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
스티븐 와인버그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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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변하기는 했습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권위에 약한 편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권위있는 분이 하시는 말씀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대놓고 문제제기를 삼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권위 있는 분이 그동안 쌓아온 앎을 바탕으로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설마 틀린 말을 하겠느냐는 일종의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우리네 옛말도 있듯이 권위 있는 분들이 모든 이치에 통달할 수 없는 것이고, 심지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분야에서도 놓치고 있는 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엉뚱한 이야기로 리뷰를 여는 이유는 특별한 의미의 과학의 역사서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양에서는 종교가 모든 것에 우선하던 중세를 암흑기라고 일컫는 것은 신학이 정한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내놓을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로마교회의 이단심문소의 오랜 심문 끝에 자신이 입증한 지동설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가 심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했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100여년이 지난 후세 사람이 지어낸 것이라고 합니다만, 아마 그의 심정이 딱 그랬을 것 같습니다. 갈릴레이는 소신을 버리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리학과 천문학을 중심으로 한 과학의 발전사를 다룬 <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은 과학의 연구에 투신한 젊은 학자들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기본소양, 즉 ‘이미 알려진 모든 사실에 대하여 의문을 가져라’하는 원칙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입니다. 물론 과학 이외의 학문분야, 심지어는 세상사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에건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기 때문에 누구나 읽어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자가 이 책에 적용한 원칙은 ‘현대의 역사학자들이 가장 위험하게 여기고 피하는 방법’, 즉 과거 자연철학자들의 이론이나 연구 방식을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1933년 뉴욕에서 태어난 스티븐 와인버그는 브롱크스 과학 고등학교를 거쳐 1954년 코넬 대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1957년에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재규격화 이론을 이용하여 약한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강한 상호작용의 효과」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 로렌스 방사능연구소,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 하버드 대학교 등을 거쳐, 1983년부터는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 물리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는 장(場)의 양자론에서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에 있어 다양한 분야를 연구해왔고, 특히 자연의 근본적인 힘들 중 전자기력과 약력을 통합하는 이론은 그의 최대의 업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문적 성과로 1979년에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소립자 이론의 ‘표준 모형’이라고 할 정도로 현대 물리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목을 <To explain the world(‘세상을 설명한다’는 의미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만, 이 주제는 철학이라는 학문영역이 태동할 때부터 다룬 아주 오래된 주제이기도 합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철학(哲學, philosophy)은 존재, 지식, 가치, 이성, 인식 등의 일반적이며 기본적인 대상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합니다. 철학은 전통적으로 ‘세계와 인간과 사물과 현상의 가치와 궁극적인 뜻을 향한 본질적이고 총체적인 천착’을 의미합니다. 이 책의 주제가 되고 있는 수학과 물리학은 18세기까지만 해도 자연철학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과학의 뿌리는 철학에 두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 과학사적 배경 때문에 저자는 그리스시대 철학자들의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사유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과학철학보다는 과학의 역사에 관한 내용이라고 입장을 정리합니다.


‘현대과학의 발견(The discovery of modern science)’이라는 부제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여러 분야 가운데 물리학과 천문학에 중점을 둔 것은 과학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현대적인 모습을 갖춘 것이 천문학에 적용된 물리학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생물학 같은 분야는 많은 역사적 우연의 의존해왔기 때문에 물리학 모델로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생물학과 화학의 급속한 발전은 17세기 물리학 혁명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스티븐 와인버그의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은 1부 그리스의 물리학, 2부 그리스의 천문학, 3부 중세시대, 4부 과학혁명으로 나누었고, 본문에 나오는 이론 가운데 별도의 설명이 필요한 것들에 대하여 말미에 ‘전문해설’을 별도로 실었습니다. 전문해설은 수식과 그림 등을 곁들이고 있지만, 제목 그대로 전문적인 내용이라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분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점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 학자들이 이룩한 학문적 업적이 어떻게 중세의 암흑기를 건너 르네상스시기로 연결될 수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중동지방에서 일어난 압바스 왕국은 물론 이베리아반도에 자리 잡은 후기 우마이야왕조를 비롯한 이슬람세력들이 그리스학문의 맥을 이어받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학자들이 남기 학문적 성과들을 이슬람어로 번역하여 확산시킨 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더하여 이슬람학자들의 연구업적까지도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그 누구도 오늘날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방식의 추론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는 저자는 아나톨리아의 밀레투스에서 활동한 물리학자 가운데 기원전 6세기의 탈레스를 처음 인용하여 그리스 물리학을 설명합니다. 물론 탈레스가 남긴 어떠한 기록도 전하는 것이 없습니다만, 탈레스야말로 ‘모든 물질은 하나의 기본 재료로 구성되어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물질의 본성이 모든 것의 유일한 원리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초기 철학자들 중에서 (…) 이 철학 학교를 세운 탈레스는 그 원리가 물이라고 말했다.(20쪽)”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탈레스에 이어 아낙시만드로스는 의문의 물질을,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크세노파네스는 흙을,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만물의 재료라고 제안했고, 그로부터 100여년 뒤에 등장한 엠페도클레스는 모든 물질이 하나가 아니라 물, 공기, 흙, 불 등 네 개의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 무렵에 활동한 파르메니데스는 자연의 변화와 다양성은 환상일 뿐이라고 가르쳤고, 그의 제자 엘레아의 제논(스토아학파 제논과는 다른)의 경우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입증하려 했습니다. 저자는 두 사람의 주장이 틀렸다고 잘라 말하고, 그들의 사유체계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즉 운동이 불가능하다면 왜 물체들이 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여겼는데, 이로 인하여 과학이 발전할 기회를 놓치는 실수를 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에 대한 철학적 개념들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랍의 철학자들에게 엄청난 존경을 받았습니다. 아베로에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철학자’라고 한다면 아베로에스는 ‘해설자’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저자 역시 검증하려는 노력은 없었지만, 평범한 관측에 근거한 것이지만 자신이 가정한 원칙에 따라 정교한 추론을 통하여 자연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사유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의 법칙에 대해서 틀리긴 했지만, 자연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믿은 자체는 상당히 중요하다.”라는 저자의 입장은 과학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교회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자연주의적이었고, 우주에 대한 그의 시각은 법칙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 것이었기 때문에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처럼 비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수도회마다 다른 입장을 취하였던 것인데,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경우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반면, 도미니크 수도회에서는 그의 사상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현대과학의 시작, 즉 과학혁명의 시작이 코페르니쿠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했습니다. 1473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코페르니쿠스는 중세 폴란드 왕국의 수도 크라쿠프에 있는 크라쿠프대학에서 천문학과정을 포함한 교육을 받고 1496년 볼로냐로 옮겨 천문관측을 시작했습니다. 1510년에는 폴란드로 돌아와 프롬보르크에 천문대를 짓고 1543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천문연구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귀국 직후 그는 이전까지의 행성이론을 비판하고 자신의 새로운 행성이론을 담은 <천체의 운동과 그 배열에 관한 주해서>를 썼지만, 이 글은 그가 사망하고서 한참 뒤까지 출판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때까지의 천문학 이론의 핵심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버리고, 모든 천체들은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지동설을 새롭게 정립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론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관측자료를 내세운 것은 아니었고,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마게스트>에서 인용한 관측자료를 재해석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천체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구가 움직인다고 가정하였을 때, 태양, 별 그리고 다른 행성들의 여러 가지 겉보기운동이 잘 설명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저작은 출판되기 전부터 다수의 종교지도자들의 반발을 불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세기에 가톨릭교회가 심각하게 억압하기 전까지는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 측에서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억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1540년에서야 출판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551년 에라스무스 라인홀트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활용하여 특정한 시간에 황도 위에서 행성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는 새로운 천문목록인 ‘프로이센 목록’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론은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의 천문관측을 통하여 확인되었고, 케플러는 행성의 궤도가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이라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과학이론의 혁명을 불러왔다면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태양 중심의 천문학구조를 지지하는 최초의 ‘관측적인’ 증거를 제시하여 실질적인 과학의 혁명을 일깨웠다고 하겠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개발된 스파이글라스를 개량하여 스무배의 배율을 가지는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관측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천체관측을 통하여 달표면이 울퉁불퉁하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고, 맨눈으로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행성들이 달처럼 둥근 모습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네 개의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고, 금성이 달처럼 위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태양의 표면에서 흑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즉 새로운 기술이 순수과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알려준 것입니다.


과학혁명의 절정은 뉴턴에서 맞았다고 했습니다. 뉴턴은 과거의 자연철학과 현대과학의 경계에 걸친 인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분명 현대과학이 된 모든 과학이 따르고 있는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1687년 왕립협회를 통하여 뉴턴이 출판한 <자연철학의 수학 원리; 약칭은 ‘프린키피아’입니다>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없이 물리학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책입니다. 물질의 양, 운동과 힘에 대한 정의, 법칙 및 추론을 제시하고, 이어서 1부에서는 그 결과를 차례로 유도합니다. 2부에서는 유체 속에서의 물체의 운동을 다루고, 3부에서는 천문학의 증거들을 찾습니다. 이미 측정된 것들에 대한 계산과 아직 측정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예측을 보여줍니다. 뉴턴도 알고 있었지만, 중력이 유일한 물리적 힘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이론이었습니다.


2천년이 넘는 물리학과 수학의 역사를 요약한 방대한 과학의 역사를 몇 줄의 리뷰로 요약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끝에 붙인 전문해설은 이해하기에 역부족이었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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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고 재미있는 인디언 신화 1
알폰소 오르티즈 외 엮음 | 양순봉 외 옮김 / 아프로디테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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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神話, Mythology)는 한 나라 혹은 한 민족으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로 실재하는 장소, 사물, 혹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로 사실로 믿어지는 전설과는 달리 믿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화세계에서는 신과 인간을 둘러싼 이야기들로 국한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역마다 독특한 신화가 전해오지만, 때로는 유사한 맥락을 가지는 신화도 있습니다.

요즈음 공부하는 아메리카대륙에 관한 것으로 보이는데다가, ‘황당하고 재미있는’이라는 수식어에 눈길을 끄는 바람에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저자들이 25년간에 걸쳐 80여개의 미국 인디언 부족들로부터  채집한 160여 편의 신화를 모아 ‘인간 창조’, ‘사랑과 갈망의 이야기들’, ‘코요테의 울음과 웃음들’의 3장으로 나누어 엮은 원본에서 58편을 뽑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앞선 두 개의 장에 실린 이야기들은 비교적 고전적인 이야기들이고, 마지막 ‘코요테의 울음과 웃음들’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19세기의 자료에서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 창조’에 담긴 이야기들은 인간과 신이 나뉜 과정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생활필수품이라 할 소금이나 옥수수, 들소나 말, 주술의식 등을 얻거나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든가, 남녀의 차이, 다른 인종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죽음은 무엇인지 등이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메리칸 원주민의 선조들은 핏덩이 신화를 믿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생긴 핏덩이를 토끼가 기르게 되었다던가, 자식 없는 늙은 부부가 기르게 되었다던가 하는 등입니다. 이런 신화 혹은 전설은 부족의 시조가 어디서 왔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여기 담긴 이야기들은 오래 전에 있었던 사건을 비유적으로 혹은 격을 높일 수 있도록 각색하여 후대에 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시각으로 해석하게 되면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야기의 앞에, 혹은 뒤에 이야기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달아놓았습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토끼, 코요테, 사슴 등은 각각의 동물에 해당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것으로 보아야 하지 싶습니다. 우리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를 그와 같은 성품을 가진 부족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과 갈망의 이야기들’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때로는 동물, 심지어는 달과 결혼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이들이 사물에서 따온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점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랑은 신성하고 썽 또한 그렇다. 이별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속해 있는 것이다.(150쪽)”이라고 한 것처럼, 원주민들의 성에 대한 관념이 개방적이고 파격적인 경우도 있는데, 그들이 성적으로 더 난잡했다는 증거는 없는 듯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성관념이 그리 위선적이지 않았다는 저자들의 해석이 수긍되는 듯합니다.

워너브러더스의 만화영화 <루니툰>에 나오는 코요테는 매번 로드러너에게 당하는 것으로 나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습니다만, 신화에 등장하는 코요테는 악동이자 영웅으로 상상도 못할 장난을 저지르기도 하고, 위대한 문화의 전도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코요테와 익톰, 그리고 다른 모든 광대들은 모두 신성하다. 그들은 우리 삶의 필요한 한 부분이다. 예전의 우리 인디언처럼 한이 많은 사람들 또한 살아갈 힘이 되는 그들만의 해학이 필요하다.(263-264쪽)”라고 한 것처럼 백인들에게 핍박받는 동안 만들어진 민담 혹은 전설도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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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털 해골의 비밀 - 마야 문명의 신비
세리 루이스 토머스.크리스 모턴 지음, 유영 옮김 / 크림슨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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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털 해골의 비밀>이라는 제목보다 ‘마야 문명의 신비’라는 부제가 더 눈길을 끌었기 때문에 읽게 된 책입니다. 저자들은 마야문명의 실체를 소략하게 소개하고는 있습니다만, 알려진 것들에 대한 검증을 철저하게 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크리스탈 해골의 비밀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들이 휴가차 찾은 과테말라에 있는 옛도시 티칼에서 가이드를 맡은 카를로스로부터 이 책의 주제가 되는 크리스털해골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됩니다. 피라미드의 측면에 새겨진 석조해골을 보면서 카를로스는 고대 마야인들이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들에게 죽음아란 완전한 끝이 아니넜어요. 따라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대하고 바라는 어떤 것이었죠.(10쪽)” 그리고 이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옛 전설에 따르면 실물 크기의 견고한 크리스털 해골 13개가 존재했는데, 이것들은 인간의 해골처럼 움직이는 턱뼈를 가지고 있어서 말하거나 노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먼 옛날 인류 최초의 조상들이 남긴 것으로 위대한 지식과 지혜의 원천이었다는 크리스털 해골을 뒤쫓기로 한 것은 어쩌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제작자라는 직업적인 본능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크리스털 해골을 찾아다니면서 유래를 캐는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마야, 아즈텍 등 유카탄반도에 흩어져 있는 고대문명의 유래는 물론 북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의 전설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면 곧바로 쫓아가 확인하곤 했던가 봅니다. 크리스탈 해골이 과연 고대의 유물인지 아니면 현대에 만들어진 가품인지까지 추적하다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아틀란티스대륙의 존재는 물론 인류의 조상이 먼 우주에서 온 것이라는 증명되지 않은 이론까지 두루 섭렵하는 바람에 이들의 작업에 대한 믿음이 점점 엷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야의 유적들이 오늘에까지 전해진 이유, 분명치 않은 이유로 무너진 마야문명의 유허가 순식간에 열대우림의 숲에 묻혀 외래인의 발길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들은 아즈텍이 스페인의 코르테스에게 맥없이 무너지게 된 데는 케찰코아틀 신화가 한몫을 했다는 이미 알려진 설명을 인용합니다만, 이는 정복자들이 왜곡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 같습니다. 치첸이사에서 만난 볼 경기장과 촘판틀리에 대한 설명은 참고할 만하였지만, 저자들이 언급한 카라콜은 치첸이사가 아니라 벨리즈의 카요구역에 있는 것을 착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아메리카 대륙에 흩어져 있는 유적과 전설의 흔적을 정리하는 한편 크리스탈 해골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단서를 얻기 위하여 만난 사람들과의 인터뷰 혹은 관련 자료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사실여부를 충분히 검증한 흔적보다는 그 주장이 미심쩍은 점이 있다는 느낌을 풍기면서도 장황하게 인용하고 있어 그 주장이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저자들이 만난 북아메리카의 원주민이나 마야인들은 부족이 오랫동안 지켜온 비밀을 공개할 때가 되었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눈 지구적인 위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크리스탈 해골에 담긴 선조들의 영이 남긴 정보를 되살려 지구적 위기로부터 인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위기의 핵심은 지구를 오용하고 남용함으로써 일어나는 재해가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지구 내부로부터 엄청난 균열이 일 것이며 자기장도 이동할 것이다. 아니, 이미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지구는 쪼개져 산산조각이 날 것이고 파편들이 지구 표면과 대기 중에 어지럽게 떠돌아다닐 것이다.(88쪽)” 이런 지구적 재앙을 어떻게 피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최근에 우리나라에서까지 지진이 활발해지고 있어서인지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역시나 신뢰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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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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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박주영작가의 <고요한 밤의 눈>을 읽고서 몇 가지 독특한 느낌이 남습니다. B, D, X, Y, Z으로 약칭되는 다섯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상황들이 교차하는데, 특정 조직에서 활동하는 B, X, Y는 서로 연결이 되지만, 소설을 쓰는 Z는 주로 Y와 관련이 있고, D와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느슨한 관계를 맺고, X 는 D와 어느 정도의 접촉을 가지는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핵심인물은 조직의 스파이로 활동하는 B, X, Y 세 사람입니다. Z는 조직의 관리대상이고, D는 조직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 46페이지로 나뉜 에피소드 가운데 44페이지는 이들 다섯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화자로 등장하고, 때로는 다섯 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나 혹은 별도의 주변인물들이 화자와 연결되어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그런데 45페이지, ‘패자의 서’는 작가가 이 소설을 창작에 몰두하던 시절의 분위기를 그렸고, 마지막 46페이지는 등장인물 다섯이 등장해서 자기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는 단지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를 위해 다시 태어났다(314쪽)‘라고 적힌 프롤로그가 이어집니다. 그리고는 혼불문학상 심사위원들의 평이 나오고 마지막 47페이지에 적은 작가의 말로서 이 책이 끝나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책은 처음 만납니다. 그리고 다시보니 ’나는 스파이이고 이 세계는 끝났다‘라고 적힌 에필로그를 이야기 앞에 두었습니다.

스파이가 세 사람, 아니 전직 스파이까지 포함하면 십여명 가까이 등장하면서 정작 스파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누군가를 감시하는 일 밖에는 없는 것 같이 잔뜩 품었던 기대가 허망하게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감시사회와 다름없는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작․감시당하며 정체성을 잃고 '내가 아닌 나로 사는' 무기력한 존재다“라는 현기영작가의 평가나 ”스파이들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혁명과 구원의 길을 <패자의 서> 즉 소설에서 찾았다는 점이 흥미롭다“나는 은희경 작가의 평이 선뜻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몇 안되는 등장인물을 통하여 이야기 속의 사회가 감시되거나 조작된 사회라는 설정이 실감나게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설가가 던지는 ‘혁명’이라는 화두 역시 지나치게 막연하기 때문에 얼마나 파급력을 가지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작가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인용한 드라마, 다큐멘터리, 혹은 책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제 경우는 책의 말미에 이르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흔적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도서관은 모두에게 허용되는 구역과 아무에게나 허용되지 않는 구역으로 나뉜다. (…) 도서관 아이들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혹여 들어갔다고 해도 길을 잃고 영원히 나올 수도 있다고(223쪽)”라는 부분에서는 보르헤스의 여러 단편들에서 등장하는 미로의 이미지와 <픽션들>에 수록된 「바벨의 도서관」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D로부터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보니 D가 X를 상담할 때 등장하는 ‘펠림프세스트’ 역시 보르헤스에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현실을 왜곡해서 이해하는 과대망상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남아서 어디쯤 진실이 드러날까 기대하기도 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야기의 첫머리에 나오는 D의 언니가 실종된 사건은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다시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였던 것 같다는 허무한 느낌도 남습니다.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X는 10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가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왜 그랬는지도 분명치 않고, 20세부터 15년간의 기억이 제한적으로 사라졌다는 설정도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직에서 취한 특별한 조처 때문이라면 특정인의 특정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꽤나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에피소드의 관계를 연결하기 위해서 나름 신경을 써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책읽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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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 - 알퐁스 반 월덴의 14일
얀 포토츠키 지음, 임왕준 옮김 / 이숲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모두에 프랑스군 장교였던 저자가 스페인의 사라고사를 점령하였을 때 발견한 스페인어로 쓰인 원고를 프랑스어로 옮긴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옮긴이는 1739년 알퐁스 반 월덴이라는 스페인출신 젊은 장교가 왕명을 받들어 부임지 마드리드로 가는 66일간의 여정에서 만난 기이한 인물들과 기이하고도 해괴한 사건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었던 것이고, 처음 14일의 여정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2편을 예고해놓고는 후속편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치 실재했던 것처럼 미완성으로 끝난 이야기라서 결론을 알 수 없으니 황당하면서도 미진한 점이 많은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도 귀신이 나오고, 마법이 등장하는 등 황당무계한 내용입니다. 시대적 배경도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옮긴이는 알림에 있는 프랑스군대의 사라고사 침공 시기를 1779년이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안달루시아지방에 나타났던 것은 1808년 2월로 알고 있습니다. 1807년 11월 대륙봉쇄령에 따르지 않은 포르투갈에 출병하여 12월 리스본을 함락한 나폴레옹군은 점령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추가병력을 보내 바스크지방과 바르셀로나지방에 주둔했던 것입니다.


<사라고사에서 발견된 원고>는 일종의 액자소설이라고 합니다. 화자가 만난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는 것도 있지만, 독립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형식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아주 흡사합니다. 무대가 시에라모레나산맥이라서인지 산적도 등장하고, 이슬람교도, 유대인, 스페인 귀족, 집시, 마법을 수련하는 카발라학자 등등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체 이야기의 4분의 1도 안되는 도입부분에 해당되기 때문인지 잘 달리던 배가 갑자기 동력이 없어져 무력해진 모습입니다.


등장인물이 다양한 만큼 그들의 행적에 따라 무대가 이탈리아, 알제리 등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이베리아반도로 돌아오기도 해서 장면전환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도 익숙할 듯합니다.


읽다보면 주인공 알퐁스가 군인이라서인지 심지가 굳어 보이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그가 만난 쌍둥이 자매가 귀신이라고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히라고 하지만, 비밀을 지켜달라는 자매의 요구를 굳게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옮긴이는 주인공 알퐁스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가는 일종의 성장소설의 전형이라고 설명합니다. 옮긴이의 해설을 읽고서야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책에 담긴 이야기처럼 이 책 역시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폴란드 명문귀족 가문 출신의 작가 얀 포토츠키는 폴란드군의 공병장교로 복무한 적도 있고, 여행을 좋아해서 유럽 각국은 물론 아프리카, 소아시아를 거쳐 몽골과 중국까지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작가는 1803년부터 1815년에 이르기까지 12년에 걸쳐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1805년에 상페테르부르크에서 초고상태의 원고를 출간했다가 1813년에는 후속편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바도르, 스페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파리에서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알퐁스가 66일 동안 겪은 이야기는 포토츠키는 물론 다른 작가들에 의해서도 부분적으로 인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포토츠기의 원작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고 합니다. 포토츠키를 연구한 클라프로트에 따르면, ‘이 작품에서 스페인과 모슬렘, 시칠리아 풍습 등을 완벽하게 묘사했다.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졌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에 볼 수 없었던 매력적인 원고가 되었다. (…) 이것은 돈키호테아 질 블라스에 버금가는 불후의 명작(280쪽)’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샤토브리앙의 <그리스도교의 정수>에 대한 비판이며 이성과 관용의 계몽주의적 찬양이라고 말하는 비평가도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해석의 여지가 크다는 점만 보더라도 좋은 작품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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