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강주헌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자극적으로 보이는 제목에 이끌려 살펴보니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유고집이었습니다. [북소리]의 오랜 독자라면 두어해 전에 소개한 레비-스트로스의 초기작품 <슬픈 열대; http://blog.joins.com/yang412/13245374>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에 체류하였던 1937년에서 38년 사이에 브라질 내륙지방에 사는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 등 원주민 부족들에 관한 민족지(民族誌) 성격의 내용에 자신의 사상적 편력과 민족학에 투신하게 된 배경 등 자서전적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 되어 있습니다. 문화체계를 이루는 요소들의 구조적 관계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여 친족이나 신화체계와 같은 문화체계를 설명하는 구조주의는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유태인 레비-스트로스는 파리대학교에서 철학과 법률을 공부하였습니다. 졸업후 잠시 중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브라질 상파울루대학교에서 사회학교수로 재직하면서(1934-37년) 브라질의 원주민을 현지조사하고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마르세이유에서 밀항선을 타고 뉴욕으로 건너갔습니다. 뉴욕 시의 사회연구학교에서 객원교수로 있는 동안(1941~45)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950에서 1974년까지 파리대학교에서 연구지도교수를 지냈으며, 1959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인류학 학과장이 되었습니다.

 

<슬픈 열대>는 레비-스트로스가 ‘원주민 사회에서 느낀 비애감이 우울하게 표현되어 있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의 후예이며 동서양 문명의 만나는 교차점에서 살고 있는 터키사람들의 정신세계를 그려낸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은 <슬픈 열대>에 담긴 레비-스트로스의 감정은 ‘슬픔’이라고 정의하여 비애와 차별하고 있기도 합니다. <슬픈 열대>에 담긴 슬픔은 ‘열대지역의 그 모든 가난한 대도시가, 무기력이, 인간 군상이 서양인들에게 느끼게 했던 감정이다. 그는 도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상태가 아니라, 그곳에 도달한 서양인의 죄책감, 선입관과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 그가 느꼈던 동정심과 혼합된, 극도의 인간적인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오르한 파묵 지음, 이스탄불 145쪽, 민음사, 2008년; http://blog.joins.com/yang412/13198330)라고 정리하였습니다. 반면 ‘비애는 외부에서 보는 사람이 아니라 이스탄불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서 발전시킨 반응’이라고 말하면서, 몰락, 상실 그리고 가난의 고통이 발전시킨 비애감은 이스탄불 사람들을 새로운 패배와 다른 형태의 가난에 예비하게 한다고 우려합니다.

 

박옥줄교수는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 대한 비판’에서,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 원주민들에게서 비애(혹은 슬픔)을 느낀 것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문화의 영광’에 대한 입증을 다른 미개민족의 후진성에서 발견하려 했던 초창기 다른 인류학자들과는 정반대의 시각으로 인류학적 탐구를 시작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는 제목에서부터 레비-스트로스의 이런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레비-스트로스가 이탈리아의 일간지 <라 레프블리카(La Republica)>의 요청을 받아 1989년부터 2000년까지 쓴 글들을 모아 그의 사후에 발간한 것입니다.

 

이 책을 기획한 모리스 올랑데는 서문에서 레비-스트르스의 글은 “누구나 자신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을 야만적인 것으로 부른다”라는 몽테뉴의 말을 떠올린다고 적었습니다. 1992년 몽테뉴 400주기를 맞아 레비-스트로스가 “계몽시대의 철학이 인류 역사에 존재한 모든 사회를 비판하며 합리적 사회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면, 상대주의는 하나의 문화가 권위를 앞세워 다른 문화를 재단하는 절대적 기준을 거부했다. 몽테뉴 이후로, 그의 선례를 따라 많은 철학자가 이런 모순에서 탈출할 출구를 끊임없이 모색해왔다(6쪽)”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도 레비-스트로스는 ‘신화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의 관계는 떼어놓을 수도 어느 하나로 통합할 수 없다는 점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즈음 케이블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1988년의 우리사회를 회상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산타클로스의 존재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1951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디종성당 앞 광장에서 주일학교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산타클로스를 불태우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산타클로스에 부여되는 상업적 중요성이 종교적 가치가 없는 신화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며, 성탄절의 진정한 종교적 의미를 왜곡하는 정도가 우려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고 판단한 종교계의 단호한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고 합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사건을 통하여 사회적 축제에 대한 종교의 우려를 비판합니다. 

 

이 사건의 이면에는 유럽의 성탄절 행사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아 전에 없던 규모로 커지고 있다는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산타클로스의 정체를 양면적으로 설명합니다. 기원과 역할을 설명해주는 신화나 관련된 역사적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산타클로스를 신화적 혹은 전설적 인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탄절이라고 하는 정해진 기간이 되면 등장하여 전유적 역할을 하는 존재로 정의되는 산타클로스는 신적인 존재에 속한다고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산타클로스는 성탄절이면 와서 한 해 동안 착한 일을 한 어린이이게는 선물을 주고 못된 짓을 한 아이에게는 벌을 준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의 존재를 믿는 어린이들에게 산타클로스는 신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어린이들에게 산타클로스를 믿으라고 온갖 속임수를 써가면서 부추기는 어른들은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지금의 성탄절 무렵에 행해지던 로마의 사투르누스 축제를 인용하여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해석합니다. 사투르누스 축제는 원귀(寃鬼)들을 달래는 축제였다고 하는데, 로마신화에 농경의 신으로 나오는 사투르누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입니다.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거하고 세상을 지배하는 위치를 차지합니다. 누이인 옵스를 아내로 맞았는데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죄의식과 자신도 같은 운명을 걸을 것이라는 예감에서 아내가 자식을 낳는 족족 삼켜버립니다. 결국은 막내아들 주피터에게 살해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달래는 축제의 끝에는 어린아이에게 은혜를 베푸는 선량한 성 니콜라우스가 등장한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제국의 말기에 기독교 교회는 이교도의 축제인 사투르누스축제를 기독교의 축제로 대체하기 위하여 예수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결정하였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산타클로스는 사투르누스를 계승한 무질서의 지배자이면서도 정반대적인 존재로 자리매김을 해왔다고 설명한 레비-스트로스는 이와 같은 변화는 우리와 죽음의 관계가 개선되었다는 반증으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디종의 화형식을 통하여 산타클로스를 버리려 했던 디종의 성직자들의 희망과는 달리 오히려 산타클로스의 영속성을 입증하는 모순을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역시 철학적 해석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는 식인종이다’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1993년에 발표된 이 글은 1996년에 발표된 ‘미친 소의 교훈’과 연결하여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는 식인종이다’는 파푸아뉴기니에서 지역적으로 유행한 쿠루(kuru)병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고, ‘미친 소의 교훈은 2008년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광우병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쿠루병은 파푸아뉴기니의 동부 고원지대에 사는 포레(Fore)족 사이에서 1950년대 무렵 갑자기 나타난 풍토병입니다. 뒤에 역학조사를 통하여 밝혀진 바에 따르면 쿠루병이 발생하기에 앞서 포레족에게 식인풍습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포레족은 전투를 통하여 살해한 적의 시신을 먹은 것이 아니라 사망한 가까운 친족들의 시신을 먹었는데, 이는 사랑과 존경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포레족에게 식인풍습이 전해진 다음에 어느 시점에서 백만 명에 한명 꼴로 발생하는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하 CJD)으로 죽은 환자의 뇌를 나누어 먹었던 것이 화근이 되어 생긴 쿠루병이 포레족 사회에 고착된 것입니다. 마치 광우병에 걸린 소에서 나온 물질을 먹고 인간광우병이 생긴 것처럼 말입니다.

 

시신을 먹을 수 있도록 조리하는 역할을 한 여성들이 조리과정에서 1차 감염되고, 신체적 접촉을 통하여 어린이들에게 2차 감염이 일어났던 것으로 레비-스트로스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포레족 남성들은 사냥과 채집활동을 통하여 얻은 먹거리를 통하여 단백질을 섭취할 기회가 많았지만 여성들은 단백질을 섭취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친족들의 시신을 먹는 일은 주로 여성과 아이들의 몫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양기화 지음, 눈초의 광우병 이야기, 도서출판 be, 2009년) 실제로 신체적 접촉을 통하여 프리온병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된 사례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쿠루병을 처음 밝힌 칼턴 가이듀섹은 파푸아뉴기니에서 쿠루병 환자가 죽은 뒤에 뇌를 맨손으로 꺼내곤 했다고 합니다만, 그는 프리온병으로 사망하지 않았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쿠루병과 성장장애를 앓는 어린이를 치료하기 위하여 사용한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은 어린이들에서 CJD가 확산된 사건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이 환자들에게 사용된 주사제는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자극하는 물질이 들어있는 사체의 뇌하수체를 모아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CJD환자로부터 얻은 뇌하수체가 섞여 들어간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입니다. 의료행위와 관련된 의인성 CJD와 죽은 사람을 먹는 식인행위를 같이 비교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전제하면서도 레비-스트로스는 두 가지 행위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이냐고 반문합니다. 과학으로 포장된 의료행위 역시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여전히 미신이고 맹신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광우병파동이 일었을 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사람들이 유럽 사람들과는 달리 프리온병에 취약한 코돈129번이 MM형인 빈도가 높은 것은 식인습관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레비-스트로스가 알았더라면 식인관습에 관한 유럽 사람들의 편견을 맹렬하게 비난했을 것 같습니다. 코돈129번의 유전자형은 프리온에 감염되었을 때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MM형이 가장 빠르게 나타나고 MV형, VV형으로 잠복기가 길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동아시아사람의 선조들이 일찍이 식인풍습을 버렸기 때문에 굳이 MM형을 가지고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은데 반하여 식인풍습을 오래 유지했던 유럽 사람들은 집단을 보호하기 위하여 프리온의 발현을 지연시키는 쪽으로 유전자의 변화가 생겼다는 해석입니다.

 

‘미친 소의 교훈’은 인간광우병이 발생하기 이전인 1996년에 발표된 글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읽어야 합니다.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을 식인행위와 비교한 레비-스트로스는 파푸아뉴기니의 쿠루병처럼 동물의 질병이 인간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상존함을 지적합니다. 광우병의 경우는 아마도 적절하게 통제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종간의 장벽을 넘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은 선견지명을 엿볼 수 있습니다. 광우병 파동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원인에 따라서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된 습관을 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이 식인풍습을 버리고서 쿠루가 진정된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 인용한 내용 이외에도 여성 할례와 대리 출산, 남미의 농경방식을 인용한 발전의 유형별 차이에 대한 해석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색다른 시각에서 해석을 내놓고 있어 매우 흥미로운 책읽기가 되었다는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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