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섬세함 - 이석원 에세이
이석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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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솔직하고 담백한 자신만의 언어로 꾸준히 기록해 온 이석원의 에세이 『어떤 섬세함』이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됐다. “생각의 중심을 자신으로 두려는 어떤 본능, 관성으로부터 벗어나 이 책에서 만큼은 내 꿈이 아니라 남의 꿈에 대해, 내 사정이 아니라 남의 사정에 대해, 내 고통만이 아니라 남의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에서 작가의 시선은 끊임없이 외부로 향한다. 서로를 미워하기 바쁜 요즘이기에 타인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고, 세상의 이면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작가의 시선이 그대로 담긴 글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달랑 종이 한 장에도 앞뒷면이 있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이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어째서 인정하지 못했던 걸까.

하여 누군가 내게 너도 착한 사람이 좋으냐 다시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나는 착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보다는 인간은 그렇게 한 가지 성품만으로 무 자르듯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좋다고.

그래서 타인에 대해 판단할 때는 가능한 조심할 줄 아는 그런 신중하고도 사려 깊은 사람이 좋다고. p66~67

그런데, 이렇게 가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과 보내는 순간이 너무 벅찰 만큼 행복하고 내가 집에서 홀로 보낸 그 어떤 순간보다 감정의 파고가 진하다 느껴질 때면, 그래서 끝내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친구라는 존재는 역시 의심 없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슬프다.

친구란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p75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사랑받지 못해도 살 수 있지만 이해를 받지 못하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가 없다고. 그래서 연애나 결혼은 거부할 수 있어도 누구의 이해도 필요 없는 존재로 홀로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그렇게나 중요한 이해를 자기가 직접 보고 듣고 겪은 범위 내에서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아찔하게 한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이해라는 게 그렇게나 얄팍한 것이기에 남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p86

그렇게, 친구를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우리 사이에 엉켰던 실타래는 조금씩 풀어졌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헤아리는 과정에서 나는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본래 누굴 미워하는 일을 중단하면 우선 내 마음이 편해지는 법이라더니, 알면 알수록 살아가는 이치란 어쩜 이리 무릎을 탁 칠만큼 절묘하고도 얄궂은 구석이 있을까.

결국 누군가를 이해하다 보면 상대에 대해 보다 너그러워진 마음은 점점 더 큰 이해를 불러오고, 이해를 하는 만큼 원망은 계속 줄어드니, 모두가 행복해지는 선순환이 시작되는 셈이라고 할까? p90

가령 세상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 당신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꺼내 불편한 상황을 만드느니 차라리 힘들어도 그냥 참고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상대를 보지 않거나 연락을 피하는 일 역시 엄연한 의사표시라서, 어느 쪽이든 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내 마음이 이토록 힘든데도 그 사실을 상대에게 털어놓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세상에는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나의 친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혼자 속앓이를 하다 애꿎은 친구들 앞에서 눈물을 쏟고, 취하도록 술도 마시고, 그러고도 모자라 집으로 돌아가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쓰면서 난리를 치는 것 아니겠는가. p143~144

생각해보면 난,

좋아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욕망덩어리다.

힘들게 살았다는 내게

가끔 입바른 소리 잘하는 둘째동생은

'그래도 언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잖아.'라고 말하며

일침을 가한다.

카누 미니도 비싸다고 병커피를 사라고 하는 김씨가

책을 (사서) 읽고,

영화는 (영화관)을 찾아 보고,

주저없이 (별다방) 커피를 마시는 마눌의 취향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것에 문득 감사한...

'언제 들어도 좋은 말'로 이미 좋아하는 작가였던 이석원의 글들이 더 좋아진건

어른으로서 살아가며 종종 느끼는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소하지만 빛나는 우리의 일상과 소중한 것들에 얘기해 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좋아하는 것을 왜 좋아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됨은...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분석을 통해 왜 좋아하는지 알려주며

'해석 당하는 쾌감'을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느끼기 때문이라고

속 시원하게 말해 주는 책이었다고 할까?!...

거절이 늘 힘든 나지만

앞으로 살면서는

나또한 '뭘 하기 싫으냐' 스스로에게 물으며

눈치보지 말고

싫은건 싫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하지 않을 자유를 획득하며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해본다.

내겐 선물 같던...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난 언제부턴가 스스로에게

'너 뭘 하고 싶냐.'고 묻는 만큼 '뭘 하기 싫으냐.'고도 자주 묻는다.

내게 하지 않을 자유를 획득하는 일은 누군가 꿈과 목표를 이루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기에. p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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