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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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여행을 준비하면서 읽게 된 책입니다. 체코, 크로아티아 그리고 슬로베니아 3개국을 대표하는 여섯 곳을 다녀온 느낌을 적고 있어 아쉽기는 하지만 그만큼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체코에서는 프라하와 베네쇼프, 크로아티아에서는 두브로브니크와 자그레브, 슬로베니아에서는 류블라냐와 블레드입니다. 특히 저자가 번역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동유럽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런 기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것 같습니다. 문학이외에도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소재를 인용하였고, 동유럽보다는 저자가 여행을 하면서 불러일으킨 감흥에 어울리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제목이 궁금합니다. 우리말로 아점에 해당하는 브런치는 알겠는데 굴라쉬는 우선 생소하다는 느낌입니다. 굴라쉬는 헝가리의 전통음식인데 고기와 야채로 만든 스튜라고 합니다. 웬만한 저자 같으면 프롤로그에서 제목의 의미나 이번 여행에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점 등을 짚어줄 것인데, 이 분은 생뚱맞게도 차라투스트라를 인용하더니 파리의 호텔에서 컵라면 먹은 이야기를 너절하게 늘어놓더니, 다섯 쪽이나 되는 프롤로그의 마지막 줄에 ‘프라하가 멀지 않았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즉, 프롤로그만 읽어서는 독자를 파리로 안내할 것인지 동유럽으로 안내할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 하겠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여행지로부터 받아들인 느낌보다는 어쩌면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는 일상적인 것들을 소소하게 적고 있어 책을 읽는 시선이 자꾸 대각선으로 흘러내립니다. “파리에서부터 내 스케줄러는 피임약이었다.” 여성의 생리를 잘 모르는 남성독자라면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딱히 두브로브니크에서 수영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것이라면 굳이 여자로 태어난 것까지 하소연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체코의 바츨라프 광장의 첫인상을 적을 때는 최인훈의 <광장>을 끌어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느닷없이 양반김이 튀어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짧은 여행 후에 어느 나라 혹은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하여 섣부른 진단을 내리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태도는, 책이나 영화에서 만난 허구의 인물과 실제 사람들의 특성을 동일시하고 일반화하는 것일 테다.(50쪽)”라는 구절처럼 가끔씩 만나는 홈런성 멘트가 흘러내리던 시선을 붙들곤 합니다.

 

“번역은 고되고 피 말리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살인적인 노동량에 시달리면서도 아직까지는 지긋지긋한 마음보다 기대감과 애틋함이 더 크다. 새로운 일감이 수중에 들어오면 미친 사람처럼 훠어이 훠어이 제 발로 조그만 방으로 기어들어간다. 카프카에게 각혈이 그랬듯이, 이러한 자발적 감금은 ‘마음을 홀가분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79-80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이번 여행이 한 작품을 끝내고서 고생한 자신에게 수여하는 일종의 힐링여행이었나 봅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위한 힐링여행을 독자들과 공유하려 든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독자는 아마도 저자가 다녀온 여행지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는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책읽기도 묘한 인연으로 얽히는 느낌이 든다는 생각이 최근에 자주 들고 있습니다. 저자는 체코를 여행하면서 들른 식당의 메뉴판에서 발견한 유대인의 전통 음식인 훈제 혀요리(무슨 동물의 혀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이름으로부터 유대인을 언급하다가 이탈리아의 유대화학자 프리모 레비를 인용하기에 이릅니다. 요즘 읽고 있는 또 다른 책에서도 프리모 레비를 인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침공했을 때 저항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고,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그는 생존자로서 가질 수 있는 생각, 즉 살아남았다는 수치심과 죄책감이 점점 심해져 결국은 1987년 68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던 것입니다.

어떻든 저자의 일상 같은 생각들 사이에 섞여 있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에 관한 이야기 조각들을 꿰어 정리해 둘 생각입니다. 그곳에 갈 기회가 있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아보도록 말입니다.

 

굴라쉬 브런치

윤미나 지음

270쪽

2010년 3월 3일

북노마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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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미술 아트 라이브러리 18
토머스 F. 매튜스 지음, 김이순 옮김 / 예경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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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이스탄불은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불렀던 비잔틴제국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탄불과 이스탄불에서 만난 유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려면 비잔틴제국의 문화를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뉴욕대학교 미술사학과의 토마스 매튜스교수가 쓴 <비잔틴 미술>은 이런 목적에 꼭 맞는 책이었습니다.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황제가 게르만족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610년부터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메흐메드에 의하여 멸망한 1453년까지 지금의 비잔티움, 지금의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 문화권을 비잔틴 제국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로마의 콘스탄티누스황제가 비잔티움에 새로 건설한 도시를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명명하고 천도한 3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1100년 이상 이어진 대단한 제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잔틴 제국의 모든 제도는 로마의 것을 따르고 있었지만, 주민이라든가 언어와 문화면에서는 그리스적이었다고 합니다. 비잔틴의 문학과 법학, 신학 등은 매우 배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비잔틴 미술만큼은 현대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을 이루어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적 전통을 발전시킴으로서 고대와 르네상스를 연결시킨 것을 비잔틴 미술이 이룩한 가장 큰 업적으로 꼽았습니다. 그리고 제국의 발전과정에 따라 비잔틴 미술을 세 단계로 구분하여 특징을 요약하였습니다. 4세기 중반부터 6세기 중반에 이르는 초기단계에서는 새로운 미학과 이데올로기가 형태에 영향을 미쳐, 고대 미술의 점차적인 변형이 일러난 시기로 보았고, 9세기에 시작된 증기 비잔틴 미술은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이거나 정신을 중심에 두는 비잔틴 우주관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격조 있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하였습니다. 1204년 제4차 십자군 원정으로 콘스탄티노풀리 점열된 이후 제국이 분열된 이후에 비잔틴 사람들이 작은 제국을 다시 세운 1261년 이후의 후기 비잔틴미술에서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된 <비잔틴 미술>에서 저자는 먼저 도시를 장식한 대규모의 건물과 여러 기념주의 설명을 통해 비잔틴 미술의 대표도시 콘스탄티노플의 흥망성쇠를 다루었습니다. 제2장에서는 이교적 요소인 이콘이 고대 로마의 초상화 전통과 결합되어 중세 르네상스까지 전해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제3장에서는 비잔틴 제국의 화려한 궁정과 저택, 그리고 이슬람 문화권을 포함한 지중해 세계의 패션, 필사본 회화에 나타난 전원생활 등 비잔틴 제국의 세속 영역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제4장은 비잔틴 교회의 건축과 장식 체계 등을 시기별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마지막 제5장에서는 비잔틴 미술이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전 유럽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합니다.

 

회화가 중심이 되었던 비잔틴 미술의 특징은 이전 시기와는 달리 새롭고도 심오한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회화 이미지를 발전시켰는데, 패널화, 모자이크와, 벽화, 금과 칠보작품 등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지난 해 여행한 스페인에서 만난 가톨릭 성당과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동방정교회의 교회의 건축이 보이는 차이에 대한 설명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먼저 서방교회의 주된 이미지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며, 그러한 십자가상은 긴 터널형인 회중석과 교회의 좌우날개의 교차부분에 있는 성가대석 위에 걸렸다고 합니다. 대조적으로 동방교회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주 소박하면서도, 축복하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올려다보게 되는데, 그리스도는 교회 중앙에 있는 둥근 돔의 원형 안에 위치하면서 마치 손을 뻗어 그 아래 본당에 모인 신도들을 끌어안을 듯하다는 것입니다(111쪽).

 

저자는 비잔틴 미술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엄청난 부와 지식을 누린 도시를 기반으로 형성된 비잔틴 미술은 1000년간 세계무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다음 콘스탄티노플이 완전히 몰락하기 직전에 비잔틴 미술은 유럽 미술가들의 창조력에 불을 지폈고, 르네상스 시대 미술의 가장 흥미로운 몇 가지 새로운 개념도 미잔틴 미술에서 발아한 것이다.(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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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In the Blue 1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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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문명이 충돌한 현장을 돌아보는 세 번째 여행지로 스페인, 터키에 이어 발칸반도를 꼽았습니다. 그런데 발칸반도에 대한 여행안내서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는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백승선님의 사진에 변혜정님이 글을 쓴 <행복이 번지는 크로아티아>는 사진을 중심으로 보는 여행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소략해보이는 변혜정님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크로아티아의 풍광을 함축적이면서도 울림이 있는 글로 소개해주어서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때로는 한편의 시로, 때로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그림처럼 풀어낸 글맛이 참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둥글게 둥글게… / 지구가 둥글듯이 / 당신 눈동자가 둥글듯이… / 여기, 행복이 번지는 곳 / 크로아티아…” 정말 크로아티아에 가면 행복이 마구 번질까? 궁금해집니다.

 

저자들은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떨어져 나온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플리트비체, 스플리트, 그리고 자그레브까지 네 곳의 대표적인 명소를 소개하였습니다. 참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에 15km정도의 보스니아 땅을 지나가야 하니까 2개국을 거쳐 가는 여정이 됩니다. 물론 그 짧은 보스니아 땅은 그저 스쳐 지나는 이외에 별다른 여정은 없는 셈이지만, 그래도 이 지역에서 발생한 끔찍한 내전의 상처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참 쉽다. 카메라 하나 들고 배낭 하나 메고 훌쩍 국경을 넘는다. 지도상의 그 가느다란 ‘선’을 넓히기 위해 누군가는 가족을 잃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려야 했을 터. 진실을 밝히고 다시 세우는 일이 지금도 끝나지 않은 곳.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땅에서 가장 슬픈 국경을 너무도 쉽게 넘는다.” 이 책에는 쪽수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점이 아쉽군요.

 

그리고 한 가지 더. 거리에서 만난 풍경을 사진으로 소개할 뿐만 아니라 사진에서 꼭 건져 올려야 할 것을 뽑아 스케치로 정리하고,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브로브니크의 거리에서 만난 마임배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안녕! 나는 올드타운에 살아. 난 이곳이 좋아. 난 이곳을 사랑해. 나의 부모와 형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나의 고향이야. 누구라도 ‘행복’을 담아가는 이곳은 두브로부니크야.” 어쩌면 내란 당시 고향을 등져야 했을 누군가의 아픈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물론 가끔은 사족처럼 개인사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도 하고, 사진 역시 이 사진은 왜?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설명이 없으니까요.... 그런가 하면 같은 느낌을 주는 사진이 중복되어 소개되기도 합니다. 너무 분석적으로 읽고 있나요? 그래도 플리트비체 공원의 환상적인 사진들은 비슷해보이는 것들이 이어진다고 해도 숨이 멎을 듯 환상적입니다. 저곳에는 꼭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설명... “호수의 빛깔이 현실적이지 않아서 눈을 몇 번이고 깜박여야 했다. 감았다 뜬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여전히 그림에서나 보았던 그 빛깔이다. 물고기와 눈맞춤하고 다시 걷는다. 깨고 싶지않은 꿈 속인 양 멈추면 깨어날 꿈 속인 양 서둘러 걷는다.” 그런데 가을, 겨울 사진을 같이 실은 것을 보면 사진을 찍은 백승선님은 크로아티아가 초행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 책에 실은 수많은 사진들에는 크로아티아에 사는 사람들, 크로아티아를 찾는 사람들이 출연한 것도 많습니다. 사실 유명한 여행지일수록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을 빼고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양해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대충 상황에 따라 사진을 찍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찍은 사진을 개인적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하는 경우의 문제를 늘 생각합니다. 특히 책과 같은 오프라인 매체의 경우는 조금 낫다고 할지라도, 인터넷에 올리기라도 하면 온 세상에 퍼질 수도 있는 노릇이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생한 표정을 간직하려는 욕망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 분들의 개인적인 의향을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행복이 번지는 크로아티아

백승선과 변혜정 지음

344쪽

2009년 5월 11일

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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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응급실 - 평화와 생명을 가꾸는 한 외과의사의 지구촌 방랑기
조너선 캐플런 지음, 홍은미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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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가 소외계층에 대한 진료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 역시 의과대학에서 의료봉사활동에 적극적이었고, 그와 같은 활동을 하는 동아리를 만들어 지금까지도 후배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마 작은 아이의 책상에서 발견한 책입니다. ‘평화와 생명을 가꾸는 한 외과의사의 지구촌 방랑기’라는 부제가 안성맞춤인 <아름다운 응급실>입니다.

 

저자는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과의사 조너선 캐플런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극성을 부리던 시절 남아프리카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복무를 피하기 위하여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철부지 학생이었지만, 우리는 국민 다수의 기본적인 자유를 부정하는 이 나라 정치제도의 부당함을 모르지 않았고, 무감각하지도 않았다.(15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의과대학에 다닐 무렵부터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자의 집안 내력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형외과를 전공하는 아버지, 병리학을 전공하는 어머니, 세균학을 전공한 삼촌 그리고 비뇨기과를 전공하는 외삼촌 등 의료분야에서 활동하는 부모 친척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를 시작할 무렵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선배의사가 들려준 일선의 현실을 저자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비윤리적인 것이었습니다. 결국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으로 진로를 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의 수련과정 역시 영국의료계의 고질적인 관행, 관행이라 함은 수련이나 직장을 결정하는데 있어 인맥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어, 일정한 범주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의사들은 변두리를 맴돌아야 하는 모양입니다. 저자가 외과의사로서 수련을 받는 과정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지만, 취업에 필요한 학위를 받기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미국에 눌러앉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상업적 요소가 강한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영국으로 다시 돌아와서는 국경없는 의사회에 참여하여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곳, 저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침공으로 사회기반시설이 무너진 나미비아의 빈트후크에서의 활동, 이라크 전쟁으로 사지로 몰린 쿠르드난민들을 위한 진료소를 구축하기 위하여 터키와 이라크 국경을 넘나들던 이야기, 모잠비크에서는 내란으로 수난을 당하고 있는 난민과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 골든트라이앵글을 장악하고 있는 쿤사와 정부군의 대치하고 있는 미얀마의 산악지대에서에 흩어져 사는 주민들을 위한 진료시설을 구축하려는 노력, 에티오피아와 군사적 충돌을 겪고 있는 에리트레아의 전시의료체계를 시찰하려는 노력 등을 읽으면서 과연 이 사람은 왜 이렇듯 위험한 곳에 자발적으로 뛰어들고 있는가 의문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의 뜨거운 인류애는, 타고난 특별한 유전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군사적 충돌 현장이나 쏟아지는 난민들을 위한 진료현장에서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한 순간을 넘나드는 활동 이외에도 불법폐기물을 쏟아내 주민들을 수은중독으로 죽어가게 만드는 거대기업을 고발하기 위한 활약도 볼 수 있는데, 때로는 다큐멘터리제작팀에서도 활약하는 등 다양한 저자의 활동범위는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꼭 진료실에 앉아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모습만을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젊은 의학도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저자의 직업 가운데 동남아시아를 도는 대형유람선의 선의나, 항공기로 이송되는 환자를 돌보는 항공의사와 같은 직종은 우리에게는 생소하게 비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자가 경험한 것을 꾸밈없이 소개하고 있어 그런 직업의 음양을 모두 보여준다는 점에서 저자의 글에 신뢰가 가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제분쟁의 현장이 때로는 힘의 논리 때문에 윤리가 끼어들 틈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힘 있는 사람들은 그저 보여주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장면이 있어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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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재발견 - 우리가 살고 있는 곳들에 숨겨진 비밀
앨러스테어 보네트 지음, 박중서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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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마침 만우절인 4월 1일이라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거짓말이라고 알려진 사고였습니다. 학교 옆 작은 계곡에서 놀고 있었는데, 비탈 위에 있던 친구가 놓친 작은 돌덩이가 굴러 내려와 뒤통수를 맞춘 것입니다. 옆에서 놀던 친구가 놀라서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고개를 돌렸지만, 사태를 파악하고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나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돌이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의 테에 부딪힌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머리뼈에 구멍이 생겼기 때문에 출혈이 머리뼈 밖으로 흘러나올 수 있어서 뇌 안에 고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960년대만 해도 신경외과를 전공하시는 의사선생님이 손으로 꼽을 정도였으니 지방 소도시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요행수가 겹치는 바람에 이틀 밤 정도를 입원하여 경과를 관찰하다가 퇴원하여 학교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야트막한 산비탈을 따라 교실이 늘어서 있던 학교 주변에는 작은 계곡이 널려있어 천혜의 놀이터였습니다. 그 무렵 학교에서 존 웨인이 감독과 주연을 맡았던 영화 <알라모>를 단체로 관람했던 우리들은 영화에서처럼 요새를 구축하는 놀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또래 아이들은 남들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장소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비밀스러운 장소는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스라한 기억 속에 남아 있어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기억에 남아 있는 장소가 있는가 하면 기억해야 할 곳임에도 불구하고 잊혀져가고 있는 장소도 있습니다.

 

앨러스테어 보네트의 <장소의 재발견>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숨겨진 비밀을 다루고 있습니다. 뉴캐슬 대학의 사회지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서양 세계의 사상, 향수와 기억의 지리학과 정치 문제, 반인종주의와 ‘백인성’의 국제역사, 유럽 아방가르드의 지리학적 이론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런던 근처에 있는 작고 오래된 마을 에핑(Epping)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린 시절의 저처럼 어른들의 눈을 피해 언제라도 숨을 수 있는 비밀 장소 만들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과 J. G. 발라드의 <물에 잠긴 세계>를 즐겨 읽었던 그는 장소야 말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런던이 비대해지면서 자신의 고향을 삼켜버린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지리학의 다양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묘하게 끌리는 제목도 그렇지만, 이번에 여행한 터키에 있는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를 목차에서 발견하고는 바로 주문해서 터키로 가는 여행짐에 집어넣었습니다. 기왕에 이야기를 꺼냈으니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곳은 터키 카파도키아 지방의 데린쿠유(Derinkuyu)에 있는 지하도시입니다. 터키어로 ‘깊은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데린쿠유의 지하도시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이드는 닭을 치던 주민이 자꾸만 사라지는 닭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고, 이 지하도시의 규모는 3만 명이 생활하던 공간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지상을 점령한 적을 피해 지하에서 양까지 치면서 생활하고, 때로는 양을 지상으로 방목하기까지 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석연치 않았던 대목들은 이 책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는 8개의 층에 걸쳐 조성될 정도로 방대한 규모입니다. 위쪽으로 주거공간이 있고, 마구간과 식품창고들까지 있고 맨 아래층에는 지하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하교회의 규모는 작은 주거공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큰 편인데도 20여명이 들어서면 꽉 들어찰 정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상주하였다는 도시규모에 비하면 교회의 규모는 턱없이 작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는 적이 침략해왔을 때 임시로 대피하던 시설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8세기 경 카파도키아의 데린쿠유 지역은 비잔틴 제국의 변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이교도들의 침략이 잦았기 때문에 이곳에 살던 기독교인들이 피난처로 삼기 위하여 만들었을 것으로 설명합니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응회암지대로 견고하면서도 깍아내기가 수월해서 일찍부터 돌집을 만들어 거주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원 1세기전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500년 전에 이곳에 살던 프리지아(Phrysia)인들은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자연 상태 그대로의 언덕을 골라서, 자기한데 편리한 만큼 뚫고 파냈다.(94쪽)’라고 설명하였다고 합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프리지아인들보다도 1,000년이나 앞선 히타이트(Hittite)인들로부터 시작된 주거형태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데린쿠유의 지하도시가 방어용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특징적 구조를 보면, 출입구가 좁고 각층은 안에서만 작동이 가능한 커다란 돌문으로 봉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10여 킬로나 떨어져 있는 또 다른 대규모의 지하도시 카이마클리(Kaymakli)로 연결되는 인공터널이 예비되어 있어 위급한 상황에서 지하도시를 탈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권위자들은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는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다가 바깥이 위험해졌을 때만 사용하는 임시피난처로 예비해둔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저자는 세계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47개의 특별한 장소들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그곳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곳이기도 하며, 또는 우리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인이 없는 장소이거나 고립된 곳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아주 먼 곳일 수도 있고,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장소들입니다만, 한국에 있는 장소도 한 곳 등장합니다. 바로 죽은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소개되는 기정동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조차 생소한 기정동(機井洞)은 1953년 남한과 북한이 맺은 평화협정의 산물입니다. 남북한 사이에 폭 4킬로미터의 비무장지대를 두면서 그 안에 각각 한 개씩의 정착촌을 두기로 한 것에 따라 남한에서는 대성동을, 북한에서는 기정동을 조성한 것입니다.

 

기정동이 저자의 관심을 끈 이유는 첫머리에서 감지할 수 있습니다. “기정동(機井洞)은 창문에 유리조차 끼우지 않은 고층건물 안에 조명등만 켜놓은 가짜 장소이다. 이곳에는 주민도 없고, 방문객도 들어갈 수 없다. (…) 북한의 기정동, 일명 ‘평화마을’은 남한의 잠재적 망명자를 유혹하기 위해서,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의 발전과 현대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지어졌다.(180쪽)” 남한의 평화마을 대성동이 벼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것과는 대조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죽은 도시’로 분류된 것 같습니다.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사업에 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의 경관>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래 전에 건설되어 노후화된 고가도로가 도심의 경관을 해치면서도 교통의 흐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대부분 철거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서울역 고가차도를 공원화하여 남겨두겠다는 서울시장의 발상은 뉴욕의 하이라인파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고가차도에 나무를 심은 커다란 화분을 늘어세우고 고가도로 하단에는 줄기나무를 늘어뜨리는 방식의 설계가 1등으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흉물스러운 고가차도를 도심의 스카이라인과 조화를 시키기 위해서는 웬만큼 단장하지 않고서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만큼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저자는 <시간의 경관>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경관>에 등장하는 장소는 역시 뉴욕의 라과디아 플레이스와 웨스트 휴스턴 스트리트가 만나는 길모퉁이에 있는 1,000제곱미터의 공간입니다. 울타리를 쳐서 사람들의 출입을 금한 이 공간은 일종의 생태공원입니다. 1978년 미술가 앨런 손피스트가 17세기 이전에 뉴욕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붉은 삼나무, 흑벚나무, 풍년화, 미국담쟁이덩굴, 미국자리공, 아스클레피아스 같은 토착종 식물을 심어 조성하였습니다. 이른바 상실된 자연에 헌정된 <시간의 공간>이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이 도시가 한때는 숲이었음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강과 샘과 자연적 노두(露頭) 같은 자연현상의 삶과 죽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반성의 장소로 활용하자는 주장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시간의 공간>은 나팔꽃이나 방가지똥 같은 외래종 잡초들의 침입으로 오염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곳은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개방된 실험실’로 여러 종의 식물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라고 손피스트는 해명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작가의 주장에 대하여 저자는 “그것이 사실이라면 <시간의 공간>은 공허한 기념물일 뿐이다. 이 장소가 이 도시의 다른 녹색 공간들과 차별화되는 요소는, 바로 이곳이 과거를 엄밀하게 환기시킨다는 점이다.(60쪽)”라고 비판하였습니다. 저자는 여러 도시에서 자주 조성되는 환경 미술, 또는 대지 미술의 상당수가 넓은 자연경관 안에다가 방향상실한 듯한 인간의 장소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하기도 합니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서울역 고가차도 공원화사업도 큰 고민 없는 전시행정의 일환이 아닐까하는 우려가 생깁니다. 자동차 전용도로가 공원화되면서 사람의 통행이 자유롭게 되면 마포대교의 대안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며, 도로공원에 늘어놓은 시설들이 공원 아래로 떨어지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내던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 공원 아래로 지나는 사람이나 차량이 크게 피해를 입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997년 요트를 타고 북태평양을 항해하던 찰스 무어가 발견한 북태평양의 거대한 쓰레기 구역(GPGP, Great Pacific Garbage Patch)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경고합니다. 주로 플라스틱과 어망이 해류를 따라 흐르다 모여들어 만들어낸 GPGP는 그 규모가 한반도면적(22만㎢)의 7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병이 강물에 흘러들고, 강물을 따라 바다로 나간 플라스틱 병이 해류를 타고 흘러가다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이 이곳이니 쓰레기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쓰레기 섬이 결국은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가 인간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 가까이 있는 도심하천 가에는 오래 전에 들어온 너구리 한 쌍이 퍼뜨린 새끼들이 이제는 영역을 다툴 정도로 개체 수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처음 들어온 너구리들이 사람들 눈에 거의 띄지 않게 숨어 다니던 것과는 달리 요즘 너구리들은 대낮에 산책길을 어슬렁거리기도 합니다. 생태학자들은 자연과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좁혀진 것을 반기는 것 같습니다만, 수의학자들은 이들 야생동물을 통하여 광견병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당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자가 살고 있는 영국의 뉴캐슬은 물론 호주의 멜버른, 노르웨이의 오슬로,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캐나다의 토론토, 가까운 일본의 삿포로 같은 대도시에서는 작은 여우들이 도심에 출몰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토종 여유가 멸종단계에 있기 때문에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멧돼지가 도심이 출몰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멀지 않은 앞날에 우리나라의 도심에서 여우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토포필리아(Topophilia), 즉 ‘장소에 대한 사랑’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지도에서만 발견되거나 심지어는 어떤 지도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장소들을 찾아가는 여행을 통하여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심리적 욕망을 채우고, 장소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나가며, 우리를 자연으로 연결시켜 나가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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