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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메이 페일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꼭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존 키팅선생님 같은 분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분 정도의 선생님을 마음속에 우상처럼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입원하신 고등학교 은사님을 뵈려 지방에 다녀왔습니다. 졸업하고서는 처음 뵙는 건데 병문안이 되어서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을 소개해드렸지만, 제가 불편할까봐서 댁에서 가까운 병원에 입원하신 것 같습니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니 치료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새해 첫 리뷰를 소설로 쓰게 되는 것이 저로서는 드문 일입니다만, 은사님을 만나 뵙게 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일입니다. 매튜 퀵의 <러브 메이 페일>은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에 마음에 담았던 소설가의 꿈을 뒤늦게 이루게 된 여자 주인공 포샤 케인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포샤 케인이지만 단독 주인공이 아니라 그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문학교사 네이트 버논, 그의 어머니 매브 수녀, 학창 시절 케인을 짝사랑했던 척 베이스가 각각 화자로 나와 이야기를 이어가는 공동 주인공의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도 등장하기도 합니다만, 포샤 케인은 네 사람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배역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러브 메이 페일>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셈입니다.
그런데 <러브 메이 페일>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은 삶에서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어 남들과는 다른 길로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뛰어넘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어쩌면 남들보다 부족한 것도 억울한데 그런 이유로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결말로 이끌 수는 없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진정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결국은 더 큰 사랑이 그 실패를 감싸 구원으로 이끌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레브 메이 페일>이라는 제목은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제일버드; jailbird>에 나오는 “사랑은 실패할지 모르지만, 공손함은 항상 승리할 것이다(544쪽)”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http://blog.joins.com/yang412/13340292>을 통하여 커트 보네거트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만, 나름대로의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일버드>는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첫눈에 반했다는 남자의 청혼에 넘어가 결혼한 포샤 케인이 새파란 애인을 집으로 끌어들여 정사를 벌이는 남편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첫 장면의 인상은 허접한 삼류소설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들지만 남편을 사살하는 대신 고향집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선택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계는 운명이라는 신의 섭리에 따라 얽혀 있다는 조금은 구태의연한 느낌으로 바뀌게 됩니다. 운명으로 포장하기는 했지만, 결국 우연이란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은 거의 불가능한 것 아닐까요?
그녀가 부자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남편의 엽색행각 보다는 평소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 컸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꿈꾸는 행복한 결혼은 서로에 대한 배려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그녀의 남편은 몰랐던 것입니다.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모르는 구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네 명의 주인공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등장인물들과의 관계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실 버논선생님과 어머니 매브 수녀의 관계에서도, 척 베이스와 여동생 다니엘과의 관계에서도 느낄 수 있는 점입니다만, 가깝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가까울수록 이해를 더하기 위한 배려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버논선생님을 절망에 빠트렸던 에드몬드와의 관계가 어떻게 정리되는가와 버논선생님의 개 카뮈가 자살했다고 믿는 것에 대한 보완설명이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사는 옛 은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