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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와 맥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평점 :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서머싯 몸의 <케이크와 맥주>를 읽었습니다. 표지로 나온 레이철 캠벨의 <가든 카페(2019)>에 담겨있는 먹음직한 케익과 스콘(?)이 눈길을 끌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케익이 그림에 나오지만 맥주는 그림자도 없었다는 점이 이상했습니다. 작품해설을 보고서야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물질적 쾌락, 혹은 삶의 유희’를 뜻하는 관용구라고 합니다. 그리고 문학작품으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에서 처음 인용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루크레티우스의 쾌락주의를 빗대어 사용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목의 의미대로 서머싯 몸은 <케이크와 맥주>에서 삶의 유희와 쾌락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몸은 서문에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과정과 이 책이 출판된 다음에 일었던 오해 등을 소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이 작품은 처음에 단편의 소재로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다룬 이야기를 처음 떠올렸을 무렵 “나는 내 어릴 적 친구인 어느 유명한 소설가에 대해 기억하는 것을 기록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는 통속적이고 바람기기 다분한 아내와 함께 W에 살았다. 그는 그곳에서 위대한 작품들을 쓴다. 훗날 그는 비서와 결혼하고, 그녀는 그를 이끌어 거물을 만든다. 의문은 그가 노년의 나이에도 유명인사로 만들어지는 데 반항할 것인가 하는 이다.”라고 기록해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편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로지를 앉힐 만한 배경이 떠오르지 않아 집필에 들어가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로지라는 인물이 구체화되는 과정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작가의 머릿속에 쓰여지지 않고 남아있는 인물은 집착이 된다. 생각이 끊임없이 그것으로 회귀하면서 상상력이 점차 그것을 키워 가는 동안 작가는 누군가 그의 마음 한편에 살면서 그의 상상에 순종하면서도 그와는 동떨어진 기이하고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다채롭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특별한 기쁨을 누린다(8쪽)”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요소들, 예를 들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W는 <인간의 굴레에서>의 배경이 되었던 블랙스터블인데 <인간의 굴레에서>에서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굴레에서>의 목사 윌리엄 백부와 그의 아내 이사벨라는 <케이크와 맥주>에서의 헨리 숙부와 그의 아내 소피가 되었고, 전작의 필립 캐리는 화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제목이 스피노자의 <에티카> 4부의 표제 ‘인간의 예속 또는 감정의 힘에 관하여’에서 따온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이 이성이 아닌 정념에 의해 지배되면서 겪는 예속상태를 뜻한다는 것입니다.
서문의 말미에 출간 기념회를 겸한 광고형태의 칵테일 파티를 질색한다는 말과, “(이 행사에 참석하는) 저명인사들은 저자의 서명이 들어간 책을 공짜로 탐낼 것이다”라는 말도 적었습니다. 제가 여러 종류의 책을 출간해오면서 출판 기념회를 가져본 적이 없는 이유와 맥을 같이 하는 듯하여 적어둡니다.
이 책은 거장으로 평가된 에드워드 드리필드라는 작가가 사망한 뒤로 그의 전기를 집필하게 된 작가 앨로이 키어로부터 드리필드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화자 어셴든이 드리필드와 그의 첫 번째 아내 로지 드리필드와의 관계를 기술하는 형식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드리필드와 그의 아내에 관한 뒷이야기를 쓴 셈이라서 앨로이 키어의 입장에서는 뒷통수를 얻어맞은 격이 되는 셈입니다. 내용으로 보아 아주 뛰어난 작품이 될 터인데 로이의 자료로만 사용될 거라 생각하니 애석하게 느껴졌다는 것,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내가 폭탄을 던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집필하게 된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세인으로부터 주목받는 작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뒷이야기를 비롯하여 문학의 다양한 분야를 다양한 귀족계층에 분배한다는 작가의 생각도 흥미롭습니다. 하위 단계의 문학은 지위가 낮은 귀족계층에 맡기고 저널리즘이나 연극은 남작이나 자작이 도맡고, 소설은 백작이, 순수문학은 후작이, 그리고 시는 공작이 맡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시는 문학의 황제이기 때문입니다.
소본스(sawbones)가 외과의사를 가리키는 속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망외의 수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