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듣기 위해 탄 만원 전철. 나는 1호선 최북단 역인 소요산에서 탑승하기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앉아 간다.

한 역 지나 한 여성 분이 내 옆에 앉았다. 샴푸 향인지 향수 향인지를 나누어 주며 그녀는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십분 넘게 그리고 바르고 두드리는 정성스러움이 묻어나는 전철을 그녀는 만들고 있다.

옆에서 밑줄을 치며 책을 읽는 나는 순간 나도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붉은 색, 검정 색, 파랑 색 등의 펜으로. 때로 메모도 하는 내 읽기는 아니 밑줄 치기는 책을 다시 볼 때 긴밀한 힘을 발휘한다.

중요한 부분만 다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너무 많은 곳에 밑줄을 치기 시작했다.

중요한 곳이 그 만큼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습관적으로 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모르는 부분에는 다시 읽기 위해 붉은 색 줄을 치고 알고 있는 부분은 반가워 검정색 줄을 치고 감동한 부분에는 파랑 색 줄을 친다.

잘못된 주장이다 싶은 곳에는 체크를 하고 글쓰기에 활용할 부분에는 동그라미를 친다.

그러니 내 책은 낙서장 같다. 화장에서 눈, 볼, 입술, 이마, 턱 등 어디 하나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듯 밑줄치기인 내 독서에서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

내가 펜을 바꿔가며 책을 읽듯 옆의 그녀는 거울, 펜슬, 립스틱, 화운데이션 등을 바꿔가며 화장을 한다.

우리(!)는 랩탑 컴퓨터처럼 백팩을 활용하는 것도 닮았다. 내 백팩 위에는 책, 펜, 폰 등이 놓여 있고 그녀의 백팩에는 화장품과 도구들이 놓여 있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나는 그녀의 몰입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드디어 화장을 마친 그녀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나와의 차이는 여기서도 드러난다. 나는 메모를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쥐었다 놓았다 하며 책을 읽지만 그녀는 화장 후 스마트폰을 찾는 것이다.

그녀는 화장을 마친 뒤 곧바로 전철에서 내렸다. 화장하기 위해 전철을 탄 것이 아닐까?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아 순전히 전철을 탔던 내 과거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