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에티카> 입문 컨티뉴엄 리더스 가이드
J. 토마스 쿡 지음, 김익현 옮김 / 서광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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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에티카; https://blog.naver.com/neuro412/222823618805>를 읽고 어떻게 읽어냈는지 기억에 남는 대목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난해했다는 독후감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어려웠던 책의 입문서라는 이유로 읽어보기로 한 것은 어려운 부분을 잘 풀어서 설명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플로리다의 롤린스대학 철학과의 토마스 쿡 교수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입문>의 서문에서 다양한 수준의 독자들이 <에티카>를 더 접근하기 쉽게 하고 더 호감을 갖게 하려는 바람에서 저술되었다.”라고 적었지만, 역시 <에티카> 만큼 어렵기만 했습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입문>의 저자 역시 “<에티카>는 쉬운 저서가 아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얼개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1장은 <에티카>의 배경을 이루는 전기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개략적으로 서술하고, 2장은 1. , 2. 보편적 인과결정론, 3. 정신과 신체, 4. 인간 감정으로부터의 해방학 등 <에티카의 네 가지 핵심 주제를 개괄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이 책의 본문에 해당하는 3장에서는 에티카에 나타나는 전문 용어를 명확히 하고, 논증을 설명함으로써 저자의 동기를 반성하고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4장에서는 <에티카>가 발표된 이래 지금까지 있었던 일련의 역사적 영향을 추적하였습니다.'


스피노자는 네덜란드의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종교적으로 파문을 당하고 추방되었습니다. <에티카>16781월에 출간되었는데, 24일 열린 라이덴 개혁 종교회의는 이 책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가장 사악하고 모든 종교를 제가하려 하며 왕위에 도전하려는 책이라고 공표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의 철학체계에서 신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스피노자에게 있어 신은 유대교, 기독교 혹은 이슬람교에서 모시는 유일신이라기보다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을 가집니다.


알려진 것처럼 <에티카>는 기하학의 논증법에 따라 기술하고 있습니다. 17세기 무렵 수학, 특히 기하학은 참된 지식의 완벽한 전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모든 것이 최초의 전제로부터 완벽하게 연역적 확실성을 가지고 따라 나오는 것처럼, 정의, 공리 및 요청을 파악하고 받아들인다면 그것들로부터 도출된 명제가 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학에서의 공리나 정리가 참이라는 것을 전제로 규정된 것과는 달리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인용하고 있는 정리나 공리는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인 것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종교에서는 신은 객관적으로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존재한다고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신의 존재에 대한 정리 혹은 공리가 타당하지 않다고 한다면 <에티카>에서 논증한 모든 것들이 타당하다고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옮긴이는 <에티카>를 읽은 이들이 난해하다고 여길 수 있는 부분을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 의미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어 <에티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저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입문> 조차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책읽기였습니다. <에티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개론서가 나온다면 더 읽어보고 <에티카>를 다시 읽어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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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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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서머싯 몸의 <케이크와 맥주>를 읽었습니다. 표지로 나온 레이철 캠벨의 <가든 카페(2019)>에 담겨있는 먹음직한 케익과 스콘(?)이 눈길을 끌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케익이 그림에 나오지만 맥주는 그림자도 없었다는 점이 이상했습니다. 작품해설을 보고서야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라고 합니다. 그리고 문학작품으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에서 처음 인용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루크레티우스의 쾌락주의를 빗대어 사용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목의 의미대로 서머싯 몸은 <케이크와 맥주>에서 삶의 유희와 쾌락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몸은 서문에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과정과 이 책이 출판된 다음에 일었던 오해 등을 소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이 작품은 처음에 단편의 소재로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다룬 이야기를 처음 떠올렸을 무렵 나는 내 어릴 적 친구인 어느 유명한 소설가에 대해 기억하는 것을 기록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는 통속적이고 바람기기 다분한 아내와 함께 W에 살았다. 그는 그곳에서 위대한 작품들을 쓴다. 훗날 그는 비서와 결혼하고, 그녀는 그를 이끌어 거물을 만든다. 의문은 그가 노년의 나이에도 유명인사로 만들어지는 데 반항할 것인가 하는 이다.”라고 기록해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편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로지를 앉힐 만한 배경이 떠오르지 않아 집필에 들어가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로지라는 인물이 구체화되는 과정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작가의 머릿속에 쓰여지지 않고 남아있는 인물은 집착이 된다. 생각이 끊임없이 그것으로 회귀하면서 상상력이 점차 그것을 키워 가는 동안 작가는 누군가 그의 마음 한편에 살면서 그의 상상에 순종하면서도 그와는 동떨어진 기이하고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다채롭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특별한 기쁨을 누린다(8)”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요소들, 예를 들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W<인간의 굴레에서>의 배경이 되었던 블랙스터블인데 <인간의 굴레에서>에서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굴레에서>의 목사 윌리엄 백부와 그의 아내 이사벨라는 <케이크와 맥주>에서의 헨리 숙부와 그의 아내 소피가 되었고, 전작의 필립 캐리는 화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제목이 스피노자의 <에티카> 4부의 표제 인간의 예속 또는 감정의 힘에 관하여에서 따온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이 이성이 아닌 정념에 의해 지배되면서 겪는 예속상태를 뜻한다는 것입니다.


서문의 말미에 출간 기념회를 겸한 광고형태의 칵테일 파티를 질색한다는 말과, “(이 행사에 참석하는) 저명인사들은 저자의 서명이 들어간 책을 공짜로 탐낼 것이다라는 말도 적었습니다. 제가 여러 종류의 책을 출간해오면서 출판 기념회를 가져본 적이 없는 이유와 맥을 같이 하는 듯하여 적어둡니다.


이 책은 거장으로 평가된 에드워드 드리필드라는 작가가 사망한 뒤로 그의 전기를 집필하게 된 작가 앨로이 키어로부터 드리필드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화자 어셴든이 드리필드와 그의 첫 번째 아내 로지 드리필드와의 관계를 기술하는 형식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드리필드와 그의 아내에 관한 뒷이야기를 쓴 셈이라서 앨로이 키어의 입장에서는 뒷통수를 얻어맞은 격이 되는 셈입니다. 내용으로 보아 아주 뛰어난 작품이 될 터인데 로이의 자료로만 사용될 거라 생각하니 애석하게 느껴졌다는 것,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내가 폭탄을 던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집필하게 된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세인으로부터 주목받는 작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뒷이야기를 비롯하여 문학의 다양한 분야를 다양한 귀족계층에 분배한다는 작가의 생각도 흥미롭습니다. 하위 단계의 문학은 지위가 낮은 귀족계층에 맡기고 저널리즘이나 연극은 남작이나 자작이 도맡고, 소설은 백작이, 순수문학은 후작이, 그리고 시는 공작이 맡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시는 문학의 황제이기 때문입니다.


소본스(sawbones)가 외과의사를 가리키는 속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망외의 수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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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시리즈 20
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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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등 세 출판사가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라는 교집합을 두고 다양한 주제의 글을 출판하는 공동기획으로 <아무튼, OOO>이라 연작을 출판하기로 하였답니다. 이 연작은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당신에게는 그런 한 가지가 있나요?’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20179<아무튼, 피트니스>를 시작으로 2022751번째 책으로 <아무튼, 서핑>에 이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세 출판사가 순서대로 책을 내놓다가 언젠가부터는 원고가 준비 되는대로 책을 내놓게 된 것 같습니다.


피트니스가 첫 번째 주제였고, 서재, 게스트하우스, 쇼핑, 망원동, 잡지, 계속, 스웨터, 택시 등으로 이어지는 연작은 주제의 다양성이나 기상천외함에 놀라게 됩니다. <아무튼, OOO>의 연작 가운데 처음 읽어본 책은 37번째 기획으로 <아무튼, 뜨개>였습니다. 그 책을 읽고 저도 써보고 싶은 주제가 있어 원고쓰기에 착수를 했습니다만, 해를 넘기도록 절반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직장을 옮기면서 시간을 내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착상은 <아무튼, 뜨개>였습니다만, 막상 원고를 쓰면서 <어쩌다, OO>으로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이참에 찾아보니 언제나북스라는 출판사에서 20215월에 <어쩌다, 승무원>으로 <어쩌다, OO> 연작을 시작했는데, 20223월에서야 <어쩌다, 혼자여행>이 나온 것을 보면 기획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무튼, >은 그 20번째 책으로 20195월에 나왔습니다. 저 역시 술과 엮인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기에 그 사연을 적어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선수를 빼앗겼다 싶은 실망감이 드는 책읽기였습니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라는 책을 쓴 김혼비 작가는 책, , 축구 등이 인생의 삼원색이라고 합니다. 전작의 편집자와 술을 마시던 중에 생각하고 있는 주제를 논하다가 비주류하다는 평가를 받고서 주류(酒類)작가가 되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0여년을 꾸준하게 사랑했던 술에 관힌 이야기를 써보려 하니, 술을 주제로 한 책들이 너무 많이 나와 있었다고 합니다.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가 역시 술을 마시고 집에 가던 중에 술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술과 얽힌 나만의 이야기를, 술과 함께 익어간 인생의 어느 부분에 관한 책을 써보기로 한 것입니다. 술책(術策)이 아니라 술 책()을 쓰게 된 것입니다. 저자의 말로는 술을 좋아해서 이 책을 쓰게 됐고, 이 책을쓰게 돼서 기쁘다라는 한 문장이면 될 것을, 말이 길어졌다라고 하였습니다만, 술에 관한 이야기로 한권의 책을 완성하였으니 술과 함께 한 인생이 참 다양하다 싶었고, ‘나도?’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차례를 보면, ‘첫술은 술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술을 처음 마시던 날의 추억거리입니다. 저보다는 연배가 많지 않은 탓인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처음 술을 취하도록 마셔보았다고 합니다. 소위 백일주라는 행사(?)였다고 합니다. 저 역시 술을 마셔온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만, 제사가 끝나고 음복하거나, 어머님의 술자리에서 한 잔 얻어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본격적인 술자리에서 참석했던 것은 재수할 때도 아니고 대학에 들어간 뒤에 동아리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술꾼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버릇, 소위 주사에 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서운 술로 정의한 와인과의 만남을 비롯하여 혼술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혼술을 집혼술과 밖혼술로 나눈 것도 기발한 착상입니다. 작가는 밖혼술을 주로 전문 술집 혹은 식당에서 했다고 하는데, 제 경우는 주로 포장마차에서의 혼술이 많았고 집에서 혼자 마시던 적도 있습니다. 집에서 혼자 마시는 혼술이 알코올 의존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경고에 공감하는 이유는 때로 주량을 넘어선 경험 때문입니다.


술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담을 적은 책이라서 공감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특이하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결론은 술꾼 치고 구절양장 돌아가는 사연이 넘치기 마련입니다만, 이렇게 책으로 풀어낼 수 있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저 역시 한번 도전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을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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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어버린 도시 - 1968 노량진 사라진 강변마을 이야기
김진송 지음 / 세미콜론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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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제가 거처한 장소에 관한 기억을 따라가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쓰다 말다를 거듭하다보니 이제 9살이 되던 해까지 정리되었습니다. 벌써 60년이 넘은 세월이다 보니 조각난 기억들을 최대한 꿰어 맞추고 있습니다. 정기호교수님의 <경관기행>에서 틀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번에 비슷한 작업을 발견했습니다. 미술평론가 정진송님의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입니다. 다섯 살이 되던 해 노량진역과 샛강 사이, 지금의 노량진 수산시장이 들어선 강변마을으로 이사 가서 마을이 재개발되면서 이주해나간 1968년까지의 5년여에 걸친 삶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잘도 엮어냈습니다. 1부에서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엮었고, 2부에서는 글을 쓸 무렵에 그 장소를 찾아 그때의 흔적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살던 장소를 다시 찾아가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경관기행은 네이버나 다음의 지도의 도움을 받고는 있습니다만, 저의 기억에 남아있는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필자가 살던 동네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마을이 된 셈입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로 정했나 봅니다.


저보다 연배가 조금 적기는 하지만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탓인지 닮은 점이 많아 보입니다. ‘기억을 더듬다 보면 모든 게 흐릿한 안개 속에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순간 모든 게 너무 투명하여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이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96)’는 대목도 그렇구요. 마을에 토관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던 것도 비슷합니다. 필자가 학교에 가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차에 받힌 사건처럼 저도 중2때 자전거를 타고가다 택시에 받혀 붕 날아간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최근의 일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것들이 적지 않은데 어렸을 적에 겪은 일들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신통할 정도입니다. 그 대목을 필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유년은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갔다. 시간이 흐르고 삶이 자꾸 쌓일수록 과거의 기억들은 망각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유년의 기억을 밀어낸 것이 단지 흘러간 세월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무수히 많은 장소들이 사라져갔다. 낡은 집이 무너지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동네가 사라지고 신도시가 들어섰다. 낯익은 풍경이 지워지고 그 위에 낯선 그림이 새로 그려졌다.(196-197)”


필자는 과거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슬퍼합니다. 오래 전에 살던 곳 가운데 많은 장소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사진이 남아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장소에 가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지만 그 옛날 풍경은 저의 기억 속에 살아있습니다. 그 풍경을 글로 남겨놓으려는 시도가 경관기행인 셈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기억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과 같다. 그 강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여러 갈래로 나뉘는 지류를 만나게 되거 어느 곳이 되었든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다른 쪽으로 가고 싶으면 다시 돌아와 거슬러 올라야 한다. 그렇게 여러 갈래로 갈라진 시냇물의 줄기를 따라 들락거리는 방법 말고 기억의 강을 답사하는 더 좋은 길을 나는 열지 못했다.(11)” 기억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 맞습니다. 하지만 흘러내리는 강물에는 여러 강물이 합쳐지기도 하고 하류로 가면 갈라지기도 하지만 삶은 한 줄기 강을 따라 흘러가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 강, 저 강을 둘러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록하는 경관기행은 기억의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 아니라 처음 시작한 곳에서부터 기억의 강물을 따라 같이 흘러내려가려 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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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세계문학전집 13
에밀 졸라 지음, 최애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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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Le Rêve, 1888)은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의 열여섯 번째 작품입니다. 모색과 반항, 붕괴와 재건이 뒤섞인 전환기를 살아냈던 졸라는 새로운 시대상을 담은 책, 즉 발자크의 <인간극> 형식의 글을 써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뤼카 박사의 <본성의 유전에 관한 철학 생리학 개론>에서 영감을 얻은 졸라는 1867~1868년 사이에 <루공 마카르 총서>의 방대한 기획을 세웠습니다.

1871년 첫 번째 이야기 <루공가의 운명>의 출간으로 시작된 루공 마카르 총서는 1893년 <파스칼 박사>에 이르도록 20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었습니다. 아델라이드 푸크라는 여성과 5대에 걸친 후손들의 이야기입니다. 졸라는 이들을 통하여 프랑스 사회와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가벼운 정신질환을 앓은 아델라이드가 정원사 남편 루공 사이에서 낳은 피에르 루공과 그 자손들은 상류층의 삶을, 루공과 사별한 아델라이드가 알코올중독자 밀렵꾼인 정부 마카르와 동거하며 낳은 위르쉴 마카르와 앙투안 마카르 등의 자손들은 하류층의 삶을 그려냈습니다. 

<꿈>은 1860년 크리스마스날 아침 보몽시에 불어 닥친 눈폭풍을 피해 성당을 찾아와 밤을 보낸 9살짜리 여자아이 마리 앙젤리크를 사제복을 짓는 장인 위베르와 위베르틴 부부가 받아들여 키우기로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훗날 앙젤리크를 입양하기로 한 위베르는 앙젤리크가 지닌 구호 대상 아동 기록부에 적힌 내용을 따라 파리로 가서 친부모를 찾아나섭니다. 위베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오빠가 장관을 지냈다는 시도니 부인은 남편이 죽은 뒤 열다섯 달 만에 딸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앙젤리크였다는 것입니다. <꿈>의 어디를 보아도 시도니 부인이나 앙젤리크가 루공 가문의 자손이라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알젤리크가 위베르 부부의 집에 처음 왔을 때는 말 품새도 그렇고 행동도 거칠었습니다. 하지만 양부모의 애정어린 돌봄에 따라 순화되어 갔습니다. 특히 <황금빛 전설>에 담긴 성인들의 삶을 읽으면서 신앙도 돈독해지고, 자수 솜씨도 훌륭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위베르 가에 의뢰되는 중요한 자수 작품을 도맡아 제작하기에 이릅니다. 

앙젤리크가 <황금빛 전설>을 읽으면서 귀공자와 사랑에 빠지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런 앙젤리크 앞에 성당의 색유리창을 수리하는 청년이 나타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무르익어갈 무렵 앙젤리크의 사랑 펠리시앵이 사실은 장 오트쾨르 주교의 아들이었습니다. 주교는 아들을 부앵크르 가문의 클레르 양과 혼인시키려 합니다. 펠리시앵은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앙젤리크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하고, 앙젤리크 역시 성당으로 찾아가 주교에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주교의 완강한 반대에 두 사람의 관계도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앙젤리크의 부모도 딸이 상처를 입을까봐 거짓을 전합니다. 절망에 빠진 앙젤리크는 금식을 하고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됩니다. 부모는 죽어가는 앙젤리크를 위하여 종부성사를 청하였고, 주교께서 직접 종부성사를 행하게 됩니다. 종부성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앙젤리크는 극적으로 눈을 뜨고 주교는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게 됩니다. 죽음의 목전에까지 갔던 앙젤리크는 혼신을 다하여 결혼식을 준비하고, 결혼식이 거행되는 가운데 죽음을 맞았습니다.

졸라는 <꿈>을 통하여 루공-마카르 가문에 흐르는 나쁜 피가 독실한 신앙생활을 통하여 맑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꿈은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물론 “사랑하는 두 사람이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더랍니다.”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졸라는 <꿈>에서도 당대 사람들의 삶과 문화적 유산을 설명하는데 공을 들였습니다. 성당 건물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중세의 건축 양식과 종교의식, 성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성직자의 제례복의 제작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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