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응급실 - 평화와 생명을 가꾸는 한 외과의사의 지구촌 방랑기
조너선 캐플런 지음, 홍은미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작은 아이가 소외계층에 대한 진료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 역시 의과대학에서 의료봉사활동에 적극적이었고, 그와 같은 활동을 하는 동아리를 만들어 지금까지도 후배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마 작은 아이의 책상에서 발견한 책입니다. ‘평화와 생명을 가꾸는 한 외과의사의 지구촌 방랑기’라는 부제가 안성맞춤인 <아름다운 응급실>입니다.

 

저자는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과의사 조너선 캐플런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극성을 부리던 시절 남아프리카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복무를 피하기 위하여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철부지 학생이었지만, 우리는 국민 다수의 기본적인 자유를 부정하는 이 나라 정치제도의 부당함을 모르지 않았고, 무감각하지도 않았다.(15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의과대학에 다닐 무렵부터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자의 집안 내력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형외과를 전공하는 아버지, 병리학을 전공하는 어머니, 세균학을 전공한 삼촌 그리고 비뇨기과를 전공하는 외삼촌 등 의료분야에서 활동하는 부모 친척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를 시작할 무렵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선배의사가 들려준 일선의 현실을 저자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비윤리적인 것이었습니다. 결국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으로 진로를 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의 수련과정 역시 영국의료계의 고질적인 관행, 관행이라 함은 수련이나 직장을 결정하는데 있어 인맥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어, 일정한 범주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의사들은 변두리를 맴돌아야 하는 모양입니다. 저자가 외과의사로서 수련을 받는 과정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지만, 취업에 필요한 학위를 받기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미국에 눌러앉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상업적 요소가 강한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영국으로 다시 돌아와서는 국경없는 의사회에 참여하여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곳, 저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침공으로 사회기반시설이 무너진 나미비아의 빈트후크에서의 활동, 이라크 전쟁으로 사지로 몰린 쿠르드난민들을 위한 진료소를 구축하기 위하여 터키와 이라크 국경을 넘나들던 이야기, 모잠비크에서는 내란으로 수난을 당하고 있는 난민과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 골든트라이앵글을 장악하고 있는 쿤사와 정부군의 대치하고 있는 미얀마의 산악지대에서에 흩어져 사는 주민들을 위한 진료시설을 구축하려는 노력, 에티오피아와 군사적 충돌을 겪고 있는 에리트레아의 전시의료체계를 시찰하려는 노력 등을 읽으면서 과연 이 사람은 왜 이렇듯 위험한 곳에 자발적으로 뛰어들고 있는가 의문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의 뜨거운 인류애는, 타고난 특별한 유전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군사적 충돌 현장이나 쏟아지는 난민들을 위한 진료현장에서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한 순간을 넘나드는 활동 이외에도 불법폐기물을 쏟아내 주민들을 수은중독으로 죽어가게 만드는 거대기업을 고발하기 위한 활약도 볼 수 있는데, 때로는 다큐멘터리제작팀에서도 활약하는 등 다양한 저자의 활동범위는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꼭 진료실에 앉아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모습만을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젊은 의학도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저자의 직업 가운데 동남아시아를 도는 대형유람선의 선의나, 항공기로 이송되는 환자를 돌보는 항공의사와 같은 직종은 우리에게는 생소하게 비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자가 경험한 것을 꾸밈없이 소개하고 있어 그런 직업의 음양을 모두 보여준다는 점에서 저자의 글에 신뢰가 가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제분쟁의 현장이 때로는 힘의 논리 때문에 윤리가 끼어들 틈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힘 있는 사람들은 그저 보여주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장면이 있어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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