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어버린 도시 - 1968 노량진 사라진 강변마을 이야기
김진송 지음 / 세미콜론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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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제가 거처한 장소에 관한 기억을 따라가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쓰다 말다를 거듭하다보니 이제 9살이 되던 해까지 정리되었습니다. 벌써 60년이 넘은 세월이다 보니 조각난 기억들을 최대한 꿰어 맞추고 있습니다. 정기호교수님의 <경관기행>에서 틀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번에 비슷한 작업을 발견했습니다. 미술평론가 정진송님의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입니다. 다섯 살이 되던 해 노량진역과 샛강 사이, 지금의 노량진 수산시장이 들어선 강변마을으로 이사 가서 마을이 재개발되면서 이주해나간 1968년까지의 5년여에 걸친 삶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잘도 엮어냈습니다. 1부에서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엮었고, 2부에서는 글을 쓸 무렵에 그 장소를 찾아 그때의 흔적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살던 장소를 다시 찾아가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경관기행은 네이버나 다음의 지도의 도움을 받고는 있습니다만, 저의 기억에 남아있는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필자가 살던 동네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마을이 된 셈입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로 정했나 봅니다.


저보다 연배가 조금 적기는 하지만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탓인지 닮은 점이 많아 보입니다. ‘기억을 더듬다 보면 모든 게 흐릿한 안개 속에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순간 모든 게 너무 투명하여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이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96)’는 대목도 그렇구요. 마을에 토관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던 것도 비슷합니다. 필자가 학교에 가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차에 받힌 사건처럼 저도 중2때 자전거를 타고가다 택시에 받혀 붕 날아간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최근의 일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것들이 적지 않은데 어렸을 적에 겪은 일들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신통할 정도입니다. 그 대목을 필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유년은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갔다. 시간이 흐르고 삶이 자꾸 쌓일수록 과거의 기억들은 망각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유년의 기억을 밀어낸 것이 단지 흘러간 세월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무수히 많은 장소들이 사라져갔다. 낡은 집이 무너지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동네가 사라지고 신도시가 들어섰다. 낯익은 풍경이 지워지고 그 위에 낯선 그림이 새로 그려졌다.(196-197)”


필자는 과거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슬퍼합니다. 오래 전에 살던 곳 가운데 많은 장소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사진이 남아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장소에 가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지만 그 옛날 풍경은 저의 기억 속에 살아있습니다. 그 풍경을 글로 남겨놓으려는 시도가 경관기행인 셈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기억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과 같다. 그 강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여러 갈래로 나뉘는 지류를 만나게 되거 어느 곳이 되었든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다른 쪽으로 가고 싶으면 다시 돌아와 거슬러 올라야 한다. 그렇게 여러 갈래로 갈라진 시냇물의 줄기를 따라 들락거리는 방법 말고 기억의 강을 답사하는 더 좋은 길을 나는 열지 못했다.(11)” 기억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 맞습니다. 하지만 흘러내리는 강물에는 여러 강물이 합쳐지기도 하고 하류로 가면 갈라지기도 하지만 삶은 한 줄기 강을 따라 흘러가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 강, 저 강을 둘러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록하는 경관기행은 기억의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 아니라 처음 시작한 곳에서부터 기억의 강물을 따라 같이 흘러내려가려 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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