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식물 -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 마키노의 식물일기
마키노 도미타로 지음, 안은미 옮김, 신현철 감수 / 한빛비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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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말걷기를 할 때는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에도 관심을 쏟고는 했습니다. 물론 식물학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서 그때는 이름을 몰라도 카메라에 담아 블로그에 올려두면 꽃박사 블로그 친구들이 이름을 알려주곤 했습니다. 그때는 블로그 친구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참에 나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가도 금세 까먹곤 했습니다. 무엇이든 끈기가 중요한데 그게 잘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건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아무래도 없던 집념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루 한 식물>의 저자인 마키노 도미타로박사 역시 집념으로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경지에 이른 분이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열네살에 관심이 많던 식물을 공부하기 위하여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식물채집을 하면서 독학으로 앎을 쌓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식물을 발견하여 이름을 붙인 것만해도 2377종에 이를 정도라고 합니다. <하루 한 식물>은 하루에 한편씩 식물에 대한 글을 써 석달 열흘, 즉 100일에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서문에서는 하루에 하나의 식물을 주제로 글을 썼다고는 합니다만, 기획에 가름하는 ‘일본 식물 이름 읽고 쓰기’를 비롯하여, 33번째 글인 ‘스물네 살의 지볼트’, 44번째 글은 ‘오노 란잔 선생의 해골’처럼 일본의 식물학에 관련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읽어가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을 적어보면, 먼저 글쓰기는 꾸준하게 일정한 분량만큼 매일 쓰는 것이 역시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매일 한편의 글을 쓰려면 충분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주전공분야가 있어야 주제를 끊이지 않고 이어갈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책의 번역본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인데, 일본의 년호는아무래도 우리에게는 친숙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서기로 변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표현은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어주는 것은 어떨까 싶은 대목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말을 가리키며 사슴이라 말하고...(22쪽)’은 아마도 원저에 지마위록(指馬爲鹿)라고 적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입니다. 진시황제의 환관 조고가 호해를 황제에 올리고 권력을 잡았을 때 중신들을 시험하기 위하여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우긴 사례로부터 온 것입니다. 지마위록이라고 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자가 <하루 한 식물>을 써내려간 가장 큰 이유는 고유한 일본 이름을 가진 식물을 잘못된 한자로 표기하는 경향이 적지 않게 있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바로 잡으려는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자 정도의 위치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그런 경향을 지나치게 거친 표현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양버찌라는 이름은 (…) 앵두의 오류에서 비롯됐다. (…) 걷잡을 수 없이 펴져사는 기세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손 놓고 있는 원예 세게 사람들의 과학적 이성 없음에 가련함을 느낀다. 농업 지도자와 학자들에게 죄를 물어야 마땅하다.(115쪽)’ 저자의 이런 기세는 일반인은 물론 식물학의 대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저자가 위대한 학자라고 칭송해마지 않는 오노 란잔선생도 그의 독설을 피해가지 못한다. 감자는 분명히 중국의 마령서와는 다른 품종인데도 불구하고 오노 란잔선생이 마령서를 감자라고 소개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마령서와 감자! 서로 닮은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세상 사람들은 란잔의 그릇된 학설에 속아 대부분 눈뜬 장님이 됐으니 참으로 딱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어수룩함에 박수를 보낼 따름이다.(22쪽)’


그런데 저자의 주장 가운데 의문이 드는 대목이 없지 않으니 대가의 주장에 토를 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아서 적어봅니다. 왜종려와 당종려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일본에는 두 가지 종류의 종려나무가 자생하는 것 같습니다. 두 종려나무는 단일품종으로 보인다고 했는데, 일본종려가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저자는 중국종려는 일본종려의 변종으로 단정한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유전자검사도 한다는데 정황만으로 가지고 이렇게 단정짓는 것이 타당한지 모르겠습니다. 정황으로 본다면 오히려 일본종려를 당종려의 변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든 저자는 만엽집을 비롯하여 일본의 전통가사에서 노래하고 있는 다양한 식물들을 이끌어와서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류의 책들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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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다시 돌아온다 - 프로이트와 라캉의 사랑론
강응섭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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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마음 한구석에 상처 같은 기억이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첫 사랑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크게 기대했던 책읽기였습니다. 책을 받아보고서야 프로이트로부터 시작해서 라캉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의 흐름을 정리한 내용이었습니다. 흔히 첫사랑하면 성년이 되어 마음이 쏠린 이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저자는 유아기에 맺는 관계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흔히는 유아기에 겪은 일은 대부분 잊혀진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임상에 근거한 정신분석을 통하여 기억되지 않던 부분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유아기적 첫사랑의 관계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상호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첫사랑은 다시 돌아온다>의 전반부에서는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가 생각했던 인간의 정체화과정을 ‘됨의 첫사랑’, ‘가짐의 첫사랑’ 그리고 ‘상호적 첫사랑’의 단계로 설명합니다. 프로이트의 주석가로 활동한 라캉이 제시한 상상계, 상징계 그리고 실재계라는 정신의 삼위체를 통하여 인간의 정체화과정을 설명합니다. 저자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차이에 대하여 라캉이 외부의 것이 내부로 들어오는 관계, 그리고 내부와 외부가 서로 맺는 관계를 말하는 반면, 프로이트는 자체 생산되는 리비도가 내부에 머무르는 관계, 그리고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관계, 또한 외부로 향하던 리비도가 다시 내부로 돌아오는 관계 등을 말하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정신분석학을 잘 알지 못합니다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근간으로 하는 3자 관계(아동-어머니-아버지)와 성적 힘의 역동성에 초점을 맞추어 창시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그 논리를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과학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정신분석이 사례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도 검증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에 관한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어 용어라든가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습니다만, 간간히 우리도 잘 아는 영화의 한 장면을 인용한다던가 해서 이해를 돕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꿈의 해석에 관해서는 긴가민가하는 편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파악하고 있는 다양한 환자정보를 이용하여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점술사의 모습이 겹쳐보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점을 보러 가면 점술사가 의뢰인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만나는 의뢰인이 가진 문제를 알아내는 것는 기술 같은 것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정신분석 전문가는 점술사보다는 훨씬 유리한 입장에 서 있는 셈입니다.


정신분석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가 사랑에 빠지는 사례에 대하여 두 사람이 결혼을 하거나 분석을 포기해야 한다는 두 가지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프로이트가 생각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프로이트 시절의 의사들 가운데 이런 상황이 드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안나O의 사례가 그런 경우인데, 최근에 읽은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http://blog.joins.com/yang412/13919381>에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의사이며 프로이트의 멘토였던 요제프 브로이어박사가 안나O라는 가명으로 프로이트와 토론하였던 여성환자 베르타 파펜하임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치료가 혼란을 겪고 아내와의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갔다는 에피소드가 소개됩니다.


첫사랑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호기심을 부풀렸던 이 책에서 첫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청춘을 달아오르게 했던 그 첫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처음 나와서 만났던 누군가와의 사이에 싹텄던,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사랑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의 관계는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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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책읽기 -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드는 독서법
김세연 지음 / 봄풀출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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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2008년부터 운영해오던 파워블로그제도를 폐지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파워블로그 제도가 블로그 문화의 다양성을 대변하기에 부족했다고’라고는 했지만, ‘파워블로거들의 지나친 상업 활동’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제어할 마땅한 장치를 마련할 수 없었던 한계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조선일보 2016년 4월 23일자 기사. “‘블로거지’들이 망친 파워블로그… 끝내 제 무덤 파다” 참조)


생뚱맞아 보이는 파워블로거제도의 폐지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한 것은 양심선언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독서 후기를 꾸준히 정리하다보니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을 기회가 적지 않습니다. 먼저 읽은 사람의 후기가 좋아서 책을 사게 되는 분도 많기 때문에 생긴 출판계의 관행일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일부러 혹은 저도 모르게 후기의 내용이 긍정적인 색채를 띠기 마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독서 후기에서 좋은 인상을 받아 책을 샀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니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심지어는 ‘이건 아니잖아?’한다면 잘못 쓴 후기에 낚였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독서 후기 쓰는 일이 어려워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4년이 넘게 [북소리]를 이어온 것은 아무래도 생각이 모자라거나 얼굴이 두껍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행인 것은 언젠가부터 저자와는 다른 제 생각을 후기에 적기 시작했던 일입니다. 설사 그 분야의 대가의 책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독서 후기라는 것이 책을 읽은 사람의 생각을 적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아무래도 책을 꾸준하게 읽음으로 해서 쌓인 내공(?)의 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즈음에는 아예 저자가 전하려는 핵심을 간추리려는 노력만큼 저자의 주장에 문제는 없는지 찾는 데도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을 때도 예외 없이 작동하게 되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 새로운 앎을 얻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새로운 앎이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책을 읽지 않음만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점을 일깨우는 책을 오늘 소개하려 합니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만드는 독서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김세연의 <비판적 책읽기>입니다. 이 책의 기획의도가 표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있습니다.


“성공하고 싶은가? 그래서 책을 읽는가? 책을 많이 읽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있다. 그러나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비판하고 평가하지 못하면 성공은커녕 어제와 똑같은 오늘, 달라지지 않는 내일을 보게 될 뿐이다. 의심하지 않는 잘못된 믿음과 사회의 수많은 편견, 책에 부여된 권위를 뿌리치고 비판적으로 읽기 시작해보라. 책 속 지식이 온전히 내 것이 되고,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서 어제와는 달라진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성공만을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비판적으로 책읽기는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비판적 책읽기는 분명 좋은 책 읽는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글쓰기와 논술강의 그리고 작가로 활동한다는데, 막상 책을 읽다보면 구어체에 가깝고 거칠다는 느낌이 들면서 때로는 저자가 주장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저자가 이 글을 읽으면 섭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을 비판적으로 읽어보라고 주문하고 있는 만큼 자신의 책이 비판적으로 읽힐 수도 있다고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핵심인 ‘비판적 책읽기’에는 기본적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책의 얼개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 6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이 책에는 책을 읽는 이유, 비판적 책읽기란, 비판적 책읽기를 가로막는 것, 책을 구별하고 읽는 방법, 비판적으로 책 읽는 방법, 그리고 비판적 책읽기 다음에 할 일 등을 담았습니다.


책을 읽는 이유가 성공을 위한 것이라고 몰아가는 저자는 ‘당신이 책을 읽는 이유가 순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라고 했지만,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집어 드는 경우도 많을 것이며, 가까운 친구의 호들갑으로 호기심이 생겨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순수하지 않은 동기로 책을 읽을 것이라는 저자의 추측에는 공감하지 않을 뿐이며, ‘믿음을 강요하는 책을 읽으면 독자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33쪽)’라는 저자의 주장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사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있는 책들 가운데 제가 읽은 책은 별로 없는 경우가 많고, 장안에 화제를 부른 영화들은 대부분 보지 않은 것을 보면 저는 스스로를 왕따 시키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문체나 글 흐름이 때로는 거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문단에서 주제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을 보면 글쓰기의 핵심은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책읽기를 통하여 마주하게 되는 저자의 논리와 생각을 나의 생각과 비교하여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거나 바꾸게 되는 것인데, 특히 생각이 바뀌게 되면 인생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저자가 정치적 성향을 너무 드러내는 것 같아 불편했다는데, 특히 성향이 다른 편을 보는데 있어 편협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다만 북한에 대하여 “근대국가의 탄생 이후 유래 없는 정권의 3새 세습을 이룬 독재국가(67쪽)”라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점을 어느 정도는 감안할 수도 있겠습니다. 비판이 가능한가 하는 점에 독재국가를 정의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3공화국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하여 주민등록법을 도입했다는 주장은 쉽게 공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해석을 하게 된 계기가 대학시절 헌법학을 강의하던 교수님이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않는 50대인 사람이 있다’라고 소개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았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생신고가 되면 주민번호가 자동으로 부여되니 말입니다. 주민번호가 없으면 생활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우리나라 아닙니까? 주민번호가 없으면 의무는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이 군대의 교육방식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대한민국 군대가 창설되기 이전에 일본의 식민지배시절에 이미 만들어진 것이니 선후를 거꾸로 따지고 있는 셈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공부하던 학교나 저자가 복무하던 군대는 시간적으로 볼 때 이미 권위를 앞세우던 과거와는 달리 변화가 일어나고 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상급생이나 상급자의 눈치나 보던 시절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믿음과, 편견과 권위의식이야 말로 비판의식을 고양시키는데 있어 절대적인 적이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믿음으로부터 편견이 생겨나고, 편견은 다시 권위를 내세우는 주장을 믿게 만드는 순환구조를 만들게 됩니다. 저자의 권위를 너무 의식하다보면 비판적 책읽기가 어려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책읽기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럼 비판적 독서를 어떻게 하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저자는 비판적 책읽기의 시작은 ‘이해’라고 했습니다. 책을 이해하려면 문장 단위로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차’라는 지도에 따라 중요한 부분과 그렇지 못한 구분을 구별하면서 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의 설명이 모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적절하게 질문을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분명치 않은 것이 누구에게 질문을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의문을 가지고 읽어가다 보면 저자가 책 읽는 이를 위한 설명이 뒤따를 것이고, 그 설명으로도 의문이 해소되지 않으면 저자나 혹은 관련 분야의 전문가에게 물어볼 일입니다.


참고로 루이스 세뿔베다가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서 소개한 흥미로운 책읽기 방법을 소개합니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런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연애소설 읽는 노인 45쪽, 열린책들 2009년) 물론 연애소설이기는 합니다만, 생각해볼 점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옛날 천자문을 음독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듯 합니다. ‘한 가지 책을 백번 쯤 되풀이해서 읽으면 분명치 않던 의미가 저절로 환해진다’라는 옛 선비의 독서법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본격적으로 비판적 책읽기 방법으로 넘어가면, 일단 의심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의심이 있어야 비판이 가능한 것입니다. 다음 단계는 주장, 이유, 근거 그리고 전제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하여 읽은 내용을 잘 요약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다음 단계는 주장에 들어있는 실질적인 논리를 비판하는 일입니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종합해보면, 1. 이유와 주장의 상관관계를 검토한다, 2. 이유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타당한지 판단한다, 3. 그 주장의 전제는 무엇인지 파악한다, 4.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201쪽). 중요한 점은 누군가를 비판할 때는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판이 제대로 되려면 오류를 피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는 다섯 가지 오류의 원인을 들었습니다. 1. 바로 직전 원인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류, 2. 눈에 보이는 원인만으로 판단하려는 오류, 3. 결과와 원인을 균등하게 하려는 오류, 4. 좋아하는 결과에 원인을 맞추려는 오류, 5. 진영논리에 매몰된 오류, 등입니다.(214-218쪽) 제목만 읽어도 어떤 의미인지 개략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아이젠버그 경영대학원의 토마스 키다교수가 <생각의 오류; http://blog.joins.com/yang412/12081937>에서 밝힌 오류를 초래하는 5 가지의 인간의 천성이 생각의 오류를 낳는 다는 주장을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1. 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2. 확인하고 싶어한다, 3. 삶에서 운과 우연의 일치가 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4.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5.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6. 잘못된 기억을 갖고 있다. 등입니다.


마지막 결정적으로 중요한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누군가의 주장을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고 나의 주관을 확실하게 세우는 일입니다. 그 일은 자신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즉 누군가의 주장을 의심하고 판단한 다음에 가지게 된 나만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점검하는 단계인 것입니다. 나아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점, 책을 읽은 후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비판적 책읽기의 화룡첨정은 독후감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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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정리의 힘 - 세계의 엘리트가 매일 10분씩 실천하는 감정회복습관
구제 고지 지음, 동소현 옮김 / 다산3.0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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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일이 많아졌습니다. 여러 부서에서 하는 일을 도와주는 일이 입소문(?)이 난 탓인지 조금씩 늘어난 것입니다. 때로는 일이 겹치기도 해서 시간을 안배하느라 고심할 때도 있고, 자연스럽게 외부의 일을 줄여서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묵묵히 일을 해도 되련만 공연히 티를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있던 중에 안성맞춤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긍정심리학스쿨을 설립하고, 감정회복습관과 회복탄력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구제 고지의 <감정 정리의 힘>입니다. 최근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선택된 주제였다고 합니다. 지진이나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 혹은 리먼사태로 인한 금융위기 상황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요소로 지목된 것입니다. 기업에서도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의 하나로 감정회복습관을 꼽고 있다고 합니다.

옛말에 호랑이 등에 올라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형식의 위기상황을 마주치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아주 실무형인 듯합니다. 대부분의 책이 문제사항을 정의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그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만, 저자는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서 ‘감정회복습관트레이닝’을 먼저 설명하고, 감정회복습관의 특징을 들고, 이어서 감정정리를 도와주는 세 가지 습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감정정리를 도와주는 일곱 가지 기술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와 감정 정리의 힘을 설명합니다.

감정회복습관 트레이닝은 역경을 이겨내는 힘을 키우기 위하여 긍정심리학을 바탕으로 개발된 것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회복 능력을 일깨워 고양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감정회복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은 회복력, 완충력, 그리고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감정 정리를 도와주는 세 가지 습관으로는 1. 부정적인 연쇄반의 고리를 그날그날 끊어내는(비우는) 습관, 2. 스트레스를 느낄 때마다 감정회복근육을 단련하는 습관, 3. 가끔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습관을 들었습니다.

감정정리를 도와주는 일곱 가지 기술로는 1. 부정적인 감정의 악순환에서 벗어난다, 2. 쓸모없는 ‘고정관념’을 길들인다, 3. ‘하면 된다’고 믿는 ‘자기 효능감’을 높인다, 4. 자신만의 ‘감정’을 살린다, 5. 정신적 지주가 되는 ‘서포터’를 만든다, 6. ‘감사’라는 긍정적인 감정을 키운다, 7. 힘들었던 과거의 체험으로부터 의미를 찾는다 등입니다. 제목만으로도 개별 기술의 윤곽이 머리에 그려질 정도입니다. 저자의 설명은 더 구체적이라서 쉽게 이해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고정관념의 경우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추방하고, 이치에 맞는 경우에는 수용하며, 중간인 경우에는 길들여서 변화를 꾀한다고 합니다.

1장은 감정회복습관의 전체적인 틀을 소개하고, 2장부터 4장까지는 비우기, 단련하기, 성찰하기 등 세 가지 습관을 고양시키는 구체적인 기술을 설명하는 각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우기는 그야말로 스트레스의 원인을 바로 해결하는 습관입니다. 첫걸음은 스트레스 혹은 분노하는 이유를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운동을 하거나 글로 정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단련하기는 명상을 통하여 호흡을 안정시키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일입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일은 중요한 습관이기도 합니다. 성찰하는 일은 치열하게 일을 하는 가운데 시간을 쪼개서라도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조직의 리더들은 공간, 여행, 그리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사치라고 생각합니다만, 감정회복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조직의 리더들은 특히 혼자만의 시간을 쪼개어 스스로를 돌아볼 뿐 아니라 현안을 깊이 천착한다고 합니다. 살다보면 보고 듣는 것에 대하여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신에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하는 후회를 하게 됩니다. 어떤 상황을 맞아도 불끈하고 감정이 끓어오르지 않는 방법은 역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몸에 익히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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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벼르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습니다. 언젠가 시각장애우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기 위하여 눈을 가리고 길에 나서는 체험을 해보았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한 것과는 정말 다르게 어렵더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실명을 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본 사람은 있을까요?


주제 사마라구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세상을 그려냈습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실명을 하고, 그 남자와 접촉한 모든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실명을 하는 상황입니다. 마치 들불보다 빠르게 전파되는 전염병처럼 그저 같은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실명을 한다는 설정은 분명 의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급성 전염병이라고 해도 잠복기도 없이 발병하거나, 모든 사람이 발병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한 여자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발병이 아주 늦추어지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이 도시를 다스리는 책임자는 급성 전염병의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일단 발병한 사람을 모두 붙들어다 격리시키는 강력한 질병통제 체계를 수립하고, 심지어는 환자와 접촉한 사람까지도 발 빠르게 격리하는 조치를 취하지만, 이 병의 전파력은 발병하는 순간 통제력을 마비시키는 독특한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어떻든 눈먼 사람들을 모아놓은 곳에서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지키는 사람들의 지나친 경계태세로 인하여 환자가 죽어가고, 격리는 했지만, 간병은커녕 그들이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음식과 생필품의 제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필연적으로 악의 무리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주도되던 격리생활이 폭력적인 인물이 등장하면서 왜곡되면서 인간을 비참한 지경으로 몰아갑니다. 쥐꼬리만큼 배급되는 식품을 힘으로 장악하고 금품을 요구하거나, 심지어는 성폭행을 일삼으면서 인간임을 회의케 만드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힘은 묘하게 균형을 맞춘다는 자연계의 변치 않는 원리가 있습니다. 어느 한 편이 상황을 장악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격리시설 안에서도 힘을 휘두르던 집단이 분명 나약해 보이는 한 여성에 의하여 무너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시 희생을 강요당하던 여성에 의하여 불타 죽고 맙니다. 희생을 강요당하던 사람들은 그 사이에 탈출에 성공하지만, 이미 시설을 감시하던 군인들 모두가 눈이 멀어 철수한 상황입니다. 결국 도시의 기능이 마비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무정부상태에서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격리시설에서 같은 병실을 사용하던 일곱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면 생존을 모색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나아집니다. 결국은 처음 실명이 급성전염병처럼 번지는 상황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정말 이럴까 싶을 정도로 바닥까지 추락하지만, 그 가운데서 유일하게 병에 걸리지 않은 한 여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희망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래서 인간세상이 살맛나는 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눈먼 사람들의 시력이 발병했던 것처럼 갑자기 돌아옵니다. 그 구원의 공간은 안과의사의 집입니다. 이런 상황은 의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증상이 갑자기 나빠지는 전염병에서는 고비를 넘기는 순간 빠르게 회복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저자는 익명 속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려했음인지 등장인물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도시에 급성 전염병이 시작할 즈음에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통제능력을 보여주었던 정부가 후속조치에는 전혀 이성적이지 못한 점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전문가 집단은 무엇을 하는지 그저 군을 동원하여 격리하는데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메르스의 확산사태를 떠올린 것은 공연한 일이었을까요? 읽어가면서 점점 심란해지는 자신을 느끼던 힘든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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