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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형의 삶 (양장) - 김민철 파리 산문집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평점 :
22년째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는 작가의 최애 도시 파리에 두 달간 머물면서 쓴 이야기다. 작가는 2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가장 먼저 비행기를 타고 로망의 종착지인 파리로 갔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여행과는 다른 속도와 궤적으로 더 촘촘하게 일상을 보내다 돌아왔고, 자기 방식대로의 행복에 조금 더 가까워진 삶을 되찾았다.
특별한 바람과 빛,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던 풍경, 그곳에만 존재했던 것들이 입체적이고 선명하게 작가의 렌즈를 통해 전달되어 여행의 설렘을 가득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퇴사 후, ‘자연인’이 된 작가가 파리에서 만난 수많은 ‘무정형의 삶’에 대한 사색도 담았다. 자기 앞에 놓인 새로운 생의 시간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펼쳐진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사람들은 그곳을 ‘파리’라 불렀지만, 그 두 글자에 꾹꾹 눌러 담을 수 없는 이야기가 내겐 많았다. 일상의 때를 살살 벗겨내자, 시간의 먼지를 슬쩍 털어내자, 파리라는 꿈은 여전히 젊게 펄떡이고 있었다. 덕분에 두 달 동안 파리에서 한 권의 책으로도 압축될 리 없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토록 간단할 리 없다. 나의 여행 가방 안에는 두 달 동안의 짐뿐만이 아니라 수십 년의 시간이 함께 담겼으니까. p4~5
그런 거다. 관계는 주고 받는거다. 나는 내가 하는 게 편하고, 함께 있는 누군가가 신경을 안 쓰는게 좋고, 그리하여 결국 내가 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좋고 싫음도 지나치게 분명하기에 나는 내가 좋은 걸 해야만 하고, 싫은 표정을 숨길 줄 모른다. 그 와중에 수시로 멈춰 사진을 찍고, 뭔가를 끄적이고, 자꾸 자기 세상으로 빠져버린ㄷ나. 내가 생각해도 나는 데리고 다니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인간이다. 친구는 나를 다 받아주고 거리를 유지해주고 또 혼자 있을 시간까지 준다. 덕분에 상대에게 나를 적당히 맞추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관계는 평생 가까이에서 제자리걸음이다. 변치않고 계속 제자리걸음을 했더니 관계는 깊고 깊고 깊어졌다. P96
스타벅스에서 친구가 말한 건 바로 이런 순간이었다. 뭔가 또 대단한 것을 찾아 나서려는 나에게, 친구는 이 순간을 더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을 고객으로 여기지 않길 주문하고 있었다. 너도 여행을 온건고, 나도 여행을 온거도, 우리 둘의 여행이 이곳에서 겹친 것뿐이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 나는 그냥 아침을 좀더 느긋하게 바라보고 싶어. 그것만으로 충분해. 친구의 이 말은 김민철여행사에 곧 바로 전달되었다.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 고객의 주문이다. 아니, 오히려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순간을 친구와 함께 여행할 기회였다. P141
강바람에 커다란 나무가 느릿느릿 흔들리는 걸 보며, 지나가는 유람선 위로 사람들의 흥분이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노을이 진 자리에 조명이 켜지는 걸 보았다. 정말 아름닫운 시간이라는 걸 내 눈으로 다 보았다. 마음은 텅 비어가는데, 그 자리로 웃음이 자꾸 비집고 들어왔다. 웃음은 내가 이 아름다움에 화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다음다운 것들에 하루 종일 취해 있다가, 아름다움을 내 손으로 그릴 수도 있다니. 내가 나를 위해 마련한 미래가 이토록 아름답다니. 이 시간을 나중에 나는 어떻게 그리게 될까. P222~223
그 밤 그곳엔 다양한 모양의 다양한 삶들이 모였다.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고민을 들으며, 그들의 다음 목적지를 들으며, 나는 앞으로의 내 삶이 어디로 펼쳐질지 궁금해졌다. 회사안에서 좁게, 아주 좁게 시선을 유지하고 싶을 땐 그 삶만이 가능한 줄 알았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 중 최선의 선택지를 뽑은거라 믿고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모양의 삶들이 있었다. 그것도 무수히 많이 있었다. 짐작조차 하지 못한 뾰족함을 품고 좁은 길을 온몸으로 밀며 나아가는 삶도 있고, 두려움을 마주하고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삶도 있다. 누군가가 만들어준 안전한 울타리가 없어도, 스스로 하고 싶은 일들을 울타리로 세우며 살아가는 삶도 있다. 이런 용기를, 저런 대범함을, 이상한 긍정을 파리에서 만났다. p271
결국 돈이 아니라 시간을 소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안정적인 돈 대신 넘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24시간을 오롯이 내 마음대로 살며, 내가 어떤 모양으로 빚어지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게 너무 궁금해서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고정된 삶을 지키는 대신 무정형의 시간을 모험하고 싶다. 그렇다면 너무 모든걸 정하지 않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P313
그러니 내가 말한 그 어떤 것도 믿지 말고, 당신은 당신의 파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모양에 꼭 맞는 파리를 완성했으면 좋겠다. 물론 '파리'의 자리에 어떤 다른 도시가 들어가도 좋다. 당신을 꿈꾸게 만드는 곳, 당신을 빛나게 만드는 곳, 그러니까 당신 영혼의 고향을 당신도 꼭 하나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p333
파리 올림픽 개막을 기다리던 어느 늦은 밤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고 좋아하게 된 김민철 작가의 신작
파리에서의 두 달을 머무르며 기록한
'무정형의 삶'을 구입했다.
언젠가 다시 가고픈 그곳 파리...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베르사이유궁전
몽마르트언덕
상제리제 거리
한 밤의 유람선...
스치듯 지나온 거리 풍경을 추억하며
가보지못한 지베르니와 몽쉘미셀 그리고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마지막으로 사고 싶은 거 진짜 많을 문구점을 그려본다.
하루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었던 저자가
파리의 골목을 산책하며 좋아하는 치즈와 빵을 사는 이야기에
또 오랜친구와 유일한 입사동기와 함께한 시간들이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왜 나도 파리였는지 모르겠다.
할수만 있다면 한달살기를 하며 미술관을 가고 또 가고(?)
바게트를 사고 야외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방과 문구점을 기웃거리는 상상을 수없이 했던 것 같다.
셀렌디온이 부르는 '사랑의 찬가'에도 왠지 울컥한 기분이 들었는데
아마도 여고시절 불어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신 '장미빛 인생'과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등의 노래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과연 나중에 난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얼마나 다행인가.
나에겐 아직 수많은 '나중에'가 있다.
없다면, 내가 만들 것이다.
생각은 나중에 하자.
우선은 살아보자.
정 아니라면 나중에 돌아오면 된다.
나중에 내가 방법을 찾을 것이다.
어떻게든 된다.
걱정을 훌훌 털어서 길바닥에 버리고, 내 가방만 미련 없이 택시에 넣었다.
가자, 또 다른 나의 파리로 p1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