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크로니클 - 우주 탐험, 그 여정과 미래, 대한출판문화협회 "2016년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닐 디그래스 타이슨 지음, 에이비스 랭 엮음, 박병철 옮김 / 부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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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까마득한 기억으로 묻혔습니다만,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인 1969년 7월20일 인류는 지구 밖 천체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의 아폴로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 무렵 중학교에 다니던 필자도 몇 차례의 아폴로 우주선발사로 관심이 많아져 우주에 관한 책들을 꽤나 읽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지구 밖 먼 행성으로 가기 위하여 저온에서 수면상태로 여행한다거나, 조운트라고 해서 특정 장소로 순간이동하는 기술이 실용화된다는 내용의 공상과학소설입니다. 그때는 금세 사람이 사는 기지를 달에 건설하고, 화성에도 갈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잠잠해진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궁금했던 것인데, 오늘 소개하는 <스페이스 크로니클>을 읽고서야 전모를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저자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 부설 헤이든 천문관의 소장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박사입니다. 뉴욕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은 1869년에 설립되어 입체모형을 통하여 자연 서식지와 동식물의 생태를 볼 수 있는 전시를 특징으로 합니다. 박물관은 화석과 곤충 등 수천만 점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의 표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헤이든 천문관은 자선가 챨스 헤이든(Charles Hayden)의 기부로 1935년 문을 열어 1997년까지 운영되다가, 2000년에 로즈지구우주센터(Rose Center for Earth and Space)로 개편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지구와 우주의 생성과 변화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태양계 행성과 지구 모형의 조형물, 최첨단 장치를 통하여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타이슨소장은 자연사박물관에서 발행하던 <내추럴 히스토리>라는 잡지에 ‘우주(Universe)'라는 주제의 칼럼을 써온 인연으로 1996년 헤이든 천문관의 소장으로 부임하여 지금의 로즈지구우주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스페이스 크로니클>은 로즈지구우주센터의 타이슨소장이 지난 15년간 우주개발 혹은 탐사의 필요성에 대하여 쓴 글을 엮은 책입니다. 엮은이는 <내추럴 히스토리>의 편집장이던 에이비스 랭입니다. 편집인은 ‘왜 우리는 우주를 동경하며, 왜 우주로 나가야 하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 우주를 탐사해왔으며, 미래에는 어떤 방법이 사용될 것인가? 그리고 우주를 향한 도전의 걸림돌은 무엇인가? 등 지금까지의 우주개발정책의 변천사가 한 편의 서사시처럼 펼쳐져 있다.’라고 요약하였습니다.

 

저자는 1960년대 미국의 우주개발정책이 급물살을 탈 수 있었던 것은 냉전의 산물이었다고 잘라 말합니다. 구소련은 1957년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를 쏘아 올렸고, 한 달 뒤에는 역시 최초로 생명체를 태운 스푸트니크1호를 성공적으로 지구궤도에 진입시켰으며, 1961년 4월에는 최초의 유인우주비행을 성공시켰습니다.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에 탑승하여 우주비행을 마치고 성공적으로 귀환한 것입니다. 소련이 우주개발을 선도하자 우주가 전략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미국은 우주개발에 전력투구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초기 우주개발경쟁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는 모조리 소련의 것이었습니다. 최초의 여성 우주인, 최초의 우주유영, 최초의 우주 정거장 건설, 최초의 달 궤도 비행, 달에 최초로 캡슐을 착륙시킨 것도 모두 소련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달 탐사 차량, 화성과 금성에 탐사선을 착륙시키는데 성공한 것도 소련이 처음이었습니다.

 

스푸트니크1호의 발사성공으로 충격을 받은 미국은 우주개발의 군사적 중요성과 전후 미국의 위상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1년 뒤에 NASA를 설립하고, 과학부문에 대한 인적 물적 투자를 과감하게 확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달에 보내는 아폴로 프로그램을 출범시킨 것은 그때까지 소련에 밀리던 우주개발경쟁을 일거에 뒤집어보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1969년 최초로 달에 사람을 보내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단숨에 우주개발경쟁에서 우위를 빼앗은 미국이 우주개발경쟁에서 독주체계를 굳히기 위한 노력을 버리다시피 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선두자리를 차지하게 되니 심심해서는 아닐 것입니다. 바로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경쟁 상대가 사라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상대가 없는 시합은 흥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육상이나 수영과 같은 기록경기는 좋은 경쟁상대가 있을 때 새로운 기록들이 잇달아 작성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타이슨소장은 미국이 우주개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주장해왔다고 했습니다. 특히 최근에 중국이 우주개발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미국을 따라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소련과 각축을 벌이면서 우주개발을 선도하던 과거의 분위기를 되살리려는 속셈도 있다고 보입니다. 대부분의 현대과학 분야처럼 우주과학 역시 정부의 적극적 투자가 없다면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주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당국의 지속적 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위기설을 주장하는 과학의 영역일수록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냉정한 판단이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로 광우병파동이 일었을 때,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이 왜 나왔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엮은이는 ‘인류는 왜 우주로 갈 수 있어야 하는가?’를 첫머리에 두었습니다. 우주개발은 인간과 같은 우주생명체의 존재나 우주의 생성의 비밀을 캐는 일처럼 단순한 호기심 차원이나 인류의 무한한 도전정신의 발로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미래에 닥칠 수도 있는 인류절멸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쥘 베른과 함께 19세기 과학소설의 선구자로 꼽히는 영국작가 허버트 조지 웰즈가 소설 <우주전쟁>에서 화성인이 지구로 쳐들어 왔다는 가정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위험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소행성과 같은 거대한 낙하물이 지구와 충돌하는 상황은 기적과 같이 드물 수도 있지만, 달이나 태양계 행성에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도  1994년 7월에는 슈메이커-레비9 혜성의 조각들이 목성에 충돌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공룡의 멸종원인과 연관 짓기도 합니다.

 

공룡은 삼첩기 후기에 출현하여 쥐라기와 백악기에 이르도록 지금의 인간처럼 전 세계에 걸쳐 살던 우세종의 육상동물이었습니다. 화석을 통하여 확인된 것들 만해도 600여 속에 달하는 공룡은 30cm의 작은 것부터 40m가 넘는 커다란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었던 것은 2억년이 넘게 진화해왔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물종 가운데 공룡이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런 공룡이 백악기-제3기에 익룡, 어룡, 수장룡 등을 제외한 모든 종이 순식간에 멸종한 원인을 설명하기 위하여 많은 설이 제시되었습니다. 새로 등장한 초본류를 먹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초식동물 부적응설이나 생존경쟁에서 밀렸다는 생존경쟁설 등처럼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있고, 지구기온의 하강으로 인하여 생식에 문제가 생겼다는 추위설과 여기 관련된 화산 활동설, 운석 충돌설이 있습니다. (위키백과. ‘공룡’편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A%B3%B5%EB%A3%A1)

 

1990년경 멕시코의 유카탄(Yucatan) 반도의 칙쇼루브 (Chicxulub) 마을 근처에서 발견된 160-320km나 되는 직경의 단층이 발견되면서 운석충돌설이 힘을 얻었습니다. 대략 6천4백만 년 전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칙쇼루브단층은 운석충돌결과 생긴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이 정도의 크기면 지구상의 생명체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운석충돌설로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자가 제시한 지구로 떨어지는 충돌체의 크기와 충돌로 발생하는 에너지 양, 그리고 그와 같은 충돌이 발생하는 빈도에 관한 자료를 보면, 칙쇼루브에 떨어진 운석은 직경이 10km 짜리로 충돌에너지가 TNT백조톤, 즉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50억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축구장 크기의 충돌체는 천년의 빈도로 떨어질 수 있는데, TNT 5천만톤 즉 원자폭탄 2500배에 해당하는 에너지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축구장만한 크기의 소행성이 2002년 1월 지구와 달 사이의 두 배 정도 되는 거리를 스쳐지나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소행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기 12일 전에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하니, 우리는 우주에서 떨어질 수 있는 날벼락에 대책 없이 노출되어 있는 셈입니다. 이렇듯 위험한 물건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가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10년 정도 뒤에는 이런 규모의 소행성의 위치를 모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위치가 파악된다는 것은 개별 소행성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2029년 4월 13일에 초대형 축구장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궤도에 떠있는 통신위성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스쳐지나갈 것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아포피스라고 명명된 이 소행성이 지구의 중력구멍에 해당하는 고도까지 접근한다면 재상봉하게 되는 2036년에는  캘리포니아와 하와이 사이의 태평양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로 인한 피해의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1908년 구소련의 퉁구스카에서 발생한 폭발사건입니다.

 

퉁구스카 폭발사건은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의 밀림에서 발생한 대규모의 공중폭발 사건입니다. 당시 목격자들은 불덩이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날아가다가 폭발했다고 전했습니다. 폭발로 인하여 2,150 제곱킬로미터의 숲이 파괴되었는데 나무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쓰러졌다고 합니다. 워낙이 오지라서 소련이 성립한 1921년에서야 과학적 조사가 이루어져 원인규명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운석이나 소행성의 충돌 혹은 메탄가스가 폭발한 것이라는 등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었습니다. 결국 1929년에 들어서야 운석에 풍부한 자철광이나 규소광물로 형성된 물질을 발견하면서 운석충돌로 인한 사건으로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얼음, 금속, 규소 화합물로 이루어진 반지름 40m 정도의 소천체가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연소되다가 퉁구스카 상공 약 8km 지점에서 폭발하였고 이때의 폭발 에너지는 15~20메가톤 규모에 달했다는 것입니다. (나무위키. ‘퉁구스카 대폭발’ 참조; https://namu.wiki/w/%ED%89%81%EA%B5%AC%EC%8A%A4%EC%B9%B4%20%EB%8C%80%ED%8F%AD%EB%B0%9C) 저자는 이러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우주탐험은 지속되어야 하고, 그 비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와 같은 전략적 측면에서의 우주개발 뿐 아니라 상업적 이유로도 우주개발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데 자칫하면 미국이 다시 이들에게 밀리는 상황도 예견된다는 것입니다. 거리 우주여행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을 우주로 보내기 위한 상업적 우주여행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우주왕복선계획이 종료된 미국으로서는 손 놓고 구경만 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주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과학적 발견이 일상을 더욱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는 점도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우수한 기능을 자랑하는 기상위성과 통신위성을 제작하였지만, 정작 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로켓기술이 없어서 다른 나라의 발사체를 이용하려다보니 저자세로 일관해야 하는 서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켓기술은 극도로 보안이 유지되는 핵심기술인지라 쉽게 얻을 수 없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1377년 최무선이 실용화에 성공한 신기전이 최초의 로켓이라고 한다면 장구한 역사를 가진 셈인데, 과학이 천대받던 시절 발전이 없다가 해방이후 기지개를 켜고 있는 셈입니다. 2020년에는 한국형발사체가 개발완료될 것이라고 하니 기대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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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재발견 - 돈·시간·건강·인간관계를 바꾸는 걷기의 놀라운 비밀
케빈 클링켄버그 지음, 김승진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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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게,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였습니다. 지금까지 읽어본 걷기에 관한 책들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쓰여진 것들이었는데, 이 책은 무언가 다를 것 같다는 기대가 있었다고 할까요? 우선 이 책의 저자 케빈 클린켄버그가 ‘K2 도시 디자인’의 수석 디자이너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도시다자인을 하는 분이라면 실용적인 이유를 내놓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역시 저자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걷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의외로 많습니다. 제일 먼저 꼽는 것은 아무래도 건강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걸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우선적으로 꼽고 싶은 덕목입니다. 예전에는 글을 쓰기 전에 산책을 하면서 글에 담을 내용을 검토하고 순서도 정리하곤 했는데, 걷는 다는 것 자체가 잡념을 제거하고 무언가에 집중하도록 하는데 제격입니다. 돈이 절약할 수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무게를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멀지 않은 거리를 걸어서 가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인데, <걷기의 재발견>의 저자가 제시하는 절약효과는 상당한 규모로 커지는 것 같습니다. 걸으므로해서 에너지를 절약하여 인류발전에 기여하는 고차원적인 것을 굳이 짚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또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저자를 통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추천하는 걷기의 범주에는 자전거를 타는 것, 즉 개인의 근력을 이용하여 이동하는 것, 나아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까지도 범주를 넓힐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술을 끊은지(상황에 따라서 여전히 조금씩은 마십니다만) 꽤 되었기 때문에 생각도 못했습니다만, 저자는 음주운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음주걷기도 조심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술을 끊기 전에는 땅이 갑자기 불쑥 일어나는 바람에 얼굴을 다쳤다고 변명하던 기억도 있어서 말입니다.

 

문제는 걷기가 좋은 것은 잘 알겠는데 여건이 좋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걷기 좋은 동네 자체가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어떤 도로에는 인도가 없어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길을 따라서 곡예하듯 걸어야 한다거나, 횡단보도가 설치되지 않은 넓은 도로 혹은 강을 만나는 것은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설사 그런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차량이 넘쳐나는 길을 걷게 되면 건강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매연으로 폐가 찌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요즈음 같이 복잡한 세상에서는 범죄로부터 안전한가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시설, 예를 들면 은행, 시장, 행정기관 등이 지나치게 멀다면 걷기에 좋은 동네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공항 인근이나 기찻길 옆처럼 소음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요소들을 잘 감안한 도시설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20세기 들어서면서 자동차가 대중화될 무렵에는 삶을 윤택하게 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것인데, 이제 자동차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도시구조 역시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으로 회귀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자와 같이 도보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시디자이너가 더 많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신호등을 제작하는 업체에서는 펄쩍 뛸 노릇이겠습니다만, 멈춤표시판이나 신호등을 없애는 것으로 도로가 더 안전해진다는 한스 몬데로만의 주장을 인용한 것은 의외의 관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에 곁들인 ‘내가 걷는 이유’라는 주제로 쓴 열두 개의 이야기는 저자의 글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 글을 얻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만약 저에게 같은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어떻게 쓸까를 생각해보는 오지랖도 떨어보았습니다. 다양한 수치를 근거로 내놓고 있어서 신뢰가 가는 주장이라는 생각을 했고, 지금까지도 해오고 있는 걷기를 앞으로도 꾸준하게 늘려가야겠다는 생각을 굳이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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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식물 -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 마키노의 식물일기
마키노 도미타로 지음, 안은미 옮김, 신현철 감수 / 한빛비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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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걷기를 할 때는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에도 관심을 쏟고는 했습니다. 물론 식물학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서 그때는 이름을 몰라도 카메라에 담아 블로그에 올려두면 꽃박사 블로그 친구들이 이름을 알려주곤 했습니다. 그때는 블로그 친구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참에 나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가도 금세 까먹곤 했습니다. 무엇이든 끈기가 중요한데 그게 잘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건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아무래도 없던 집념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루 한 식물>의 저자인 마키노 도미타로박사 역시 집념으로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경지에 이른 분이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열네살에 관심이 많던 식물을 공부하기 위하여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식물채집을 하면서 독학으로 앎을 쌓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식물을 발견하여 이름을 붙인 것만해도 2377종에 이를 정도라고 합니다. <하루 한 식물>은 하루에 한편씩 식물에 대한 글을 써 석달 열흘, 즉 100일에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서문에서는 하루에 하나의 식물을 주제로 글을 썼다고는 합니다만, 기획에 가름하는 ‘일본 식물 이름 읽고 쓰기’를 비롯하여, 33번째 글인 ‘스물네 살의 지볼트’, 44번째 글은 ‘오노 란잔 선생의 해골’처럼 일본의 식물학에 관련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읽어가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을 적어보면, 먼저 글쓰기는 꾸준하게 일정한 분량만큼 매일 쓰는 것이 역시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매일 한편의 글을 쓰려면 충분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주전공분야가 있어야 주제를 끊이지 않고 이어갈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책의 번역본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인데, 일본의 년호는아무래도 우리에게는 친숙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서기로 변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표현은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어주는 것은 어떨까 싶은 대목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말을 가리키며 사슴이라 말하고...(22쪽)’은 아마도 원저에 지마위록(指馬爲鹿)라고 적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입니다. 진시황제의 환관 조고가 호해를 황제에 올리고 권력을 잡았을 때 중신들을 시험하기 위하여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우긴 사례로부터 온 것입니다. 지마위록이라고 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자가 <하루 한 식물>을 써내려간 가장 큰 이유는 고유한 일본 이름을 가진 식물을 잘못된 한자로 표기하는 경향이 적지 않게 있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바로 잡으려는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자 정도의 위치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그런 경향을 지나치게 거친 표현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양버찌라는 이름은 (…) 앵두의 오류에서 비롯됐다. (…) 걷잡을 수 없이 펴져사는 기세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손 놓고 있는 원예 세게 사람들의 과학적 이성 없음에 가련함을 느낀다. 농업 지도자와 학자들에게 죄를 물어야 마땅하다.(115쪽)’ 저자의 이런 기세는 일반인은 물론 식물학의 대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저자가 위대한 학자라고 칭송해마지 않는 오노 란잔선생도 그의 독설을 피해가지 못한다. 감자는 분명히 중국의 마령서와는 다른 품종인데도 불구하고 오노 란잔선생이 마령서를 감자라고 소개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마령서와 감자! 서로 닮은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세상 사람들은 란잔의 그릇된 학설에 속아 대부분 눈뜬 장님이 됐으니 참으로 딱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어수룩함에 박수를 보낼 따름이다.(22쪽)’


그런데 저자의 주장 가운데 의문이 드는 대목이 없지 않으니 대가의 주장에 토를 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아서 적어봅니다. 왜종려와 당종려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일본에는 두 가지 종류의 종려나무가 자생하는 것 같습니다. 두 종려나무는 단일품종으로 보인다고 했는데, 일본종려가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저자는 중국종려는 일본종려의 변종으로 단정한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유전자검사도 한다는데 정황만으로 가지고 이렇게 단정짓는 것이 타당한지 모르겠습니다. 정황으로 본다면 오히려 일본종려를 당종려의 변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든 저자는 만엽집을 비롯하여 일본의 전통가사에서 노래하고 있는 다양한 식물들을 이끌어와서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류의 책들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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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다시 돌아온다 - 프로이트와 라캉의 사랑론
강응섭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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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마음 한구석에 상처 같은 기억이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첫 사랑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크게 기대했던 책읽기였습니다. 책을 받아보고서야 프로이트로부터 시작해서 라캉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의 흐름을 정리한 내용이었습니다. 흔히 첫사랑하면 성년이 되어 마음이 쏠린 이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저자는 유아기에 맺는 관계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흔히는 유아기에 겪은 일은 대부분 잊혀진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임상에 근거한 정신분석을 통하여 기억되지 않던 부분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유아기적 첫사랑의 관계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상호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첫사랑은 다시 돌아온다>의 전반부에서는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가 생각했던 인간의 정체화과정을 ‘됨의 첫사랑’, ‘가짐의 첫사랑’ 그리고 ‘상호적 첫사랑’의 단계로 설명합니다. 프로이트의 주석가로 활동한 라캉이 제시한 상상계, 상징계 그리고 실재계라는 정신의 삼위체를 통하여 인간의 정체화과정을 설명합니다. 저자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차이에 대하여 라캉이 외부의 것이 내부로 들어오는 관계, 그리고 내부와 외부가 서로 맺는 관계를 말하는 반면, 프로이트는 자체 생산되는 리비도가 내부에 머무르는 관계, 그리고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관계, 또한 외부로 향하던 리비도가 다시 내부로 돌아오는 관계 등을 말하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정신분석학을 잘 알지 못합니다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근간으로 하는 3자 관계(아동-어머니-아버지)와 성적 힘의 역동성에 초점을 맞추어 창시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그 논리를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과학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정신분석이 사례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도 검증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에 관한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어 용어라든가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습니다만, 간간히 우리도 잘 아는 영화의 한 장면을 인용한다던가 해서 이해를 돕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꿈의 해석에 관해서는 긴가민가하는 편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파악하고 있는 다양한 환자정보를 이용하여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점술사의 모습이 겹쳐보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점을 보러 가면 점술사가 의뢰인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만나는 의뢰인이 가진 문제를 알아내는 것는 기술 같은 것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정신분석 전문가는 점술사보다는 훨씬 유리한 입장에 서 있는 셈입니다.


정신분석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가 사랑에 빠지는 사례에 대하여 두 사람이 결혼을 하거나 분석을 포기해야 한다는 두 가지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프로이트가 생각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프로이트 시절의 의사들 가운데 이런 상황이 드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안나O의 사례가 그런 경우인데, 최근에 읽은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http://blog.joins.com/yang412/13919381>에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의사이며 프로이트의 멘토였던 요제프 브로이어박사가 안나O라는 가명으로 프로이트와 토론하였던 여성환자 베르타 파펜하임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치료가 혼란을 겪고 아내와의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갔다는 에피소드가 소개됩니다.


첫사랑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호기심을 부풀렸던 이 책에서 첫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청춘을 달아오르게 했던 그 첫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처음 나와서 만났던 누군가와의 사이에 싹텄던,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사랑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의 관계는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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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책읽기 -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드는 독서법
김세연 지음 / 봄풀출판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네이버가 2008년부터 운영해오던 파워블로그제도를 폐지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파워블로그 제도가 블로그 문화의 다양성을 대변하기에 부족했다고’라고는 했지만, ‘파워블로거들의 지나친 상업 활동’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제어할 마땅한 장치를 마련할 수 없었던 한계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조선일보 2016년 4월 23일자 기사. “‘블로거지’들이 망친 파워블로그… 끝내 제 무덤 파다” 참조)


생뚱맞아 보이는 파워블로거제도의 폐지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한 것은 양심선언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독서 후기를 꾸준히 정리하다보니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을 기회가 적지 않습니다. 먼저 읽은 사람의 후기가 좋아서 책을 사게 되는 분도 많기 때문에 생긴 출판계의 관행일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일부러 혹은 저도 모르게 후기의 내용이 긍정적인 색채를 띠기 마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독서 후기에서 좋은 인상을 받아 책을 샀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니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심지어는 ‘이건 아니잖아?’한다면 잘못 쓴 후기에 낚였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독서 후기 쓰는 일이 어려워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4년이 넘게 [북소리]를 이어온 것은 아무래도 생각이 모자라거나 얼굴이 두껍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행인 것은 언젠가부터 저자와는 다른 제 생각을 후기에 적기 시작했던 일입니다. 설사 그 분야의 대가의 책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독서 후기라는 것이 책을 읽은 사람의 생각을 적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아무래도 책을 꾸준하게 읽음으로 해서 쌓인 내공(?)의 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즈음에는 아예 저자가 전하려는 핵심을 간추리려는 노력만큼 저자의 주장에 문제는 없는지 찾는 데도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을 때도 예외 없이 작동하게 되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 새로운 앎을 얻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새로운 앎이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책을 읽지 않음만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점을 일깨우는 책을 오늘 소개하려 합니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만드는 독서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김세연의 <비판적 책읽기>입니다. 이 책의 기획의도가 표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있습니다.


“성공하고 싶은가? 그래서 책을 읽는가? 책을 많이 읽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있다. 그러나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비판하고 평가하지 못하면 성공은커녕 어제와 똑같은 오늘, 달라지지 않는 내일을 보게 될 뿐이다. 의심하지 않는 잘못된 믿음과 사회의 수많은 편견, 책에 부여된 권위를 뿌리치고 비판적으로 읽기 시작해보라. 책 속 지식이 온전히 내 것이 되고,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서 어제와는 달라진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성공만을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비판적으로 책읽기는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비판적 책읽기는 분명 좋은 책 읽는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글쓰기와 논술강의 그리고 작가로 활동한다는데, 막상 책을 읽다보면 구어체에 가깝고 거칠다는 느낌이 들면서 때로는 저자가 주장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저자가 이 글을 읽으면 섭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을 비판적으로 읽어보라고 주문하고 있는 만큼 자신의 책이 비판적으로 읽힐 수도 있다고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핵심인 ‘비판적 책읽기’에는 기본적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책의 얼개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 6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이 책에는 책을 읽는 이유, 비판적 책읽기란, 비판적 책읽기를 가로막는 것, 책을 구별하고 읽는 방법, 비판적으로 책 읽는 방법, 그리고 비판적 책읽기 다음에 할 일 등을 담았습니다.


책을 읽는 이유가 성공을 위한 것이라고 몰아가는 저자는 ‘당신이 책을 읽는 이유가 순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라고 했지만,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집어 드는 경우도 많을 것이며, 가까운 친구의 호들갑으로 호기심이 생겨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순수하지 않은 동기로 책을 읽을 것이라는 저자의 추측에는 공감하지 않을 뿐이며, ‘믿음을 강요하는 책을 읽으면 독자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33쪽)’라는 저자의 주장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사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있는 책들 가운데 제가 읽은 책은 별로 없는 경우가 많고, 장안에 화제를 부른 영화들은 대부분 보지 않은 것을 보면 저는 스스로를 왕따 시키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문체나 글 흐름이 때로는 거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문단에서 주제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을 보면 글쓰기의 핵심은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책읽기를 통하여 마주하게 되는 저자의 논리와 생각을 나의 생각과 비교하여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거나 바꾸게 되는 것인데, 특히 생각이 바뀌게 되면 인생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저자가 정치적 성향을 너무 드러내는 것 같아 불편했다는데, 특히 성향이 다른 편을 보는데 있어 편협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다만 북한에 대하여 “근대국가의 탄생 이후 유래 없는 정권의 3새 세습을 이룬 독재국가(67쪽)”라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점을 어느 정도는 감안할 수도 있겠습니다. 비판이 가능한가 하는 점에 독재국가를 정의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3공화국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하여 주민등록법을 도입했다는 주장은 쉽게 공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해석을 하게 된 계기가 대학시절 헌법학을 강의하던 교수님이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않는 50대인 사람이 있다’라고 소개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았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생신고가 되면 주민번호가 자동으로 부여되니 말입니다. 주민번호가 없으면 생활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우리나라 아닙니까? 주민번호가 없으면 의무는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이 군대의 교육방식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대한민국 군대가 창설되기 이전에 일본의 식민지배시절에 이미 만들어진 것이니 선후를 거꾸로 따지고 있는 셈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공부하던 학교나 저자가 복무하던 군대는 시간적으로 볼 때 이미 권위를 앞세우던 과거와는 달리 변화가 일어나고 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상급생이나 상급자의 눈치나 보던 시절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믿음과, 편견과 권위의식이야 말로 비판의식을 고양시키는데 있어 절대적인 적이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믿음으로부터 편견이 생겨나고, 편견은 다시 권위를 내세우는 주장을 믿게 만드는 순환구조를 만들게 됩니다. 저자의 권위를 너무 의식하다보면 비판적 책읽기가 어려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책읽기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럼 비판적 독서를 어떻게 하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저자는 비판적 책읽기의 시작은 ‘이해’라고 했습니다. 책을 이해하려면 문장 단위로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차’라는 지도에 따라 중요한 부분과 그렇지 못한 구분을 구별하면서 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의 설명이 모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적절하게 질문을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분명치 않은 것이 누구에게 질문을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의문을 가지고 읽어가다 보면 저자가 책 읽는 이를 위한 설명이 뒤따를 것이고, 그 설명으로도 의문이 해소되지 않으면 저자나 혹은 관련 분야의 전문가에게 물어볼 일입니다.


참고로 루이스 세뿔베다가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서 소개한 흥미로운 책읽기 방법을 소개합니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런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연애소설 읽는 노인 45쪽, 열린책들 2009년) 물론 연애소설이기는 합니다만, 생각해볼 점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옛날 천자문을 음독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듯 합니다. ‘한 가지 책을 백번 쯤 되풀이해서 읽으면 분명치 않던 의미가 저절로 환해진다’라는 옛 선비의 독서법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본격적으로 비판적 책읽기 방법으로 넘어가면, 일단 의심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의심이 있어야 비판이 가능한 것입니다. 다음 단계는 주장, 이유, 근거 그리고 전제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하여 읽은 내용을 잘 요약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다음 단계는 주장에 들어있는 실질적인 논리를 비판하는 일입니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종합해보면, 1. 이유와 주장의 상관관계를 검토한다, 2. 이유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타당한지 판단한다, 3. 그 주장의 전제는 무엇인지 파악한다, 4.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201쪽). 중요한 점은 누군가를 비판할 때는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판이 제대로 되려면 오류를 피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는 다섯 가지 오류의 원인을 들었습니다. 1. 바로 직전 원인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류, 2. 눈에 보이는 원인만으로 판단하려는 오류, 3. 결과와 원인을 균등하게 하려는 오류, 4. 좋아하는 결과에 원인을 맞추려는 오류, 5. 진영논리에 매몰된 오류, 등입니다.(214-218쪽) 제목만 읽어도 어떤 의미인지 개략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아이젠버그 경영대학원의 토마스 키다교수가 <생각의 오류; http://blog.joins.com/yang412/12081937>에서 밝힌 오류를 초래하는 5 가지의 인간의 천성이 생각의 오류를 낳는 다는 주장을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1. 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2. 확인하고 싶어한다, 3. 삶에서 운과 우연의 일치가 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4.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5.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6. 잘못된 기억을 갖고 있다. 등입니다.


마지막 결정적으로 중요한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누군가의 주장을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고 나의 주관을 확실하게 세우는 일입니다. 그 일은 자신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즉 누군가의 주장을 의심하고 판단한 다음에 가지게 된 나만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점검하는 단계인 것입니다. 나아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점, 책을 읽은 후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비판적 책읽기의 화룡첨정은 독후감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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