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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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스콧 피츠제럴드의 후기 작품집 《어느 작가의 오후》가 대한민국 독자의 곁을 찾는다. 《어느 작가의 오후》는 2019년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편집하고 번역해 일본에서 화제가 된 도서로, 피츠제럴드가 작가 활동 후기에 발표한 단편소설 8편과 에세이 5편을 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피츠제럴드의 후기 단편들을 직접 발굴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작품에 대한 소개와 함께 당시 피츠제럴드 부부의 상황, 세간의 평가 등을 전하며 쓸쓸했던 작가의 말년을 되짚는다.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산 탓에 더욱 암울하게만 느껴졌던 인생의 내리막길. 피츠제럴드는 알코올에 의존하고 있었고, 후배 작가들에게 추월당한다는 초조함과 경제적인 궁핍, 아내의 신경쇠약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럼에도 끝내 쓰기를 선택한 작가에게 더 깊은 애정을 느낀다고 밝힌다.


소설가로서 가장 절정인 시기에 발표한 작품들에서 이전에 볼 수 없던 희망과 의지를 보여준 피츠제럴드.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과 에세이는 그런 작가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꾸려졌다. 무라카미는 능숙한 라디오 진행자처럼 손수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하고, 중간중간 적절한 해설로 독서의 흐름을 부드럽게 이어간다. 《어느 작가의 오후》라는 한 권의 책을 매개로, 시대를 뛰어넘어 교감하는 두 작가의 모습이 보는 이를 뭉클하게 한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어느 음울한 일요일 밤, 빌은 특유의 거칠지만 너그러운 정의감을 발휘하여 모든 것을 매듭지었다. 그 정의감은 맨 처음 그녀로 하여금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여기게 했으며, 그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는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고, 그가 크게 성공하여 자만에 빠져 있을 때도 언제나 그를 참고 봐줄 만한 사람으로 있게 해준 바로 그 정의감이었다.

“여보, 이 일은 내 문제야.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내가 자제심이 없었기 때문이야. 우리 집에선 자제심이 전부 다 당신한테 몰려 있는 것 같아. 이제 나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어. 당신은 지난 3년 동안 바라던 것을 정말 열심히 해왔으니 기회를 얻을 자격이 있어. 만약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당신은 평생 나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될 거라고.” 그가 소리 없이 활짝 웃었다. “난 그걸 견딜 수 없을 거야. 아이한테도 좋지 않을 테고.”

결국 그녀는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비참한 기분이었지만, 동시에 안도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녀에게는 빌 없이 자신이 존재하는 그녀의 작품 세계가 빌과 자신이 함께 존재하는 세계보다도 더 컸기 때문이다. 기뻐하고 안도할 수 있는 한 공간이 후회와 안타까움이 넘치는 다른 공간에 비해 한결 더 넓었기 때문이다. p104~105


의사는 마을을 향해 차를 몰았다. 어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의사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날씨 탓이야.” 그는 생각했다. “이것은 지난 토요일에 대기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느낌이이야.”

최근 한 달 동안 의사는 영원히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한때 이 시골은 그에게 평화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을 피곤하고 무기력한 정체감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끌어올려준 자극이 소진되었을 때 그는 쉬기 위해서, 땅이 발하는 기운을 지켜보기 위해서, 그리고 이웃들과 단순하고 즐거운 관계를 맺으며 살기 위해서 이곳으로 돌아왔다. 평화! 그는 지금의 가족 간의 다툼은 절대 해소되지 않을 것이고, 예전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쓰라리고 격한 감정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게다가 그는 평온한 시골이 죽음을 애도하는 땅으로 변해버린 것을 목격했다. 여기에 평화는 없다. 그래, 떠나자! p185~186


그 시기에 있었던 일 중에서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것은 어느 오후 택시를 타고 연보랏빛과 장밋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고층 빌딩 사이를 지나가던 때의 일이다. 나는 갑자기 마구 울기 시작했다. 원하는 것을 전부 손에 넣었고, 이렇게 행복한 시절이 다시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렇게 서럽게 운 것이다. p289

이 책을 위해 내가 고르고 옮긴 작품은 주로 그가 말 그대로 '자기 몸을 축내며' 살았던 암울한 시대에 내놓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깊은 절망을 헤치고 나아가려는, 그리고 어떻게든 희미한 광명을 움켜쥐려는 긍정적인 의지가 줄곧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피츠제럴드의 작가로서의 강인한 본능일 것이다.

자기 연민이나 자기기만을 능가하는 힘을 지닌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생각을 이 책에 수록된 작품에서 독자가 느끼고 읽어낼 수 있다면, 번역자로서 이보다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p362


얼마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라는 키워드로 따라 들어갔더니

이 책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어느 작가의 오후'가 눈에 띄었다.

K현대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기도 한

F.스콧 피츠제럴드가 어두운 삶속에서도 써내려간

1930년대 작품으로 단편소설 8점과 에세이 5점이 실려 있었다.

흡인력있는 작가의 글은 첫단편소설의 제목이기도한 '이국의 여행자'처럼

날 미지의 도시로 이끈다.

섬세한 묘사가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머릿속에선 이미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도... ^^;


'어느 작가의 오후'를 비롯한 단편소설도 물론 좋았지만

내마음을 더 움직인건 후반부에 실린 에세이들이다.

부인이 아프고 경제적으로 힘든시기에 쓰여진 글들이라 그런지

나락으로 떨어진듯한 기분이 들던 겨울오후에

별다방에 앉아 뱅쇼 한 잔과 함께한 이 책은

'오랫동안 많은 것을 실제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좋아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았다는 깨달음의 순간' 등을 담은 글들과

'내게도 지각있는 성인이라면 어느 정도 불행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작가의 한문장이 위로로 다가오며

'그쯤은 괜찮아 잘 이겨낼 수 있어'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나의 출발점이자 일종의 문학적 영웅"이라고

이야기하며 남긴 '엮은이의 글'도 작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듯 하다.


다음에 도서관가면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찾아 읽어보는걸로...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지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각 있는 성인이라면 어느 정도 불행한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자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성인의 타고난 욕망,

즉 '부단한 노력'(이런 말을 사용함으로써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쓰는 상투어이다)은

결국 이 불행 - 우리의 젊음과 희망에 찾아오는 최종 상태다. -을 가중시킬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 자의 행복은 종종 황홀경에 가까워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도 공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행복감을 가슴에 품은 채 혼자 조용한 거리나 좁은 길을 걸으면서 얼마 안되는 행복의 조각들만 증류하여 나의 책 속에 몇 줄로 간추려 넣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행복, 혹은 자기기만의 재능인지 뭔지는 예외적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p339~340



** 이 책은 출판사 인플루엔셜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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