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직업으로서의 학문/직업으로서의 정치/사회학 근본개념 동서문화사 월드북 81
막스 베버 지음, 김현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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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베블런의 유한계급론과 대조해가면서 읽으면 재미있다.
유한계급론에서 유한계급은 가혹한 노동에서 면제된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자신이 축적한 재력을 비생산적이고 실용적이지 않은 소비를 해서 과시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베버의 이 책에 나온 청교도들은 노동을 단순히 축재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신에게 봉사하는 행위로 인식한다. 노동은 신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므로 이를 게을리하는 것은 죄를 짓는 행위다. 그리고 쓸데없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 또한 게으름과 마찬가지로 신에게 죄를 짓는 행위라고 인식한다.
안타깝게도 청교도들의 금욕주의 윤리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점차 자리를 잃고 있다. 하지만 베버의 말처럼 초기 자본주의가 청교도들의 이러한 윤리 의식 덕분에 발전했음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값어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도덕적으로 진정 배척되어야 할 것은 소유 위에 안주하는 일이며, 부를 향락함으로써 게으름과 정욕에 빠지는 일과 무엇보다도 ‘성결한’ 생활에 대한 노력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다. 재산이 위험하다는 말은, 그것이 이런 위험한 안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도의 영원한 평안’은 내세에 주어지는 것이며, 지상의 사람들은 자신이 은총의 상태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보내신 분의 과업을 해가 떠 있는 동안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계시된 신의 의지에 따르면, 신의 영광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게으름이나 향락이 아니라 오직 행위 뿐이다. 따라서 시간 낭비는 원칙적으로 죄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죄에 해당된다. 인생의 시간이란 자신의 소명을 ‘확인’하기에는 너무나 짧고 귀중하다.

(중략)

시간은 귀중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만큼 신의 영광을 위해 노동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위(無為)한 묵상도, 최소한 그것이 천직인 직업 노동을 희생하면서 이루어질 경우에는 무가치하며 단적으로 배척받아야 한다. 신은 묵상보다도 천직을 통한 신의 의지의 적극적 실행을 더욱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게다가 묵상을 위해서는 일요일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벡스터에 따르면, 직업생활에 게으른 사람들은 신에게 봉사할 기회가 주어져도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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