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족, 연인 뿐만 아니라 친구나 직장동료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적용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겸손, 객관성, 이성이 필요하다고 말하였는데, 셋 다 중요하지만 난 겸손에 더 가중치를 두고 싶다. 겸손하지 않고 오만한 이는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타자를 판단하지 못한다. 내가 그러했는데 나는 항상 내 자신이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타자의 심리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내면 깊숙한 곳에 있었다. 이러한 자신감은 오만함을 불렀고, 오만함에 의해 나는 타자 그 자체가 아니라 내 주관에 의해 왜곡된 타자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왜곡된 타자와의 대화는 결국 불일치와 갈등을 낳게 되고 결국 이는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버렸다.

타자를 이해하는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나 자신의 심리, 무의식도 알지 못하는데, 타자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타자를 완전히 이해하는건 플라톤의 이데아에 도달하는 것만큼이나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 좌절을 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한계가 있기에 인간관계는 어둠 속에 밝은 항성을 숨기고 있는 우주만큼이나 경이롭게 느껴진다.

그 동안 난 인간관계에서는 진심만 있으면 어떠한 갈등이 있더라도 결국은 좋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거짓은 아무리 보기 좋게 느껴지더라도 결국은 들통나기 마련이니까, ‘모든 사람에게 진심을 가지고 대하면 갈등이 커질 일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진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간관계에는 진심 이외에도 경외심이 필요하다는걸 깨달았다. 경외심은 단순히 조심성, 신중함, 타자에 대한 배려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들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경외심은 마치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웅장한 대성당에 발을 딛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다는걸 느끼는 마음, 하지만 그 느낌에 위축되지 않고 그러한 신비 자체를 있는그대로 존중하며 받아들이려는 마음, 이러한 것들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 경외심이다. 경외심이 있는 이들은 자신의 한계를 너무나도 잘 인식하고 있기에, 에리히 프롬이 말한 겸손, 객관성, 이성을 모두 가지고 타자들에게 접근할 수 밖에 없다.

만약 내가 다가가는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가지고 다가갔더라면,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왜곡하지 않았더라면, 타자들에게 의도치 않은,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 일이 훨씬 줄어들지 않았을까...

사랑은 자아도취의 상대적 결여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사랑은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러한 목적에 전 생애를 바쳐야 한다. 겸손과 객관성은 사랑이 그런 것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나는 이방인에게 객관적일 수 없는 한, 나의 가족에 대해서도 참으로 객관적일 수 없으며, 역(逆)도 진(眞)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과 속 한길그레이트북스 30
M.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 / 한길사 / 199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대의 종교적 인간들에게 있어서 종교와 신화는 그들의 세계관을 구성하고, 그들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신화 속 도시를 모범으로 삼아 도시를 건설하였고, 신화 속 이야기를 축제에서 재현하였다. 그들은 공간과 시간을 성스러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엄연히 구분하였다. 성스러운 공간에 있을 때, 그들은 신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느꼈으며, 성스러운 시간에 있을 때, 그들은 역사적 시간이 아닌 신화적 시간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성스러운 시간은 일회적인 시간이 아니었으며, 매번 의례를 통해 반복되었다. 또한 종교적 인간들은 통과의례를 중요시 여겼는데, 이 통과 의례를 통해 그들은 원래 있던 집단에서 벗어나 새로운 다른 집단에 가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의례도 역시 마찬가지로 신화 속 상징이 널리 사용되었다. 신화 속 상징을 통해 죽음과 탄생을 표현하였는데, 이를 통해 의례를 받는 이는 의례를 받기 전의 그가 아닌, 새롭게 태어난 그가 된다.

하지만 르네상스 기에 접어들면서, 비종교적 인간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비종교적 인간은 앞에서 설명한 신성성들을 거부한다. 그들은 신과 종교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세계를 해석하고자 한다. 하지만 엘리아데는 “순수한 상태로서의 비정교적 인간”은 가장 탈신성화된 근대 사회에서조차 드물다고 말하는데, 근대인들도 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보존하고 있는 의례들이 많기 때문이다. (집들이, 새해 맞이, 결혼, 출산, 취업, 승진에 따르는 잔치 등)

엘리아데의 이 책은 단순히 종교학적 고찰을 넘어 전근대인들의 사고(思考)에서 얼마나 종교와 신화가 큰 비중을 차지했고, 어떤 방식의 행위로 표출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종교학을 공부하는 이 뿐만 아니라 인류학, 사회학, 역사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유용한 필독서이다.

우리에게는 종교적 인간이란 가능한 한 세계의 중심에 가까이 살고자 하는 염원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의 나라가 대지의 중앙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는 자신들의 도시가 우주의 배꼽을 구성한다는 것, 더욱이 신전이나 궁전이 진정한 세계의 중심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자기 자신의 집이 중심에 존재하고 세계의 모상이 되기를 원한다.

(중략)

전통 사회의 인간은 위로 열려져 있는 공간, 즉 상징적으로 지평의 단절이 보증된, 따라서 다른 세계, 초월적 세계와의 접촉이 의례를 통해 가능한 공간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다.

고대 문화의 종교적 인간에게 있어서 세계는 매년 갱신된다. 다른 말로 하면, 세계는 새로운 해가 될 때마다 원초의 신성성을 회복한다. 즉 창조주의 손에서 나왔을 때의 신성성을 갖는 것이다. 이 상징은 성전의 건축 기술적 구조에서 명료하게 표현되었다. 사원은 가장 뛰어난 성소이자 세계의 모상이므로 우주 전체를 성화하고 동시에 우주의 생명을 성화한다. 이 우주적 생명은 원형 궤도의 형태로 상상되고 해(year)와 동일시되었다. 해는 닫혀진 원이었다. 그것은 처음과 끝을 갖고 있지만 새로운 해의 형태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신년이 올 때마다 하나의 ‘새로운’, ‘순수한’, ‘신성한’ - 아직 소모되지 않았기 때문에 - 시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 나이를 먹으면 키가 쑥쑥 크듯이 나의 내면도 성장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이제는 아무도 학생이라고 부를지 않을 때가 되서야 알았다.
나이를 먹어도 내면은 생각만큼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에게는 아직도 유년기의, 어리숙한 소년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지는건 슬픔과 고독에 익숙해지는 것 뿐이라는걸...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 <괜찮아> 중에서 -

몇 개의 이야기 12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 같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 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문학동네 시인선 118
박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하는 것보다 잊는 것이 더 어렵다.
예전에 TV에서 “기억”은 하나의 기술이라고 말하는걸 들은 적이 있다. 요령만 익히면 원주율이든 사람이름이든 쉽게 암기할 수 있다고 한다. “기억”이 기술이라면 “망각”도 하나의 기술인걸까? “망각”도 요령만 익히면 어떤 것이든 쉽게 잊을 수 있는걸까?

사라진다는 것은 문을 열고 나가
문 뒤에 영원히 기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다지 멀리 가지도 못하면서
너무 멀리 가버린 것들의 차가워진 심장

- <의자> 중 일부 -

홀수의 방

잊겠다는 말 너머는 환하다. 그 말은 화물열차를 타고 꽃나무도 한 그루 따라왔다. 꿈이었나봐. 흩어지는 기억들. 슬픈 단어들은 흩어진 방을 가진다. 너는. 나를. 그녀를. 누군가를. 사랑은 없고 사랑의 소재만 남은 방에서 너는 긴 팔을 뻗어 현관문에 걸린 전단지를 만진다. 잊겠다는 말은 벼랑 끝에 매달리는 손. 이미 그곳에 있었지만 도대체 그곳은 어디인가. 떠나면서 허공에 던져놓은 너의 단어들. 흩어져 있는 너의 단어들이 흰 배를 드러내놓고 날아가는 걸 본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등을 돌렸다. 이제 내 몸에서 돋아나는 그림자를 이해하기 위해 계절의 밤을 다 소비해야 한다.

(중략)

그 와중에 잊고 싶다는 말이 개미처럼 우왕좌왕한다. 그 와중에 미안과 무안(無顔)은 깊은 방을 만들고 있다. 나는 방을 잃고 현관문에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너의 손목을 붙잡고 있다. 오로지 너였을 한 사람을 발굴하듯이. 그래서 발굴된 영혼이 다른 영혼을 찌를 듯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 속에서.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0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

사람이 죽으면
선인장이 하나 생겨나요

그 선인장이 죽으면
사람 하나 태어나지요

원래 선인장은 널따란 이파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이 가시가 되었지요
찌르려는지 막으려는지
선인장은 가시를 내밀고 사람만큼을 살지요

아픈 데가 있다고 하면
그 자리에 손을 올리는 성자도 아니면서
세상 모든 가시들은 스며서 사람을 아프게 하지요

할 일이 있겠으나 할 일을 하지 못한 선인장처럼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될지를 생각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살지요
실패하지 않으려 가시가 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죽지요
그리하여 사막은 자꾸 넓어지지요

사랑이 끝나면 산 하나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퍼다 나른 크기의 산 하나 생겨난다.

산 하나를 다 파내거나
산 하나를 쓰다 버리는 것
사랑이라 한다


- <사랑의 출처>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