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면 안되는 10대 식품첨가물 ㅣ 헬스케어 health Care 14
와타나베 유지 지음, 김정환 옮김, 안지현 감수 / 싸이프레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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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맛에 대한 인간의 욕심이 만든 요물(?)이 바로 다양한 식품첨가물이라고 하겠습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좋은 비유를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후자의 입장이라면 모든 식품첨가물에 대하여 같은 의미를 둘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자의 입장이라면 식품첨가물에 천연의 것도 있으니 인공화합물에 국한하여 그렇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공으로 합성한 식품첨가물은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말자는 입장을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공합성 식품첨가물 가운데는 다량 섭취하면 건가의 위해요인이 될 수도 있으나, 위해의 정도가 크지 않아서 일정 범위 안에서 사용한다는 단서를 달아 허용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먹으면 안되는 10대 식품첨가물>의 저자는 전공이 공대 합성화학과 출신답게 화합물의 위험을 잘 알고 있어 이것들이 식품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기본 입장인 것 같습니다. 특히 아질산 나트륨, 캐러멜 색소, 아스파탐, 아세설파람, 수크랄로스 등 합성감미료 3종, 브롬화칼륨, 타르색소, 곰팡이 방지제 OPP와 TBX, 차이염소산나트륨, 아황산염, 벤조산나트륨, 사카린나트륨 등 10대 식품첨가물의 경우 절대로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발암성이 의심되거나 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면 분명한 근거 보다는 모호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금지해야 할 물질 아초산나트륨의 경우 명란젓의 선홍색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첨가하는 아질산나트륨이 위암을 일으킬 위험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습니다. 소금에 절인 생선이나 채소를 많이 먹는 아시아인에서 위암 발병 가능성이 높다하여 국제암연구소에서 발암가능성 물질(2B군)로 분류하고 있음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발암기전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추측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저자의 주장 모두를 틀린 주장이라고 정리해버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공감미료의 하나인 사카린에 대하여 여전히 발암가능성에 대한 의혹을 떨칠 수 없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보면 전체 논지에 대하여 신뢰할 수 있겠나 하는 의심을 저 역시 거둘 수가 없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식품첨가물의 섭취에 대한 제한은 각국에서 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저자 역시 ‘식품에 일정량을 초과한 양이 들어가면 중독을 일으키기 때문에 후생노동성에서는 첨가할 수 있는 양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판되는 햄이나 베이컨, 비엔나소시지를 먹었다고 해서 몸 상태가 나빠지는 일은 없다.(42쪽)’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다만 그런 독성이 강한 물질을 식품에 섞도록 허용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감출 수 없다.’라고 딴지를 걸고 있습니다.

사실 법이라는 것을 대충 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따라서 독성물질을 사용함에 있어 제한을 두더라도 다양한 독성자료를 수집하여 검토하고, 사람이 다양한 경로로 먹을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따져본 다음에, 충분한 안전역을 두어 섭취해도 건강에 위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제한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아예 인정할 수 없다는 인식을 대하게 되면, 옛날 중국 기나라에 살았다는 우라는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정도 병이라는 옛말이 있는 것처럼 지나친 병이 병을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식품첨가물로 인하여 암이 생기는 과정에 지나친 걱정 항목은 고려하지 않았는지도 궁금합니다.

하나 더 예를 들면, 식용이 가능한 색소를 검토하면서, 발암성이 인정되어 사용이 금지된 화합물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화합물을 도매금으로 넘겨버리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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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멈추지 않는다
하이럼 스미스 지음, 김태훈 옮김 / 파우제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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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개인 사업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현직에서 은퇴를 했습니다. 대학 친구들은 전공이 전공인지라 아직은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여전히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은퇴를 생각해야 할 나이입니다. 그런데 프랭클린플래너를 창시한 하이럼 스미스회장은 73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은퇴’라는 개념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멈추지 않는다>는 스미스회장이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를 담았는데, 그것은 ‘목적이 있는 은퇴’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은퇴 전에 하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그것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은퇴하지 마라! 나처럼 그저 다른 일을 하라.”라고 말입니다.

사실 철혈재상이라는 별명을 가진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은퇴연금제도를 도입하기 전까지 만해도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일을 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은퇴’라는 단어에서는 ‘삶의 끝’이라는 의미가 읽힙니다. 그래서 저도 은퇴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힘이 닿는 데까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언젠가는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만, 그 다음에도 무언가 분명한 의미를 가진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생은 멈추지 않는다>는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좋은 길라잡이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은퇴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준비하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은퇴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설계하라는 것인데, 중요한 점은 역시 건강일 것입니다. 건강해야 은퇴 이후에 하고 싶은 일을 꾸준하게 행하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은퇴 이후의 삶에서 고려해야 할 점으로 모두 11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마음을 끄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저 역시 현직을 떠나게 되는 날 그동안 마음에 접어두고 있던 일을 펼쳐보려고 합니다. 물론 혼자서 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수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살아오면서 마음을 통해온 사람들의 역할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각자 가진 재능을 하나로 모으면 완벽한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신에게 진정 중요한 사람들은 결코 당신을 잊지 않을 것(44쪽)’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용기를 얻습니다. 즉 재능기부를 통하여 후손들에게 길이 남길 수 있는 무엇을 만들어보려는 것입니다. 아직은 생각단계라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곤란합니다.

글쓰기도 은퇴 이후에 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는 그동안 두 번을 개정한 책을 포함하여 세 권의 책을 썼고, 요즈음 한 권을 더하기 위하여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초고가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써두었던 원고들을 손보아서 책으로 묶어보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컴퓨터가 놓은 책상 위에 있는 책꽂이를 제가 쓴 책과 글로 채워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온 책읽기와 글쓰기를 꾸준하게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저자가 소개한 은퇴 이후에 할 일 가운데 배운 것은 ‘사촌 캠프’가 있습니다. 저의 두 아이가 결혼해서 낳은 손주들을 모아 서로의 관계를 다지는 시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사촌간인 손주들이 모여 스스로 짠 계획에 따라서 함께 생활하도록 하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손주들이 자발적으로 할 것이고 저와 아내는 곁에서 지켜보는 것으로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비용이 많이 들 수도 있습니다만,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남은 인생이 오히려 지금까지의 삶을 뛰어넘는 최고의 시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잘 기획을 하고 그렇게 기획한 일을 빈틈없이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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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쿠프의 나팔수 ㅣ 개암 청소년 문학 2
에릭 P. 켈리 지음, 이주희 옮김, 야니나 도만스카 그림 / 개암나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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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만, 동유럽국가를 여행하는 길에 옛 폴란드왕국의 수도 크라쿠프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크라쿠프는 피아스트왕조(Piast period)시절인 1038년부터 공화정 시절의 지그문트 3세가 수도를 바르샤바로 옮긴 1596년까지 폴란드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크라쿠프는 전통적으로 폴란드의 학문,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으며 또한 폴란드 경제의 요충지였습니다.

크라쿠프의 중심은 성벽으로 둘러싸였던 구시가지 안인데, 지금은  성벽을 헐어내고 만든 플랜티공원(Planty Park)을 지나 구시가지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구 시가지의 중심에는 중앙공원이 있습니다. 4만제곱미터나 되는 중앙광장에는 교역의 중심이었던 직물회관이 있고, 시청탑, 성 아달베르트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크라쿠프의 나팔수>의 무대가 되는 성모승천성당이 있습니다.

성모승천성당은  1221-1222년 간에 처음 세워졌는데 몽고의 침공 당시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두어 차례의 재건축을 거쳐 1365년 완성되었던 것이 1442년 대지진으로 본당 지붕이 무너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15세기 중반에 부속 예배당이 건축되었고, 이때 북쪽 탑을 중축하여 도시의 시계탑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쪽과 북쪽의 교회탑에서는 매시간 트럼펫을 불어 시간을 알려준다고 합니다. 저녁 무렵에 광장에 도착해서 꽤나 오래 머물렀지만, 트럼펫 연주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1시간을 넘기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나팔수는 연주하는 구슬픈 가락의 헤이나 마리아키(Hejnał mariacki)는 마무리되지 못하고 중간에 끊어진다고 합니다. 사연인 즉은 13세기 몽골군이 침입하였을 때, 한 트럼펫 연주자가 피난을 떠나지 않고 교회의 탑에 올라 트럼펫을 불어 적의 침입을 알렸다고 합니다. 연주자를 발견한 몽고군이 쏜 화살이 트럼펫을 부는 연주자의 목을 관통하였고, 그 바람에 연주가 중단되었던 것입니다. 후세의 나팔수들은 이 용감한 트럼펫 연주자를 기리기 위하여 트럼펫 연주를 중간에 중단하게 된 것입니다.

에릭 켈리가 1929년에 발표한 <크라쿠프의 트럼펫>은 목숨을 걸고 몽골군의 침입을 알리려 했던 나팔수의 이야기를 실마리로 하여 마법의 수정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옛 이야기는 연주를 이어가지 못하고 말았지만, 이야기 속의 나팔수는 헤이나 마리아키(Hejnał mariacki)를 완주함으로써 적의 음모를 알리는 기지를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폴란드왕국을 둘러싸고 우크라이나와 멀리 타타르까지 얽혀 힘을 겨루는 역학관계는 물론 크라쿠프 사람들의 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타타르의 침공을 받아 성당이 불타는 피해를 입었지만,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점에는 직물회관에 타타르 상인들이 몰려들어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표면상의 평화가 유지되면서 타타르,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왕래를 하고 있었음을 알겠습니다.

작가가 소개하기로는 직물회관에는 크라쿠프는 동서를 잇는 커다란 국제도시였고, 직물회관에는 카자흐, 루테니아, 독일, 플랑드르, 체고, 슬로바키아, 헝가리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합니다. 성모승천성당의 나팔수가 하는 일은 매 시간마다 나팔을 불어 시간을 알리는 일과 동서남북으로 열려있는 창문을 통하여 외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일, 그리고 도시를 굽어보면서 화재가 발생하는지 감시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크라쿠프에 있는 집들은 앞면만 돌로 되었을 뿐, 목조건물이 많아 지붕에 불티라도 튀면 쉽게 불이 옮겨붙곤 했다는 것입니다.

왕국이 멸망한 뒤로 폴란드는 오랫동안 전쟁을 겪기도 하고, 한때는 나라가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모승천성당의 탑에서 울리는 헤이나는 폴란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새기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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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와 멋진 미시세계
송해룡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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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연구소에서 근무할 적에 막 뜨기 시작하던 나노물질을 우려의 시각으로 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변의 많은 분들이 나노에 열광하는 분위기였지만, 독성효과를 나타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우려했던 것처럼 나노물질이 신체의 다양한 부위에 독성효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노와 멋진 신세계>는 나노물질이 인류에게 가져다 줄 긍정적인 효과 함께 그로 인하여 유발될 수도 있을 위해요서까지도 찬찬하게 살펴본 책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을 쓴 저자들이 모두 언론학을 전공하신 인문계열의 전공자라는 점입니다. 나노물질을 만드는 공학계통의 전공이 아니라서인지 객관적으로 사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이 저의 눈길을 끌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최근에 생활주변의 인체 위해요인들을 살펴보는 책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노기술은 우주과학, 정보통신 등의 영역에서 획기적인 신기술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의학의 영역에서도 만만치 않은 성과를 내고 있는데, 문제는 나노물질이 인체에 위해를 끼칠 수도 있음이 조금씩 입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멋진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가운데 건강의 위해문제라는 산을 넘어야 하는 시련을 남겨놓고 있는 세입니다. 다행한 일은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위험에 대한 경고가 나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가면서 멋진 미래로 접근해 갈 수 있게 된 점입니다.

나노는 그리스어로 난쟁이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하였는데, 1m의 1,000,000,000 분의 1의 크기입니다. 맨눈으로는 확인조차 할 수 없는 미시세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극단은 서로 통한다고 했던가요? 나노의 미시세계는 우주의 거시세계와 다른 점도 많지만 닮은 점도 있을 듯합니다. 이 책에서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요즈음 무엇이 4차 산업의 기폭제가 될 것인가가 화두인 듯합니다. 정보화 쪽이 유력하다는 분들도 있는 듯 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나노기술이야 말로 유망한 후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도 뒷북을 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저자들은 미래기술로의 나노기술의 가능성을 분석하고 이 기술을 선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전공 때문에 특히 나노기술이 인체에 위해가 될 요소는 무엇일까에 우선 관심을 두었습니다만, 저자들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특히 환경 분야에서는 나노물질이 환경을 오염시킬 수도 있지만, 나노필터와 같은 나노기술을 적용하여 환경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기술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아직까지는 나노기술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다 같이 가지고 있어 윤리적 혹은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다만 저자들은 나노기술의 부정적인 면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유추하는 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나노기술에 대하여 긍정적인 입장인 듯합니다.

오래 전에 잠수함을 축소하여 사람의 몸에 투입하여 병소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마이크로 결사대>라는 1966년작 영화가 있었습니다. 나노기술이 반세기도 전에 상상한 세계를 구현해낼 수 있을지 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흥미로우면서도 나름대로는 우려가 섞인 시각을 버릴 수 없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무래도 제가 너무 비판적 책읽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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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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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의 여주인공 아오이의 이야기를 담은 로쏘편을 쓴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집이라는 이유와 제목에 들어있는 ‘기억’이란 단어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이야기부터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손가락’에 나오는 ‘여자고등학교는 참 이상하다.‘라는 구절대로 여고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담은 여섯 편의 단편소설은 모두 열일곱 살 여고생들의 생각과 감정을 다루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불감증이라고 생각하는 기쿠코는 전철 안에서 몸을 더듬는 사십대 여자에게 끌리는데...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는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습니다. ‘초록 고양이’에서는 주변의 묘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을 앓아 병원에 입원까지 한 오랜 친구 에미와 관계를 이어가는 모에코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천국의 맛’에서는 엄마와 쇼핑을 하는 것이 취미이던 유즈에게 엄마보다 더 좋은 남자친구가 생기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사탕일기’는 뚱뚱한 카나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쓴 일기인데,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다양한 색깔의 사탕을 준다는 것입니다. 상처의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 사탕도 독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160cm의 키에 76kg나가는 카나의 비만 수준을 적은 구절을 보면, 코는 볼에 파묻혀 있는데, 눈까지 없어지면 이목구비의 구별이 없어져 햄버거빵처럼 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비, 오이, 녹차’는 독신으로 사는 서른여섯 살 이모와 친한 유코는 이모의 자유로운 생활을 동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만 가출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데, 만약 이모가 가출을 하면 실종신고를 내고 찾아나설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단편 ‘머리빗과 사인펜’은 스물일곱 살인 남자와 거리낌 없이 동침을 하는 미요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에 따르면 서른명 정도의 남자와 동침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별로 오래지 않아 관계를 정리한다는 것을 보면 독특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주인공과 함께 등장하는 친구들의 이름이 눈에 익다는 느낌이었는데, 단편 여기저기에서 중복 출연(?)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출판사의 소개처럼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열 명의 여고생들은 모두 한 반이 아닐까 싶습니다. 옮긴이는 ‘간혹 어린 시절의 친구들 모임에 나갔다가 내 기억 속의 나와는 다른 나를 만나곤 한다(180쪽)’고 후기를 시작하는데, 친구들이 기억하는 내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누구의 기억이 틀린 것인지는 모를지라도 말입니다.

저자의 의도는 알 수 없습니다만, 옮긴이는 여섯 편의 단편소설의 주인공들의 감정들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온갖 감정들이 교차했던 여고 시절의 교실은 이미 내게서 멀어졌는데, 거슬러 올라가 더듬어보면 분명 거기에 있다. (…) 많은 친구들이 그 의미조차 규정할 수 없는 감정과 경험 속에서 허우적거렸고, 나 역시 그랬다. 나만 동떨어져 있는 듯해서 모든 것에 더욱 매달리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그 모든 것을 탓하고 세상을 미워하면서 자학과 파괴의 탈출을 꿈꿨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들은 모든 이의 성장기에 뿜어져 나오는 감정의 가지분열이고 열정과 치기의 폭발이 있었을 텐데, 그 때는 마치 삶의 전부인 것처럼 크고 무겁게 덜 자란 육체와 정신을 짓눌렀다.(181-182쪽)”

45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인지 저 역시 학교 때의 기억들은 대부분 단편적으로 남아있습니다. 특별한 장면은 몇 가지 떠오르기는 하지만 전후 사정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결코 잊지 못할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기회가 된다면 사죄를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살아온 날들을 생각나는 대로 정리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현업을 마쳐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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