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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고백 - 김영민 단문집
김영민 지음 / 김영사 / 2024년 7월
평점 :
무겁기도 가볍기도 한 삶에서 완전한 희망에도 절망에도 치우치지 않고 절묘한 통찰을 끌어내는 우리 시대의 문장가, 서울대 김영민 교수의 아포리즘집. 2007년부터 2024년까지 무려 17년간 써내려간 문장을 선별해 엮은 단문 365편이 담겼다. 인생의 불전완함을 응시하는 예리하지만 따뜻한 사유, 세계의 진부함을 파헤치며 이면을 들추는 김영민식 위트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군더더기 없이 날렵한 문장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독자의 심장에 가닿는다. 몇 문장에 인간사와 세상사를 담기란 가히 어려운데 그것을 능히 성취한 책이다.
《가벼운 고백》은 김영민 교수가 최초로 선보이는 단문집으로, 총 3부 〈마음이 머문 곳〉 〈머리가 머문 곳〉 〈감각이 머문 곳〉으로 나뉘어 주제별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발문〉에서 그는 자신의 아포리즘 일부를 ‘드립’으로 표현하는데, “삶은 종종 부조리와 경이를 간직한 모호한 현상이므로, 때로는 구름을 술잔에 담듯 삶을 담아야” 하며, “드립은 바로 언어로 된 그 술잔”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드립을 통해서만 표현되는 생의 진실을 음미하며, 다사다난한 일에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아가자고 독자를 격려한다.
책 표지는 30여 년간 무라카미 하루키와 작업한 안자이 미즈마루의 작품 〈풋사과〉를 입혀 시각적 촉각적 청량감을 더했다. 풋사과처럼 시큼하면서 달달한 우리네 인생 조각을 품은 《가벼운 고백》을 찬찬히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인터넷 알라딘 제공>
'나라는 허상에 집착해서 쉴 새 없이 자신을 찾아대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 마침내 찾을때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무엇을 위해 고단함을 견뎌야 하는지,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이 인생의 전모를 논리적 언어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삶은 종종 부조리와 경이를 간직한 모호한 현상이므로, 때로는 구름을 술잔에 담듯 삶을 담아야 한다. 드립은 바로 언어로 된 술잔이다. p12
취약함은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인간의 특징이다. 인간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취약함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취약하므로, 인간에게는 울어도 될 곳이 필요하다. 그곳을 성소(聖所)라고 부른다. p21
애타게 바라는 것은 대개 오지 않기에,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관건은 무엇을 기다리느냐는 것이다. 무엇을 기다리느냐에 따라 기다리는 동안 하는 일이 달라지고, 기다리는 동안 하는 일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람 인생이 달라진다. 가장 한심한 것은 남을 흠잡고 싶어서 남이 잘못하기를 기다리며 사는 인생이다. 차라리 고도를 기다르는게 낫다. p29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결혼으로 한꺼번에 번식공동체, 대화공동체, 육아공동체, 일상공동체, 농담공동체, 생존공동체 그리고 스파링 파트너를 만들고자 한다. 그 많은 것이 한 방에 다 성공할 리 있겠는가.
Q:결혼이란 무엇인가.
A: 봉사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p46
글을 읽다 보면 마음을 가리키는 다양한 비유를 만난다. 마음은 때로 무엇을 비추는 거울이며, 갈아야 할 밭이기도 하고, 흐르는 물이기도 하다. 오늘, 마음의 비유를 묻는다면, “매립지”라고 대답하겠다. 시간이 지나면, 묻은 많은 것이 썩으리라.
형체도 없으리라. 그래도 빛을 발하고 있다면, 당신에게 돌려주겠다. p100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건 삶을 더 잘 누리기 위해서다. 허겁지겁 살 때 누리지 못한 삶의 질감을 느끼기 위해서다. 삶의 깊은 쾌락은 삶의 질감을 음이하는데서 온다. 그러니 공부가 어찌 쾌락이 아닐 수 있겠는가. p107
초심(初心)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종 초심을 말해야 할 때가 있다. 깊은 성찰 없이 건국한 나라도 건국 정신을 말해야 할 때가 있듯. 제발 초심이 있었다고 이야기해주게. 다만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라고. p133
어젯밤 자기전, 생일을 자축하는 차원에서 <원더풀 라이프>(1999)를 보았다. 천국으로 가기 전 잠시 거주하는 림보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장 행복했던 때의 기억을 떠올려야만 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사람이 그러한 기억을 찾는데 애를 먹거나, 찾았을 경우도 그들이 평생 추구했던 과업과는 거리가 먼 사소한 어떤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행복감은 무엇보다 '순간'에 깃드는 것이었다. 영화에 따르면, 그 사소한 순간에 맞닿는 찰나에야 비로소 영원으로 떠날 수 있다. p205
〈라이프 오브 파이〉(2012)는 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그 오랜 표류 기간을 견뎌 살아남았는가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뗏목에 호랑이와 함께 탔기 때문이다. 호랑이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그 긴장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고, 그 강함이 그로 하여금 대양을 건너게 했다. 현재 당신이 표류 중이라면, 당신의 호랑이는 누구인가. p211
진정한 여행은 여행 전의 기대와 여행 후의 기억에 있듯 진정한 삶은 살기 전의 꿈과 살고 난 후의 기억에 있다. 그래서 마르셀 프루스트는 쓴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걸작을. p219
무더위와 싸우면 불면의 밤을 보내던 어느날,
자다말고 다시 집어든 휴대폰 속 인터넷서점에 눈길을 끄는 싱그러운 풋사과 배경의
그만큼 또 제목도 산뜻한(?) '가벼운 고백'이 눈에 들어 왔다.
게다가 흠모하며 읽었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저자 김영민교수의
첫 단문집이라니 얼른 데려오는걸로...
먼저 이 책을 읽은 친구가 보내온 카톡메세지만으로도
기대가 더 커졌는데
발문 '성찰적 드립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시작으로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저자가 17년간 길어올린 아포리즘을 담은
인생이야기가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와 나또한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느낌이다.
결혼은 봉사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라던가,
오늘, 마음의 비유를 묻는다면 '매립지'라고 대답하겠다던가
짧은 글 속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오늘은 걱정 많았던 초음파검사를 마쳤다.
긴장때문인지 한동안 괜찮던 공황이 찾아와서
어지럼증과 함께 식은땀을 흘렸지만
친절한 선생님 덕분에 무사히 검사를 마쳤고
걱정과는 달리 수술부위도 반대쪽 통증부위도
아무 이상없음을 듣고 감사했고
수술후,
처음으로 한시간 가량 영양수액이라는걸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결재는 김씨의 카드로 하고...
(그돈이 그돈이지만 오늘은 왠지 그렇게 하고 싶었던...)
수액 자체에 큰 기대는 없으나 '플라시보'효과로
남은 더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믿어본기로 했다.
저녁에 온다는 꼬맹이 기다리며
힘내서 열심히 청소하고
꼬맹이 좋아하는 된장찌개와 쌈채소를 준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