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
가게야마 가츠히데 지음, 김선숙 옮김 / 성안당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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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렵고 관념적인 학문이다. 학자들끼리 사용하는 어의(語義)도 다르고 학문 자체가 일상과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을 규정하는 본질 차원의 깊이를 이해함으로써 얻게 되는 희열감은 크다. 그 때문인지 쉽고 재미 있는 책은 그 나름대로, 본격적인 무게로 쓴 책도 그 나름대로 선택되고 있다.

 

가게야마 가츠히데의 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은 제목 그대로 쉽고 재미 있게 철학자들 28인의 핵심 사상을 설명한 책이다. 28인은 탈레스에서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베이컨, 데카르트, 칸트, 헤겔, 벤담, 존 스튜어트 밀, 키에르케고르, 니체, 야스퍼스, 하이데거, 사르트르, 프로이트를 거쳐 융에 이르는 분들이다.

 

돋보이게도 왠만한 철학서에서 잘 접하기 어려운 지식들을 접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춘 책이 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이다. 이는 각 철학자들을 짧게 핵심을 골라 설명해야 하는 부담감이 작용한 결과이다.

 

가령 우리에게는 선천적으로 경험론적 능력인 감성(感性)과 합리론적인 능력인 오성(悟性)이 있다. 감성이 감각적으로 소재의 상황을 인식한 것을 오성이 분석, 판단한 뒤 이론이성이 양쪽을 정리해 인식으로 연결시킨다.

 

칸트 철학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론이성에는 한계가 있다. 감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이 가능하다. 이 부분은 야스퍼스의 포괄자 개념으로 이어진다.(296 페이지) 한계상황은 과학만능의 시대에서 포괄자의 존재를 잊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포괄자를 생각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칸트가 말한 것처럼 과학적인 인식이 감성 오성의 상호작용으로 성립하는 이상 먼저 감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초경험적 세계까지 포함한 세계의 전체상을 과학의 힘으로는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괄자란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존재이다.(292 페이지)

 

여러 철학자들 가운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질적) 조합은 많은 곳에서 의미 있게 이어진다. 그리스도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만남은 위험하다.(128 페이지) 플라톤 철학이 천상의 본질인 이데아를 중시하기에 교회적으로 신과 동의어인 까닭에 교회 입장에서는 반가운 상황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본질은 개체에 내재해 있기에 연구자가 본질을 연구하다 보면 어느 사이 개체에 대한 흥미로 바뀌기 쉽다.

 

여기서 보편 논쟁이 있게 되었다. 형상이나 이데아 즉 사물의 본질을 의미하는 보편은 실재하는가 이름만인가, 하는 논쟁이 보편 논쟁이다. 개개의 사물이 보편을 복사했다고 요약할 수 있는 플라톤 입장을 대표하는 사람이 안셀무스이고 보편과 본질은 존재하지 않을 뿐 부르기만 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입장을 대표하는 사람이 로스켈리누스와 오컴의 울리엄이다.(129 페이지)

 

토마스 아퀴나스가 중재적 위치에 섰다. 그는 보편은 신의 지성에 있어서는 사물에 앞서 실존하지만 세계 속에서는 사물 속에 실존한다고 정리했다. 개별 철학자들을 논하지만 이어지는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의 또 다른 특징은 시대 배경을 잘 반영했다는 점이다.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편에서 이런 부분이 논의되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주의인데 정신적인 쾌락을 의미하고 스토아학파는 금욕주의를 부르짖었는데 이들은 모두 마케도니아 왕국에 의해 도시 국가가 붕괴된 시대의 삶의 방식이다.(90 페이지)

 

저자는 입시학원 강사로 현장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가볍고 거친 말투도 그대로 게재했다고 말한다.(15 페이지) 그런 점을 어디서 느낄 수 있을까? 키에르케고르편을 보자. “어설프게 진지하고 불성실한 인간은 태연하게 나는 직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나는 신념을 굽힐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담고 스스로 쓰레기더미 속에 떨어진다.”(264 페이지)

 

이 부분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이 글을 쓰다가 때려주고 싶었다.” 키에르케고르는 부친으로부터 지금껏 자신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만 해왔기에 그 벌로 너희 일곱 형제는 모두 34세 이전에 죽을 것이란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자랐다.

 

다행히 살아남은 키에르케고르는 정신불안증으로 우울한 인간이 되었다. 아무 직업도 없이 부자 아버지에게 빌붙어 산 키에르케고르는 자기 기분대로 살며 열살 연하의 레기네 올슨을 마음대로 이기적으로 대하고 구애한 끝에 3년만에 약혼에 이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러니 지금부터 그녀를 위해 그녀의 행복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치워주어야겠다. 근데 그게 대체 뭐지? 어머 그게 바로 나? 그런가? 나란 말인가? 그래 나다....”란 생각 끝에 결국 혼자서 멋대로 파혼을 단행한다.(258 페이지)

 

저자의 예리함은 여기서 빛난다. “왜 키에르케고르처럼 자기를 좋아하는 이기주의자가 레기네의 행복을 생각했지?” 저자는 키에르케고르를 어설프게 진지하고 불성실한 사람으로 정의한다.(263 페이지) 재미 있고 역동적이고 효용까지 있는 저자의 내공을 만끽할 수 있는 책으로 만화처럼 술술 읽히는 철학 입문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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