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평점 :
오랜 해외 생활을 마무리하고 일본으로 귀국한 돌싱 리에. 글을 쓰며 어머니와 함께 사는 싱글 다미코. 남편, 아들과 함께 살며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문병하는 주부 사키. 대학 시절 늘 셋이서 붙어 다녀서 지어진 이름, 쓰리 걸스. 졸업 이후 삼십 년간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자유롭고 비범한 리에의 귀국을 계기로 다시 뭉친 순간 그들은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잔잔하면서도 소란스러운, 소소하면서도 시끌벅적한 직선에서 살짝 벗어난 일상 이야기.
<인터넷 알라딘 제공>
가오루는 묵고 가는 손님인 세이케 리에를 옛날부터 좋아했다. 활달하고, 성격도 말투도 시원시원해서 기분이 좋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다미코와 달리 얘기하기도 쉽고, 중년이 넘은 지금도 학창 시절의 여운이 남아 있어 왠지 귀엽게 느껴진다. p25
다미코가 이 언어의 폭풍에 매일 시달리고 있겠구나 싶자,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한다. 젊은 시절부터 다미코는 모두의 얘기를 들어 주는 역할을 도맡았다. 성실하고 관대하고, 회피할 줄 모르는 사람인데, 그 용감함을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당신 참 용감하다고 하면 지금도 다미코는 곧바로 아니라고 할 것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인데, 스스로는 알지 못한다. p104
오늘은 빨래하기에 좋은 화창한 날이다. 마당에는 개나리도 피고 설유화도 피고 앵두꽃도 피었다. 한창때는 지났지만 중국 풍년화와 가엽수 꽃도 아직 피어 있다. 회양목에는 두꺼운 이파리 사이사이에 꽃술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소박한 꽃이 피어 있다. 창문 너머로 바라만 보아도 사키는 뿌듯해 진다. 흙이 있다는 것은 참 풍요로운 일이다. p115
전화를 건 사람은 모모치였다. 용건은, 아니 그가 맨 처음 한 말은 오늘 날씨가 좋아서 세탁기를 돌렸다는 것이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자신의 집이 충족된 장소로 여겨진다고 해서, 그럼 비가 오는 날에는 충족된 장소로 여겨지지 않느냐고 다미코가 묻자, 비 내리는 날에는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려 마시면 충족된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비 오는 날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릴 수 없거나 화창한 날 세탁기를 돌리지 못했을 때는 어떠냐고 묻자, 모모치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런 일은 없다고 대답했다. p143~144
사키가 사진을 보여준 후로 다미코는 문득문득 셔닐 손수건과 그에 대한 실망이 떠오르곤 한다. 셋이 뭘 모르고 오해했을뿐인데, 왠지 배신당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검색도 해 보았지만, 화면에 뜨는 사진은 사키가 보여 준 것과 같은 스타일의 손수건이나 앞치마와 핸드백뿐이다, 다른 종류의 셔닐이 존재할 가능성은 없어 보었다. 셔닐을 설명하는 문구에는 18세기말에 스코틀랜드에서 생겨난 직물이며 두번의 제조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앞과 뒤의 색감과 무늬가 똑같은 점이 특징이하는 것 외에 셔닐이 프랑스어로 송충이를 뜻하는 말이라고 쓰여 있어, 벌레를 싫어하는 다미코는 소름이 끼쳤다. p201
나팔꽃, 밀짚모자, 해바라기, 불꽃놀이, 가오루는 미리 사놓은 갖가지 문양이 있는 엽서에서 상대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것을 골라 여름 문안 엽서의 답장을 쓰고 있다. 옛날에는 엽서도 편지도 거의 매일 같이 자주 썼는데, 언제부터인가 뜸해지면서 연하장이든, 여름 문안 엽서든 보내 준 사람에게만 답장을 보내게 되었다. 스스로는 보내지 않으면서 그래도 받으면 반갑고 기쁘니, 사람 속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가오루는 씁쓸히 웃는다. p244
여행에서 돌아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구름위를 걷는 듯 멍하다.
시차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비와 눈과 우박을 맞으며 하루 이만보를 걷는 강행군에 더해
유럽패키지여행답게(?) 새벽 기상에 부실했던 식사까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스페인여행때만해도 최고의 텐션으로 늘 앞장서서 걸었던 동생도
여행에서 돌아와 꼬박 일주일을 앓고 어제서야 기운을 차렸다고 한다.
이래서 여행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슴 뛸 때 가는게 맞는 듯 하다... ㅠ.ㅠ
새해 어떤 책을 가장 먼저 읽을까하다가
오래전 좋아하는 작가였던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이 눈에 띄어 데려왔다.
해외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한 돌싱 리에
어머니와 함께 사는 싱글 다미코
남편, 아들과 함께 사는 평범한 주부 사키
삼십 년 만에 다시 뭉친 쓰리 걸스!
대학 시절 늘 셋이서 붙어 다녀 지어진 이름,
쓰리 걸스 30년간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던 세 대학 동창의 재회
과거에 비하면 많이 바뀐 듯 하다가도
과거 그대로인 듯 보이기도 하는
그녀들의 잔잔하고도 소란스러운 일상 속으로.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멜론 빛 표지가 추운 겨울의 차가움을 뚫고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30년지기 세명의 친구들 이야기...
그 이야기속에는 우리네 이야기도 들어 있다.
노모에 대한 걱정...
근간에 친구 어머님도 고관절 수술을 하시고 회복중에 계신데
거동이 불편하셔서 친구가 고생이 많았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하지만 앞으로의 일도 걱정이고...
염색주기가 빨라지며 짧게 머리를 자르고 '앞으로는 염색을 하지 말까?!'
하는 고민을 하곤 하는데 책속의 가오루도 턱까지 짧게 머리를 자른다.
그과정을 지켜보다보니 다시 고민이 되긴 하는데
다니는 미용실 실장님 말로는
아직은 염색을 안하면 게을러 보이기도 하고
온전히 흰머리가 되기엔 아직 멀었다며 말린다. ㅠ.ㅠ
어느새 백내장을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고,
건강을 위해 수영이나 아쿠아로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이가 되었다.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녹내장이 의심된다고 재검을 하고
다행히 별이상은 없지만 1년에 한 번 검사를 받으라고 하셨는데
조만간 안과도 다녀오고, 수영강좌도 알아봐야겠다.
예전만큼 '역시 에쿠니 가오리야!'하는 찐한 감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많은 공감과 함께 재미있게 읽었다.
오늘은 친구들에게 오랜만에 안부전화를 해봐야지...
상상 속 우리의 미래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우리는 상상했던 대로 살고 있을까?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116/pimg_762304143457193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