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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재발견 - 돈·시간·건강·인간관계를 바꾸는 걷기의 놀라운 비밀
케빈 클링켄버그 지음, 김승진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게,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였습니다. 지금까지 읽어본 걷기에 관한 책들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쓰여진 것들이었는데, 이 책은 무언가 다를 것 같다는 기대가 있었다고 할까요? 우선 이 책의 저자 케빈 클린켄버그가 ‘K2 도시 디자인’의 수석 디자이너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도시다자인을 하는 분이라면 실용적인 이유를 내놓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역시 저자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걷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의외로 많습니다. 제일 먼저 꼽는 것은 아무래도 건강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걸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우선적으로 꼽고 싶은 덕목입니다. 예전에는 글을 쓰기 전에 산책을 하면서 글에 담을 내용을 검토하고 순서도 정리하곤 했는데, 걷는 다는 것 자체가 잡념을 제거하고 무언가에 집중하도록 하는데 제격입니다. 돈이 절약할 수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무게를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멀지 않은 거리를 걸어서 가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인데, <걷기의 재발견>의 저자가 제시하는 절약효과는 상당한 규모로 커지는 것 같습니다. 걸으므로해서 에너지를 절약하여 인류발전에 기여하는 고차원적인 것을 굳이 짚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또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저자를 통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추천하는 걷기의 범주에는 자전거를 타는 것, 즉 개인의 근력을 이용하여 이동하는 것, 나아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까지도 범주를 넓힐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술을 끊은지(상황에 따라서 여전히 조금씩은 마십니다만) 꽤 되었기 때문에 생각도 못했습니다만, 저자는 음주운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음주걷기도 조심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술을 끊기 전에는 땅이 갑자기 불쑥 일어나는 바람에 얼굴을 다쳤다고 변명하던 기억도 있어서 말입니다.
문제는 걷기가 좋은 것은 잘 알겠는데 여건이 좋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걷기 좋은 동네 자체가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어떤 도로에는 인도가 없어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길을 따라서 곡예하듯 걸어야 한다거나, 횡단보도가 설치되지 않은 넓은 도로 혹은 강을 만나는 것은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설사 그런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차량이 넘쳐나는 길을 걷게 되면 건강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매연으로 폐가 찌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요즈음 같이 복잡한 세상에서는 범죄로부터 안전한가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시설, 예를 들면 은행, 시장, 행정기관 등이 지나치게 멀다면 걷기에 좋은 동네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공항 인근이나 기찻길 옆처럼 소음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요소들을 잘 감안한 도시설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20세기 들어서면서 자동차가 대중화될 무렵에는 삶을 윤택하게 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것인데, 이제 자동차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도시구조 역시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으로 회귀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자와 같이 도보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시디자이너가 더 많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신호등을 제작하는 업체에서는 펄쩍 뛸 노릇이겠습니다만, 멈춤표시판이나 신호등을 없애는 것으로 도로가 더 안전해진다는 한스 몬데로만의 주장을 인용한 것은 의외의 관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에 곁들인 ‘내가 걷는 이유’라는 주제로 쓴 열두 개의 이야기는 저자의 글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 글을 얻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만약 저에게 같은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어떻게 쓸까를 생각해보는 오지랖도 떨어보았습니다. 다양한 수치를 근거로 내놓고 있어서 신뢰가 가는 주장이라는 생각을 했고, 지금까지도 해오고 있는 걷기를 앞으로도 꾸준하게 늘려가야겠다는 생각을 굳이는 책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