 허사, 빈말들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을 했다.(66 페이지) 나도 햇볕은 햇볕이라는 빈말을 더했다. 다만 시가 아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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