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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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이라는 운명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왜소하고 무력한 존재인가?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20살의 젊은 나이에 문학계에 데뷔한 슈테판 츠바이크. 그는 평화주의자로서의 신념을 간직했고, 이 신념에 따라 행동했기에 1차대전 때는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1차대전 이후에는 다시 작가로서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50대가 되었을때, 평화로운 잘츠부르크의 전경을 보며 ‘어느 누가 나를 파멸시키리’라며 자신만만해 하였으나 1933년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나치는 호시탐탐 오스트리아에 대한 야욕을 숨기지 않았고 유태인이었던 츠바이크는 친구들에게 같이 외국으로 도망갈 것을 권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스트리아 밖의 사람들은 모두 오스트리아의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으나, 오스트리아인 친구들은 내일도 오늘이나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세상이 이어지리라 믿고 해외로 망명하자는 권유를 거절한다. 츠바이크는 혼자 영국으로 망명하게 되고, 곧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후 오스트리아에 있는 유태인들을 박해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괴로워한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고 이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해 하며 이 책은 끝난다.
하지만 이후 츠바이크의 생애를 살펴보면 이야기의 비극성은 더욱 깊어진다. 영국이 2차대전에 뛰어들면서 오스트리아 출신 츠바이크는 적대국 국민으로 간주되었고 결국 그는 미국으로, 다시 곧 브라질로 망명하게 된다. 오스트리아에 있었을 당시 그는 역사적 인물들의 필적을 수집하고 해외 곳곳을 여행하며 유명인사들과 만나는, 모두가 동경할만한 생활을 하였으나 브라질에서의 삶은 이전의 삶을 생각하기 어려울만큼 힘겨웠다. 전황은 추축국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이 참전하게 되면서 전쟁은 유럽만의 전쟁이 아닌, 전세계의 전쟁으로 확대된다. 이러한 현실에 우울해하던 츠바이크는 결국 부인과 함께 동반자살을 하게 된다.
츠바이크가 처하게 된 현실은 츠바이크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고 사회적 영향력도 있는 유명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거친 운명의 손에 잡혀 내던져 졌다. 인간 개개인이 운명에 저항하는건 불가능한 것 일까? 츠바이크의 이 책은 마치 한 편의 그리스 비극을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우리 세대에게는 이전 세대와 같은 도피도 방관도 없었다. 시대를 항상 동시에 체험하게 만드는 우리의 새로운 체제 덕분에 우리는 언제나 시대 속에 휘말려 들어갔고 또 그래야만 했다. 폭탄이 중국 상해에 떨어져 집들을 파괴하면 부상자가 그 속에서 운반되어 나오기도 전에 우리는 유럽의 자기 방에 앉아 있으면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해상 수 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몽땅 그대로 영상화되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날아 들어 왔다. 언제나 알려지게 되고 함께 휘말려 들어간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떤 방어도 안전도 없었다. 사람이 도망갈 수 있는 땅이라는 것도 남아있지 않았고, 사람이 사들일 수 있는 고요함이나 정적 같은 것은 더군다나 없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운명의 손이 우리를 잡아 쥐고는 그 끝날 줄 모르는 놀음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국가의 요청에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고 가장 어리석은 정치의 먹이가 되었고 가장 공상적인 변화에 적응해 가며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언제나 사람들은 공통의 문제라는 것들에 얽매이게 되었으며, 격분하면서 이에 대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반항할 수도 없을만큼 사람을 끌고 다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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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 <청춘의 문장들> 10년, 그 시간을 쓰고 말하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금정연 대담 / 마음산책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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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눈물을 흘리는가? 적어도 나는 짐작과는 다른 일들을 겪을 때 눈물을 흘린다. 대체적으로 삶이란 짐작과는 다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나는 삶을 추측하는 일을 그만뒀다. 삶이란 추측되지 않았다. 그냥 일어날 뿐이었다. 소설은 그 일어난 일들의 의미를 따져보는 일이다. 짐작과 달랐던 일들의 의미를 나와 당신이 함께 납득해가는 과정이다. 삶의 어느 순간에, 당신이나 내게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혹은 진심으로 기뻐하게 만들었던 그 일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당신과 내게 납득시키는 일이다. 당신이나 나나 이제 다른 존재가 돼 살아가겠지만, 그 일들이 사라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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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직업으로서의 학문/직업으로서의 정치/사회학 근본개념 동서문화사 월드북 81
막스 베버 지음, 김현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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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베블런의 유한계급론과 대조해가면서 읽으면 재미있다.
유한계급론에서 유한계급은 가혹한 노동에서 면제된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자신이 축적한 재력을 비생산적이고 실용적이지 않은 소비를 해서 과시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베버의 이 책에 나온 청교도들은 노동을 단순히 축재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신에게 봉사하는 행위로 인식한다. 노동은 신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므로 이를 게을리하는 것은 죄를 짓는 행위다. 그리고 쓸데없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 또한 게으름과 마찬가지로 신에게 죄를 짓는 행위라고 인식한다.
안타깝게도 청교도들의 금욕주의 윤리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점차 자리를 잃고 있다. 하지만 베버의 말처럼 초기 자본주의가 청교도들의 이러한 윤리 의식 덕분에 발전했음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값어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도덕적으로 진정 배척되어야 할 것은 소유 위에 안주하는 일이며, 부를 향락함으로써 게으름과 정욕에 빠지는 일과 무엇보다도 ‘성결한’ 생활에 대한 노력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다. 재산이 위험하다는 말은, 그것이 이런 위험한 안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도의 영원한 평안’은 내세에 주어지는 것이며, 지상의 사람들은 자신이 은총의 상태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보내신 분의 과업을 해가 떠 있는 동안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계시된 신의 의지에 따르면, 신의 영광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게으름이나 향락이 아니라 오직 행위 뿐이다. 따라서 시간 낭비는 원칙적으로 죄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죄에 해당된다. 인생의 시간이란 자신의 소명을 ‘확인’하기에는 너무나 짧고 귀중하다.

(중략)

시간은 귀중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만큼 신의 영광을 위해 노동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위(無為)한 묵상도, 최소한 그것이 천직인 직업 노동을 희생하면서 이루어질 경우에는 무가치하며 단적으로 배척받아야 한다. 신은 묵상보다도 천직을 통한 신의 의지의 적극적 실행을 더욱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게다가 묵상을 위해서는 일요일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벡스터에 따르면, 직업생활에 게으른 사람들은 신에게 봉사할 기회가 주어져도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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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동아시아 역사 속의 류큐병합 - 중화세계질서에서 식민지 제국 일본으로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 근현대사 총서 7
나미히라 쓰네오 지음, 윤경원 외 옮김 / 진인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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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교과서와 수많은 연구서적에서는 1879년에 있었던 일본 제국의 류큐 왕국 점령 사건을 “류큐 처분”이라고 표현한다. 한 나라의 주권을 빼앗은 사건을 ‘처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의아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1910년의 한국과 달리 1879년의 류큐는 전후에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고 지금도 일본국 오키나와 현으로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류큐 병합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 당시 병합 과정에 참여했던 일본 정치인, 외교관 등이 남긴 기록이기에, 류큐인들의 목소리는 잊혀진 상태다.
저자 나미히라 쓰네오는 일단 올바른 용어 사용이 역사를 제대로 기술하는데 중요한다고 말한다. 당시부터 썼던 ‘처분’ ‘번왕’ ‘류큐번’ 같은 용어들은 사실을 100% 반영하지 못하며, 오직 일본인들이 류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만 보여줄 뿐이다.
당시 일본인들의 인식과 달리 류큐는 단순히 일본에 종속된 지방국가가 아니었다. 1609년 사쓰마의 시마즈씨가 류큐를 침공하여 사쓰마에 대한 독점적 무역(다른 영지와의 무역금지), 중국에로의 진공무역 통제 등 속국 같은 처지에 빠지게 되었지만, 이후에도 중국과의 진공무역은 계속 이루어졌고 사쓰마도 그걸 눈감아주고 있었다. 중국과의 진공무역이란 단순한 무역을 넘어 류큐가 중화체제에 편입된 ‘국가’임을 의미하고 있으며, 중국도 류큐를 독립국가로 보았지 사쓰마의 지배를 받는 국가라고 보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 간의 류큐에 대한 인식 차이는 후에 류큐병합 시 청과 일본이 충돌하게 된 원인이 된다. 청의 정치인 이홍장은 류큐병합이 이루어지면 곧이어 일본이 조선병합에 나설 것이라고 말하며 이를 막을려고 하였지만, 일본과의 충돌을 두려워했던 청은 군사적 행동에 나서기를 주저하였다. 이홍장의 분석은 정확하였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켰고 이에 청나라를 패배시켜 전통적인 중화질서 내에서 조선을 분리시키는데 성공한다. 10년 뒤 일어난 러일전쟁을 통해 조선을 완전히 자신의 세력권에 넣은데 성공한 일본은 1879년 류큐 병합 시와 마찬가지로 내정부터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 결국 전쟁 없이 한 나라를 침탈하는데 성공한다. 류큐 병합은 제국주의 일본이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던 셈이다.
이 책을 읽고 류큐라는 국가가 어떻게 일본에 의해 무너졌는지를 알 수 있었고, 이 과정이 40년 뒤 한반도에서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비교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잊혀진 타자의 목소리를 역사 서술에 있어서 어떻게 포함시켜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역사란 과거와의 대화라고 흔히 말하지만, 우리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말 중에서 어떤 것을 현재의 역사기술에서 채용할 것인가는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적어도 ‘류큐 처분’ 개념과 같이, 역사의 일방적인 당사자가 사용한 언어를 그대로 현재의 역사학 개념에서도 채용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독자만이 아니라 연구자 자신도 처음부터 일정한 예단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충분히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류큐, 오키나와의 ‘폐번치현’이 ‘류큐 처분’을 해서 실시된 역시적 사실이며, 그 사실을 그러한 것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본래 객관적이어야 하는 역사기술의 용어라고 해서 오직 그 용어만이 반드시 사용해야 할 이유는 없다. ‘처분’으로 칭한다 해도 거기에 반드시 명확한 처분권한과 충분한 처분 이유가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또는 ‘폐번치현’으로 불렀다고 해서 당시 류큐에 ‘류큐번’이라는 실체가 반드시 있었다고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처분’의 권한과 이유가 없고 ‘번’의 실체가 없는데도 그러한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면, 객관적인 역사기술상의 개념으로서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우리들이 ‘류큐 처분’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연구하고자 할 때 최소한 이와 같은 의문과 유보를 연구의 출발점에 두고, 만일 역사의 한쪽 당사자가 사용한 말을 이용하는 것, 정확하게는 전용하는 것이 역사기술상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다면 적절한 개념으로 치환하려는 시도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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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의 향수 - 고대 지중해의 풍요로운 향수 문화사
주세페 스퀼라체 지음, 김정하 옮김 / 산지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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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지중해의 풍요로운 향수 문화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고대 그리스의 풍요로운 향수 문화사”로 부제를 바꾸어도 될 정도로 그리스 중심으로 향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고대 지중해 세계라길래 로마 제국의 향수 문화사도 다루나 싶었는데, 딱 헬레니즘 시대까지만 다루어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게다가 테오프라스토스의 <냄새에 관하여>를 제외하고는, 향수 문화에 관련한 문헌들이 전해져 내려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의 향수 문화를 살펴보는데도 한계가 명확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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