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시의적절 7
황인찬 지음 / 난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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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 편의 글, 매월 한 권의 책. ‘시의적절’ 시리즈 7월 주자는 황인찬 시인이다. 동시대 가장 아름다운 감각을 가장 고유한 목소리로 써나가는 이라 자부할 이름이자 7월, 어쩐지 눅진하면서도 투명한 ‘여름 냄새’를 생각할 적에 가장 먼저 떠올릴 이름이기도 하다.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하루는 시로 하루는 에세이로 여름의 날들을 채워나간다.

때로는 그런 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더러는 지난여름의 눅눅한 흔적 곁에서, 가끔은 먼 여름의 소식 앞에서 시를 생각하는 시인의 일상들이 담겼다. 창밖의 여름에 어울리는 책이라 말해도 좋을 테지만, 손안에서 여름을 시작하는 책이라 불러보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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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세월이란 무상한 것이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은 때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기만 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는 스스로 어디가 얼마나 변했는지도 모르는 채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갈 따름이다. 옛사람들이 그토록 세월에 대해 노래했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알것 같다. p24

시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해 쓰이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시만이 갖는 특별한 의미와 감각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의 작은 공동체가 시의 세계에는 있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그전까지 그것이 굉장히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그리고 일방적인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문장을 읽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육화시켜나가는 과정은 저의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끔, 어떤 순간의 시는 서로 직접 주고받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소리 내어 읽고 그것을 듣는 경험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꼭 낭독회에서만 이뤄지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가까운 이에게 시를 읽어주거나 그것을 듣는 일도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꼭 행이나 연을 맞춰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자신의 흡을 따라 자연스럽게 읽는 것이야말로 그 시를 제일 잘 읽는 법일 테니까요.

앞으로도 때로 사람들은 제게 시를 어떻게 읽느냐 묻겠지요. 그러면 저는 마찬가지로 눈으로 읽는 것이라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말을 덧붙일 수도 있겠습니다.

같이 읽어요. 소리를 내면서요.p39~40


시는 혼자 쓰는 것이라서 시가 딱하다. 요새 생각하는 것은 혼자라서 딱한 시를 어떻게든 다른 것들과 나란히 두는 일이다. 다른 것들과 함께 하도록 하는 일이다. 시를 통해 하는 일일 수도 있고 시에게 하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단 생각만 하고 혼자 지쳐서 그만두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 생각만으로 로혼자 만족하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 생각만으로 지치거나 만족하는 일 말고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무엇일까. 이 글은 여기까지만 쓰고 나는 일단 나가야겠다. 여름날의 거리가 밖에 있다. p97

어제까지 우리는 여름에 있었는데 해변에서 바다를 보고 있었는데 비행기에서 내리면 겨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밤의 비행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빛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저게 서울이냐고 내가 물르면 너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서울은 지날 때쯤이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지상에 빛이 가득해진다고 그제서야 이제 겨우 집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안심하게 된다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공항을 벗어나면 와 춥다 정말 추워 말하며 버스에 탈 것이고 그때부터 우리의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서러를 사랑하면서 불빛 가득한 도시에서 살아가겠지 내 곁에 잠든 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너는 여기가 서울이 아니라고 한다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와서도 잠들지않소 먹지도 않고 불 꺼진 방에 누워 아직 아니라고 여긴 아니라고 p190~191


말하지 않으면 슬프지 않다. 그러나 말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말한다. 그것이 요새 나의 삶과 시쓰기의 태도다. 김종삼과 같이 숭고하고 고결한 언어를 다룰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 될 테지만, 지금과 같은 시대에 그런 언어를 구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기도 할뿐더러, 조금은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말하고자 한다. 숭고하지도 않고, 고결하지도 않게. 무엇인가를 은폐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것을 드러낼 뿐인. 창백하고 간결한 언어가 아니라, 다소 엉망진창이어도, 조금은 슬퍼지더라도 기어코 말해버리는 것. 나를 말로 뒤덮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말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진짜로 말해보는 것. 그것이 진정 가능할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이렇게 말해버렸기에, 그게 사실이 되리라 믿어볼 따름이다. p203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새파랗게 젊은 내가 벌써부터 말년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이 과연 건강하고 올마른 일일까? 사실은 죽고 싶고 싶다는 말을,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그리고 변태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인 것은 아닐까? 스스로도 이 질문에 답을 하기는 어렵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칠고 사악한 노인의 모습, 죽기 전까지 불화하는 삶, 그리하여 계속 갱신되는 예술가로서의 이 모습이, 내가 조금 더 살아보기로 마음먹게 하는 거의 우일한 이유라는 것이다. p228~229

시의적절 시리즈 일곱번째 이야기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을 읽고 있다.

7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매일매일 기록한 여름이야기...

열대야가 계속되고

간간히 비가 내려 한껏 달아오른 대지를 적셔주긴 하지만

오늘이 말복이라는게 믿기지 않은채

여름과의 이별이 실감남지 않는다.

어쩌면 불현듯 찾아올 가을에 당황할 듯도 싶다.

내게 있어 칠월은 시인의 언어로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었는데

이제는 암과 마주하고 지리한 검사를 받는 계절로 기억될 듯 하다.

책속에서 저자는

삶은 항상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그것이 우리삶의 좋은점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비록 한쪽 가슴을 잃었지만

건강을 생각하며 음식을 챙겨먹고, 꾸준히 걸으며

건강나이 72세에서 58세로 회춘(?)을 했고

예전보다는 서로에게 향한 측은지심으로 김씨와의 관계가 조금은 변화했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가끔은 슬프거나 괴로운 순간이 올테고

꼭 바라는대로만 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힘을 내어보자.

봄날은 갔고

여름날도 갈테고....



삶은 항상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야 만다.

그것이 우리 삶의 좋은 점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그 모든 어긋난 상상조차 이미 두 사람의 미래의 책에는 적혀 있으리라고 믿었다.

꼭 바라는대로만 되지는 않으리나는 것을 알면서,

가끔은 슬퍼하거나 괴로운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알면서,

그럼에도 더 나은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

그것이 사랑의 가장 멋진 점 아니겠는가.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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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자존감 수업 - 니체에게 배우는 나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기술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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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동안 니체를 읽어온 ‘니체 애독자’ 사이토 다카시는 자존감이 낮아지기 쉬운 지금이야말로 니체를 꼭 읽어야 한다며 이 책을 집필했다. ‘신의 죽음’, ‘초인’, ‘아모르 파티’, ‘힘에의 의지’, ‘영원 회귀’ 등 니체 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소개하면서, 타인과 나를 비교하거나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진정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단독자로서 고독의 자유를 만끽하고, 어린아이처럼 창조적인 세계를 만들고, 고통 속에서도 강인하게 살아가고, 주어진 인생과 운명에 감사하고, 노예가 아닌 주인의 삶을 영위하고,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는 등 자신을 사랑하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가르쳐준다. 독자 여러분도 니체를 읽으며 껍데기로 치장한 ‘가짜 자존감’이 아니라 속부터 단단한 ‘진짜 자존감’을 갖출 수 있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과 세상 모든 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소중한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니체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깊습니다. 이 점 역시 오늘날 우리가 니체의 말에 공감하기 쉬운 이유입니다. “신은 죽었다”라는 충격적인 말이 나오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기독교를 부정합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선(善)이므로 모두 천상의 세계에 있고, 지상에 사는 인간은 자기를 사랑하고 긍정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는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하찮은 존재로 치부하고, 신을 무조건 훌륭한 존재로 숭배하는 그런 비굴함을 인간이 초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p15

“남들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나만이 따로 할 일이 있지 않을까? 발밑을 깊이 파보면 거기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니체의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나에겐 아무것도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발밑을 파서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굴해야 합니다. 지금의 인간관계가 시시해 불만인 사람은 ‘그래도 이런 인간관계라도 없어지면 외로울지 몰라’라며 마음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자신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 이미 하고 있는 일에 빛나는 무언가가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깊이 파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니체의 말 한마디를 더 소개하겠습니다.

일부러라도 그대들 자신을 믿는 것이 좋다!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남들이 그대들을 믿겠는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자는 언제나 거짓을 꾸민다!

_니체, 『니체 전집 』p41

그리고 ‘고독자’라고 하면 왠지 외롭고 쓸쓸하고 나약한 느낌이 듭니다. 반면, ‘단독자’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고고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요. 영어로는 ‘solitude’라고 표현하는데 무언가 강인함이 느껴집니다. 만약 고독하다고 느낀다면 스스로에게 “나는 고독자가 아니라 단독자다”라고 말해줍시다. 기독교라는 거대한 권력에 홀로 맞선 단독자 니체를 떠올려보길 바랍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힘과 용기가 솟아날 것입니다. 강인함은 단독자로 존재할 때만 생기는 법입니다. p71

물론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꿈이 실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희망을 품고 꿈을 향해 노력하는 일 자체입니다. 이 과정에서 방향을 전환해도 되고 완전히 새로운 길을 찾아도 됩니다. 그렇게 꿈과 희망의 방향이 달아지는 일도 노력하는 과정이 없이는 불가능 합니다. 방향 전환 역시 한 가지 재능인 셈입니다. p185

듣고 보니 자유에는 고통스러운 일면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권위 앞에 복종하고 때로는 독재자에게 몸을 맡겨버리는 것도 자유를 내던지고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정말로 자유를 원하는가’라는 기독교의 근간을 묻는 이 장면은 니체의 사고방식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어쨌든 자유는 ‘도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유를 생각할 때는 니체의 말을 떠올리고 이렇게 자문해보세요.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p195

운명을 긍정하는 것과 운명에 안주하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후자에는 왠지 모르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저항하지 못해 어쩔 수 없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반면, 운명을 긍정한다고 하면 주어는 ‘나’가 됩니다.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니, 맞서는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차라투스트라의 ‘공격적인 용기’도 이와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본래 자기 운명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운명의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불행하다, 불쌍하다, 불운하다고 해도 스스로가 이 운명을 선택한 것은 바로 ‘나’라는 생각으로 진취적으로 맞설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운명입니다. p236~237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기술을

부단히 배우고 익혀야 한다!"

_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에게 배우는 나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기술

'니체의 자존감 수업'을 읽고 있다.

어찌하다보니,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혼자있는 시간의 힘' 이후 근간에 읽은 '단독자'까지

저자와 함께한 시간이 꽤 된 듯 하다.

고독의 자유(?)을 만끽하고 싶으나

컴퓨터강사로 아침식사만 세번을 차려내는 가정주부로

그 어느것 하나 포기하지 못하고 종종거리며 살아와서인지

코로나이후 강의를 쉬며 많아진 시간을 누리는 것보단

왠지모를 불안과 자책으로 여전히 전전긍긍하며 보냈던 것 같다.

기말고사이후 더위와 함께 찾아온 무기력함으로

잠시 또 방황의 시간을 보냈지만

조금은 뿌듯한 마음으로 '등록금 0원'으로 2학기 등록을 했고

미술수업, 캘리그라피수업, 디지털드로잉으로 만드는 나만의 그림책등

문화센터와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수업들을 신청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난 뭔가 배우고 열심을 낼때

가장 자존감도 높아지고 행복해지는 것 같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기쁨도 고통도,

슬픔도,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되풀이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긍정하고 강하고 단단한 인생을 살아가라."

이 한문장 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만 했던....

어려운 말은 제쳐두고 니체의 메시지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기쁨도 고통도, 슬픔도,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되풀이 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긍정하고 강하고 단단한 인생을 살아가라."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어 삶의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는 니체의 이 메시지를 떠올려보세요.

삶을 향한 의욕이 샘솟을 테니까요.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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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형의 삶 (양장) - 김민철 파리 산문집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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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째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는 작가의 최애 도시 파리에 두 달간 머물면서 쓴 이야기다. 작가는 2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가장 먼저 비행기를 타고 로망의 종착지인 파리로 갔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여행과는 다른 속도와 궤적으로 더 촘촘하게 일상을 보내다 돌아왔고, 자기 방식대로의 행복에 조금 더 가까워진 삶을 되찾았다.

특별한 바람과 빛,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던 풍경, 그곳에만 존재했던 것들이 입체적이고 선명하게 작가의 렌즈를 통해 전달되어 여행의 설렘을 가득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퇴사 후, ‘자연인’이 된 작가가 파리에서 만난 수많은 ‘무정형의 삶’에 대한 사색도 담았다. 자기 앞에 놓인 새로운 생의 시간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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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곳을 ‘파리’라 불렀지만, 그 두 글자에 꾹꾹 눌러 담을 수 없는 이야기가 내겐 많았다. 일상의 때를 살살 벗겨내자, 시간의 먼지를 슬쩍 털어내자, 파리라는 꿈은 여전히 젊게 펄떡이고 있었다. 덕분에 두 달 동안 파리에서 한 권의 책으로도 압축될 리 없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토록 간단할 리 없다. 나의 여행 가방 안에는 두 달 동안의 짐뿐만이 아니라 수십 년의 시간이 함께 담겼으니까. p4~5


그런 거다. 관계는 주고 받는거다. 나는 내가 하는 게 편하고, 함께 있는 누군가가 신경을 안 쓰는게 좋고, 그리하여 결국 내가 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좋고 싫음도 지나치게 분명하기에 나는 내가 좋은 걸 해야만 하고, 싫은 표정을 숨길 줄 모른다. 그 와중에 수시로 멈춰 사진을 찍고, 뭔가를 끄적이고, 자꾸 자기 세상으로 빠져버린ㄷ나. 내가 생각해도 나는 데리고 다니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인간이다. 친구는 나를 다 받아주고 거리를 유지해주고 또 혼자 있을 시간까지 준다. 덕분에 상대에게 나를 적당히 맞추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관계는 평생 가까이에서 제자리걸음이다. 변치않고 계속 제자리걸음을 했더니 관계는 깊고 깊고 깊어졌다. P96

스타벅스에서 친구가 말한 건 바로 이런 순간이었다. 뭔가 또 대단한 것을 찾아 나서려는 나에게, 친구는 이 순간을 더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을 고객으로 여기지 않길 주문하고 있었다. 너도 여행을 온건고, 나도 여행을 온거도, 우리 둘의 여행이 이곳에서 겹친 것뿐이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 나는 그냥 아침을 좀더 느긋하게 바라보고 싶어. 그것만으로 충분해. 친구의 이 말은 김민철여행사에 곧 바로 전달되었다.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 고객의 주문이다. 아니, 오히려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순간을 친구와 함께 여행할 기회였다. P141

강바람에 커다란 나무가 느릿느릿 흔들리는 걸 보며, 지나가는 유람선 위로 사람들의 흥분이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노을이 진 자리에 조명이 켜지는 걸 보았다. 정말 아름닫운 시간이라는 걸 내 눈으로 다 보았다. 마음은 텅 비어가는데, 그 자리로 웃음이 자꾸 비집고 들어왔다. 웃음은 내가 이 아름다움에 화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다음다운 것들에 하루 종일 취해 있다가, 아름다움을 내 손으로 그릴 수도 있다니. 내가 나를 위해 마련한 미래가 이토록 아름답다니. 이 시간을 나중에 나는 어떻게 그리게 될까. P222~223

그 밤 그곳엔 다양한 모양의 다양한 삶들이 모였다.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고민을 들으며, 그들의 다음 목적지를 들으며, 나는 앞으로의 내 삶이 어디로 펼쳐질지 궁금해졌다. 회사안에서 좁게, 아주 좁게 시선을 유지하고 싶을 땐 그 삶만이 가능한 줄 알았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 중 최선의 선택지를 뽑은거라 믿고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모양의 삶들이 있었다. 그것도 무수히 많이 있었다. 짐작조차 하지 못한 뾰족함을 품고 좁은 길을 온몸으로 밀며 나아가는 삶도 있고, 두려움을 마주하고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삶도 있다. 누군가가 만들어준 안전한 울타리가 없어도, 스스로 하고 싶은 일들을 울타리로 세우며 살아가는 삶도 있다. 이런 용기를, 저런 대범함을, 이상한 긍정을 파리에서 만났다. p271


결국 돈이 아니라 시간을 소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안정적인 돈 대신 넘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24시간을 오롯이 내 마음대로 살며, 내가 어떤 모양으로 빚어지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게 너무 궁금해서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고정된 삶을 지키는 대신 무정형의 시간을 모험하고 싶다. 그렇다면 너무 모든걸 정하지 않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P313

그러니 내가 말한 그 어떤 것도 믿지 말고, 당신은 당신의 파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모양에 꼭 맞는 파리를 완성했으면 좋겠다. 물론 '파리'의 자리에 어떤 다른 도시가 들어가도 좋다. 당신을 꿈꾸게 만드는 곳, 당신을 빛나게 만드는 곳, 그러니까 당신 영혼의 고향을 당신도 꼭 하나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p333

파리 올림픽 개막을 기다리던 어느 늦은 밤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고 좋아하게 된 김민철 작가의 신작

파리에서의 두 달을 머무르며 기록한

'무정형의 삶'을 구입했다.


언젠가 다시 가고픈 그곳 파리...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베르사이유궁전

몽마르트언덕

상제리제 거리

한 밤의 유람선...

스치듯 지나온 거리 풍경을 추억하며

가보지못한 지베르니와 몽쉘미셀 그리고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마지막으로 사고 싶은 거 진짜 많을 문구점을 그려본다.

하루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었던 저자가

파리의 골목을 산책하며 좋아하는 치즈와 빵을 사는 이야기에

또 오랜친구와 유일한 입사동기와 함께한 시간들이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왜 나도 파리였는지 모르겠다.

할수만 있다면 한달살기를 하며 미술관을 가고 또 가고(?)

바게트를 사고 야외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방과 문구점을 기웃거리는 상상을 수없이 했던 것 같다.

셀렌디온이 부르는 '사랑의 찬가'에도 왠지 울컥한 기분이 들었는데

아마도 여고시절 불어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신 '장미빛 인생'과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등의 노래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과연 나중에 난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얼마나 다행인가.

나에겐 아직 수많은 '나중에'가 있다.

없다면, 내가 만들 것이다.

생각은 나중에 하자.

우선은 살아보자.

정 아니라면 나중에 돌아오면 된다.

나중에 내가 방법을 찾을 것이다.

어떻게든 된다.

걱정을 훌훌 털어서 길바닥에 버리고, 내 가방만 미련 없이 택시에 넣었다.

가자, 또 다른 나의 파리로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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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미술관 - 그림 속 잠들어 있던 역사를 깨우다
김선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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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의 표상으로만 여겨져 온 루이 14세는 사실 그의 콤플렉스를 가리기 위해 패션에 힘을 썼고 그 결과, 프랑스를 하이패션의 메카로 만들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괴롭히던 정치 포르노는 결국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진 매개가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등장한 먹지 않고도 사는 ‘금식 소녀들’의 기원은 남성보다 더욱 혹독하고 가혹한 고행을 해야 성자가 될 수 있었던 중세 시대의 굶어 죽은 수녀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세기에도 먹스타그램이 있었고 이를 그림으로 주문 제작해 명화로 재현하기도 했다.

‘비정상’으로 여겨지던 반 고흐는 정신 병원에 갇혀 새벽녘 창문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그리며 꿈과 불안, 희망과 고통을 「별이 빛나는 밤」에 담아냈다. ‘하얀 금’이라고 불리던 설탕이 그림 속엔 어떤 형태로 남아 존재하는지, 인류 멸망의 날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그리고 그는 왜 「최후의 심판」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는지, 디즈니가 인디언 공주의 신화를 어떻게 환상적인 거짓말로 재포장했는지 등도 모두 역사의 기록으로 남은 명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미술 작품에 잠들어 있던, 혹은 흘려보냈던 역사를 여섯 가지 키워드로 풀어서 살펴보는 그림 역사책이다. 과거를 살던 화가들이 자신들의 시대를 살아 숨 쉬듯 생생하게 그림에 담아낸 역사 즉, 어제의 기록을 읽는다.

근대 이전 역사의 구심점이었던 유명한 왕과 왕비, 의식주와 함께 삶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성과 사랑이 어떻게 그림 속에서 기억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또한 그림 속에 남은 음식의 역사, 그림 속에 기록된 신앙과 종교, 힘과 권력의 역사가 어떻게 그림에 각인되었는지, 그리고 근대 사회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통해 인간은 어떤 생각과 가치를 지니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를 미술 작품에서 읽어낸다. 그동안 미처 못 보고 있던 시대와 장면이 명화를 보는 순간 또렷하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지나간 역사와 사회를 어떻게 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림이 제작된 당시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 시대는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도 바뀐다. 따라서 그림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시대에 어떤 시각으로 그것을 볼 수 있을까? 교과서가 가르쳐준 진부한 관점이 아니라 자유롭고 개방적인 눈으로 과거 인물들의 행적과 역사적 사건을 바라본다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된다. P10

장 레옹 제롬은 플루타르코스의 이야기에 따라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낭만적인 첫 만남을 묘사한다. 그림 속 클레오파트라는 막 카펫에서 나와 유혹적인 자세로 카이사르 앞에 서 있다. 화려하고 정교한 이집트식 목걸이 아래 드러난 가슴, 허리띠 아래 투명한 베일 같은 치마 사이로 엿보이는 다리가 육감적이다. 옆에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위한 소품으로 그려진 노예가 여왕의 뒤에서 두려운 듯 웅크리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카이사르는 당황한 듯 두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클레오파트라를 올려본다. 화가는 고대의 사건을 상상하면서 젊고 매혹적인 이집트 여왕의 모습을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그려냈다. P95

이런 사진들이 엄청난 개인적 독창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회화, 문학 그리고 무엇보다도 올도이니가 열렬한 팬이었던 연극과 오페라 장면에 영향을 받아 카메라 앞에서 따라 한 것이다. 그녀는 작은 손거울이나 전신용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는사진 초상화를 여럿 만들었다. 이 포즈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유명한 로커비 비너스와 관련이 있을수도 있다. 그림 속에서 비단 침구에 날씬한 몸을 쭉 뻗은 채 돌아누워 있는 비너스 여신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큐피드에게 거울을 들고 있게 한다. 거울은 비너스와 자기도취에 빠진 올도이니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매개체다. P145

커피는 소박한 일상의 기호품 이상이었다. 사람들은 커피하우스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철학과 정치를 논하고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켰다. 커피하우스는 현대 민주주의의 산실이기도 했다. 1500년경 메카에 카흐베하네가 생긴다. 카흐베하네는 튀르키예어로 커피를 뜻하는 단어인 '카흐베'와 페르시아어로 집을 뜻하는 '하네'의 합성어로, 커피하우스를 뜻한다. 술을 금지 하는 이슬람 사회에서 커피를 마시며 남자들끼리 교류하는 장소로 발전했으며 여자는 출입이 금지되었다. P171

「정신병원의 복도」는 원근법적으로 펼쳐지는 생 폴드 모솔의 복도를 묘사한다. 밝고 따뜻한 노랑과 오렌지 계열로 채색된 복도의 중경에 작은 인물이 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고흐가 1889년 5월부터 사망하기 직전인 1890년 5월까지 1년간 머물렀던 병동을 그린 것 중 가장 인상적인 그림이다. 반복적인 진동을 일으키며 급격하게 물러나는 원근법은 무언가 조여드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예술가들이 종종 사회가 질병 혹은 비정상이라고 부르는 것에 가까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의력은 비합리적인 정신의 항해에서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P328

모네는 터너와 대기 오염이 만든 풍경에 대한 관심을 공유했다. 그들은 도시의 흐린 날씨와 안개에 싸인 강 풍경에 흠뻑 빠졌다. 모네는 무엇보다도 안개가 계절에 따라 혹은 하루동안 시시각각 런던을 변화시키는 모습에 매혹되었다. 그는 비오는 날, 안개로 뒤덮인 날, 밝고 화창한 날 등 변화무쌍한 날씨의 대기 효과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그림들을 그렸다. 첫번째 런던 방문 당시 그린 그림들은 모네와 안개와 대기 상태를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작업했음을 보여준다. P359


클로드 모네, 웨스터민스터 브리지 아래 템스강, 1871, 런던 내셔널 갤러리

미술관에 잠들어 있던 역사를 깨우는

아주 사적인 명화이야기

'사유하는 미술관'을 읽고 있다.

1. 역사의 구심점이었던 유명한 왕과 왕비

2. 의식주와 함께 삶의 핵심 요소인 성과 사랑

3. 그림 속에 차려진 음식의 역사

4. 명화에 기록된 신앙의 시대

5. 은밀히 감춰졌던 힘과 권력의 역사

6. 그림 속에 각인된 근대 사회의 모습

이 책은 위와 같이 여섯가지 키워드로 나뉘어져 있는데

'술탄의 심장을 훔친 하렘의 노예 록셀라나'를 시작으로

러시아 혁명의 시작 '피의 일요일'까지 평소 접하진 못했던

다양한 작품들과 함께 역사를 배울 수 있어 더 의미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카미유 피사로, 커피를 마시는 농부 소녀, 1881, 시카고미술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야생트 리고의 '루이 14세'에 대한 기록도 흥미롭게 다가왔는데

63세의 나이에도 호화로운 예복아래 들어난 늘씬한 다리가 눈에 먼저 들어와

탄력잃은 내 종아리를 슬쩍 쳐다보게 된다. ^^;

젊은 시절 발레로 다져진 다리라고 하니 조금 늦은 듯 하지만

이제라도 발레에 도전해 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커피 좋아하는 아줌마로 카미유 피사로의 '커피를 마시는 농부 소녀'와 폴 세잔의 '커피포트를 가진 여인'도 풍성한 식탁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로커비 비너스, 1947~1651, 런던 내셔널 갤러리


8월 8일 검사결과와 확인과 함께 복원 수술을 고민하고 있기도 하고,

요즘 이웃 도도모님 덕분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비너스 작품들 때문인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로커비 비너스'도 폴더에 찜해 놓았다.

내가 괜찮으면 다 괜찮은거라고... ㅠ.ㅠ

철없는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수술하는 대신 그 비용으로 미술관 투어를 꿈꾼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 작품을 마주하면 눈물이 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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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고백 - 김영민 단문집
김영민 지음 / 김영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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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기도 가볍기도 한 삶에서 완전한 희망에도 절망에도 치우치지 않고 절묘한 통찰을 끌어내는 우리 시대의 문장가, 서울대 김영민 교수의 아포리즘집. 2007년부터 2024년까지 무려 17년간 써내려간 문장을 선별해 엮은 단문 365편이 담겼다. 인생의 불전완함을 응시하는 예리하지만 따뜻한 사유, 세계의 진부함을 파헤치며 이면을 들추는 김영민식 위트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군더더기 없이 날렵한 문장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독자의 심장에 가닿는다. 몇 문장에 인간사와 세상사를 담기란 가히 어려운데 그것을 능히 성취한 책이다.

《가벼운 고백》은 김영민 교수가 최초로 선보이는 단문집으로, 총 3부 〈마음이 머문 곳〉 〈머리가 머문 곳〉 〈감각이 머문 곳〉으로 나뉘어 주제별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발문〉에서 그는 자신의 아포리즘 일부를 ‘드립’으로 표현하는데, “삶은 종종 부조리와 경이를 간직한 모호한 현상이므로, 때로는 구름을 술잔에 담듯 삶을 담아야” 하며, “드립은 바로 언어로 된 그 술잔”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드립을 통해서만 표현되는 생의 진실을 음미하며, 다사다난한 일에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아가자고 독자를 격려한다.

책 표지는 30여 년간 무라카미 하루키와 작업한 안자이 미즈마루의 작품 〈풋사과〉를 입혀 시각적 촉각적 청량감을 더했다. 풋사과처럼 시큼하면서 달달한 우리네 인생 조각을 품은 《가벼운 고백》을 찬찬히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인터넷 알라딘 제공>


'나라는 허상에 집착해서 쉴 새 없이 자신을 찾아대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 마침내 찾을때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무엇을 위해 고단함을 견뎌야 하는지,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이 인생의 전모를 논리적 언어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삶은 종종 부조리와 경이를 간직한 모호한 현상이므로, 때로는 구름을 술잔에 담듯 삶을 담아야 한다. 드립은 바로 언어로 된 술잔이다. p12

취약함은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인간의 특징이다. 인간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취약함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취약하므로, 인간에게는 울어도 될 곳이 필요하다. 그곳을 성소(聖所)라고 부른다. p21

애타게 바라는 것은 대개 오지 않기에,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관건은 무엇을 기다리느냐는 것이다. 무엇을 기다리느냐에 따라 기다리는 동안 하는 일이 달라지고, 기다리는 동안 하는 일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람 인생이 달라진다. 가장 한심한 것은 남을 흠잡고 싶어서 남이 잘못하기를 기다리며 사는 인생이다. 차라리 고도를 기다르는게 낫다. p29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결혼으로 한꺼번에 번식공동체, 대화공동체, 육아공동체, 일상공동체, 농담공동체, 생존공동체 그리고 스파링 파트너를 만들고자 한다. 그 많은 것이 한 방에 다 성공할 리 있겠는가.

Q:결혼이란 무엇인가.

A: 봉사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p46


글을 읽다 보면 마음을 가리키는 다양한 비유를 만난다. 마음은 때로 무엇을 비추는 거울이며, 갈아야 할 밭이기도 하고, 흐르는 물이기도 하다. 오늘, 마음의 비유를 묻는다면, “매립지”라고 대답하겠다. 시간이 지나면, 묻은 많은 것이 썩으리라.

형체도 없으리라. 그래도 빛을 발하고 있다면, 당신에게 돌려주겠다. p100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건 삶을 더 잘 누리기 위해서다. 허겁지겁 살 때 누리지 못한 삶의 질감을 느끼기 위해서다. 삶의 깊은 쾌락은 삶의 질감을 음이하는데서 온다. 그러니 공부가 어찌 쾌락이 아닐 수 있겠는가. p107

초심(初心)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종 초심을 말해야 할 때가 있다. 깊은 성찰 없이 건국한 나라도 건국 정신을 말해야 할 때가 있듯. 제발 초심이 있었다고 이야기해주게. 다만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라고. p133

어젯밤 자기전, 생일을 자축하는 차원에서 <원더풀 라이프>(1999)를 보았다. 천국으로 가기 전 잠시 거주하는 림보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장 행복했던 때의 기억을 떠올려야만 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사람이 그러한 기억을 찾는데 애를 먹거나, 찾았을 경우도 그들이 평생 추구했던 과업과는 거리가 먼 사소한 어떤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행복감은 무엇보다 '순간'에 깃드는 것이었다. 영화에 따르면, 그 사소한 순간에 맞닿는 찰나에야 비로소 영원으로 떠날 수 있다. p205


〈라이프 오브 파이〉(2012)는 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그 오랜 표류 기간을 견뎌 살아남았는가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뗏목에 호랑이와 함께 탔기 때문이다. 호랑이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그 긴장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고, 그 강함이 그로 하여금 대양을 건너게 했다. 현재 당신이 표류 중이라면, 당신의 호랑이는 누구인가. p211

진정한 여행은 여행 전의 기대와 여행 후의 기억에 있듯 진정한 삶은 살기 전의 꿈과 살고 난 후의 기억에 있다. 그래서 마르셀 프루스트는 쓴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걸작을. p219

무더위와 싸우면 불면의 밤을 보내던 어느날,

자다말고 다시 집어든 휴대폰 속 인터넷서점에 눈길을 끄는 싱그러운 풋사과 배경의

그만큼 또 제목도 산뜻한(?) '가벼운 고백'이 눈에 들어 왔다.

게다가 흠모하며 읽었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저자 김영민교수의

첫 단문집이라니 얼른 데려오는걸로...


먼저 이 책을 읽은 친구가 보내온 카톡메세지만으로도

기대가 더 커졌는데

발문 '성찰적 드립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시작으로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저자가 17년간 길어올린 아포리즘을 담은

인생이야기가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와 나또한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느낌이다.

결혼은 봉사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라던가,

오늘, 마음의 비유를 묻는다면 '매립지'라고 대답하겠다던가

짧은 글 속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오늘은 걱정 많았던 초음파검사를 마쳤다.

긴장때문인지 한동안 괜찮던 공황이 찾아와서

어지럼증과 함께 식은땀을 흘렸지만

친절한 선생님 덕분에 무사히 검사를 마쳤고

걱정과는 달리 수술부위도 반대쪽 통증부위도

아무 이상없음을 듣고 감사했고

수술후,

처음으로 한시간 가량 영양수액이라는걸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결재는 김씨의 카드로 하고...

(그돈이 그돈이지만 오늘은 왠지 그렇게 하고 싶었던...)

수액 자체에 큰 기대는 없으나 '플라시보'효과로

남은 더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믿어본기로 했다.

저녁에 온다는 꼬맹이 기다리며

힘내서 열심히 청소하고

꼬맹이 좋아하는 된장찌개와 쌈채소를 준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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