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크로니클 - 우주 탐험, 그 여정과 미래, 대한출판문화협회 "2016년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닐 디그래스 타이슨 지음, 에이비스 랭 엮음, 박병철 옮김 / 부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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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까마득한 기억으로 묻혔습니다만,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인 1969년 7월20일 인류는 지구 밖 천체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의 아폴로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 무렵 중학교에 다니던 필자도 몇 차례의 아폴로 우주선발사로 관심이 많아져 우주에 관한 책들을 꽤나 읽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지구 밖 먼 행성으로 가기 위하여 저온에서 수면상태로 여행한다거나, 조운트라고 해서 특정 장소로 순간이동하는 기술이 실용화된다는 내용의 공상과학소설입니다. 그때는 금세 사람이 사는 기지를 달에 건설하고, 화성에도 갈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잠잠해진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궁금했던 것인데, 오늘 소개하는 <스페이스 크로니클>을 읽고서야 전모를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저자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 부설 헤이든 천문관의 소장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박사입니다. 뉴욕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은 1869년에 설립되어 입체모형을 통하여 자연 서식지와 동식물의 생태를 볼 수 있는 전시를 특징으로 합니다. 박물관은 화석과 곤충 등 수천만 점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의 표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헤이든 천문관은 자선가 챨스 헤이든(Charles Hayden)의 기부로 1935년 문을 열어 1997년까지 운영되다가, 2000년에 로즈지구우주센터(Rose Center for Earth and Space)로 개편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지구와 우주의 생성과 변화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태양계 행성과 지구 모형의 조형물, 최첨단 장치를 통하여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타이슨소장은 자연사박물관에서 발행하던 <내추럴 히스토리>라는 잡지에 ‘우주(Universe)'라는 주제의 칼럼을 써온 인연으로 1996년 헤이든 천문관의 소장으로 부임하여 지금의 로즈지구우주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스페이스 크로니클>은 로즈지구우주센터의 타이슨소장이 지난 15년간 우주개발 혹은 탐사의 필요성에 대하여 쓴 글을 엮은 책입니다. 엮은이는 <내추럴 히스토리>의 편집장이던 에이비스 랭입니다. 편집인은 ‘왜 우리는 우주를 동경하며, 왜 우주로 나가야 하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 우주를 탐사해왔으며, 미래에는 어떤 방법이 사용될 것인가? 그리고 우주를 향한 도전의 걸림돌은 무엇인가? 등 지금까지의 우주개발정책의 변천사가 한 편의 서사시처럼 펼쳐져 있다.’라고 요약하였습니다.

 

저자는 1960년대 미국의 우주개발정책이 급물살을 탈 수 있었던 것은 냉전의 산물이었다고 잘라 말합니다. 구소련은 1957년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호를 쏘아 올렸고, 한 달 뒤에는 역시 최초로 생명체를 태운 스푸트니크1호를 성공적으로 지구궤도에 진입시켰으며, 1961년 4월에는 최초의 유인우주비행을 성공시켰습니다.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에 탑승하여 우주비행을 마치고 성공적으로 귀환한 것입니다. 소련이 우주개발을 선도하자 우주가 전략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미국은 우주개발에 전력투구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초기 우주개발경쟁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는 모조리 소련의 것이었습니다. 최초의 여성 우주인, 최초의 우주유영, 최초의 우주 정거장 건설, 최초의 달 궤도 비행, 달에 최초로 캡슐을 착륙시킨 것도 모두 소련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달 탐사 차량, 화성과 금성에 탐사선을 착륙시키는데 성공한 것도 소련이 처음이었습니다.

 

스푸트니크1호의 발사성공으로 충격을 받은 미국은 우주개발의 군사적 중요성과 전후 미국의 위상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1년 뒤에 NASA를 설립하고, 과학부문에 대한 인적 물적 투자를 과감하게 확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달에 보내는 아폴로 프로그램을 출범시킨 것은 그때까지 소련에 밀리던 우주개발경쟁을 일거에 뒤집어보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1969년 최초로 달에 사람을 보내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단숨에 우주개발경쟁에서 우위를 빼앗은 미국이 우주개발경쟁에서 독주체계를 굳히기 위한 노력을 버리다시피 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선두자리를 차지하게 되니 심심해서는 아닐 것입니다. 바로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경쟁 상대가 사라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상대가 없는 시합은 흥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육상이나 수영과 같은 기록경기는 좋은 경쟁상대가 있을 때 새로운 기록들이 잇달아 작성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타이슨소장은 미국이 우주개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주장해왔다고 했습니다. 특히 최근에 중국이 우주개발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미국을 따라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소련과 각축을 벌이면서 우주개발을 선도하던 과거의 분위기를 되살리려는 속셈도 있다고 보입니다. 대부분의 현대과학 분야처럼 우주과학 역시 정부의 적극적 투자가 없다면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주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당국의 지속적 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위기설을 주장하는 과학의 영역일수록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냉정한 판단이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로 광우병파동이 일었을 때,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이 왜 나왔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엮은이는 ‘인류는 왜 우주로 갈 수 있어야 하는가?’를 첫머리에 두었습니다. 우주개발은 인간과 같은 우주생명체의 존재나 우주의 생성의 비밀을 캐는 일처럼 단순한 호기심 차원이나 인류의 무한한 도전정신의 발로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미래에 닥칠 수도 있는 인류절멸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쥘 베른과 함께 19세기 과학소설의 선구자로 꼽히는 영국작가 허버트 조지 웰즈가 소설 <우주전쟁>에서 화성인이 지구로 쳐들어 왔다는 가정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위험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소행성과 같은 거대한 낙하물이 지구와 충돌하는 상황은 기적과 같이 드물 수도 있지만, 달이나 태양계 행성에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도  1994년 7월에는 슈메이커-레비9 혜성의 조각들이 목성에 충돌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공룡의 멸종원인과 연관 짓기도 합니다.

 

공룡은 삼첩기 후기에 출현하여 쥐라기와 백악기에 이르도록 지금의 인간처럼 전 세계에 걸쳐 살던 우세종의 육상동물이었습니다. 화석을 통하여 확인된 것들 만해도 600여 속에 달하는 공룡은 30cm의 작은 것부터 40m가 넘는 커다란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었던 것은 2억년이 넘게 진화해왔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물종 가운데 공룡이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런 공룡이 백악기-제3기에 익룡, 어룡, 수장룡 등을 제외한 모든 종이 순식간에 멸종한 원인을 설명하기 위하여 많은 설이 제시되었습니다. 새로 등장한 초본류를 먹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초식동물 부적응설이나 생존경쟁에서 밀렸다는 생존경쟁설 등처럼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있고, 지구기온의 하강으로 인하여 생식에 문제가 생겼다는 추위설과 여기 관련된 화산 활동설, 운석 충돌설이 있습니다. (위키백과. ‘공룡’편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A%B3%B5%EB%A3%A1)

 

1990년경 멕시코의 유카탄(Yucatan) 반도의 칙쇼루브 (Chicxulub) 마을 근처에서 발견된 160-320km나 되는 직경의 단층이 발견되면서 운석충돌설이 힘을 얻었습니다. 대략 6천4백만 년 전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칙쇼루브단층은 운석충돌결과 생긴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이 정도의 크기면 지구상의 생명체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운석충돌설로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자가 제시한 지구로 떨어지는 충돌체의 크기와 충돌로 발생하는 에너지 양, 그리고 그와 같은 충돌이 발생하는 빈도에 관한 자료를 보면, 칙쇼루브에 떨어진 운석은 직경이 10km 짜리로 충돌에너지가 TNT백조톤, 즉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50억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축구장 크기의 충돌체는 천년의 빈도로 떨어질 수 있는데, TNT 5천만톤 즉 원자폭탄 2500배에 해당하는 에너지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축구장만한 크기의 소행성이 2002년 1월 지구와 달 사이의 두 배 정도 되는 거리를 스쳐지나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소행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기 12일 전에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하니, 우리는 우주에서 떨어질 수 있는 날벼락에 대책 없이 노출되어 있는 셈입니다. 이렇듯 위험한 물건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가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10년 정도 뒤에는 이런 규모의 소행성의 위치를 모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위치가 파악된다는 것은 개별 소행성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2029년 4월 13일에 초대형 축구장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궤도에 떠있는 통신위성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스쳐지나갈 것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아포피스라고 명명된 이 소행성이 지구의 중력구멍에 해당하는 고도까지 접근한다면 재상봉하게 되는 2036년에는  캘리포니아와 하와이 사이의 태평양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로 인한 피해의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1908년 구소련의 퉁구스카에서 발생한 폭발사건입니다.

 

퉁구스카 폭발사건은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의 밀림에서 발생한 대규모의 공중폭발 사건입니다. 당시 목격자들은 불덩이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날아가다가 폭발했다고 전했습니다. 폭발로 인하여 2,150 제곱킬로미터의 숲이 파괴되었는데 나무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쓰러졌다고 합니다. 워낙이 오지라서 소련이 성립한 1921년에서야 과학적 조사가 이루어져 원인규명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운석이나 소행성의 충돌 혹은 메탄가스가 폭발한 것이라는 등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었습니다. 결국 1929년에 들어서야 운석에 풍부한 자철광이나 규소광물로 형성된 물질을 발견하면서 운석충돌로 인한 사건으로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얼음, 금속, 규소 화합물로 이루어진 반지름 40m 정도의 소천체가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연소되다가 퉁구스카 상공 약 8km 지점에서 폭발하였고 이때의 폭발 에너지는 15~20메가톤 규모에 달했다는 것입니다. (나무위키. ‘퉁구스카 대폭발’ 참조; https://namu.wiki/w/%ED%89%81%EA%B5%AC%EC%8A%A4%EC%B9%B4%20%EB%8C%80%ED%8F%AD%EB%B0%9C) 저자는 이러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우주탐험은 지속되어야 하고, 그 비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와 같은 전략적 측면에서의 우주개발 뿐 아니라 상업적 이유로도 우주개발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데 자칫하면 미국이 다시 이들에게 밀리는 상황도 예견된다는 것입니다. 거리 우주여행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을 우주로 보내기 위한 상업적 우주여행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우주왕복선계획이 종료된 미국으로서는 손 놓고 구경만 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주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과학적 발견이 일상을 더욱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는 점도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우수한 기능을 자랑하는 기상위성과 통신위성을 제작하였지만, 정작 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로켓기술이 없어서 다른 나라의 발사체를 이용하려다보니 저자세로 일관해야 하는 서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켓기술은 극도로 보안이 유지되는 핵심기술인지라 쉽게 얻을 수 없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1377년 최무선이 실용화에 성공한 신기전이 최초의 로켓이라고 한다면 장구한 역사를 가진 셈인데, 과학이 천대받던 시절 발전이 없다가 해방이후 기지개를 켜고 있는 셈입니다. 2020년에는 한국형발사체가 개발완료될 것이라고 하니 기대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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