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사람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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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타인의 말을 공들여 듣는 행위라 한다면, 언제까지나 공들여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박연준 시인. 『듣는 사람』에서 박연준 시인은 그간 자신이 귀 기울였던 서른아홉 권의 책을 소개한다.

이들은 대개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책들이다. ‘고전’이라 불린다면 결국 오랫동안 읽히고 읽혀도 여전히 그 매력이 마르지 않은 책이라는 뜻일 터. 과연 이들 책은 어떤 거창한 이념이나 이야기를 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혜롭지 못한 이들의 좌충우돌기’에 가깝다. 다만 서른아홉 개의 서로 다른 삶, 어쩌면 평범할 수도, 어쩌면 어리석을 수도 있으나 바로 그렇기에 무척이나 빛났던 삶을 담고 있을 뿐이다.

그 어떤 삶도 완벽할 순 없으니 그 누구도 온전히 지혜로울 순 없으니, 최선은 피할 수 없는 좌충우돌을 겁내지 않는 것, 그리고 최대한 즐기는 것, 이를 이 서른아홉 권의 책들은 말하고 있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고전에는 올바른 길이나 훌륭한 선택법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계속 길을 잘못 가는 방법’이 나와 있을지 모르지요. 시행착오가 없는 삶, 그런 게 있을까요?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한다면 ‘잘못된 길을 열심히 걸을 때 우리가 얻는 가치’를 위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사라질 거라는 말을 들으면 슬퍼지고 그다음 서늘해집니다.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히잡을 쓴 여인처럼 꽁꽁 얼어 붙은 세상 한가운데 앉아 기어코 책을 읽는 사람, 타인의 말을 공들여 듣는 사람이 존재하리라 믿어요. p15~16

나는 무조건 눈물이 많은 사람의 편이다. ‘그거 병이여’ 누군가 핀잔을 준대도 뭐 어때? 눈물이 많은 건 사랑이 많다는 뜻! 나이가 들면 눈물도 마른다. 박용래의 ‘눈물 관련 일화’(차고 넘친다)를 읽거나 뾰족한 비석처럼 절도 있게 세운 그의 시들을 읽는 걸로 눈물을 대신하는 날이 더 많다. p39

화가 칸딘스키는 예술 작품을 두고 “영혼이 거칠어지는 것을 막아주며, 마치 소리굽쇠로 악기의 현을 조율하듯 영혼의 음조音調를 맞추어준다”고 했다. 만약 우리 영혼이 세상을 부유하는 음표라면, 어둡고 깊은 영역까지 헤엄쳐본 음표가 더 우아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는 일은 우리가 내려가지 못한 영역까지 영혼의 음표들을 내려갔다 돌아오게 하는 일과 비슷하다. p74

뒤라스는 사랑으로 ‘곤두선 슬픔’을 그리는 방식에 있어 가장 독창적인 작가다. 누구도 뒤라스처럼 쓸 수 없다. 그의 글에는 음악이 흐른다. 음악과 함께 심오함, 재치, 말라비틀어진 시(건조하게 널어놓기에), 난해한 걸음걸이, 무엇보다 ‘조망의 시선’이 있다. ‘조망의 시선’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작가가 회상하는 대목을 쓸 때 마치 모든 것을 알아보았다는 듯 쓸쓸히 관조하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많은 일들을 겪고 ‘지쳐버린 신’처럼 이야기한다. 매혹적인 언술이다. p91

만약 꾸준히 독서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현명하다면 그 이유는 ‘침묵 속 경청’에 있을 것이다. 독서는 남의 말을 듣는 행위고 듣기는 침묵이란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다. 타인의 생각 속에서 기다리고 머무는 일이다. 혼자 책 읽는 사람을 보라. 침묵에 둘러싸여 얼마나 아름다운지! p112

어릴 땐 요절이 근사해 보였으나 이젠 안다. 누구라도 인생을 끝까지 온전히 살아내는 일이 귀하다는 것. 자기 일을 오랜 시간 해왔을 뿐인데 어느새 폭삭 늙어버린 모습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삶, 이런 삶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비범’을 간직한 채 평범하게(혹은 평범해 보이게) 사는 일이 아닐까. 끊임없는 자기 수양과 다독임, 생을 향한 긍정 없이는 어려운 일일 테니까. p238

'어린왕자'는 우리가 지키고 싶은 순수이자,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순수를 상징한다.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생텍쥐페리는 슬픈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는 어린왕자가 결코 상징으로 남길 바라지 않을 을테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린 왕자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런 식은 어떨까. 어린 왕자는 우리 자신이다. 어린 린날의 나, 지금도 무시로 튀어나오는 유년의 나, 사라졌지만 결코 사라진 적 없는 내 안의 나, 갈 수 없는 그리운 나라. p255

심리학이나 미술관련책을 좋아하는 나지만

마음 한 켠엔 고전읽기에 대한 갈증이 늘 있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모월모일'의 작가 박연준님의 신작이 나왔다.

그것도 서른 아홉개의 멋진 삶이 담겨 있는 고전에 관련된 독서에세이가...

가장 궁금한 책은 이태준님의 '무서록'이다. 제목부터 범상치않은 이 책은 가지고 다니며 읽어도 좋을 만큼 크기도 작다니 다음 주문시에 가장 먼저 사봐야지...

또한 영화로만 접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화사집, 진달래꽃, 동백꽃도 찜해놓는다.

올 한해

이 책에 실린 책들을 찾아 읽은 뒤

연말쯤 다시 읽으며 작가와 생각을 나누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다만 서른아홉 개의 서로 다른 삶,

어쩌면 평범할 수도,

어쩌면 어리석을 수도 있으나

바로 그렇기에 무척이나 빛났던 삶을 만나는 일...

고독은 그가 입은 옷이다.

더럽혀질 일도, 빼앗길 일도 없다.

그는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고 가진 게 없지만 그득해 보인다.

불행은 혼자라서 겪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 부대껴 ‘나’라는 존재가 깎여나갈 때 불행은 온다.

행복처럼, 불행도 상대적인 감정이다.

내 앞에 있는, 혹은 없는 당신 때문에 고통과 번민이 생긴다.

혼자 무언가에 깊이 몰두해 있는 자는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p19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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