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사람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가 타인의 말을 공들여 듣는 행위라 한다면, 언제까지나 공들여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박연준 시인. 『듣는 사람』에서 박연준 시인은 그간 자신이 귀 기울였던 서른아홉 권의 책을 소개한다.

이들은 대개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책들이다. ‘고전’이라 불린다면 결국 오랫동안 읽히고 읽혀도 여전히 그 매력이 마르지 않은 책이라는 뜻일 터. 과연 이들 책은 어떤 거창한 이념이나 이야기를 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혜롭지 못한 이들의 좌충우돌기’에 가깝다. 다만 서른아홉 개의 서로 다른 삶, 어쩌면 평범할 수도, 어쩌면 어리석을 수도 있으나 바로 그렇기에 무척이나 빛났던 삶을 담고 있을 뿐이다.

그 어떤 삶도 완벽할 순 없으니 그 누구도 온전히 지혜로울 순 없으니, 최선은 피할 수 없는 좌충우돌을 겁내지 않는 것, 그리고 최대한 즐기는 것, 이를 이 서른아홉 권의 책들은 말하고 있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고전에는 올바른 길이나 훌륭한 선택법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계속 길을 잘못 가는 방법’이 나와 있을지 모르지요. 시행착오가 없는 삶, 그런 게 있을까요?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한다면 ‘잘못된 길을 열심히 걸을 때 우리가 얻는 가치’를 위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사라질 거라는 말을 들으면 슬퍼지고 그다음 서늘해집니다.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히잡을 쓴 여인처럼 꽁꽁 얼어 붙은 세상 한가운데 앉아 기어코 책을 읽는 사람, 타인의 말을 공들여 듣는 사람이 존재하리라 믿어요. p15~16

나는 무조건 눈물이 많은 사람의 편이다. ‘그거 병이여’ 누군가 핀잔을 준대도 뭐 어때? 눈물이 많은 건 사랑이 많다는 뜻! 나이가 들면 눈물도 마른다. 박용래의 ‘눈물 관련 일화’(차고 넘친다)를 읽거나 뾰족한 비석처럼 절도 있게 세운 그의 시들을 읽는 걸로 눈물을 대신하는 날이 더 많다. p39

화가 칸딘스키는 예술 작품을 두고 “영혼이 거칠어지는 것을 막아주며, 마치 소리굽쇠로 악기의 현을 조율하듯 영혼의 음조音調를 맞추어준다”고 했다. 만약 우리 영혼이 세상을 부유하는 음표라면, 어둡고 깊은 영역까지 헤엄쳐본 음표가 더 우아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는 일은 우리가 내려가지 못한 영역까지 영혼의 음표들을 내려갔다 돌아오게 하는 일과 비슷하다. p74

뒤라스는 사랑으로 ‘곤두선 슬픔’을 그리는 방식에 있어 가장 독창적인 작가다. 누구도 뒤라스처럼 쓸 수 없다. 그의 글에는 음악이 흐른다. 음악과 함께 심오함, 재치, 말라비틀어진 시(건조하게 널어놓기에), 난해한 걸음걸이, 무엇보다 ‘조망의 시선’이 있다. ‘조망의 시선’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작가가 회상하는 대목을 쓸 때 마치 모든 것을 알아보았다는 듯 쓸쓸히 관조하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많은 일들을 겪고 ‘지쳐버린 신’처럼 이야기한다. 매혹적인 언술이다. p91

만약 꾸준히 독서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현명하다면 그 이유는 ‘침묵 속 경청’에 있을 것이다. 독서는 남의 말을 듣는 행위고 듣기는 침묵이란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다. 타인의 생각 속에서 기다리고 머무는 일이다. 혼자 책 읽는 사람을 보라. 침묵에 둘러싸여 얼마나 아름다운지! p112

어릴 땐 요절이 근사해 보였으나 이젠 안다. 누구라도 인생을 끝까지 온전히 살아내는 일이 귀하다는 것. 자기 일을 오랜 시간 해왔을 뿐인데 어느새 폭삭 늙어버린 모습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삶, 이런 삶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비범’을 간직한 채 평범하게(혹은 평범해 보이게) 사는 일이 아닐까. 끊임없는 자기 수양과 다독임, 생을 향한 긍정 없이는 어려운 일일 테니까. p238

'어린왕자'는 우리가 지키고 싶은 순수이자,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순수를 상징한다.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생텍쥐페리는 슬픈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는 어린왕자가 결코 상징으로 남길 바라지 않을 을테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린 왕자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런 식은 어떨까. 어린 왕자는 우리 자신이다. 어린 린날의 나, 지금도 무시로 튀어나오는 유년의 나, 사라졌지만 결코 사라진 적 없는 내 안의 나, 갈 수 없는 그리운 나라. p255

심리학이나 미술관련책을 좋아하는 나지만

마음 한 켠엔 고전읽기에 대한 갈증이 늘 있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모월모일'의 작가 박연준님의 신작이 나왔다.

그것도 서른 아홉개의 멋진 삶이 담겨 있는 고전에 관련된 독서에세이가...

가장 궁금한 책은 이태준님의 '무서록'이다. 제목부터 범상치않은 이 책은 가지고 다니며 읽어도 좋을 만큼 크기도 작다니 다음 주문시에 가장 먼저 사봐야지...

또한 영화로만 접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화사집, 진달래꽃, 동백꽃도 찜해놓는다.

올 한해

이 책에 실린 책들을 찾아 읽은 뒤

연말쯤 다시 읽으며 작가와 생각을 나누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다만 서른아홉 개의 서로 다른 삶,

어쩌면 평범할 수도,

어쩌면 어리석을 수도 있으나

바로 그렇기에 무척이나 빛났던 삶을 만나는 일...

고독은 그가 입은 옷이다.

더럽혀질 일도, 빼앗길 일도 없다.

그는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고 가진 게 없지만 그득해 보인다.

불행은 혼자라서 겪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 부대껴 ‘나’라는 존재가 깎여나갈 때 불행은 온다.

행복처럼, 불행도 상대적인 감정이다.

내 앞에 있는, 혹은 없는 당신 때문에 고통과 번민이 생긴다.

혼자 무언가에 깊이 몰두해 있는 자는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p199~2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일 1페이지 영어 어원 365 - 언어학자와 떠나는 매혹적인 어원 인문학 여행, 2023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김동섭 지음 / 현대지성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에서 손꼽히는 언어학자가 영어 단어의 어원과 그에 얽힌 역사, 문학, 신화, 경제, 과학, 종교, 예술, 음식, 스포츠 등 다양한 히스토리를 1일 1페이지 1단어씩 365일 동안 소개하는 어원 인문학 교양서다. 365개의 단어는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품고 있다. 그 사연을 재미있게 읽고 나면 영어 단어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머릿속에는 영어 실력이 쌓이고 교양 지식도 쌓인다.

최근 영어 어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대부분 해외 번역서들은 영미권 독자들에게만 익숙한 내용이라 국내 독자들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이에 아쉬움을 느낀 저자는 독자들이 익숙하게 사용하면서도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단어를 엄선했다. 이 단어들이 특정한 의미를 지니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펼쳐 보인다. 더불어 페이지마다 스토리와 관련된 풀컬러 이미지 365컷을 풍성히 담아 내용의 이해를 돕고 비주얼한 재미도 더한다.

저자의 말처럼 기나긴 여행 끝에 언어의 뿌리를 찾아내고 언어의 변화 과정을 알아내는 일은 마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짜릿함과 희열을 선사한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인류가 만들어놓은 매혹적이고도 흥미진진한 세계로 즐거운 지식 여행을 떠나보자.

<인터넷 알라딘 제공>

야누스는 시간의 시작과 끝도 관장한다. 하루의 시작인 새벽과 한 달의 시작인 초하루도 야누스가 관장한다. 1년의 시작인 1월(January)에 야누스의 이름이 들어간 것도 한 해가 끝나는 12월과 새해가 시작하는 1월을 동시에 보고 있어서다. 야누스에 대한 평판은 고대 로마와 근대 유럽에서 상반된다. 고대 로마의 병사들은 야누스신전에 새겨진 신의 얼굴을 보면서 행운을 빌었다. 하지만18세기 유럽인들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에게 ‘이중적인 위선자’라는 의미를 덧씌워 부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였다. p20

1992년 미국의 소설가 닐 스티븐슨은 『스노우 크래시』라는 소설에서 meta에 우주를 의미하는 universe를 합성해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때 meta-는 ‘~을 초월하는’이라는 뜻이다. 그는 현실을 초월하는 3D 가상세계를 메타버스라고 명명했는데, 다른 표현으로 바꾸면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적·경제적 활동이 통용되는 3차원 가상공간이 메타버스라고 말할 수 있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이미 메타버스의 개념이 적용되고 있는데, 예컨대 게임 아이템을 사고파는 행위가 메타버스의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p125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오셀로』 역시 인간의 질투심이 빚어낸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는 명대사가 나온다. 이아고가 오셀로에게 하는 말이다.

“오, 주인이시여, 질투를 조심하시옵소서. 질투는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며 먹이로 삼는 녹색 눈을 한 괴물이니까요.” (3막 3장)

여기서 셰익스피어는 ‘질투의 화신’을 녹색 눈의(green-eyed)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질투에 눈이 멀면 담즙이 과도하게 분비되어 눈이 녹색으로 변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만들어진 표현이다. p148

위는 인체에서 매우 중요한 장기 중 하나다. 고대 그리스인은 위를 stoma(스토마)라고 불렀는데, 특이하게도 ‘입’을 의미했다. 아마도 입과 위가 식도로 연결되어 있어 그렇게 불렀을지도 모른다. 영어에서 구내염은 stomatitis라고 부른다. 입을 의미하는 stoma의 의미가 여전히 살아 있다. 입을 의미하던 stoma는 이후 인체에서 점점 아래의 장기를 가리키는 말로 전환된다. 목과 식도를 지나 마침내 위에 이른 것이다. 위를 가리키는 영어의 stomach에는 은유적 의미도 생성된다. 고대 로마인은 위가 인간의 기분을 조절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6세기에 접어들자 take stomach에는 take heart(힘내다)라는 뜻이 생겼으며, stomach를 동사로 사용하면 ‘공격하다’라는 뜻이 되었다. 현대 영어에서 stomach는 ‘즐기다’ ‘참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이 의미들은 고대 로마인이 위가 인간의 감정을 조절한다고 생각한 데서 유래했다. p256

한편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족은 요일 이름에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넣었다. 대표적인 날이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이다. 수요일(Wednesday)는 북유럽 신화의 주신인 오딘(Odin)의 날이고, 목요일(Thursday)은 천둥과 벼락의 신 토르(Thor)의 날이며, 금요일(Friday)은 미의 여신 프레이야(Freya)의 날이다. 그리스신화에서 천둥과 벼락을 관장하는 신이 주신 제우스(로마신화에서는 주피터)인 것에 반해, 게르만신화에서는 오딘의 아들인 토르(Thor)가 천둥과 벼락을 관장하고 농업의 신까지 군림한다. 영어에서 벼락을 의미하는 thunder가 바로 토르에서 나온 말이다. p330

스타들에게 열광하는 팬fan은 광적인 의미의 fanatic에서 나왔는데 이말의 유래는 멀리 고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라틴어로 fanaticus파나티루스는 '신의 영감을 받은'이라는 뜻이고, 이 단어에는 fanatic이 나왔다. fanatic의 줄임말이 fan이 되었다. 하지만 영어에는 '신성한'이라는 뜻은 빠져있다. 신의 자리에 대중문화의 스타들이 대신 들어온 것이다. 지금도 fanatic에는 광신도의 의미가 남아있다. p377

영어의 아이러니irony는 그리스어 eironeia에이로네이아가 어원이다. '은폐' 또는 '모르는 척함'을 의미한다. eironeia는 소크라테스가 즐겨 사용하던 수사법이었는데, 상대방에게 정보나 지식을 구하는 척하면서 그를 공격하는 수사법이다. p398

365개의 단어는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품고 있다.

한번 그 사연을 알고나면 단어는 절대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 영어가 쌓이고 교양도 쌓인다!

'1일 1페이지 영어 어원 365'

해마다 연초가 되면 다짐하는 것 중에 하나가

'건강을 위해 운동하기'와 함께 '영어공부하기'이다.

처음에만 열심히 했던 시원스쿨을 다시 시작할까 하다가

일단 구정 뒤로 미루고 영어와 친해지자 싶어

이 책, '1일 1페이지 영어 어원 365'를 구입했다.

1년의 시작인 1월(January)에 야누스의 이름이 들어간 것도

한 해가 끝나는 12월과 새해가 시작하는 1월을 동시에 보고 있다라니?!... @.@

일단 하루 한 장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 좋고

평소에 뜻(어원)도 잘 모른채 쓰던 단어들에 대한 역사와 문화, 종교등에 대한 히스토리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책을 다 읽을 때 쯤이면 영어와 한 뼘쯤은 친해져있지 않을까?...

영어지식도 쌓고,

교양도 쌓고....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4-01-29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글이 많이 도움되었어요. 구매 후 찬찬히 읽어보려고 찜했어요.
 
삶이 괴로울 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 일상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발견한 사는 게 재밌어지는 가장 신박한 방법
박치욱 지음 / 웨일북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퍼듀대학교에서 최초로 ‘올해의 명강의상’을 두 차례 수상한 교수이자, 트위터에서 수백만 ‘청강생’을 둔 지식 내비게이터 박치욱이 사소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신박한 공부의 순간을 공개한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저자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일상은 도서관, 세계는 실험실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라면 봉지 하나도 연구 논문 대하듯 한다.

어느 날 삶은 계란의 껍질이 잘 까지지 않는 것에 대해 ‘극대노’하여 장장 4년에 걸쳐 계란 삶는 법을 연구한다. 숨겨진 변수(hidden variable)를 찾아내고자 몰두한 결과, 마침내 ‘헨리의 법칙’을 응용하여 매끈한 삶은 계란을 얻는 방법을 찾아낸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책은 어떤 면에서는 한 과학자의 일탈과 반항의 기록이다. 나에게 가치 있는 공부를 하라고 끊임없이 압력을 가하는 이 사회에, 단지 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도 공부할 자유가 있다고 외치는 목소리이다. 가치를 따지지 않는 공부가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고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발칙한 주장이기도 하다. p9

문자의 기원은 같지만 히브리어와 아랍어는 그리스어와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대부분의 문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데 말이다(물론 한자와 한글처럼 예전에는 위에서 아래로 쓰는 문자도 있었다). 또 소리 중에 자음만 적는 방식이다. 모음은 외워야(찍어야?) 한다. 한글로 예를 들자면 ㅇㅂㅈ, ㅇㅁㄴ이라고 쓰여있으면 아버지, 어머니라고 읽는 방식이다. 뭐 이런 표기법이 다 있나 싶은데, 사실 표음문자라고 해도 소리의 모든 요소를 기록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예를 들어 한글도 음의 강약과 고저, 장단은 문자로 표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문자로 표시되지 않는 음의 요소를 비분절음운이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히브리어와 아랍어는 모음을 비분절음운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p77~78

라틴어로 ‘respondeat superior’라는 표현이 있는데, 번역하자면 ‘주인이 답하게 하라Let the master answer’는 의미이다. 로마제국에서부터 통용되던 관습인데, 노예가 잘못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경우, 그 주인이 보상하도록 하는 규정이었다. 이 규정은 현대 영국과 미국의 관습법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조직의 리더가 명령한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의 법적 책임은, 명령을 수행한 실무자가 아닌 그 명령을 내린 리더가 진다. p176

영감이 필요한가? 일단은 즐기면서 몰입해 풀어봐야한다. 퍼즐을 풀든 과학문제를 풀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풀이를 시도해보고 우리의 사고가 문제 풀이에 최적화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도 안 풀리면 면책상에서 일어나 몰입하는 동안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뇌의 다른 영역을 활성화해야 한다. 수다도 떨고, 산책도 하고, 창밖을 보면 멍 때리기도 하고, 뭐가 되었든 뇌가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반드시 영감이 생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안풀리는 문제를 마냥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더 있다고 본다. 이렇게 경험을 다양화하는게 창의력에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그저 개인적인 경험일 수도 있겠지만, 퍼즐을 풀면서, 연구를 하면서 찾은 내 나름의 창의력 발휘 비법이다. p235

혹시 이 책을 읽고 나에게도 탐험가 개미의 정신이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네게 되었다면 뜨겁게 응원하고 싶다. 억지로 할 필요도 없고, 무리해서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새로 알아가는 게 즐거운 분야가 있다면, 더 알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야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어쩌면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더 아름다워지고 더 알차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니면 예상치 못했던 기발한 돌파구를 찾게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끝까지 가치와는 아무 상관없는 나만의 놀이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고 해도 괜찮다. 탐험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말이다. p282

공부를 해야할 청소년기에는

반항 혹은 포기인지 공부와 담을 쌓고 부모님 속을 어지간히 태웠는데

나이들고 나니 공부가 오히려 재미있다. ^^;

인생의 절반을 넘기는 시기에 가장 잘 한 일은

문화교양학과 편입해 2년만에 무사히(?) 졸업한 일이고,

강의를 위해 하나씩 업그레이드 했던 컴퓨터관련 자격증을 제외하고도

제과제빵, 전산회계, 전산세무, 코딩, 노인교육지도사, 미술심리상담사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수료했다.

일상은 도서관, 세계는 실험실이라고 생각하며

분야를 막론하고 매일 공부하는 대학교수인 저자.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인공지능까지,

불확실한 삶에서 가장 확실한 위로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

공부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믿고

주저하던 대학편입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내가 지원한 사회복지학과만 유일하게 정원을 넘은 탓에

혹시나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오늘 합격 통지를 받았다.

나이 환갑에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예전보다 눈도 침침하고 여기저기 아픈 나이가 되었지만

이번에도 열심히 공부해서 제때(?) 졸업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삶이 괴로울 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내게도 공부가

불확실한 삶에서 가장 확실한 위로와 즐거움을 줄 수 있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2평짜리 베란다 목공소 -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김준호 지음 / 더퀘스트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시에선 모든 것이 나를 지나쳐 빠르게 흐른다. 빌딩도, 사람도, 불빛도 넘쳐나는데 거리를 걷는 내 안은 휑하니 비어 있음을 느낀다. 이럴 때 도심 속 작은 숲처럼 마음 편안한 곳이 있다면 어떨까? 이 책의 2평짜리 베란다가 그런 곳이다. 직장인인 저자는 주말이면 번잡한 일상을 뒤로하고 베란다에 차린 작은 목공소에서 사각사각 나무를 깎는 도시의 목수가 된다.

객관적인 행복을 좇으며 인생의 단계를 밟아왔지만 어느 순간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던 때, 문득 손에 쥔 것은 어렸을 적부터 만들기 좋아했던 나무였다. 인생을 모조리 바꿀 순 없어도 적어도 한구석엔 나다운 삶을 되찾고 싶었다. 잘 쳐다보지 않는 비좁은 장소였던 집 베란다에 하나둘 장비가 생기고 차곡차곡 목재가 쌓이자 마법이 시작되었다.

《나의 2평짜리 베란다 목공소》에는 나무를 만지는 시간의 기적이 담겨 있다. 쉬었다 가도 괜찮다고 등을 두드려주는 공방의 장인, 반려묘를 위한 나무 급식대를 주문하는 손님, 자기만의 책상을 처음 디자인해본 학생 등 목공이 아니었더라면 생각지 못했을 인연들이 나무의 온기를 띠고 번져간다. 오늘도 도심 속 2평짜리 목공소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나무를 닮아 따뜻하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이때 주의할 점은 나무의 결을 자연스럽게 맞추어야 한다는 덤이다. 무늬가 흐르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결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늬가 흐르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결을 맞추면 보기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집성한 티가 잘 나지 않는다. 하나의 판재로 보이는 것이다. 오랜 세월 자라며 띠게 된 세로방향의 결대로 붙은 나무들끼리는 단단하게 굳어 떨어지지 않는다. 강제로 분리하려 해도 접하면 주변이 뜯어지면 뜯어졌지 접합면은 그대로 붙어 있다. 마치 각기 달리 살아온 두 사람의 삶의 결이 인연이라는 접착제로 엉겨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처야 한다는 점이다. 무늬가 럼 말이다. P24

소설 속 레빈은 한 자루의 예리한 낫이 저 혼자 싱싱한 풀을 베고 있는 것 같을 정도로 완전 몰립 상태에 빠진다. 노동을 통한 몰입에서 오는 최고의 행복감을 맛 본것이다. 목공작업을 하다 보면 레빈처럼 몰입의 무아지경에 빠질 때가 있다. 마치 손이 저절로 나무를 자르고 조립하고 다듬는 것터럼 의식과 몸동작이 일치하는 순간. 생활 속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잡념은 사라지고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분명 오전에 시계를 본 것 같은데 어느새 오후로 훌쩍 도착해 있다. 그래서 목공인들 사이에서 목공은 ‘시간도둑’이라는 말이 있다. P27

빠르게 가는 것이 무조건 바르게 가는 것이 아님을, 쉬었다 가는 것이 낙오되는 것이 아님을 몸으로 일하며 배웠다. 연주를 하지 않는 바이올린의 줄은 느슨하게 풀어줘야 다음 연주에서 제 소리를 낸다고 한다. 속도를 내고 갈 때는 빠르게, 느리게 돌아볼 때는 천천히, 박자와 리듬에 맞춰 우아한 춤을 추듯 슬로우 슬로우 퀵 퀵, 쉼과 감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도록 곳곳에 여유를 두는 생활을 권해본다. p46

나무로 만든 오피스 세트는 그동안 수고했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사회적 관계 유지를 위해 타인에게는 관대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인색한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P104

나무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그랬다간 귀퉁이 어딘가에서는 무리를 받고, 결국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도 오래 두고 편안하게 쓰는 가구와 같이 좋은 일이라는 사실을 나무에게 배운다. P117

베란다 목공소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나무가 내게 말을 걸어 온다. 나에겐 자신다운 결이 있냐고. 그 결에 얼마나 솔직하냐고. 스스로를 돌이키며 다짐하게 된다. 타인의 시선보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나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를 더 많이 가지자. 물질의 풍요보다 관계의 풍요에 시간을 투자하다. 세상이 정해놓은 고정된 틀이 아닌 삶이라는 백지에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탐구하고 싶다. p138

취미부자인 내가

배워보고 싶은 것중에 하나가 목공이다.

내가 살고 있는 부천엔 중장년들을 위한 평생학습으로

인생학교가 4개의 대학과 연계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과정이 목공소품등을 만드는 목수학교였다.

어쩌다보니

사진이나 3D프린터에 밀려 다음해엔 꼭 배워봐야지 했던터라

베란다를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또 다른 꿈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나의 2평짜리 베란다 목공소'를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지나온 과거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비 오는 날도 햇살 가득한 날도 올 것이다.

그 시간들이 새긴 삶의 결가 골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씩 맞춰나갈 것이다.

결과 결이 불어 또 하나의 무늬를 만들 것이다.

그렇게 만든 결은 나무를 닮아갈 것이다. p25

반복적인 생활에 돌파구를 찾고자 시작한 목공...

나다운 삶을 되찾고 싶어 시작한 그의 나무와 함께하는 작업을 따라가다보면

그곳에 인생이 있고, 흐믓한 미소가 지어지며 힐링의 순간을 만나기도 했다.

나무향 가득한 나만의 공간에서

자르고 깎고 다듬어 세상에 하나뿐인 가구를 만들어 내는 일...

오래전부터 작은 약장을 하나 갖고 싶었는데

책에 소개된 아빠 서랍장이 딱 내 취향이다.

지난해에 더해 별다를 것 없는 올해 계획에 하나 더해

목공을 배워 아빠 서랍장을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내친김에 캠핑 박스도?!.... ^^;

목공을 하며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우선 발을 들여 놓고 한 걸음씩 떼다 보면

어느덧 중간에 와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하나의 단계에 집중할수록 부쩍 성장한 손기술과 만나게 된다.

"대담해져요. 끝까지 밀어 붙여요. 안주하지 말아요."라는 윌의 대사처럼,

반드시 끝이 있는 이 삶에서 하루 그리고 또 하루 소중히 임하다 보면

결국 후회없는 마지막을 만나리란 생각이 든다. p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년 전 서울을 떠나 하동군 평사리에 정착한 소설가 공지영. 그 무렵 작가로서의 번아웃에 시달리며 더 이상 글을 쓸 수 있을까, 심각한 회의에 빠진다. 고독 속에 스스로를 유폐하고, 그것에서 평화와 행복을 되찾아가던 어느 날, 작가는 문득 순례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목적지는 예루살렘, 예수의 탄생과 성장,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진 곳, 평온한 일상을 살면서 잊고 있던 그곳으로.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는 2022년 가을에 떠난 순례의 여정 속에서 만난 깨달음의 기록으로,『그럼에도 불구하고』이후 3년 만에 발표하는 공지영 작가의 신작 산문이다. 그의 대표 에세이 중 하나인『수도원 기행 1, 2』를 잇는 영성 고백과 삶에 대한 절절한 통찰이 담겨 있다. 각 순례지가 작가에게 던져준 삶의 메시지를 묵상하고, 치열하게 현재와 과거, 하동과 예루살렘을 교차하며 또 한 번의 진한 감동을 전한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이 구절을 읽은 며칠동안 나는 내내 골똘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저기압이나 고기압 혹은 기압골과 같이 우리 눈에 절대 보이지 않지만 필연코 존재해서 눈이나 비 혹은 햇빛이나 바람으로 닥쳐오는 어떤 놀라운 힘이 내 곁에 있었다는 것을 나는 한 번 더 깨달았다.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하면서 내키는 대로 날고 움직이고 있는 줄 알았으나 실은 제트 기류를 타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뛰어도 이 지구보다 빠른 속도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야 하나, 부처님 손바닥에 있는 손오공, 아니 이 모든 것으로도 다 표현 할 수 없는 경외와 전율이 나를 엄습했다. 심지어 나는 지금 말하고 있지 않나 말이다. 저 광야가 매혹적이라고.

나는 결국 그분의 바람대로 광야에 혼자 서 있을 뿐 아니라, 서 있어보니 좋은데요, 계속 이렇게 살다 죽고 싶어요, 뭐 이러기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p62~63

그러니 수많은 성인들, 수많은 현자들이 인간 세상을 떠나 사막으로 간 것이었으리라. 거기에는 우리 감각을 미혹시키는 배경들이 가장 최소화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 모든 감각을 지워버리고 나면 인간은 하는 수 없이 자기 자신을 만난다. 그리고 통곡하는 것이다.

대답은 간단해졌다. 마치 몇십 년 만에 만난 어머니를 붙들고 울듯이, 어쩌면 그것보다 더 간절히 그리워하며 내 밖에서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을 만나게 되니까. 결코 잊어버리지 않았으나 잊은 줄만 알았던 첫사랑의 기억과도 같은 나 자신. 사람은 신의 모상을 닮게 만들어졌으니 그 나 자신 속에 사랑의 원천인 신의 모습이 들어 있으니까 말이다. 인간에게 그보다 더한 그리움이 있을까. p155

약간 깨달은 것 가지고는 삶은 바뀌지 않는다. 대개는 약간 더 괴로워질 뿐이다. 삶은 존재를 쪼개는 듯한 고통 끝에서야 바뀐다. 결국 이렇게, 이러다 죽는구나 하는 고통 말이다. 변화는 그렇게나 어렵다. 가끔은 존재를 찢는 듯한 고통을 겪고도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대신 고통을 거부하려고 헛되이 싸우던 그가 망가지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그러므로 고통이 오면 우리는 이 고통이 내게 원하는 바를 묻고, 반드시 변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틀이 이제 작아지고 맞지 않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p189

한때 나도 아이들에게 집착한 적이 있었다. 내가 불행했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성적을 위해 밤늦도록 매를 때려가며 가르치려고 한 일도 있고, 사람들 앞에서 버릇없이 굴면 가차 없이 벌을 주었다. 나중에는 엄격함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방식을 바꾸었다. 방황하는 사춘기 아이를 위해서 그 애 학교 운동장 담벼락을 돌며 몇 시간이고 기도를 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그 유명한 집착이라는 것이구나, 이게 그 유명한, 남을 내 마음대로 하고, 아이에게 내가 몸소 하느님이 되어 그 애의 고유한 생김새대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교만의 죄구나, 싶었다. 내 긴 긴 기도도 실은 집착의 다른 포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걸 깨달은 나는 몹시 아팠다.

마리아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넘어진 상처투성이 아들을 보고 그 자리에서 울거나 소리쳤다는 기록이 없다. 하늘을 향해 “제발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 하고 기도했다는 말도 없다. 그녀는 침묵하며 아들의 길을 그저 따라갈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모성을 완성한다. 내 맘에 들지 않고 이해도 할 수 없고 남들 보기에도 엄청나게 부끄럽지만, 그러나 아들에게 아들이 원하는 길을 가게 함으로써. p229~230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내 삶의 남은 시간들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신앙이란 무엇이며 선함이란 또 무엇인가.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면 생각의 동굴은 깊어져서 새소리 멀어지고 물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 속으로 나는 자주 잠수하곤 했었다.

그 생각들 속에서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불확실성'이야말로 인간의 숙명이자 에너지의 원천일 것이다. 내게도 그것은 참이다. p268


알라딘에서 기대평 적립금이라는 제도가 생겼는데

이 적립금은 소멸되기 전에 써야해서

신간을 사는 주기가 예전보다 빨라지고 있다.

상술임을 알지만 사라지는 적립금을 포기할 수 없어

덕분에 신간을 더 자주 살펴보는 즐거움을 누린다.

어느날,

내 레이더망에 들어온 공지영 작가의 신작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이미 외로운 나지만

성탄절에 베들레헴에 있는 꿈을 꾸기 시작한 나로썬

예루살렘 순례의 여정을 담은 이 책을 포기 하기가 쉽지 않았다.


창밖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고

낯선 음악과 적당한 소음속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익숙한 문체에 책읽는 속도는 그 어느때보다 빠르다.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내 눈물은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참된 고독속으로...

"사는 게 허망하잖아요. 무언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왜 이 수녀원이어야 했냐는 저자의 질문에 대한 수녀님의 대답이었는데

왠일인지 이 구절을 읽으며 왈칵 눈물이 났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때

삶은 시작된다.

_ 안소니 드 멜로

지난해,

나 또한 사랑하는 친구를 떠나보냈다.

'본인 부고'란 단어를 처음 접한 날이기도 했는데

오래도록 소식이 끊겼던 친구가 내 생일을 기억해

생일축하 인사와 함께 안부를 묻고

친구가 경상도 어디쯤에 집을 짓고 있다며

놀러 오라는 얘길 들은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날의 일이라

문자를 받고도 믿어지지 않아

그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아직도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ㅠ.ㅠ

그리고 1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고통의 순간도 많았지만

그 순간을 잘 이겨내고

다시 신앙을 회복하기에 힘쓰며 여기까지 온 듯 하다.


문득,

오래전 성가로 부르던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가 생각났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날...

이름을 불러주신 예수님은

어쩌면 그의 고통, 그의 병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이름을 불린 자캐오는 평생 처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키가 작다고 놀리려는 것도 아니고,

세리라고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고,

네 집에 머무르고 싶다'고 하며 이름을 불린 것은

어쩌면 처음이었다는 것을.

자기를 알아봐준다는 것, 이름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p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