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메이 페일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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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존 키팅선생님 같은 분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분 정도의 선생님을 마음속에 우상처럼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입원하신 고등학교 은사님을 뵈려 지방에 다녀왔습니다. 졸업하고서는 처음 뵙는 건데 병문안이 되어서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을 소개해드렸지만, 제가 불편할까봐서 댁에서 가까운 병원에 입원하신 것 같습니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니 치료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새해 첫 리뷰를 소설로 쓰게 되는 것이 저로서는 드문 일입니다만, 은사님을 만나 뵙게 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일입니다. 매튜 퀵의 <러브 메이 페일>은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에 마음에 담았던 소설가의 꿈을 뒤늦게 이루게 된 여자 주인공 포샤 케인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포샤 케인이지만 단독 주인공이 아니라 그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문학교사 네이트 버논, 그의 어머니 매브 수녀, 학창 시절 케인을 짝사랑했던 척 베이스가 각각 화자로 나와 이야기를 이어가는 공동 주인공의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도 등장하기도 합니다만, 포샤 케인은 네 사람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배역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러브 메이 페일>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셈입니다.

 

그런데 <러브 메이 페일>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은 삶에서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어 남들과는 다른 길로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뛰어넘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어쩌면 남들보다 부족한 것도 억울한데 그런 이유로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결말로 이끌 수는 없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진정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결국은 더 큰 사랑이 그 실패를 감싸 구원으로 이끌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레브 메이 페일>이라는 제목은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제일버드; jailbird>에 나오는 “사랑은 실패할지 모르지만, 공손함은 항상 승리할 것이다(544쪽)”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http://blog.joins.com/yang412/13340292>을 통하여 커트 보네거트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만, 나름대로의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일버드>는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첫눈에 반했다는 남자의 청혼에 넘어가 결혼한 포샤 케인이 새파란 애인을 집으로 끌어들여 정사를 벌이는 남편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첫 장면의 인상은 허접한 삼류소설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들지만 남편을 사살하는 대신 고향집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선택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계는 운명이라는 신의 섭리에 따라 얽혀 있다는 조금은 구태의연한 느낌으로 바뀌게 됩니다. 운명으로 포장하기는 했지만, 결국 우연이란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은 거의 불가능한 것 아닐까요?

 

그녀가 부자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남편의 엽색행각 보다는 평소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 컸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꿈꾸는 행복한 결혼은 서로에 대한 배려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그녀의 남편은 몰랐던 것입니다.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모르는 구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네 명의 주인공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등장인물들과의 관계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실 버논선생님과 어머니 매브 수녀의 관계에서도, 척 베이스와 여동생 다니엘과의 관계에서도 느낄 수 있는 점입니다만, 가깝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가까울수록 이해를 더하기 위한 배려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버논선생님을 절망에 빠트렸던 에드몬드와의 관계가 어떻게 정리되는가와 버논선생님의 개 카뮈가 자살했다고 믿는 것에 대한 보완설명이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사는 옛 은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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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속지 마라 - 내 안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심리학의 진실
스티브 아얀 지음, 손희주 옮김 / 부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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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내 마음인데 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까?; http://blog.joins.com/yang412/13802907>를 읽으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상담을 하러 오는 분들이 가지고 오는 문제들은 통제할 수 없는 행동, 마음, 사랑, 일과 꿈, 그리고 나를 가로막는 걱정들, 해결되지 못한 슬픔, 그리고 한없이 커 보이는 결점 등, 주로 심리적 문제들이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중심으로 상담을 하러 오는 분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걱정거리가 생긴 근원을 설명하였습니다. 즉 성장과정에서 만난 정신적 충격이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쳐, 장성한 다음에 성격이나 행동을 지배한다는 이론입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저자의 설명에 빠져드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정말?’이라는 의문의 실체는 심리학을 전공한 저널리스트 스티브 아얀이 쓴 <심리학에 속지 마라>를 읽으면서 밝힐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책에는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심리학에 대한 일반적 앎을 뒤집어야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책을 쓴 스티브 아얀(Steve Ayan)은 독일 뒤셀도르프대학교와 이탈리아 나폴리대학교, 영국 리딩대학교에서 심리학과 문학번역학을 전공하였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원에서 과학저널리즘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현재 독일의 심리학 전문 잡지 『게히른 운트 가이스트』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저자의 배경은 심리학이 안고 있는 문제를 가감 없이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인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이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아 고통을 받는 사람이 늘고 있고, 이런 사람들에게 ‘자아를 직시하라’는 구호를 앞세워 상담을 유도하는 심리상담산업이 호황을 맞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인문학 붐까지 더해지면서 심리학 관련 서적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환자에게 커다란 고통을 일으키는 심각한 심리장애는 분명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우울증, 공포, 중독, 강박과 같은 심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당연히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시험에 대한 공포,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사랑으로 인한 괴로움, 가족 간의 불화, 충족되지 못한 갈망과 같이 우리의 삶에서 흔히 부딪힐 수 있는 간단한 부정적 감정까지도 병으로 진단하고 치료받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심리학에 속지 마라>는 심리학 분야의 내부고발서가 되는 셈입니다. 마치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 제4판>의 작성 책임을 맡았던 앨런 프랜시스교수가 새롭게 나온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 제5판>에 적용된 진단기준들을 지나치게 완화시켜 정신질환을 양산하게 되었다고 비판한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http://blog.joins.com/yang412/13392396>처럼 말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구성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심적 괴로움의 인플레이션을 다루면서 사소한 심리 문제가 왜 이토록 큰 문제로 여겨지는지를 파헤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을 다루며 어째서 심리학이 그토록 쉽게 근거 없이 떠도는 전설이 되었는지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리상담 숭배의 결과를 그려냈다.(17쪽)” 저자는 “쉴 새 없이 자신의 심리를 파악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본래 심리는 그런 목적으로 있는 게 아니거든요(17쪽)”라고 한 쾰른의 정신과 의사 만프레드 뤼츠의 말을 인용하여 심리상담을 남용하는 것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합니다. “끊임없이 자아를 주시하고 자신의 상태를 심리 분야의 기준에 맞춰 측정하다 보면 일상에서 생기는 문제들이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저자는 오늘날 심리산업이 호황을 누리게 된 데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고 진단합니다. 심리학이 만들어낸 그럴듯한 내용을 잘 포장해서 독자의 흥미를 끌어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내려는 심리학적 전략에 따라 마음의 위로자형, 마법의 자장가형, 체크리스트형 그리고 헛똑똑이를 위한 자료형으로 심리학책을 분류합니다. 상담에 나서기 전에 자신의 위상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심리학에 관한 어느 정도 전문적인 책을 내는 것은 그들의 기본적인 행보인 것입니다. 심리학책 역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행복의 처방전을 나누어주고, 스스로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으며, 마음속 깊은 바닥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고 첨병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심리학책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는 대부분의 심리학책이 제공하는 조언이란 것들이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내용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반적인 특성을 자기에게만 해당되는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선택이 일상이 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출근하기에 앞서 어떤 넥타이를 맬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차를 운전할 것인가 아니면 지하철을 탈 것인가, 점심에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등, 전혀 심각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까지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합니다. 어떤 상품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면 새로운 기능을 얹은 상품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최종 결정을 하기 전에 심사숙고하게 되지만, 막상 결정을 한 다음에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을 남기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제목의 시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숲에서 만난 갈림길에서 선택과 배제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은 영국 시인 에드워드 토머스와도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프로스트는 1차 세계대전 무렵 영국에 머물면서 에드워드 토머스와 숲길을 산책하곤 했는데, 미국으로 돌아간 프로스트는 갈림길에서 어느 쪽 길로 갈까 망설이던 토머스를 가볍게 놀리는 느낌을 담은 시 ‘가지 않은 길’을 토머스에게 보냈다는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지 여부로 고민하던 토머스는 이 시를 받고서 군에 입대했고, 2년 뒤 북프랑스 전선에서 전사했다고 합니다. 토머스의 죽음을 조롱할 뜻은 없습니다만 ‘장고 뒤의 악수’가 된 셈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훗날 프로스트는 사람들이 너무 자신의 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그 시는 속임수 시”라고 유감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학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프로스트의 유감표명도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프로스트 전기작가 브라이언 홀은 “프로스트의 시는 사실은 하찮은 결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망설임에 대한 코멘트”라며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가든 가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는 법이라는 뜻”이라고 분석했다고 합니다.(한겨레신문 2015년 12월 23일자 기사. “안철수의 ‘가지 않은 길’”)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병이 되기도 하는 사람을 위하여 스티브 아얀은 세 가지 조언을 합니다. 첫째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선택을 통해서 이미 목적을 이루는데, 다른 해답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옳은 선택을 하려면 반드시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도 편견이다. 우리이게는 자아를 들여다보는 눈이 없다는 점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리치료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가지는 막연한 기대감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내용을 담았습니다만, 저자는 대부분의 심리치료법은 믿을 만한 자료도 별로 없고 약품치료와는 달리 엄격한 법률 자료를 바탕으로 검증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말로 하는 치료만으로 환자가 치유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쏟아져 나오는 심리학 관련 연구논문들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질만합니다. 대체적으로 심리학 관련 연구는 통계학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계자료를 해석하는데 따라서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한스 페터 베크 보른홀트와 한스 헤르만 두벤이 같이 쓴 <알을 낳는 개; http://blog.joins.com/yang412/9167274>를 통해서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리학 분야에서의 통계값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게르트 기거렌처소장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http://blog.joins.com/yang412/13240282>은 북소리에서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

 

통계적 해석의 오류에 기인하는 심리학의 문제에 더하여 저자는 심리학적 가정의 오류도 심각하다고 지적합니다. 잘못된 심리학적 가정을 증명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가정을 바탕으로 세워진 심리학적 가설 가운데 잘못되었다는 증거들이 이미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신처럼 신봉하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고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잠재의식을 이용한 광고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있습니다. 광고에서의 잠재의식효과(Subliminal effect)는 영화 필름의 프레임에 감추어 둔 영상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커트를 넣어둔 영화를 본 관객들은 갈증을 느끼게 되고 결국 탄산음료를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1951년 미국의 마케팅전문가 제임스 비카리가 주장한 것이지만 이후에 근거 없는 주장이었다는 것을 실토하였다고 합니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위기상황 스트레스해소법(Critical Incident Stress Debriefing; CISD)의 효과 역시 의문부호가 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났던 테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받은 CSID치료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좋지 않은 기억을 자꾸만 건드리는 것보다 그대로 덮어두는 것이 최선책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세월호 참사에 관련된 분들을 위해서라도 참고할 내용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근거가 확실한 것인지 분명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믿어왔던 ‘두뇌 운동으로 치매를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 역시 누군가에 의하여 제기된 다음에 반복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옳은 것으로 믿게 된 일종의 심리학적 미신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은 유연한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요소가 우리의 정신에 반향을 일으킨다는 점, 그리고 이들의 인과관계가 불안정하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정신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개념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용어라는 점 등입니다. 그 결과 준비된 허구와 현실을 혼동하기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심리학의 연구성과를 이해할 때 다음과 같은 점에 주의할 것을 당부합니다. 1. 모든 이론은 임시적이다, 2. 통계적 연관성을 원인과 효과로 혼동하지 말자, 3. 특정 집단에서 얻은 결과를 너무 다급하게 일반화하지 말자, 4. 개개의 경우는 개개의 경우로 놓아두자, 5. 혁신적인 주장은 예외적인 것일 뿐 일반화할 수 없다.(158-159쪽)

 

그리고 심리학자들이 흔히 다음과 같은 속임수를 쓸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하라고 합니다. 1. 심리학자들은 때때로 근거도 없이 주장을 펼친다, 2. 상식은 이론 뻥튀기의 발판으로 사용된다, 3. 일단 이론에 이름을 붙여 있어 보이게 만든다, 4. 깊은 인상을 남기는 그림과 비유를 이용한다, 5. ‘무의식’을 이론 창출의 노다지로 활용한다, 6. 마치 불편한 진실이나 파장을 일으킬 만한 사실을 품은 척 지식을 포장한다.(170-173쪽)

 

저자는 심리학이 산업이라고 할 만큼 호황을 누리고 있는 배경에는 대중으로 하여금 불안한 심리상태에 들도록 만드는 심리학의 교묘한 술수가 있었다고 비판합니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사람들이 공연히 자신을 남과 비교하게 만들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삶을 추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좋으면 그것으로 좋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심리학에 휘둘리지 않은 요체가 될 것 같습니다.

 

혹자는 <심리학에 속지마라> 역시 심리학교본이 아니냐는 의문을 내놓기도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 이 책은 심리학 고발서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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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악의 발명품 - 삐딱하게 바로 보는
문윤수 지음, 박종진 옮김 / 한국학술정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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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직장이 원주로 이전하는 바람에 매일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두 시간 정도 일찍 집을 나서야 하고, 퇴근 역시 두어 시간은 늦게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출퇴근 버스 안에서 오롯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만, 잠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조금 피로하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원거리 출퇴근이 가능해진 것은 버스와 고속도로 그리고 지하철이라는 교통체계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인류가 발명한 것들 가운데 완벽한 것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익이 손해를 끼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사용되고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인류 최악의 발명품>은 시각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그 문제의 정도가 심각한 것들을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사회학을 전공하시고서 광고와 관련된 분야를 연구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의 기획의도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광고학도로 출발한 한 사회학자가 대학을 벗어나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인류 발명품과 제도들에 대하여 약간의 역사적 출처를 첨가해가며 기획한 사회 불만서이다.” 불만서라고는 했지만, 책 내용을 보면 종횡무진, 좌충우돌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거침없는 필치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은 인류의 퇴보를 가져올 것이라는 암울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 스무 가지나 되는 것들을 자본주의, 건강 그리고 의식 등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었습니다. 자본주의의 퇴보를 가져올 것으로는 아울렛, 스마트폰, 명품, 24시 서비스 등 4가지를 들었고, 건강의 퇴보를 가져올 것으로는 소시지, 자동차, 음식물 쓰레기, 아파트, 냉장고, 플라스틱, 전자제품, 라면 등 8가지 그리고 의식의 퇴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는 정치인, 바비인형, 산아제한, 동물원, 결혼식, 신용카드, 정의, 퍼스트레이디 등 8 가지입니다. 물론 저자가 꼽은 스무 가지는 전적으로 저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우선순위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들은 현재 인류가 유용하고 활용하고 있는 발명품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유용했던 초기 의도와는 달리 그것들이 한심한 물건이 되어 있거나 타당하지 못한 활용이거나, 아니면 인간성이 상실된 파르마콘(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된 경우가 많다라고 하였습니다.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면 삐딱한 사회학자는 이런 시각으로 사물을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부분에서는 쉽게 공감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문어체로 쓰는 것이 맞다는 구닥다리 같은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저자가 참 자유로운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대표적 사례는 모택동과 김일성에 관한 평가와 제돌이와 관련된 생각이었습니다. 저자가 보는 모택동과 김일성은 이렇습니다. “산업노동자가 1%밖에 되지 않던 중국을 문화대혁명이라는 똥의 사회로 이끌었던 모택동은 그야말로 똥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따라 한답시고 축지법까지 쓴다던 신이 된 한국의 김일성는 돌연 민족 간의 이간질 전쟁을 일르켰다. 이들의 행동실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이 이끈 사회엔 결코 시민이 없었고 그들만이 있었다. 고로 시민사회는 현시될 수 없었다.(165쪽)”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낸 사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저 역시 크게 공감이 가는 점이 있었습니다. 동물원에 갇혀 있는 다른 동물은 그냥 둔 채로 돌고래만 구출시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대목 말입니다. 돌고래를 사랑한다는 시민단체는 돌고래만 해방시킬 것이 아니라 동물원을 폐쇄하고 그들을 모두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지 의아하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떠오르는 생각을 쏟아내듯 글을 쓰신 것 아닌가 싶었던 것은 일반적인 글쓰기의 맥락이라는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글쓰기의 전형에 따랐더라면 씹는 감이 떨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일까요? 어떻든 읽는 재미는 쏠쏠했고, 저자의 생각을 다시 곱씹어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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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인데 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까?
김형근 지음 / 한빛비즈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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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복잡해진 탓인지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벌어지는 사건사고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는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인데 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까?>는 ‘왜 사람들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까?’하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마약중독자들을 위한 회복모임에 참여하면서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중독심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도 일종의 중독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 역시 담배, 술 그리고 일 등 일종의 중독에 가까운 습관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담배의 경우는 완전히 끊었습니다만, 술은 조금씩 마시기도 합니다. 물론 예전처럼 통제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닙니다.

 

저자는 기독교심리상담연구소를 열고 정신적인 고통을 가지고 오는 분들을 상담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랜 상담을 통하여 경험한 사례들을 분류하여, 통제할 수 없는 행동, 마음, 사랑, 일과 꿈, 그리고 나를 가로막는 걱정들, 해결되지 못한 슬픔, 그리고 한없이 커 보이는 결점 등, 심리적 문제들이 왜 생기는지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마음의 걱정거리가 왜 생겼는지 근원을 밝혀가는 것인데, 저자가 사용하는 기본적인 기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이 중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즉 성장과정에서 만난 정신적 충격이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쳐, 장성한 다음에 성격이나 행동을 지배한다는 이론입니다.

 

그 가운데는 공감이 되는 설명도 많지만 때로는 그럴까 싶기도 한 설명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그랬습니다만,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면 적당하게 제동을 걸어야 하는데 계속 상승되다가 순간 정신을 놓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미움이라는 감정 때문에 타인과의 접촉을 거절하며, 그 정도가 심하면 대인공포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설명을 좀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폭행의 피해자에게 사건이 자신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대목은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성폭행의 가해자를 용서하라는 이야기까지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성장기에 받는 정신적인 압박감이 이상행동 혹은 정서상태의 원인이라는 저자의 분석은 커다란 틀에서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이 안고 있는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 1996년에 제가 치매에 관한 책을 처음 내놓았을 무렵에는 초보적인 진단방법은 있었지만, 완치시킬 수 있는 치료법은 없었습니다. 그때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바로 ‘치료하는 방법은 있나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자가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제시하는 해결방안이 조금 구체적으로 정리되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어린 자녀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답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E그래서 어린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책을 읽다가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대목이 있어서 리뷰에 적어둡니다. 바로 창세기의 한 부분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아담이 하와가 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지자 자신의 벗은 몸이 부끄러워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렸다고 한다.(72쪽)”는 구절입니다. 눈이 밝아지면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찬탄을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기 전까지는 아담과 하와는 눈이 어두웠던 것일까요? 하느님은 왜 아담과 하와에서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지 않고 선악과라고 하는 열매에 따로 감추어 두셨을까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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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나 강의 다리 대산세계문학총서 39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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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보스니아의 모스타르를 여행하면서 아직도 남아 있는 보스니아 내전의 흔적에 몸서리를 쳐야 했습니다. 시가지 곳곳에 창문 없이 방치된 건물들은 예외 없이 총탄자국이 마치 마마의 흔적처럼 남아 있고, 들여다보면 건물 안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가이드 말로는 내전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복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너져 내린 스타리모스트 만큼은 복구했다고 합니다.

 

'오래된 다리‘라는 의미의 스타리모스트는 네레바트강을 경계로 나뉘어 있는 가톨릭계 마을과 이슬람계 마을을 연결해주고 있었습니다. 모스타르를 점령한 오스만제국이 1566년에 완공한 스타리모스트는 1,088개의 하얀색 돌을 사용하여 길이 30미터에 폭 5미터, 높이 24미터의 단일 아치형의 이슬람양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400년이 넘도록 이슬람제국이 유럽에 남긴 다리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받았던 스타리모스트는 1993년 9월 보스니아 내전 당시 무너진 것입니다.

 

한적해 보이기만 하는 모스타르 주민들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끔찍한 싸움이 벌어진 것은 지난 세월에 견주어보면 알량하기만 한 민족주의 때문이었습니다. 모스타르의 가톨릭계 주민과 이슬람계 주민들은 스타리모스트보다 더 오랜 세월을 다정한 이웃으로 살아왔습니다. 정교계의 세르비아가 쳐들어왔을 때는 힘을 합하여 격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대세르비아의 기치에 대항한 대크로아티아 기치를 내세운 크로아티아가 모스타르의 가톨릭계와 합세하여 이슬람계 주민들을 공격한 것입니다. 두 세력이 스타리모스트를 경계로 대치하던 중 다리가 폭파된 것입니다. 어느 쪽의 소행인지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투와 살상이 전개되는 동안 냉정하던 모스타르 주민들까지도 다리가 무너질 때는 오열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유네스코가 중심이 되어 스타리모스트의 복원이 추진되었습니다. 스타리모스트야 말로 종교간, 민족 간의 화합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997년 나토평화유지군은 강에서 부서진 다리의 조각들을 찾아냈고, 유럽 각국은 건축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터키는 보관하고 있던 다리 설계도를 바탕으로 건축에 나서 2004년 7월 23일 세계 10개국 정상들과 찰스 황태자,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기념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종헌 지음, 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 94-102쪽, 소울메이트, 2012년; hthttp://blog.joins.com/yang412/13778602)

 

이종헌은 발칸사람들의 정체성과 수백 년에 걸쳐 평화롭게 공존해오던 사람들이 대립하여 갈등을 빚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보 안드리치야말로 발칸사람들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1892년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 부모가 살던 보스니아에서 태어난 이보 안드리치는 보스니아의 비셰그라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성장해서는 정교의 본산인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세르비아어로 작품활동을 했지만, 노벨상으로 받은 상금을 보스니아의 도서관건립기금으로 기증했다고 합니다.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모두의 과학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베오그라드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스니아와 세르비아는 물론 크로아티아까지도 자국 출신이라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두 살이 채 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비셰그라드의 고모에게 맡겨진 이반 안드리치는 드리나 강의 다리 위에서 동네 할아버지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이때 들었던 이야기들은 훗날 안드리치 작품들의 원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장한 다음 사라예보에서 공부하면서 남슬라브의 독립지원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보스니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청년 보스니아 운동’을 전개한 혁명단체에서 활동했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의 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대전 이후에 외교관으로 활동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퇴직하고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24년 외교관으로 일하면서도 오스트리아 그라츠대학교에서 <터키 지배의 영향하에서 보스니아 정신생활의 발전>이라는 논문으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적 갈등, 문화적 차이가 공존했던 보스니아는 그에게 있어 영원한 연구의 대상이었습니다. 작품을 통하여 보스니아인들의 역사, 가치관, 문화를 이야기했고, 특히 운명에 관한 보스니아 사람들의 생각을 풀어내는 서사적 힘을 인정받아 1961년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것입니다.(위키백과, 이보 안드리치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B3%B4_%EC%95%88%EB%93%9C%EB%A6%AC%EC%B9%98)

 

드리나 강은 북서 헤르체고비나를 흐르는 타라 강과 피바 강이 합류하여 시작되는데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국경을 따라 흘러서 슬로베니아 북부 알프스에서 시작하는 사바 강에 합류하고, 사바 강은 도나우 강으로 흘러듭니다. 346km를 흐르는 드리나 강은 짙은 녹색을 띄기 때문에 세르비아인들은 질룐까(녹색)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산세가 험한 발칸의 계곡을 따라 흐르는 드리나 강은 발칸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서로마와 동로마제국의 자연적 국경이었던 드리나 강은 가톨릭과 동방정교회 세력이 만나는 경계였습니다. 오스만제국이 발칸을 점령하면서 유입된 이슬람까지 더해지면서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드리나 강을 따라서 어우러지게 된 것입니다.

 

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에는 다리 주변에 살고 있는 비셰그라드 사람들은 물론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다리가 세워지는 과정에서부터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 무너지기까지 무려 340여년에 걸쳐 다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다리입니다.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이 다리 사이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오는 긴밀한 연대가 있기 때문에 서로 얽혀 있는 운명을 따라 떼어서 말할 수가 없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다리의 유래와 운명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세대와 세대를 거듭해 내려오는 마을의 삶과 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미리 이야기합니다. 일종의 향토지(鄕土誌)라고 할까요?

 

소설 속에 나오는 드리나 강의 다리는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치 다리(Mehmed-Pasha Sokolovic Bridge)입니다. 보스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예니체리로 끌려간 소년이 장성해서 오스만제국의 파샤가 되었는데, 강을 사이에 두고 불편한 두 마을이 쉽게 왕래할 수 있도록 다리건설을 명하였고,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주었다고 합니다. 오스만제국의 궁정 건축가 시난의 설계로 1571년 짓기 시작한 다리는 1577년 완공을 보았습니다. 1666년, 1875년, 1911년, 1940년, 1950-52년에 각각 중요한 보수공사가 있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11개의 아치 가운데 3개가 파괴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5개의 아치가 파괴되었지만 이내 복구되었으며 1992년 보스니아 내전 시 벌어진 비셰그라드학살 사건에서 많은 보스니아 사람들이 세르비아 군에게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 다리는 2007년 유네스코에 의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Wikipedia. Mehmed Paša Sokolović Bridge. ; https://en.wikipedia.org/wiki/Mehmed_Pa%C5%A1a_Sokolovi%C4%87_Bridge)

 

작가는 다리를 둘러싼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삶을 모두 24개로 나누어 풀어내고 있습니다. “먼 발치에서 바라다보면 하얀 다리의 넓은 아치들 사이로 푸른 드리나 강만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다리 위에 있는 모든 것들과 위로는 남녘의 하늘을 품은 비옥하고 기름진 공간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10쪽)” 물론 번역도 참 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담백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은 왜 작가가 ‘발칸의 호메로스’라는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드리나 강에 세워진 다리가 가지는 다양한 의미 가운데는 전략적인 것도 있습니다. 다리 가까이에는 마을의 장터가 자리하고, 강둑을 따라서 사라예보로 향한 길이 이어지고 있어 다리는 사라예보로 향한 길 양끝을 연결시키면서 카사바와 그 주변마을을 이어주고 있다고 적으면서, ‘연결’의 의미를 새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다리와 관련된 전설도 인용하여 신비한 감을 더하기도 합니다. 교각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쌍둥이 남매를 교각에 묻어야 한다는 전설을 비롯하여 이교도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순교한 이슬람 수도사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스만제국의 발칸지배에 대하여 압제였다는 평가와 그렇지 않았다는 평가가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이중적인 평가의 배경이 이해되는 대목이 나옵니다. 메흐메드 파샤로부터 다리건설의 감독을 위임받고 이곳에 온 아비다가는 파샤가 내준 건설자금을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고 주변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일을 시키고는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원성을 사게 되었습니다. 라디사브라는 농부가 나서서 쌓은 다리를 몰래 허물다가 들켜서 처형을 당하는 일까지도 벌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아비다가의 횡포가 중앙정부에 알려지면서 아비다가가 처벌을 받게 되고 새로운 감독관이 파견되어 다리건설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오스만제국이 점령지를 다스리는 관리의 부정부패를 철저하게 감시하여 불만의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기본원칙을 지켰다고 합니다만, 그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원칙을 벗어나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민족이나 종교를 떠나서 한 마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도 있습니다. 18세기 후반 드리나강의 다리까지도 물에 잠길 정도의 대홍수가 있던 날 밤에 흉흉한 물길에 쫓겨 집을 나온 주민들은 한 번도 물이 닿지 않은 메이단의 꼭대기에 있는 집을 찾았는데, 집집마다 모두 문을 활짝 열어 이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던 것입니다. 자연의 힘과 공통적인 불행의 짐은 터키인들과 기독교인, 유대인들을 한데 뭉치게 했습니다. 각 종교의 지도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를 의논했던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무너진 것은 1808년 세르비아가 혁명의회(Revolutionary Parliament)를 구성하고 오스만제국에 저항하면서입니다. 1813년 오스만제국은 20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세르비아의 저항을 제압하였고, 1816d년 부분적인 자율권을 부여하였던 것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세르비아 내 터키인들이 보스니아로 쫓겨났고 그들은 복수의 기회를 찾게 된 것이 시발점이라고 합니다. 반란에 가담한 것으로 의심되는 세르비아인들은 드리나 강의 다리 위에서 처형되었고, 연고가 없는 시체는 강물에 던졌습니다.

 

19세기 말 오스만제국이 쇠퇴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은 주민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통제의 끈을 죄어 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저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터키인들의 집에는 실망과 혼란이 가득 찼고 기독교 신자들의 집에는 경계와 불신이 가득했다. (…) 입성한 오스트리아놈들은 복병을 두려워했다. 터키인들은 오스트리아 놈들을, 세르비아인들은 오스트리아놈들과 터키인들을 두려워했다. 유태인들은 모든 것들과 모든 이들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특히 전시에는 모든 이들이 그들보다 강했기 때문이었다.(183쪽)”

 

이렇게 드리나 강의 다리 부근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생긴 갈등은 19세기를 기점으로 확산된 것이었고, 특히 오스트리아, 독일, 소련 등 유럽 국가들의 부축임이 커다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스만제국이 물러나면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오스트리아에 합병된 반면 세르비아는 독립을 얻었고, 이 지역에 민족주의가 불꽃처럼 일기 시작했습니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고, 전쟁 중에 드리나강의 다리를 두고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가 격돌하는 가운데 폭파되어 무너져 내린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스타리모스트나 드리나 강의 다리가 복구된 것처럼 오래 전부터 이 지역에서 오순도순 살아온 다양한 민족들이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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