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꼬리는 길다’의 저자 박지영 평론가/ 시인께서 신간 ‘꿈이 보내온 편지’를 보내주셨다. 지난 몇 년간 프로이트 전집을 섭렵한 저자의 꿈 관(觀)이 반영된 책이다.

자신이 꿈꾼 도원(桃園)을 안견(安堅)에게 설명해 그림으로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의 주인공 안평(安平)의 사례를 꿈 속에서조차 새 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한 강박 관념으로 해석한 한 강의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런가 하면 한 정신분석가는 꿈이 그림에 준 영향을 분석하는 정신분석적 서양미술사 이해 강의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꿈이 보내온 편지’의 첫 글인 ‘꿈과 시’에서 저자는 꿈이나 환상이 더 시적일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오늘 나는 역사 수업 시간에 구석기 시대의 주먹 도끼 부분에서 남아메리카공화국의 인지고고학자인 루이스 윌리엄스(David Lewis Williams; 1934 - )가 내세운 환각설을 이야기했다.

윌리엄스는 원시 동굴벽화에 산재하는 추상적인 문양을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동굴 속 어둠에 대응하기 위해 뇌가 일으킨 단순 환각을 벽에 옮긴 것으로 설명했다. 박지영 저자는 꿈을 밤에 꾸는 것으로, 몽상을 낮에 꾸는 것으로 정의했다.

나는 꿈은 간절함의 반영이라 생각한다. “이해되지 않은 꿈은 뜯지 않은 편지와 같다.”는 ‘탈무드’의 말을 예로 들며 꿈을 해석하지 않으면 반복해 꾸게 된다는 말을 하는 저자를 보며, 꿈을 소중히 다루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을 예로 드는 저자를 보며 상상력 빈곤에 시달리는 나는 꿈 속에서나마 만나고 싶은 사람이 내게 있을까, 그리고 얻고자 하는 영감은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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