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범의 방학 공부법 박철범 공부법
박철범 지음 / 다산에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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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거두절미하고 <박철범의 방학공부법>은 그야말로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라고 보았습니다. 행차 뒤 나팔이라는 옛말도 있습니다만, 진즉 이런 책을 읽었더라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방학은 그냥 신나게 노는 것 이외에 별다르게 공부를 했던 기억이 없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방학 때 공부를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보았던 기억도 없는 것을 보면 저자가 말하는 폐인(?)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안내하는 방학의 알차게 보내는 비밀은 ‘자신에 맞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서 공부하는 것’에 있다고 합니다. 세 가지 비밀, 즉 1. 꼭 필요한 것만 골라서, 2. 부지런하게, 3. 제대로 된 방법으로 공부한다면, 방학은 학기 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장담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박철범의 방학공부법>을 이렇게 구성하였다고 설명합니다. “1장에서는 방학에 대한 대표적인 궁금즉 다섯 가지를 다룬다. 이 부분은 방학의 전체적인 계획과 관련된 것이다. 2장은 방학 동안의 시간관리에 대해서 다룬다. 방학에는 아무래도 게을러지기가 쉬운데, 어떻게 해야 게으름을 극복하고 부지런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3장부터 (5장까지는) 본격적으로 방학공부법을 다룬다. 내가 제시하는 방학공부법의 핵심은 ‘공부3력 높이기’다. ‘공부3력’이란, 이해력, 암기력, 사고력을 뜻한다. 이것은 공부에 있어서 마치 기초체력과 같다.(7쪽)”


저자는 방학에 대한 궁금증 다섯 가지를 꼽았습니다. 무엇을 공부하나? 학원 혹은 인터넷강의를 어떻게 활용할까? 보충수업이나 방과후 수업은? 독서는? 그렇다면 노는 것은? 등입니다. 저자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되어 있어 저와 같은 옛날 사람들도 쉽게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예 방학은 노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민도 않했지만, 방학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생들이라면 길감이 갈 수 있는 방학 중 시간관리 실패원인을 무려 여덟 가지나 설명합니다. 3~5장에서 다루는 공부3력을 높이는 비법은 ‘3회독’이라고 했습니다. 과목별로 주교재 하나를 선택하고, 방학 동안에 각각 세 번씩 보는 것입니다. 처음 볼 때는 ‘이해’에 초점을 맞춰 공부하고, 두 번째 볼 때는 ‘암기’에 초점을 맞추며, 세 번째 볼 때는 ‘사고’에 초점을 맞춘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저 역시 대학에서 시험준비를 할 때 이와 같은 방식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 볼 때는 중요한 것들을 이해해가면서 정리하고, 두 번째는 외우고, 세 번째는 외운 것들이 제대로 외워졌는지 확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저자의 방식과 차이가 있었다면 사고하는 과정이 아니라 외워야 할 것들을 모두 외우고 있는지 확인하는 저와 달리 저자는 ‘사고’ 즉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의과대학 공부는 암기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무작정 암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자가 말하는대로 결합암기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혹시 참고가 된다면 조너선 D 스펜스의 <마테오리치 기억의 궁전; http://blog.joins.com/yang412/13778310>을 보시면 고대 기억술사들이 사용하는 암기법의 개략을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경험이나 사연들이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편이었습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입니다. 데이트에서 화가 난 여자친구를 달래는 모습입니다.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저자에게 여자친구는 ‘뭐가 미안한데?’라고 되묻고는 자신이 삐진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남자 친구에게 ‘이제 보니 자기가 왜 미안한지도 모르고 있네? (…) 됐어! 나 피곤하니까 그냥 집에 갈래!’라고 획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이 친구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는 합니다만, 만약 이런 여자 친구라면 과감하게 이별하라고 권고하고 싶어졌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면 남자 친구가 결정한 바에 대하여 따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성격이라면 쓸테 없이 남자친구를 피곤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방학동안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각론은 책에 잘 정리가 되어 있으니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라면 읽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마침 방학이 코 앞에 다가와 있으니 이번 겨울방학을 성적을 끌어올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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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강주헌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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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으로 보이는 제목에 이끌려 살펴보니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유고집이었습니다. [북소리]의 오랜 독자라면 두어해 전에 소개한 레비-스트로스의 초기작품 <슬픈 열대; http://blog.joins.com/yang412/13245374>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에 체류하였던 1937년에서 38년 사이에 브라질 내륙지방에 사는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 등 원주민 부족들에 관한 민족지(民族誌) 성격의 내용에 자신의 사상적 편력과 민족학에 투신하게 된 배경 등 자서전적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 되어 있습니다. 문화체계를 이루는 요소들의 구조적 관계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여 친족이나 신화체계와 같은 문화체계를 설명하는 구조주의는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유태인 레비-스트로스는 파리대학교에서 철학과 법률을 공부하였습니다. 졸업후 잠시 중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브라질 상파울루대학교에서 사회학교수로 재직하면서(1934-37년) 브라질의 원주민을 현지조사하고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마르세이유에서 밀항선을 타고 뉴욕으로 건너갔습니다. 뉴욕 시의 사회연구학교에서 객원교수로 있는 동안(1941~45)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950에서 1974년까지 파리대학교에서 연구지도교수를 지냈으며, 1959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인류학 학과장이 되었습니다.

 

<슬픈 열대>는 레비-스트로스가 ‘원주민 사회에서 느낀 비애감이 우울하게 표현되어 있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의 후예이며 동서양 문명의 만나는 교차점에서 살고 있는 터키사람들의 정신세계를 그려낸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은 <슬픈 열대>에 담긴 레비-스트로스의 감정은 ‘슬픔’이라고 정의하여 비애와 차별하고 있기도 합니다. <슬픈 열대>에 담긴 슬픔은 ‘열대지역의 그 모든 가난한 대도시가, 무기력이, 인간 군상이 서양인들에게 느끼게 했던 감정이다. 그는 도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상태가 아니라, 그곳에 도달한 서양인의 죄책감, 선입관과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 그가 느꼈던 동정심과 혼합된, 극도의 인간적인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오르한 파묵 지음, 이스탄불 145쪽, 민음사, 2008년; http://blog.joins.com/yang412/13198330)라고 정리하였습니다. 반면 ‘비애는 외부에서 보는 사람이 아니라 이스탄불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서 발전시킨 반응’이라고 말하면서, 몰락, 상실 그리고 가난의 고통이 발전시킨 비애감은 이스탄불 사람들을 새로운 패배와 다른 형태의 가난에 예비하게 한다고 우려합니다.

 

박옥줄교수는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 대한 비판’에서,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 원주민들에게서 비애(혹은 슬픔)을 느낀 것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문화의 영광’에 대한 입증을 다른 미개민족의 후진성에서 발견하려 했던 초창기 다른 인류학자들과는 정반대의 시각으로 인류학적 탐구를 시작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는 제목에서부터 레비-스트로스의 이런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레비-스트로스가 이탈리아의 일간지 <라 레프블리카(La Republica)>의 요청을 받아 1989년부터 2000년까지 쓴 글들을 모아 그의 사후에 발간한 것입니다.

 

이 책을 기획한 모리스 올랑데는 서문에서 레비-스트르스의 글은 “누구나 자신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을 야만적인 것으로 부른다”라는 몽테뉴의 말을 떠올린다고 적었습니다. 1992년 몽테뉴 400주기를 맞아 레비-스트로스가 “계몽시대의 철학이 인류 역사에 존재한 모든 사회를 비판하며 합리적 사회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면, 상대주의는 하나의 문화가 권위를 앞세워 다른 문화를 재단하는 절대적 기준을 거부했다. 몽테뉴 이후로, 그의 선례를 따라 많은 철학자가 이런 모순에서 탈출할 출구를 끊임없이 모색해왔다(6쪽)”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도 레비-스트로스는 ‘신화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의 관계는 떼어놓을 수도 어느 하나로 통합할 수 없다는 점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즈음 케이블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1988년의 우리사회를 회상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산타클로스의 존재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1951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디종성당 앞 광장에서 주일학교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산타클로스를 불태우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산타클로스에 부여되는 상업적 중요성이 종교적 가치가 없는 신화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며, 성탄절의 진정한 종교적 의미를 왜곡하는 정도가 우려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고 판단한 종교계의 단호한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고 합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사건을 통하여 사회적 축제에 대한 종교의 우려를 비판합니다. 

 

이 사건의 이면에는 유럽의 성탄절 행사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아 전에 없던 규모로 커지고 있다는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산타클로스의 정체를 양면적으로 설명합니다. 기원과 역할을 설명해주는 신화나 관련된 역사적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산타클로스를 신화적 혹은 전설적 인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탄절이라고 하는 정해진 기간이 되면 등장하여 전유적 역할을 하는 존재로 정의되는 산타클로스는 신적인 존재에 속한다고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산타클로스는 성탄절이면 와서 한 해 동안 착한 일을 한 어린이이게는 선물을 주고 못된 짓을 한 아이에게는 벌을 준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의 존재를 믿는 어린이들에게 산타클로스는 신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어린이들에게 산타클로스를 믿으라고 온갖 속임수를 써가면서 부추기는 어른들은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지금의 성탄절 무렵에 행해지던 로마의 사투르누스 축제를 인용하여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해석합니다. 사투르누스 축제는 원귀(寃鬼)들을 달래는 축제였다고 하는데, 로마신화에 농경의 신으로 나오는 사투르누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입니다.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거하고 세상을 지배하는 위치를 차지합니다. 누이인 옵스를 아내로 맞았는데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죄의식과 자신도 같은 운명을 걸을 것이라는 예감에서 아내가 자식을 낳는 족족 삼켜버립니다. 결국은 막내아들 주피터에게 살해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달래는 축제의 끝에는 어린아이에게 은혜를 베푸는 선량한 성 니콜라우스가 등장한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제국의 말기에 기독교 교회는 이교도의 축제인 사투르누스축제를 기독교의 축제로 대체하기 위하여 예수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결정하였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산타클로스는 사투르누스를 계승한 무질서의 지배자이면서도 정반대적인 존재로 자리매김을 해왔다고 설명한 레비-스트로스는 이와 같은 변화는 우리와 죽음의 관계가 개선되었다는 반증으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디종의 화형식을 통하여 산타클로스를 버리려 했던 디종의 성직자들의 희망과는 달리 오히려 산타클로스의 영속성을 입증하는 모순을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역시 철학적 해석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는 식인종이다’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1993년에 발표된 이 글은 1996년에 발표된 ‘미친 소의 교훈’과 연결하여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는 식인종이다’는 파푸아뉴기니에서 지역적으로 유행한 쿠루(kuru)병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고, ‘미친 소의 교훈은 2008년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광우병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쿠루병은 파푸아뉴기니의 동부 고원지대에 사는 포레(Fore)족 사이에서 1950년대 무렵 갑자기 나타난 풍토병입니다. 뒤에 역학조사를 통하여 밝혀진 바에 따르면 쿠루병이 발생하기에 앞서 포레족에게 식인풍습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포레족은 전투를 통하여 살해한 적의 시신을 먹은 것이 아니라 사망한 가까운 친족들의 시신을 먹었는데, 이는 사랑과 존경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포레족에게 식인풍습이 전해진 다음에 어느 시점에서 백만 명에 한명 꼴로 발생하는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하 CJD)으로 죽은 환자의 뇌를 나누어 먹었던 것이 화근이 되어 생긴 쿠루병이 포레족 사회에 고착된 것입니다. 마치 광우병에 걸린 소에서 나온 물질을 먹고 인간광우병이 생긴 것처럼 말입니다.

 

시신을 먹을 수 있도록 조리하는 역할을 한 여성들이 조리과정에서 1차 감염되고, 신체적 접촉을 통하여 어린이들에게 2차 감염이 일어났던 것으로 레비-스트로스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포레족 남성들은 사냥과 채집활동을 통하여 얻은 먹거리를 통하여 단백질을 섭취할 기회가 많았지만 여성들은 단백질을 섭취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친족들의 시신을 먹는 일은 주로 여성과 아이들의 몫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양기화 지음, 눈초의 광우병 이야기, 도서출판 be, 2009년) 실제로 신체적 접촉을 통하여 프리온병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된 사례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쿠루병을 처음 밝힌 칼턴 가이듀섹은 파푸아뉴기니에서 쿠루병 환자가 죽은 뒤에 뇌를 맨손으로 꺼내곤 했다고 합니다만, 그는 프리온병으로 사망하지 않았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쿠루병과 성장장애를 앓는 어린이를 치료하기 위하여 사용한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은 어린이들에서 CJD가 확산된 사건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이 환자들에게 사용된 주사제는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자극하는 물질이 들어있는 사체의 뇌하수체를 모아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CJD환자로부터 얻은 뇌하수체가 섞여 들어간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입니다. 의료행위와 관련된 의인성 CJD와 죽은 사람을 먹는 식인행위를 같이 비교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전제하면서도 레비-스트로스는 두 가지 행위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이냐고 반문합니다. 과학으로 포장된 의료행위 역시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여전히 미신이고 맹신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광우병파동이 일었을 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사람들이 유럽 사람들과는 달리 프리온병에 취약한 코돈129번이 MM형인 빈도가 높은 것은 식인습관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레비-스트로스가 알았더라면 식인관습에 관한 유럽 사람들의 편견을 맹렬하게 비난했을 것 같습니다. 코돈129번의 유전자형은 프리온에 감염되었을 때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MM형이 가장 빠르게 나타나고 MV형, VV형으로 잠복기가 길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동아시아사람의 선조들이 일찍이 식인풍습을 버렸기 때문에 굳이 MM형을 가지고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은데 반하여 식인풍습을 오래 유지했던 유럽 사람들은 집단을 보호하기 위하여 프리온의 발현을 지연시키는 쪽으로 유전자의 변화가 생겼다는 해석입니다.

 

‘미친 소의 교훈’은 인간광우병이 발생하기 이전인 1996년에 발표된 글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읽어야 합니다.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을 식인행위와 비교한 레비-스트로스는 파푸아뉴기니의 쿠루병처럼 동물의 질병이 인간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상존함을 지적합니다. 광우병의 경우는 아마도 적절하게 통제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종간의 장벽을 넘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은 선견지명을 엿볼 수 있습니다. 광우병 파동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원인에 따라서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된 습관을 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이 식인풍습을 버리고서 쿠루가 진정된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 인용한 내용 이외에도 여성 할례와 대리 출산, 남미의 농경방식을 인용한 발전의 유형별 차이에 대한 해석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색다른 시각에서 해석을 내놓고 있어 매우 흥미로운 책읽기가 되었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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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이야기
손미나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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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미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행사마다 다양한 상품이 나와 있어서 고르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마추피추가 있는 페루는 당연히 빠트리면 안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미나씨의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가 출간되었다고 해서 크게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손미나씨의 책은 처음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은 느낌을 먼저 말씀드리면 크게 도움이 될 점도 있었고 기대했던 것보다는 다소 부족한 점도 있었습니다.

 

먼저 좋았던 점은 따로 표시를 하지는 않았지만 저자와 동행한 사진작가(맞나요?) 레이니씨가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참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쿠스코 갈 때 고산병이 생각보다는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의약품 등을 충분하게 준비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가 돌아본 여행경로는 리마-푸에르토 말도나도-쿠스코, 마추피추-푸노, 아레키파, 바예스타스, 나스카-쿠스코-리마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행사의 상품과 많이 겹치기 때문에 제가 갈 곳을 미리 가보는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페루의 유명한 관광지에서의 느낌도 담고는 있습니다만, 동행하고 있는 레이나씨 그리고 리마에서 만난 친구와의 사이에서 생긴 일에 대한 부분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점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여행을 목적 없이 떠나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저자의 경우는 3년전 갑자기 타계하신 아버지와의 이별로 생긴 심리적 압박감을 풀어내기 위한 여행이었다고 합니다. 생전에 페루를 가보고 싶어하셨다는 아버지의 말씀도 마음에 걸렸다고 하는데, 그래서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콘도르가 사자(死者)의 운반자이자 보호자라는 상징을 인용하여 아레키파로 콘도르를 보러가는 것도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지만 굳이 그래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결정적인 점은 읽는 흐름이 자꾸 흩어진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읽은 박찬영의 <잘못된 문장부터 고쳐라!;  http://blog.joins.com/yang412/13789453>를 보면 소리 내어 읽어서 흐름이 좋으면 좋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두어 장쯤 읽기 시작했을 무렵 만난 다음 구절에서 자꾸 생각이 엉켰습니다. “3년 전, 나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영원히 이별하는 고통스런 체험을 하고 말았다.(8쪽)” 책이 거의 다 읽어갈 즈음해서 선친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충격이 커서 고통스러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런 비극을 체험하는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시작부터 그래서였던지 읽어가면서 무언가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했는데, 맞자마자 미열이 나는 경우가 있는지 확인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백신을 맞으면 미열이 날 수도 있습니다만,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되어야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아마존 정글에 갔을 때 폭우가 쏟아진 다음에 강둑에 올라갔을 때 급하게 흐르는 강물의 모습이 마치 한 마리 용과 같았다는 표현도 과연 적절한가 싶습니다. 용의 움직임과 관련된 표현은 용오름과 용틀임이 있는데, 용오름은거대한 적란운(積亂雲)이 발생하면서 지표면이나 해수면까지 기둥이나 깔때기 모양의 구름이 드리워지면서 구름 아래에 강한 소용돌이가 생기는 현상, 즉 토네이도를 말하고, '용틀임'은  '이리저리 비틀거나 꼬면서 움직이는 모양'을 의미합니다. 급류가 흘러가는 모습을 용틀임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책이나 영화, 음악 등에서 인용한 것이 별로 없는 것도 특이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캐노피 워크 프로그램에서 밀림에 세워놓은 타워를 연결한 구름다리를 걸으면서 아래로 보이는 나무들을 내려다보면서 두렵더라고 했는데, 영화 아바타에서 보면 허공에서 떨어진 주인공이 나뭇잎에 떨어지는 장면이 연상될 것 같기도 합니다. 남미여행을 앞두고 지리, 역사, 민담은 물론 이 지역 작가들의 작품들까지도 최대한 읽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페루와 관련해서는 로멩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길 끝에서 만난 이야기>, 안토니오 스카르메다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등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 특히 일상의 고민과 삶의 무게에 지쳐 따스한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영혼에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필요한 당신에게 선물이 되었으면 한다고 적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직접 페루에 가서 그런 바람을 느낄 수 있는지 확인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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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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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떠난 발칸여행지 가운데 두브로브니크에서는 프란체스코수도원에 붙어 있는 약국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최초의 약국이라고 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환자들은 진료를 받은 병원에서 약을 타갔던 것인데, 약을 다루는 부서가 병원 밖으로 독립되어 나간 셈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국에서는 약만을 팔았는데, 오늘날의 약국은 약 이외에도 건강기능식품이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보건의료품목들까지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담배를 파는 약국도 있습니다. 금연에 도움을 주는 물품도 팔고 담배도 파는 이중성이 지적되고 있어서인지 최근에 약사회가 중심이 되어 약국에서는 담배를 팔지 않도록 하자는 운동도 전개된다고 합니다.

 

약국이라고 하는 명칭이 특정한 분야를 상징한다고 보면 의약품이 아닌 것을 팔면서 약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지구상의 생물들처럼 세상사 역시 진화하고 있는 것이라면 진화된 형태의 약국이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막상 이런 곳이 생긴다면 약사단체가 펄쩍 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종이약국>이라는 이름의 소설을 읽고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려다보니 이런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 것입니다. 종이약국은 무엇을 파는 곳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책을 파는 서점입니다. ‘약’하면 신체적 질병을 치료하는 알약, 물약처럼 먹는 약도 있지만, 바르거나 붙이는 약도 있습니다. 정신적 질병도 알약이나 물약으로 치료할 수도 있지만, 요즈음은 심리치료 등과 같이 비약물적 치료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독서를 통한 질병치료가 전혀 새로운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3년 전 쯤 [북소리]에서도 <암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치료; http://blog.joins.com/yang412/12549788>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독서치료(bibliotherapy)’라는 용어는 1916년 사무엘 맥코드 크로더스(Samuel AcChord Crothers)가 처음 사용했고, 미국도서관협회에서는 1966년 “정신의학 분야에서 치료적인 보조수단으로서 선정된 독서 자료를 이용하는 것, 개인적인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는 책을 읽음으로써 해결책을 안내하는 것”이라고 독서치료를 정의한 바 있습니다.

 

<종이약국>은 독서치료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독서치료에 관한 자격증을 따서, 개인적인 치료공간을 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파리의 센강에 띄운 배에 열고 있는 <종이약국>의 주인 페르뒤씨가 바로 주인공입니다. 종이약국은 샹젤리제 선착장에 정박하고 있는 배 룰루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파리에 갔을 때 노틀담 사원에서부터 센강을 따라 에펠탑까지 걸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센강변에 늘어서 있는 작은 가게들 틈에서 서점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만, 센강에 떠 있는 배에도 서점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어떻거나 종이약국은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까지 알려져 있을 정도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서점이 있는 것일까요?

 

페르뒤씨가 <종이약국>에서 책을 파는 모습을 잠깐 볼까요? “이 책은 손님에게 팔고 싶지 않습니다.” “왜요?” “실례지만, 손님께서는 어떤 남자와 결혼하느냐는 것보다는 어떤 책을 읽으시냐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합니다.(18-19쪽)” 거두절미하고 책을 팔지 않겠다고 하지는 않았겠지요. 페르뒤씨가 팔지 않겠다고 하는 막스 조당의 <밤>이라는 책을 고르기 위하여 고민하던 여자손님의 모습을 꾸준하게 관찰한 끝에 내린 결론일 것입니다만, 작가가 시시콜콜한 설명을 생략한 것일 뿐입니다.(제가 작가에게 무척이나 우호적인 것 같습니다). 결국 그녀는 “당신 완전히 미쳤어요”라고 내뱉듯 말하고 서점을 나서지만 며칠 뒤에 다시 서점을 찾아와 페르뒤씨가 추천하는 책을 사가게 됩니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도 있지만, 페르뒤씨는 책을 골라달라는 손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합니다. 직업이 무엇이고, 아침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어린 시절에 어떤 동물을 좋아했고 최근 몇 년 동안 어떤 악몽을 꿨고 마지막으로 어떤 책을 읽었는지..... 그리고 예전에 어떤 옷을 입으라고 어머니가 말했는지. 등입니다. 생각해보면 책을 고르는 일과 동떨어진 질문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친밀하면서도 지나치게 다가가지 않는 질문을 통하여 적절한 책을 골라내는 재능을 페르뒤씨는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페르뒤씨가 독자에게 맞는 책을 고르기 위하여 나름대로 고심하는 모습은 그가 살고 있는 몽타냐르 27번지에 사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맞은 편 집에 새로 이사한 여성이 흐느껴 우는 것을 알고 책을 권하는 장면입니다. “저는 더 울고 싶어요. 그러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어버릴 것 같아요” “그러면 마음껏 울 수 있는 책을 가져다드릴게요.” 페르뒤씨는 27번지 사람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그가 추천하는 책을 읽으면서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페르뒤씨가 종이약국을 열게 된 배경은 독일의 아동문학가이자 시인인 에리히 캐스트너의 <서정적 가정약방>이라는 책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 책의 서문에 “개인의 생활을 치유하는 데 이 책을 바친다. 이 책은 존재의 크고 작은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도록 대부분 동종요법으로 조제되었으며, 평범한 생활의 내면 치유에 도움이 될 것이다(32쪽)”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캐스트너의 책 가운데 품절이라서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한문화에서 나온 <마주보기; 마음을 위한 약상자>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정작 페르뒤씨 자신은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자신의 문제는 아예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밀봉해서 꼭꼭 가둬 두었던 모양입니다. 제우스가 봉인한 판도라의 상자도 열렸듯이 세상에 열리지 않는 비밀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풀리기 마련입니다. 다만 시기가 무르익어야 하고, 그 시간의 흐름이 안타까운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상황이 무르익어서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몽타냐르 27번지의 4층에 있는 페르뒤씨의 집에는 20년 전 OO이 떠난 뒤로 봉인된 방이 있습니다. 50살이 된 페르뒤씨는 그 뒤로 어떤 여성과도 사랑을 나누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요즈음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종이약국>을 읽어가다 보면 그녀와 페르뒤씨와의 관계는 심상치가 않은 면이 있습니다. 페르뒤씨와 사랑을 나눈 OO은 이내 결혼했고 남편에게도 페르뒤씨와의 관계를 알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삼각관계를 이어갔다는 이야깁니다. 프랑스사람들답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페르뒤씨가 봉인해둔 OO과의 관계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앞집에 카트린 르 P. 부인이 이사를 오면서부터입니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편이 바람나서 모든 살림을 들고 새 여자와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카트린은 몽타냐르 27번지로 이사를 오게 된 것입니다. 주민들은 그녀를 위하여 무언가를 내놓기로 하였고, 페르뒤씨에게는 식탁이 배당되었던 것입니다. 페르뒤씨는 봉인된 방에 있던 식탁을 내주었고, 그 식탁에 들어있던 한 통의 편지가 문제를 풀어내는 실마리가 됩니다. 그렇다면 페르뒤씨는 그 편지를 왜 읽지 않았을까요?

 

카트린이 발견한 그 편지는 OO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페르뒤씨에게 자신보다 먼저 죽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다음날 떠난 OO이 몇 주 뒤에 보내온 편지입니다. 페르뒤씨는 그 편지를 읽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버린 여성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변명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편지를을 읽는 것은 이별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페르뒤씨를 저녁에 초대한 카트린의 자신의 일그러진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됩니다. 20년 동안 자신의 삶을 경멸하고 경멸받게 만들었던 삶을... 카트린의 삶이 자신의 삶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페르뒤씨는 이제는 OO, 즉 마농이 20년 전에 보내온 편지를 읽을 준비가 되었다고 깨닫게 됩니다.

 

마농은 편지에 그녀가 페르뒤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했던 이유를 적었습니다. 병으로 얼마 살 수도 없게 되었고, 여행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파리로 올 수 없었고, 편지를 보내 페르뒤씨를 그녀가 살고 있는 본뉴로 와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페르뒤씨는 그런 편지를 외면했고, 얼마 뒤에 신문에 난 부고란에서 마농의 이름을 발견하고서도 오해를 풀지 못했던 것입니다. 편지를 읽고 난 페르뒤씨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치밀어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나타난 카트린의 위로에 마음을 고쳐먹게 됩니다.

 

페르뒤씨는 마농이 죽기 전에 했어야 할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가 살았던 본뉴로. 그녀를 처음 만났던 급행열차가 아니라 종이약국이 있는 배 룰루를 몰고 운하를 따라 여행합니다. 프랑스는 북해와 대서양 그리고 지중해로 열려 있지만 바다를 통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려면 엄청 돌아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륙의 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었나 봅니다.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강들을 연결하여 운하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저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프랑스 같은 나라라면 충분히 유용할 것 같습니다.

 

페르뒤씨의 여행에는 최근에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 조당이 동행합니다. 작가와 독서치료사의 여행이 좋은 그림이 되는 것 같습니다. 본뉴로 여행하는 길에는 마농이 남긴 일기를 인용하여 마농과 페르뒤씨의 운명적인 만남과 이별이 그려지고, 서점 주인인 페르뒤씨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 <남녁의 빛>을 쓴 저자 사나리의 정체를 밝히는 일이 곁들여집니다. 작가와 서점 주인이 함께하는 여행이다 보니 우리가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화제에 오르는 것 같습니다. 이별을 애도하는데 필요한 기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실연을 한 사람의 경우는 연애한 기간을 감안하여 한 해당 한 달은 슬퍼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우정의 경우는 두달, 그리고 사별한 사람을 애도하는 기간은 정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일생 동안 애도하십시오. 우리는 한때 사랑했던 고인들을 영원히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빈자리가 안겨주는 허전함은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최후의 날까지 함께합니다.(171쪽)”

 

본뉴로 여행하는 동안 페르뒤씨는 카트린에게 날마다 엽서를 보내고, 또 미래의 문학약제사, 그러니까 독서치료사들을 위한 가이드북을 쓰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러니까 본뉴로 가는 페르뒤씨의 여행은 마농과의 사이에 생겼던 오해로 인한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카트린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여행인 것 같습니다.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파리에서 그냥 묻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마농이 살던 곳이며 지금은 영원히 쉬는 곳으로 가는 것은 페르뒤씨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는 무려 20년을 앓아와 고질병이 되어버린 마음의 상처로 얼룩진 페르뒤씨와 카트린의 삶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갑니다. 역시 로맨스 소설은 해피앤딩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카트린과 페르뒤씨는 프로방스에서 두 사람의 영혼이 머물 공간을 찾아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각자의 악령이 숨어 기회를 엿보는 방이 있어요. 방문을 열고 그 악령에 맞서야만 자유로울 수 있어요.”라고 카트린은 말하지만 그녀 역시 페르뒤씨처럼 비비 꼬인 삶으로 스스로를 끌어넣은 바가 있지 싶습니다.

 

<종이약국>의 말미에는 ‘감정 혼란의 증상이 경미하거나 또는 어느 정도 심각한 경우에 정신과 마음을 빠르게 진정시켜주는 약’으로 추천하는 26권의 책들의 효과와 부작용까지 설명되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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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을 생각한다
모리카와 아키라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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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야에서 격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기업을 경영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바뀌고 기업의 환경이 바뀌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바뀌는 것도 이 정도면 천지가 개벽한 것 같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싸우지 않는다, 비전은 필요 없다, 계획은 필요 없다, 정보 공유는 하지 않는다, 높은 사람은 필요 없다, 동기부여를 하지 않는다, 성공은 버린다, 차별화는 노리지 않는다, 혁신은 지향하지 않는다, 경영은 관리가 아니다(8-9쪽)”를 기업경영의 방침으로 정한 회사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네, 답은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관련 업계의 1위에 올랐을 뿐 아니라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일본에서 별 볼일 없던 한게임 재팬 주식회사를 4년 만에 업계 1위로 만들고, 지금 전 세계 230개국 4억 명이 사용하는 라인 메신저로 만든 CEO 모리카와 아키라입니다. 1989년 쓰쿠바 대학 졸업하고 니혼텔레비전방송망에 입사해서 희망했던 음악 프로그램제작부문이 아닌 컴퓨터시스템 부문에 서 근무하다가 2000년에 소니로 옮겨 브로드밴드를 다루는 사내 벤처를 성공으로 이끌기도 했지만, 2003년에는 다시 한게임 재팬 주식회사(후에 NHN 재팬 주식회사, 현재 라인 주식회사)로 옮겼고, 4년 뒤에는 이 회사를 일본의 온라인 게임 시장의 정상으로 밀어 올렸습니다. 그 사이에 미국식 경영을 공부하여 MBA를 따기도 했지만, 정작 라인주식회사를 경영하는 자리에 올랐을 때는 전혀 새로운 경영방식, 즉 모든 것을 심플하게 생각하는 방식을 도입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경영철학은 철저하게 고객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객의 니즈에 부응하고자 하는 열정과 능력을 지닌 사원을 모으고, 그들이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고 능력을 최대한 불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자연 회사는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온라인 게임이라는 사업의 특성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의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들어 판다는 점에서 본다면 중후장대한 사업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즈니스는 싸움이 아니라는 철학은 기업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물론 모든 기업활동에는 경쟁 상대가 있기 마련이고 경쟁이 심각해지면 전쟁상태에 이르기도 합니다. 문제는 상대와의 경쟁에 집중을 하다보면 정작 고객은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업의 본질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경쟁상대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고객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비용문제 때문에 아웃소싱을 하다 보니 회사 내에서 할 일이 없어지더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우리나라의 모 부처가 생각났습니다. 물론 필요한 것들을 아웃소싱할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아웃소싱을 통하여 얻는 결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인적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는 것입니다. 상당한 수준의 전문가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문가 마저도 외부에서 영입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가가 과연 조직에 잘 녹아져들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저자의 기업경영철학은 철저하게 변화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변화를 타고 넘어야 한다는데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변화를 타고 넘으려면 몸집이 가벼워서 순간 대응이 빨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 즉 실무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기획하고 관리하는 부서, 즉 사무직은 필요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말하기도 합니다. 어느 조직이나 사무직이 막강한 힘을 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사무직이 실무를 압도하게 됩니다. 이런 조직은 미래에 대한 기획을 너무 자주 내놓은 경향이 있습니다. 저자의 경영철학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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