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섬세함 - 이석원 에세이
이석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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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솔직하고 담백한 자신만의 언어로 꾸준히 기록해 온 이석원의 에세이 『어떤 섬세함』이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됐다. “생각의 중심을 자신으로 두려는 어떤 본능, 관성으로부터 벗어나 이 책에서 만큼은 내 꿈이 아니라 남의 꿈에 대해, 내 사정이 아니라 남의 사정에 대해, 내 고통만이 아니라 남의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에서 작가의 시선은 끊임없이 외부로 향한다. 서로를 미워하기 바쁜 요즘이기에 타인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고, 세상의 이면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작가의 시선이 그대로 담긴 글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달랑 종이 한 장에도 앞뒷면이 있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이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어째서 인정하지 못했던 걸까.

하여 누군가 내게 너도 착한 사람이 좋으냐 다시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나는 착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보다는 인간은 그렇게 한 가지 성품만으로 무 자르듯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좋다고.

그래서 타인에 대해 판단할 때는 가능한 조심할 줄 아는 그런 신중하고도 사려 깊은 사람이 좋다고. p66~67

그런데, 이렇게 가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과 보내는 순간이 너무 벅찰 만큼 행복하고 내가 집에서 홀로 보낸 그 어떤 순간보다 감정의 파고가 진하다 느껴질 때면, 그래서 끝내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친구라는 존재는 역시 의심 없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슬프다.

친구란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p75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사랑받지 못해도 살 수 있지만 이해를 받지 못하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가 없다고. 그래서 연애나 결혼은 거부할 수 있어도 누구의 이해도 필요 없는 존재로 홀로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그렇게나 중요한 이해를 자기가 직접 보고 듣고 겪은 범위 내에서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아찔하게 한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이해라는 게 그렇게나 얄팍한 것이기에 남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p86

그렇게, 친구를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우리 사이에 엉켰던 실타래는 조금씩 풀어졌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헤아리는 과정에서 나는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본래 누굴 미워하는 일을 중단하면 우선 내 마음이 편해지는 법이라더니, 알면 알수록 살아가는 이치란 어쩜 이리 무릎을 탁 칠만큼 절묘하고도 얄궂은 구석이 있을까.

결국 누군가를 이해하다 보면 상대에 대해 보다 너그러워진 마음은 점점 더 큰 이해를 불러오고, 이해를 하는 만큼 원망은 계속 줄어드니, 모두가 행복해지는 선순환이 시작되는 셈이라고 할까? p90

가령 세상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 당신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꺼내 불편한 상황을 만드느니 차라리 힘들어도 그냥 참고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상대를 보지 않거나 연락을 피하는 일 역시 엄연한 의사표시라서, 어느 쪽이든 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내 마음이 이토록 힘든데도 그 사실을 상대에게 털어놓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세상에는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나의 친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혼자 속앓이를 하다 애꿎은 친구들 앞에서 눈물을 쏟고, 취하도록 술도 마시고, 그러고도 모자라 집으로 돌아가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쓰면서 난리를 치는 것 아니겠는가. p143~144

생각해보면 난,

좋아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욕망덩어리다.

힘들게 살았다는 내게

가끔 입바른 소리 잘하는 둘째동생은

'그래도 언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잖아.'라고 말하며

일침을 가한다.

카누 미니도 비싸다고 병커피를 사라고 하는 김씨가

책을 (사서) 읽고,

영화는 (영화관)을 찾아 보고,

주저없이 (별다방) 커피를 마시는 마눌의 취향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것에 문득 감사한...

'언제 들어도 좋은 말'로 이미 좋아하는 작가였던 이석원의 글들이 더 좋아진건

어른으로서 살아가며 종종 느끼는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소하지만 빛나는 우리의 일상과 소중한 것들에 얘기해 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좋아하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됨은...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분석을 통해 왜 좋아하는지 알려주며

'해석 당하는 쾌감'을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느끼기 때문이라고

속 시원하게 말해 주는 책이었다고 할까?!...

거절이 늘 힘든 나지만

앞으로 살면서는

나또한 '뭘 하기 싫으냐' 스스로에게 물으며

눈치보지 말고

싫은건 싫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하지 않을 자유를 획득하며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해본다.

내겐 선물 같던...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난 언제부턴가 스스로에게

'너 뭘 하고 싶냐.'고 묻는 만큼 '뭘 하기 싫으냐.'고도 자주 묻는다.

내게 하지 않을 자유를 획득하는 일은 누군가 꿈과 목표를 이루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기에. p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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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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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스콧 피츠제럴드의 후기 작품집 《어느 작가의 오후》가 대한민국 독자의 곁을 찾는다. 《어느 작가의 오후》는 2019년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편집하고 번역해 일본에서 화제가 된 도서로, 피츠제럴드가 작가 활동 후기에 발표한 단편소설 8편과 에세이 5편을 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피츠제럴드의 후기 단편들을 직접 발굴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작품에 대한 소개와 함께 당시 피츠제럴드 부부의 상황, 세간의 평가 등을 전하며 쓸쓸했던 작가의 말년을 되짚는다.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산 탓에 더욱 암울하게만 느껴졌던 인생의 내리막길. 피츠제럴드는 알코올에 의존하고 있었고, 후배 작가들에게 추월당한다는 초조함과 경제적인 궁핍, 아내의 신경쇠약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럼에도 끝내 쓰기를 선택한 작가에게 더 깊은 애정을 느낀다고 밝힌다.


소설가로서 가장 절정인 시기에 발표한 작품들에서 이전에 볼 수 없던 희망과 의지를 보여준 피츠제럴드.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과 에세이는 그런 작가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꾸려졌다. 무라카미는 능숙한 라디오 진행자처럼 손수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하고, 중간중간 적절한 해설로 독서의 흐름을 부드럽게 이어간다. 《어느 작가의 오후》라는 한 권의 책을 매개로, 시대를 뛰어넘어 교감하는 두 작가의 모습이 보는 이를 뭉클하게 한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어느 음울한 일요일 밤, 빌은 특유의 거칠지만 너그러운 정의감을 발휘하여 모든 것을 매듭지었다. 그 정의감은 맨 처음 그녀로 하여금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여기게 했으며, 그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는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고, 그가 크게 성공하여 자만에 빠져 있을 때도 언제나 그를 참고 봐줄 만한 사람으로 있게 해준 바로 그 정의감이었다.

“여보, 이 일은 내 문제야.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내가 자제심이 없었기 때문이야. 우리 집에선 자제심이 전부 다 당신한테 몰려 있는 것 같아. 이제 나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어. 당신은 지난 3년 동안 바라던 것을 정말 열심히 해왔으니 기회를 얻을 자격이 있어. 만약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당신은 평생 나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될 거라고.” 그가 소리 없이 활짝 웃었다. “난 그걸 견딜 수 없을 거야. 아이한테도 좋지 않을 테고.”

결국 그녀는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비참한 기분이었지만, 동시에 안도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녀에게는 빌 없이 자신이 존재하는 그녀의 작품 세계가 빌과 자신이 함께 존재하는 세계보다도 더 컸기 때문이다. 기뻐하고 안도할 수 있는 한 공간이 후회와 안타까움이 넘치는 다른 공간에 비해 한결 더 넓었기 때문이다. p104~105


의사는 마을을 향해 차를 몰았다. 어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의사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날씨 탓이야.” 그는 생각했다. “이것은 지난 토요일에 대기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느낌이이야.”

최근 한 달 동안 의사는 영원히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한때 이 시골은 그에게 평화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을 피곤하고 무기력한 정체감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끌어올려준 자극이 소진되었을 때 그는 쉬기 위해서, 땅이 발하는 기운을 지켜보기 위해서, 그리고 이웃들과 단순하고 즐거운 관계를 맺으며 살기 위해서 이곳으로 돌아왔다. 평화! 그는 지금의 가족 간의 다툼은 절대 해소되지 않을 것이고, 예전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쓰라리고 격한 감정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게다가 그는 평온한 시골이 죽음을 애도하는 땅으로 변해버린 것을 목격했다. 여기에 평화는 없다. 그래, 떠나자! p185~186


그 시기에 있었던 일 중에서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것은 어느 오후 택시를 타고 연보랏빛과 장밋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고층 빌딩 사이를 지나가던 때의 일이다. 나는 갑자기 마구 울기 시작했다. 원하는 것을 전부 손에 넣었고, 이렇게 행복한 시절이 다시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렇게 서럽게 운 것이다. p289

이 책을 위해 내가 고르고 옮긴 작품은 주로 그가 말 그대로 '자기 몸을 축내며' 살았던 암울한 시대에 내놓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깊은 절망을 헤치고 나아가려는, 그리고 어떻게든 희미한 광명을 움켜쥐려는 긍정적인 의지가 줄곧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피츠제럴드의 작가로서의 강인한 본능일 것이다.

자기 연민이나 자기기만을 능가하는 힘을 지닌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생각을 이 책에 수록된 작품에서 독자가 느끼고 읽어낼 수 있다면, 번역자로서 이보다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p362


얼마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라는 키워드로 따라 들어갔더니

이 책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어느 작가의 오후'가 눈에 띄었다.

K현대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기도 한

F.스콧 피츠제럴드가 어두운 삶속에서도 써내려간

1930년대 작품으로 단편소설 8점과 에세이 5점이 실려 있었다.

흡인력있는 작가의 글은 첫단편소설의 제목이기도한 '이국의 여행자'처럼

날 미지의 도시로 이끈다.

섬세한 묘사가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머릿속에선 이미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도... ^^;


'어느 작가의 오후'를 비롯한 단편소설도 물론 좋았지만

내마음을 더 움직인건 후반부에 실린 에세이들이다.

부인이 아프고 경제적으로 힘든시기에 쓰여진 글들이라 그런지

나락으로 떨어진듯한 기분이 들던 겨울오후에

별다방에 앉아 뱅쇼 한 잔과 함께한 이 책은

'오랫동안 많은 것을 실제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좋아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았다는 깨달음의 순간' 등을 담은 글들과

'내게도 지각있는 성인이라면 어느 정도 불행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작가의 한문장이 위로로 다가오며

'그쯤은 괜찮아 잘 이겨낼 수 있어'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나의 출발점이자 일종의 문학적 영웅"이라고

이야기하며 남긴 '엮은이의 글'도 작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듯 하다.


다음에 도서관가면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찾아 읽어보는걸로...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지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각 있는 성인이라면 어느 정도 불행한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자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성인의 타고난 욕망,

즉 '부단한 노력'(이런 말을 사용함으로써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쓰는 상투어이다)은

결국 이 불행 - 우리의 젊음과 희망에 찾아오는 최종 상태다. -을 가중시킬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 자의 행복은 종종 황홀경에 가까워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도 공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행복감을 가슴에 품은 채 혼자 조용한 거리나 좁은 길을 걸으면서 얼마 안되는 행복의 조각들만 증류하여 나의 책 속에 몇 줄로 간추려 넣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행복, 혹은 자기기만의 재능인지 뭔지는 예외적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p339~340



** 이 책은 출판사 인플루엔셜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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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주역 - 팔자, 운세, 인생을 바꾸는 3,000년의 지혜 오십에 읽는 동양 고전
강기진 지음 / 유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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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주역》에 천착해 온 우리나라 최고의 역학자이자 이 책의 저자 강기진이 ‘대한민국의 희망’인 우리 시대의 오십 대에게 특히 필요한 25수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운이 좋아지는 법부터 팔자가 꼬이는 것을 피하는 법과 대운이 트이는 법, 인생이 평탄해지는 법까지 오십 이후 인생에서의 중요한 지혜들을 깨닫고 필요한 조언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운과 팔자에 치이며 살아온 오십 이전의 삶을 바꿔라. 그럼 나아갈 길을 분명해질 것이다. 인생의 황금기를 누려야 할 이때 반드시 《주역》이 필요하다. 이 책이 인간의 삶과 이 세상에 대한 지혜, 자기 마음속의 보석과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깨닫게 해 주고, 인생의 대운을 부를 것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인생을 바꾸는 것은 젊을 때 가능한 일이지 이제 오십이 다 됐는데 뭘 새롭게 바꾸나... 살던 대로 살아야지 뭐...'

이는 '인생을 바꾼다'고 할 때, 바꾸는 것이 미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정말 바꿔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다. 사람은 여태까지 살아온 자기 과거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오늘 먹은 나의 마음이 내 인생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가 바뀐다. p5

우리는 “팔자가 꼬인다”라는 말을 흔히 쓴다. 사람이 쓰는 말에는 하늘이 내린 지혜가 담겨 있다. “팔자가 꼬인다”라는 말은 팔자가 꼬이는 것이 문제지 사람의 팔자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역경은 인생사의 매 경우마다 적절한 조언을 제공하는데, 이 조언을 따르지 않을 때 팔자가 꼬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경의 조언을 따르면 팔자가 꼬이는 것을 피할 수 있고 운이 좋아진다. p10

이루고자 하는 일을 예정대로 달성해 내는 강한 운을 부여받은 사람은 그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사실 사람은 극단의 경계에까지 내몰려 있다. 특히 오십에 이른 많은 사람이 쉬쉬하지만 심리 상담을 받고 약을 먹고 한다. 이처럼 스트레스의 극단에까지 나아갔기 때문에 운이 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보다도 더 운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그 대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운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자 하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다. p25

오십에 이른 이는 이제 자기 인생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오십이 하늘에 올랐다는 말이 이를 뜻하는 것이다. 이전까지 살아왔던 땅의 세상을 내려다보며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에 따라 자신의 기질을 넘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것이 가능하고, 더 이상 운에 치이지도 않는다. 변덕스러운 우연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 고삐를 틀어쥐고 주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오십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날아야 할 용이 비로소 하늘에 올랐다는 것은 이를 뜻하는 말이다. p99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 나의 과거는 가변적인 것이다. 여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비참한 과거였는가,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이었는가? 무의미한 과거였는가, 유의미한 과정이었는가? 전반생이 어느 쪽이었는지 ‘지금의 나’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반생을 통해 그 결정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의 삶이 완성된다. 결국 오늘 먹은 나의 마음이 오늘은 물론 과거와 미래를 모두 바꾼다. 나의 마음은 그토록 놀라운 것이다. 이것이 인간 정신의 힘이다. p155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인지라 나날이 새로운 존재로 변모하고 있다. 인생에서 어느 특정 시점에만 깊이 있는 사귐이 가능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실 사람이 가장 현실에 매이는 삶을 사는 시기는 나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세파를 헤치며 치열한 삶을 사는 전반생 동안이다. 사람은 전반생을 거친 후 후반생에 이르러 정신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의 삶에 도달한 사람이라야 정말 깊이 있는 사귐이 가능한 것이다. p258

어디가 바닥인지?!...ㅠ.ㅠ

끝간데없는 왠지 모를 불안감과 함께

체력도 기분도

한 번 다운이 되니 영~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종교가 있다보니 예전에도 지금도

이런류의 책을 구입해 읽는 건 마음이 좀 불편하다.

그럼에도 주역은 학문(?)이라 우기며 집으로 데려온건

그만큼 내마음이 힘들었고 어떻게든 다시 잘 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50이후

나이들고, 병들고, 경제적으로도 활동할 기회가 줄어들고,

하는 일련의 일들을 이미 경험하고 있고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어떤 사건사고(?)가 생기면 체념하고 받아들이기보단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결해놓고

회복되는 시간이 오래걸리곤 한다.

나이 들어가며 미래를 불안해 하는 내게 저자는

'사람이 정말 바꿔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오늘 먹은 나의 마음이 내 인생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가 바뀐다.' 라고...

원했던 일은 아니었으나

지난 여름 수술로

건강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덜어내고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거의 매해마다 자격증 하나씩을 추가하거나

하고 싶던 교육을 받곤 했는데

올해는 미술수업외에는 제대로 수료한게 없다.

아직은 노는게 익숙치않고 죄의식(?)까지 느끼며

가끔씩 마음을 들볶이지만

스스로 많이 하려 드는 것을 덜어내고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살아보려 한다.

'나,

지금 잘 살고 있는거지?!...'




무릇 배우는 사람은 그 스스로 많이 하려 드는 것을 덜어내어

허(虛, 비어있음)로써 다른 사람을 받아 들여야 한다.

그리하면 능히 널리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의 도는 완성되면 필히 변하는 것이니,

무릇 가득 참을 직접 지니면서 오래 간 자는 지금까지 없었다.

...

그 차고 빔을 조절하여 자기 스스로 가득 채우려 하지 않아야 능히 오래 갈 수 있는 것이다.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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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황석희 - 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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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번역’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영화관이다. 도서에도 번역은 존재하지만, 표기는 대체로 ‘옮김’이고 저자 이름의 옆 또는 하단에 적혀 있어 부러 찾아야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만나는 ‘번역’ 글자는 엔딩크레디트 중에서도 맨 마지막, 그것도 크레디트와 다른 위치에 대체로 큰 글자로 튀어나온다. 우리가 찾지 않아도 저절로 눈앞에 나타나는 거다. 물론 상영관 불이 켜질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면 말이다.

스크린 속 ‘번역’이란 글자 옆에 자연스럽게 떠올릴 이름 석 자가 있다면 ‘황석희’일 것이다. 그 이름이 뜨는 순간 좌석 곳곳에서 “역시 황석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번역가로서 잘 알려진 황석희가 이번엔 ‘작가 황석희’로, 관객이 아닌 독자를 찾아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구인 ‘번역 황석희’라는 제목의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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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없어서 당장 어떤 큰 불이익을 겪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매번 벼안끝에 서 있는 것처럼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쨌건 노력은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를 늘 남겨준다. 모든 결과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프리랜서에게도 실패로 이어진 노력은 반드시 재산으로 쌓인다. 당장은 기회를 잃더라도 근육처럼 몸에 밴 노력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서 다음 기회에는 실패에서 얻은 요령까지 더해져 더 효율적인 노력을 할 수 있게 된다. 실패하고 배우기를 반복하며 굳은살이 박이는 성실함. 이런 미련한 성실함은 단순해 보여도 아무나 쉬이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다. p29~30

이렇게 보면 직업 세계라는게 부당해 보이겠지만 한편으론 조금은 안심해도 되는 주먹구구식 허술한 시스템이다. 차분히 경력만 쌓으면 어떻게든 저 구석에서라도 자기 자리를 찾을 방법은 있다는 거니까. 특별한 사람들처럼 대단한 가치관이나 천재적인 재능이 없어도 그 업을 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다. 나처럼 별생각 없이 일을 시작해서 어쩌다보니 생각보다 멀리 떠내려오는 경우도 있고.

미디어에 노출된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사연에(정말로 특별한지는 모르겠지만) 부러움이나 자괴감 느낄 것 없이 내 자리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으면 될 일이다. “어쩌다보니 이 일을 하게 됐어요”라는 말은 어찌 보면 그 어떤 사연보다도 훨씬 운명적이다. p91~92

내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말할 수 있는 몇 가지 중 하나는, 나는 어머니에게 최선의 것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이다.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최고의 것은 아닐지언정 당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받으며 자랐다. 그 최선은 최고 못지않은 것이며 어떤 면에선 최고를 능가하는 값진 것이다. … 당신이 준 것은 분명 최선의 것이었지만 외견 이렇게 늘 초라했고 한편으론 촌스럽고 구질구질했다. 자식 눈에도 그랬으니 남들 눈엔 어떠했을지. 하지만 그 기억은 구질구질하지 않고 늘 고마움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당신은 분명 당신 최선의 것을 주었다. p225

처음엔 잘 되지 않고 불편했지만 하다보니 생각보다 좋은 점이 많다. 일단 말을 뱉는 속도가 느려지니 단어를 조금 더 신중하게 고르게 됐고, 내 의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것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내 이런 말투가 신중하고 진중한 사람이란 인상을 준다고 한다. 궁여지책이 푼수끼까지 커버해주다니 이쯤하면 궁여지책이 아니라 기책이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보니 썩 나쁘지 않다. 굳이 전처럼 말을 빨리 할 필요가 있나 싶고. 말이 조금 느려졌다고 해서 손해를 보는 게 사실상 전혀 없더라. 나는 이게 병목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꾀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나이듦이 준 조언 같다는 생각도 든다. ‘너의 속도는 지금이 딱 좋아’라고 하는 것처럼. p238

빵을 먹는데 그 싫은 사람이 자꾸만 가엽게 느껴지는 게, 이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불편하다고 해야 하나, 불편한게 죄스럽다고 해야 하나, 왜 이런 걸 알게 돼서 심경이 복잡해지는지, 화가 나기도 도해 차라리 몰랐으면 했다. 마음껏 미워하기라도 하게. 모순덩어리. 싱숭생숭.

지금도 그 버터크림빵을 먹을 때마다 싱숭생숭하다. 딱히 맛있지도 않고 느끼하고 촌스러운 옛날 빵. 그런데도 빵집에서 눈에 띌 때면 나도 모르게 하나씩 집는다. 그런데 집에 와서 한입 물면 곧장 또 괜히 샀나 후회스럽다. 역시나 맛있진 않구나. 그때만큼. P249

재밌게 관람한 <데드풀> <스파이더맨> <작은 아씨들> 들을 번역한

황석희의 첫번째 에세이 출간 소식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책을 구입했다.

한 번도 그를 본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지난해 유퀴즈에 출연한 그를 스치듯 본 것 같기도...

번역된 자막을 보며 막연히 위트있는 사람일꺼라 짐작했었는데

이번에 책을 읽다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유머와 밈을 모으고

영화에 최적화된 대사를 만들어내는 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 관련된 에피소드 뿐만 아니라 개인 일상사도 좋았는데

그중 어머님과 아버님 관련 이야기에선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부분인데도

코킅이 찡해졌다. ㅠ.ㅠ

"I don't know why it is that i find it so very difficult, just being here on this earth."

_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

"그저 이땅에 존재하는게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어."

그의 손을 거치면 이렇게 바뀐다.

"숨만 쉬어도 살아지는 삶인데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어."

오래전 영어를 꽤나 잘하는 친구가

미국 방문시 복통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우리식의 '배가 살살 아프다'는 표현을 어찌해야 할찌 몰라

한참을 고민하고 더듬더듬 본인의 상태를 말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저자는 자연스러운 번역이 의역이 아니라

번역가들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쓰는 이런식의 번역이 의역이라고 말한다.

원문을 해체하고 관객들에게 가장 잘 다가갈 수 있는 재구성을 하는 일 번역...

영화 좋아하는 1인으로 다음 번역작품도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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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 - 내 마음을 다시 피어나게 하는 그림 50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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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가? 당신이 망설임 없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림이 당신의 이야기를 말해준다. 미술관이나 화집에서, 문학 작품이나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뿐인데 보자마자 마음에 스미어 늘 곁에 두고 싶은 그림들. 이유도 없이 웃음이 번지고 마음에 꽃이 피는 것 같은 그런 그림들을 우리는 ‘인생 그림’이라 부른다. 내 마음속 인생 그림 갤러리에 다녀오고 나면 초라하고 위축되었던 어제의 마음도 다시 찬란하게 빛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은 50만 독자에게 사랑을 받은 에세이스트 정여울이 곁에 두고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싶은 소중한 인생 그림 50편에 대해 이야기하는 본격 미술 에세이다. 그가 털어놓는 그림과 인생 이야기에, 독자들은 용감한 그림 산책자가 되어 화가의 화풍이나 미술사적 의미 같은 배경 지식이 없이도 그림을 사랑하고 향유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당신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나는 그 사람에 게 말을 걸고 싶다. 그 사람의 아주 자잘한 습관조차도 알고 싶다. 그 사람조차 잊어버린 아주 사소한 추억들까지, 밤새도록 조잘거 리며 이야기 나누고 싶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그림에게도 그렇게 말을 걸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림을 차분하게 해석하는 글이 아니라 그림과 강렬하게 소통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책에서 내 가 다루는 그림들은 미술사적인 중요도보다는 ‘내 심장을 꿰뚫은 그림들’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선택한 것들이다. 날카로운 화살처럼 심장을 뚫고 들어오는 그림들, 그 그림들이 내게 들 려준 메시지를 나만의 언어로 번역하여 들려주고 싶다. p13

“나는 나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때마다, 이 세상이 내가 꿈꾸던 것만큼 따스하고 친절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마다, 그 그림들을 생각하며 힘겨운 시간들을 버텼다. 내 마음의 치유 공간에는 고흐의 별이 빛나고 있어 비로소 내 지친 마음이 쉴 수 있기에.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속에 치유 공간을 지을 수 있다. 고흐의 별빛이라는 씨앗, 모네의 수련이라는 씨앗, 클림트의 키스라는 씨앗이 내 마음속에 둥지를 튼 한, 나는 결코 어디서든 외롭지 않을 것이다.” p20

이상하게도 자꾸만 잘못 기억하는 그림이 있다. 그림의 형태는 기억하는데 제목을 자꾸 제멋대로 왜곡하여 기억하는 것이다. 나는 호퍼의 그림을 자꾸만 ‘호텔 방’이 아니라 ‘버림받은 여인’으로 기억했다. 정말 그녀는 버림받은 것일까. 누가 이토록 삭막한 방 한구석에 이토록 외로운 사람을 내버려두고 갔을까. 그 녀는 누구를 간절히 원했기에 이토록 처절하게 고통받는 것일까. 이름 모를 한 사람의 절망이 시공간의 벽을 뛰어넘어 우리 가슴속까지 전달되는 듯하다. 표정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녀의 막막한 고립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마침내 버림받았다는 깨달음, 어쩌면 살아 있는 한 계속 이렇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 우리는 ‘호텔 방’이라 는 무미건조한 제목을 뛰어넘어 그보다 더 처절한 어떤 감수성을 실어 나른다. p83

붉게 빛나는 머리카락, 온갖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는 열망으로 불타오르는 듯한 눈빛, 간절히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표정이 이 그림을 고흐의 또 하나의 자화상처럼 보이게 만 든다. 당장 저 가망 없는 대오에서 저 가엾은 젊은이의 손을 꼭 붙잡아 끌어내고 싶다. 그리고 함께 고통받는 저 모든 사람들도 같이 해방시켜줘야 할 것 같다. 세상의 무엇이 저토록 갑갑한 공간을 만 든 것일까. 고통받고 또 버림받고 또 소외되고 영원히 고립된 낙인찍힌 존재들, 그중의 하나가 바로 고흐 자신이라는 고통스러운 인식이 내 마음을 옥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고흐가 자신의 비극적인 종말을 예감하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가슴이 아프다. p247~248

"초라하고 위축되었던 어제의 마음도

나만의 인생 갤러리에서 서다시 찬란히 빛날 것만 같다!"

'당신은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가?!..'

나라면 뭐라고 대답할까를 고민하며 구입한 정여울 작가의 신작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을 읽고 있다.

우선 현대미술은 아직 친해지지 못해 잘 모르겠고

반 고흐나 뭉크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사진과 마찬가지로 뒷모습의 그림들도 좋아 하고

블루가 들어간 그림들은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것 같다.


2021. 09. 28 / 툴루즈 로트렉 / The Toilette모작 /프리즈마유성색연필

뒷모습까지 신경쓰기 어려울 때가 있다. 특히 심신이 지쳤을 때는 더욱 그렇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의식할 수 없을 때,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욕실> 속 그녀는 무방비 상태다.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쳐 쉬고 있는 모습인지도,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절망적인 모습인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뒷모습은 처연하고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 툴루즈 로트렉은 자신의 모습이 남에게 어떻게 비칠지 잘 모르는 상태의 여성을 많이 그렸다. p61


2020. 11. 26 / 클로드 모네 / 생 라자르역 모작 / 문교 오일파스텔

모네는 자연의 빛은 그야말로 파도를 타는 원드서퍼처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받아들였다.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해그는 때로는 빛의 뜨거움, 변덕스러움, 때로는 빛의 결핍까지도 속속들이 견뎌야했을 것이다. 모네는 생라자르 역 근처에 작업실을 얻어 한 공간을 매일 관찰하며 변화하는 인상을 꾸준히 관찰했다. 모네는 화가의 '관찰력'이야말로 '상상력' 못지 않은 재산임을 아니 관찰력이야말로 상상력의 핵심임을 증언하는 화가다. p141~142

작가가 책에서 소개한 작품중에는 나도 너무 좋아서 모작까지 했던 그림들이 담겨있었다.

이게 뭐라고 엄청 반갑고 좋다.

내가 이 그림을 처음 마주한 날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꾸역꾸역 색연필과 오일파스텔로 따라 그리며 좋았던 순간들이

다시 한 번 소환된다.

내가 사랑한 미술관들에 소개된

우피치미술관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오르세미술관

퐁피두센터

.

.

.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미술관들...

소개된 작품의 색감이 2%로 부족했지만

춥고, 힘들고, 지친 겨울날

눈을 반짝이며 읽었던 책으로

외로워도 슬퍼도 다시 힘을 내어 보기로 한다.

내게도 마음을 움직인 작품들이 남긴 씨앗으로

나만의 둥지를 틀었으므로...

피카소는 자신이 벨라스케스처럼 위대한 거장이 되는 데는 몇년 걸리지 않았지만

'어린애처럼 그림 그리기에는 평생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지겹게 들었던 피카소의 오만한 고백처럼 들리지 모르지만,

이 고백의 방점은 '쉽게 천재가 되었다가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그리기'에 평생이 걸렸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전문가처럼 능숙하게 무언가를 숙련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어린이처럼 생각하고, 어린이처럼 놀고, 어린이처럼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휠씬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내면아이를 되찾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름다운 장소를 방문하는 여행을 통해 이렇게 잃어버린 내면아이의 목소리를 간절히 찾고 있다.

우리가 끊임없이 노동하고 경쟁하며 잃어버린 내면아이의 천진무구한 목소리,

그것은 피카소의 그림처럼 유쾌하고, 샤갈의 그림처럼 몽환적이며, 고흐의 그림처럼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우리 안의 천진난만한 내면아이의 미소를 되찾아주는 여행의 시간 속에서 부디 인생의 희열,

내면의 희열을 찾는 시간이 되기를. p366~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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