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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철도 국제관계사
이노우에 유이치 지음, 석화정 외 옮김 / 지식산업사 / 2005년 3월
평점 :
이 책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동북아시아에 있었던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파워게임을 철도사(鐵道史)를 통해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주무대는 만주와 한반도로, 파워게임의 참가자는 영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이다.
이 책은 제일 먼저 경봉철도를 소유한 영국과 시베리아 철도, 동청철도를 소유한 러시아 간의 미묘한 파워게임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대륙세력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중앙아시아에서 영국과 러시아 간에 벌어졌던 파워게임은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레이트 게임>은 중앙아시아를 무대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당시 혼란에 빠져있던 중국 대륙으로 세력권 확장을 꾀하던 러시아는, 당시 중국에 제일 많은 이권을 가지고 있던 영국에게 있어 가장 위협적인 상대였다. 특히 러시아가 아관파천 이후 한반도에도 그 세력을 확대하자, 영국은 청일전쟁 이후 급성장한 일본을 끌어들여 러시아 저지에 맞선다. 이러한 영국, 일본 등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대표하는 러시아 간의 경쟁을 저자는 당시의 철도에 주목해 설명하고 있다.
당시의 철도는 단순히 군사와 물자를 수송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대방이 자신의 세력권에 침입하는 것을 막는 중요한 방어선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궤도가 넓은 광궤 철도를 쓰는 러시아와 표준궤를 쓰는 영국과 일본의 철도는 서로 호환될 수 없었기 때문에 효과적인 대러 방어선이 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 등 한반도 철도 부설권을 획득할려는 일본과 러시아 간의 치열한 경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러한 일본 뒤에는 일본을 경제적, 외교적으로 지원해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영국이 있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한반도와 남만주 일대를 장악하면서 만주, 한반도 일대를 장악하려는 러시아의 야심은 한풀 꺽였지만 대신 새로운 파워게임 참가자 미국이 등장하고, 영일동맹 관계였던 영국과 일본 사이의 외교적 마찰, 열강들을 만주에서 몰아내려는 중국의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은 전쟁으로 인해서 멀어졌던 러시아와의 관계를 호전해 만주지역에 새롭게 유입된 미국, 영국 자본에 대해 공동대응을 함으로써 이 위기를 타파한다.
철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자세히 해설하고 있다는 점, 자칫 지루하기 쉬운 동북아시아 철도 경쟁을 흥미롭게 서술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만족스러웠던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부제가 <영일동맹 성립과 변천과정>인 점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제3차 영일동맹이 체결되고 중국에 신해혁명이 발생한 1911년도에서 이야기를 끝내고 있다. 철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파워게임은 사실 1911년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며 후에 만주사변, 중일전쟁을 잉태하였고, 태평양 전쟁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신해혁명 이후의 동북아시아 철도 경쟁 및 만철의 만주 장악에 대해서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야구경기 우천 취소처럼 이야기를 도중에 끝낸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