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 황인찬의 7월 시의적절 7
황인찬 지음 / 난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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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 편의 글, 매월 한 권의 책. ‘시의적절’ 시리즈 7월 주자는 황인찬 시인이다. 동시대 가장 아름다운 감각을 가장 고유한 목소리로 써나가는 이라 자부할 이름이자 7월, 어쩐지 눅진하면서도 투명한 ‘여름 냄새’를 생각할 적에 가장 먼저 떠올릴 이름이기도 하다.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하루는 시로 하루는 에세이로 여름의 날들을 채워나간다.

때로는 그런 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더러는 지난여름의 눅눅한 흔적 곁에서, 가끔은 먼 여름의 소식 앞에서 시를 생각하는 시인의 일상들이 담겼다. 창밖의 여름에 어울리는 책이라 말해도 좋을 테지만, 손안에서 여름을 시작하는 책이라 불러보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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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세월이란 무상한 것이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은 때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기만 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는 스스로 어디가 얼마나 변했는지도 모르는 채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갈 따름이다. 옛사람들이 그토록 세월에 대해 노래했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알것 같다. p24

시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해 쓰이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시만이 갖는 특별한 의미와 감각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의 작은 공동체가 시의 세계에는 있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그전까지 그것이 굉장히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그리고 일방적인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문장을 읽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육화시켜나가는 과정은 저의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끔, 어떤 순간의 시는 서로 직접 주고받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소리 내어 읽고 그것을 듣는 경험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꼭 낭독회에서만 이뤄지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가까운 이에게 시를 읽어주거나 그것을 듣는 일도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꼭 행이나 연을 맞춰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자신의 흡을 따라 자연스럽게 읽는 것이야말로 그 시를 제일 잘 읽는 법일 테니까요.

앞으로도 때로 사람들은 제게 시를 어떻게 읽느냐 묻겠지요. 그러면 저는 마찬가지로 눈으로 읽는 것이라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말을 덧붙일 수도 있겠습니다.

같이 읽어요. 소리를 내면서요.p39~40


시는 혼자 쓰는 것이라서 시가 딱하다. 요새 생각하는 것은 혼자라서 딱한 시를 어떻게든 다른 것들과 나란히 두는 일이다. 다른 것들과 함께 하도록 하는 일이다. 시를 통해 하는 일일 수도 있고 시에게 하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단 생각만 하고 혼자 지쳐서 그만두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 생각만으로 로혼자 만족하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 생각만으로 지치거나 만족하는 일 말고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무엇일까. 이 글은 여기까지만 쓰고 나는 일단 나가야겠다. 여름날의 거리가 밖에 있다. p97

어제까지 우리는 여름에 있었는데 해변에서 바다를 보고 있었는데 비행기에서 내리면 겨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밤의 비행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빛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저게 서울이냐고 내가 물르면 너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서울은 지날 때쯤이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지상에 빛이 가득해진다고 그제서야 이제 겨우 집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안심하게 된다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공항을 벗어나면 와 춥다 정말 추워 말하며 버스에 탈 것이고 그때부터 우리의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서러를 사랑하면서 불빛 가득한 도시에서 살아가겠지 내 곁에 잠든 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너는 여기가 서울이 아니라고 한다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와서도 잠들지않소 먹지도 않고 불 꺼진 방에 누워 아직 아니라고 여긴 아니라고 p190~191


말하지 않으면 슬프지 않다. 그러나 말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말한다. 그것이 요새 나의 삶과 시쓰기의 태도다. 김종삼과 같이 숭고하고 고결한 언어를 다룰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 될 테지만, 지금과 같은 시대에 그런 언어를 구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기도 할뿐더러, 조금은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말하고자 한다. 숭고하지도 않고, 고결하지도 않게. 무엇인가를 은폐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것을 드러낼 뿐인. 창백하고 간결한 언어가 아니라, 다소 엉망진창이어도, 조금은 슬퍼지더라도 기어코 말해버리는 것. 나를 말로 뒤덮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말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진짜로 말해보는 것. 그것이 진정 가능할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이렇게 말해버렸기에, 그게 사실이 되리라 믿어볼 따름이다. p203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새파랗게 젊은 내가 벌써부터 말년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이 과연 건강하고 올마른 일일까? 사실은 죽고 싶고 싶다는 말을,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그리고 변태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인 것은 아닐까? 스스로도 이 질문에 답을 하기는 어렵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칠고 사악한 노인의 모습, 죽기 전까지 불화하는 삶, 그리하여 계속 갱신되는 예술가로서의 이 모습이, 내가 조금 더 살아보기로 마음먹게 하는 거의 우일한 이유라는 것이다. p228~229

시의적절 시리즈 일곱번째 이야기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을 읽고 있다.

7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매일매일 기록한 여름이야기...

열대야가 계속되고

간간히 비가 내려 한껏 달아오른 대지를 적셔주긴 하지만

오늘이 말복이라는게 믿기지 않은채

여름과의 이별이 실감남지 않는다.

어쩌면 불현듯 찾아올 가을에 당황할 듯도 싶다.

내게 있어 칠월은 시인의 언어로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었는데

이제는 암과 마주하고 지리한 검사를 받는 계절로 기억될 듯 하다.

책속에서 저자는

삶은 항상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그것이 우리삶의 좋은점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비록 한쪽 가슴을 잃었지만

건강을 생각하며 음식을 챙겨먹고, 꾸준히 걸으며

건강나이 72세에서 58세로 회춘(?)을 했고

예전보다는 서로에게 향한 측은지심으로 김씨와의 관계가 조금은 변화했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가끔은 슬프거나 괴로운 순간이 올테고

꼭 바라는대로만 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힘을 내어보자.

봄날은 갔고

여름날도 갈테고....



삶은 항상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야 만다.

그것이 우리 삶의 좋은 점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그 모든 어긋난 상상조차 이미 두 사람의 미래의 책에는 적혀 있으리라고 믿었다.

꼭 바라는대로만 되지는 않으리나는 것을 알면서,

가끔은 슬퍼하거나 괴로운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알면서,

그럼에도 더 나은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

그것이 사랑의 가장 멋진 점 아니겠는가.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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