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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속지 마라 - 내 안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심리학의 진실
스티브 아얀 지음, 손희주 옮김 / 부키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최근에 읽은 <내 마음인데 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까?; http://blog.joins.com/yang412/13802907>를 읽으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상담을 하러 오는 분들이 가지고 오는 문제들은 통제할 수 없는 행동, 마음, 사랑, 일과 꿈, 그리고 나를 가로막는 걱정들, 해결되지 못한 슬픔, 그리고 한없이 커 보이는 결점 등, 주로 심리적 문제들이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중심으로 상담을 하러 오는 분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걱정거리가 생긴 근원을 설명하였습니다. 즉 성장과정에서 만난 정신적 충격이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쳐, 장성한 다음에 성격이나 행동을 지배한다는 이론입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저자의 설명에 빠져드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정말?’이라는 의문의 실체는 심리학을 전공한 저널리스트 스티브 아얀이 쓴 <심리학에 속지 마라>를 읽으면서 밝힐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책에는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심리학에 대한 일반적 앎을 뒤집어야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책을 쓴 스티브 아얀(Steve Ayan)은 독일 뒤셀도르프대학교와 이탈리아 나폴리대학교, 영국 리딩대학교에서 심리학과 문학번역학을 전공하였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원에서 과학저널리즘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현재 독일의 심리학 전문 잡지 『게히른 운트 가이스트』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저자의 배경은 심리학이 안고 있는 문제를 가감 없이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인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이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아 고통을 받는 사람이 늘고 있고, 이런 사람들에게 ‘자아를 직시하라’는 구호를 앞세워 상담을 유도하는 심리상담산업이 호황을 맞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인문학 붐까지 더해지면서 심리학 관련 서적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환자에게 커다란 고통을 일으키는 심각한 심리장애는 분명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우울증, 공포, 중독, 강박과 같은 심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당연히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시험에 대한 공포,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사랑으로 인한 괴로움, 가족 간의 불화, 충족되지 못한 갈망과 같이 우리의 삶에서 흔히 부딪힐 수 있는 간단한 부정적 감정까지도 병으로 진단하고 치료받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심리학에 속지 마라>는 심리학 분야의 내부고발서가 되는 셈입니다. 마치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 제4판>의 작성 책임을 맡았던 앨런 프랜시스교수가 새롭게 나온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 제5판>에 적용된 진단기준들을 지나치게 완화시켜 정신질환을 양산하게 되었다고 비판한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http://blog.joins.com/yang412/13392396>처럼 말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구성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심적 괴로움의 인플레이션을 다루면서 사소한 심리 문제가 왜 이토록 큰 문제로 여겨지는지를 파헤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을 다루며 어째서 심리학이 그토록 쉽게 근거 없이 떠도는 전설이 되었는지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리상담 숭배의 결과를 그려냈다.(17쪽)” 저자는 “쉴 새 없이 자신의 심리를 파악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본래 심리는 그런 목적으로 있는 게 아니거든요(17쪽)”라고 한 쾰른의 정신과 의사 만프레드 뤼츠의 말을 인용하여 심리상담을 남용하는 것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합니다. “끊임없이 자아를 주시하고 자신의 상태를 심리 분야의 기준에 맞춰 측정하다 보면 일상에서 생기는 문제들이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저자는 오늘날 심리산업이 호황을 누리게 된 데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고 진단합니다. 심리학이 만들어낸 그럴듯한 내용을 잘 포장해서 독자의 흥미를 끌어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내려는 심리학적 전략에 따라 마음의 위로자형, 마법의 자장가형, 체크리스트형 그리고 헛똑똑이를 위한 자료형으로 심리학책을 분류합니다. 상담에 나서기 전에 자신의 위상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심리학에 관한 어느 정도 전문적인 책을 내는 것은 그들의 기본적인 행보인 것입니다. 심리학책 역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행복의 처방전을 나누어주고, 스스로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으며, 마음속 깊은 바닥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고 첨병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심리학책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는 대부분의 심리학책이 제공하는 조언이란 것들이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내용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반적인 특성을 자기에게만 해당되는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선택이 일상이 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출근하기에 앞서 어떤 넥타이를 맬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차를 운전할 것인가 아니면 지하철을 탈 것인가, 점심에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등, 전혀 심각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까지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합니다. 어떤 상품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면 새로운 기능을 얹은 상품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최종 결정을 하기 전에 심사숙고하게 되지만, 막상 결정을 한 다음에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을 남기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제목의 시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숲에서 만난 갈림길에서 선택과 배제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은 영국 시인 에드워드 토머스와도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프로스트는 1차 세계대전 무렵 영국에 머물면서 에드워드 토머스와 숲길을 산책하곤 했는데, 미국으로 돌아간 프로스트는 갈림길에서 어느 쪽 길로 갈까 망설이던 토머스를 가볍게 놀리는 느낌을 담은 시 ‘가지 않은 길’을 토머스에게 보냈다는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지 여부로 고민하던 토머스는 이 시를 받고서 군에 입대했고, 2년 뒤 북프랑스 전선에서 전사했다고 합니다. 토머스의 죽음을 조롱할 뜻은 없습니다만 ‘장고 뒤의 악수’가 된 셈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훗날 프로스트는 사람들이 너무 자신의 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그 시는 속임수 시”라고 유감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학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프로스트의 유감표명도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프로스트 전기작가 브라이언 홀은 “프로스트의 시는 사실은 하찮은 결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망설임에 대한 코멘트”라며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가든 가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는 법이라는 뜻”이라고 분석했다고 합니다.(한겨레신문 2015년 12월 23일자 기사. “안철수의 ‘가지 않은 길’”)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병이 되기도 하는 사람을 위하여 스티브 아얀은 세 가지 조언을 합니다. 첫째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선택을 통해서 이미 목적을 이루는데, 다른 해답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옳은 선택을 하려면 반드시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도 편견이다. 우리이게는 자아를 들여다보는 눈이 없다는 점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리치료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가지는 막연한 기대감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내용을 담았습니다만, 저자는 대부분의 심리치료법은 믿을 만한 자료도 별로 없고 약품치료와는 달리 엄격한 법률 자료를 바탕으로 검증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말로 하는 치료만으로 환자가 치유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쏟아져 나오는 심리학 관련 연구논문들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질만합니다. 대체적으로 심리학 관련 연구는 통계학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계자료를 해석하는데 따라서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한스 페터 베크 보른홀트와 한스 헤르만 두벤이 같이 쓴 <알을 낳는 개; http://blog.joins.com/yang412/9167274>를 통해서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리학 분야에서의 통계값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게르트 기거렌처소장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http://blog.joins.com/yang412/13240282>은 북소리에서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
통계적 해석의 오류에 기인하는 심리학의 문제에 더하여 저자는 심리학적 가정의 오류도 심각하다고 지적합니다. 잘못된 심리학적 가정을 증명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가정을 바탕으로 세워진 심리학적 가설 가운데 잘못되었다는 증거들이 이미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신처럼 신봉하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고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잠재의식을 이용한 광고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있습니다. 광고에서의 잠재의식효과(Subliminal effect)는 영화 필름의 프레임에 감추어 둔 영상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커트를 넣어둔 영화를 본 관객들은 갈증을 느끼게 되고 결국 탄산음료를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1951년 미국의 마케팅전문가 제임스 비카리가 주장한 것이지만 이후에 근거 없는 주장이었다는 것을 실토하였다고 합니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위기상황 스트레스해소법(Critical Incident Stress Debriefing; CISD)의 효과 역시 의문부호가 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났던 테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받은 CSID치료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좋지 않은 기억을 자꾸만 건드리는 것보다 그대로 덮어두는 것이 최선책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세월호 참사에 관련된 분들을 위해서라도 참고할 내용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근거가 확실한 것인지 분명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믿어왔던 ‘두뇌 운동으로 치매를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 역시 누군가에 의하여 제기된 다음에 반복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옳은 것으로 믿게 된 일종의 심리학적 미신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은 유연한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요소가 우리의 정신에 반향을 일으킨다는 점, 그리고 이들의 인과관계가 불안정하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정신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개념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용어라는 점 등입니다. 그 결과 준비된 허구와 현실을 혼동하기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심리학의 연구성과를 이해할 때 다음과 같은 점에 주의할 것을 당부합니다. 1. 모든 이론은 임시적이다, 2. 통계적 연관성을 원인과 효과로 혼동하지 말자, 3. 특정 집단에서 얻은 결과를 너무 다급하게 일반화하지 말자, 4. 개개의 경우는 개개의 경우로 놓아두자, 5. 혁신적인 주장은 예외적인 것일 뿐 일반화할 수 없다.(158-159쪽)
그리고 심리학자들이 흔히 다음과 같은 속임수를 쓸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하라고 합니다. 1. 심리학자들은 때때로 근거도 없이 주장을 펼친다, 2. 상식은 이론 뻥튀기의 발판으로 사용된다, 3. 일단 이론에 이름을 붙여 있어 보이게 만든다, 4. 깊은 인상을 남기는 그림과 비유를 이용한다, 5. ‘무의식’을 이론 창출의 노다지로 활용한다, 6. 마치 불편한 진실이나 파장을 일으킬 만한 사실을 품은 척 지식을 포장한다.(170-173쪽)
저자는 심리학이 산업이라고 할 만큼 호황을 누리고 있는 배경에는 대중으로 하여금 불안한 심리상태에 들도록 만드는 심리학의 교묘한 술수가 있었다고 비판합니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사람들이 공연히 자신을 남과 비교하게 만들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삶을 추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좋으면 그것으로 좋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심리학에 휘둘리지 않은 요체가 될 것 같습니다.
혹자는 <심리학에 속지마라> 역시 심리학교본이 아니냐는 의문을 내놓기도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 이 책은 심리학 고발서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