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다시 돌아온다 - 프로이트와 라캉의 사랑론
강응섭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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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마음 한구석에 상처 같은 기억이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첫 사랑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크게 기대했던 책읽기였습니다. 책을 받아보고서야 프로이트로부터 시작해서 라캉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의 흐름을 정리한 내용이었습니다. 흔히 첫사랑하면 성년이 되어 마음이 쏠린 이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저자는 유아기에 맺는 관계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흔히는 유아기에 겪은 일은 대부분 잊혀진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임상에 근거한 정신분석을 통하여 기억되지 않던 부분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유아기적 첫사랑의 관계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상호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첫사랑은 다시 돌아온다>의 전반부에서는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가 생각했던 인간의 정체화과정을 ‘됨의 첫사랑’, ‘가짐의 첫사랑’ 그리고 ‘상호적 첫사랑’의 단계로 설명합니다. 프로이트의 주석가로 활동한 라캉이 제시한 상상계, 상징계 그리고 실재계라는 정신의 삼위체를 통하여 인간의 정체화과정을 설명합니다. 저자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차이에 대하여 라캉이 외부의 것이 내부로 들어오는 관계, 그리고 내부와 외부가 서로 맺는 관계를 말하는 반면, 프로이트는 자체 생산되는 리비도가 내부에 머무르는 관계, 그리고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관계, 또한 외부로 향하던 리비도가 다시 내부로 돌아오는 관계 등을 말하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정신분석학을 잘 알지 못합니다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근간으로 하는 3자 관계(아동-어머니-아버지)와 성적 힘의 역동성에 초점을 맞추어 창시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그 논리를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과학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정신분석이 사례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도 검증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에 관한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어 용어라든가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습니다만, 간간히 우리도 잘 아는 영화의 한 장면을 인용한다던가 해서 이해를 돕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꿈의 해석에 관해서는 긴가민가하는 편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파악하고 있는 다양한 환자정보를 이용하여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점술사의 모습이 겹쳐보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점을 보러 가면 점술사가 의뢰인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만나는 의뢰인이 가진 문제를 알아내는 것는 기술 같은 것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정신분석 전문가는 점술사보다는 훨씬 유리한 입장에 서 있는 셈입니다.


정신분석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가 사랑에 빠지는 사례에 대하여 두 사람이 결혼을 하거나 분석을 포기해야 한다는 두 가지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프로이트가 생각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프로이트 시절의 의사들 가운데 이런 상황이 드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안나O의 사례가 그런 경우인데, 최근에 읽은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http://blog.joins.com/yang412/13919381>에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의사이며 프로이트의 멘토였던 요제프 브로이어박사가 안나O라는 가명으로 프로이트와 토론하였던 여성환자 베르타 파펜하임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치료가 혼란을 겪고 아내와의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갔다는 에피소드가 소개됩니다.


첫사랑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호기심을 부풀렸던 이 책에서 첫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청춘을 달아오르게 했던 그 첫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처음 나와서 만났던 누군가와의 사이에 싹텄던,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사랑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의 관계는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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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책읽기 -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드는 독서법
김세연 지음 / 봄풀출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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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2008년부터 운영해오던 파워블로그제도를 폐지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파워블로그 제도가 블로그 문화의 다양성을 대변하기에 부족했다고’라고는 했지만, ‘파워블로거들의 지나친 상업 활동’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제어할 마땅한 장치를 마련할 수 없었던 한계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조선일보 2016년 4월 23일자 기사. “‘블로거지’들이 망친 파워블로그… 끝내 제 무덤 파다” 참조)


생뚱맞아 보이는 파워블로거제도의 폐지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한 것은 양심선언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독서 후기를 꾸준히 정리하다보니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을 기회가 적지 않습니다. 먼저 읽은 사람의 후기가 좋아서 책을 사게 되는 분도 많기 때문에 생긴 출판계의 관행일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일부러 혹은 저도 모르게 후기의 내용이 긍정적인 색채를 띠기 마련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독서 후기에서 좋은 인상을 받아 책을 샀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니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심지어는 ‘이건 아니잖아?’한다면 잘못 쓴 후기에 낚였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독서 후기 쓰는 일이 어려워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4년이 넘게 [북소리]를 이어온 것은 아무래도 생각이 모자라거나 얼굴이 두껍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행인 것은 언젠가부터 저자와는 다른 제 생각을 후기에 적기 시작했던 일입니다. 설사 그 분야의 대가의 책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독서 후기라는 것이 책을 읽은 사람의 생각을 적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아무래도 책을 꾸준하게 읽음으로 해서 쌓인 내공(?)의 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즈음에는 아예 저자가 전하려는 핵심을 간추리려는 노력만큼 저자의 주장에 문제는 없는지 찾는 데도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을 때도 예외 없이 작동하게 되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 새로운 앎을 얻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새로운 앎이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책을 읽지 않음만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점을 일깨우는 책을 오늘 소개하려 합니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만드는 독서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김세연의 <비판적 책읽기>입니다. 이 책의 기획의도가 표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있습니다.


“성공하고 싶은가? 그래서 책을 읽는가? 책을 많이 읽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있다. 그러나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비판하고 평가하지 못하면 성공은커녕 어제와 똑같은 오늘, 달라지지 않는 내일을 보게 될 뿐이다. 의심하지 않는 잘못된 믿음과 사회의 수많은 편견, 책에 부여된 권위를 뿌리치고 비판적으로 읽기 시작해보라. 책 속 지식이 온전히 내 것이 되고,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서 어제와는 달라진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성공만을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비판적으로 책읽기는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비판적 책읽기는 분명 좋은 책 읽는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글쓰기와 논술강의 그리고 작가로 활동한다는데, 막상 책을 읽다보면 구어체에 가깝고 거칠다는 느낌이 들면서 때로는 저자가 주장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저자가 이 글을 읽으면 섭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을 비판적으로 읽어보라고 주문하고 있는 만큼 자신의 책이 비판적으로 읽힐 수도 있다고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핵심인 ‘비판적 책읽기’에는 기본적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책의 얼개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 6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이 책에는 책을 읽는 이유, 비판적 책읽기란, 비판적 책읽기를 가로막는 것, 책을 구별하고 읽는 방법, 비판적으로 책 읽는 방법, 그리고 비판적 책읽기 다음에 할 일 등을 담았습니다.


책을 읽는 이유가 성공을 위한 것이라고 몰아가는 저자는 ‘당신이 책을 읽는 이유가 순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라고 했지만,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집어 드는 경우도 많을 것이며, 가까운 친구의 호들갑으로 호기심이 생겨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순수하지 않은 동기로 책을 읽을 것이라는 저자의 추측에는 공감하지 않을 뿐이며, ‘믿음을 강요하는 책을 읽으면 독자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33쪽)’라는 저자의 주장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사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있는 책들 가운데 제가 읽은 책은 별로 없는 경우가 많고, 장안에 화제를 부른 영화들은 대부분 보지 않은 것을 보면 저는 스스로를 왕따 시키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문체나 글 흐름이 때로는 거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문단에서 주제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을 보면 글쓰기의 핵심은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책읽기를 통하여 마주하게 되는 저자의 논리와 생각을 나의 생각과 비교하여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거나 바꾸게 되는 것인데, 특히 생각이 바뀌게 되면 인생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저자가 정치적 성향을 너무 드러내는 것 같아 불편했다는데, 특히 성향이 다른 편을 보는데 있어 편협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다만 북한에 대하여 “근대국가의 탄생 이후 유래 없는 정권의 3새 세습을 이룬 독재국가(67쪽)”라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점을 어느 정도는 감안할 수도 있겠습니다. 비판이 가능한가 하는 점에 독재국가를 정의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3공화국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하여 주민등록법을 도입했다는 주장은 쉽게 공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해석을 하게 된 계기가 대학시절 헌법학을 강의하던 교수님이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않는 50대인 사람이 있다’라고 소개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았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생신고가 되면 주민번호가 자동으로 부여되니 말입니다. 주민번호가 없으면 생활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우리나라 아닙니까? 주민번호가 없으면 의무는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이 군대의 교육방식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대한민국 군대가 창설되기 이전에 일본의 식민지배시절에 이미 만들어진 것이니 선후를 거꾸로 따지고 있는 셈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공부하던 학교나 저자가 복무하던 군대는 시간적으로 볼 때 이미 권위를 앞세우던 과거와는 달리 변화가 일어나고 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상급생이나 상급자의 눈치나 보던 시절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믿음과, 편견과 권위의식이야 말로 비판의식을 고양시키는데 있어 절대적인 적이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믿음으로부터 편견이 생겨나고, 편견은 다시 권위를 내세우는 주장을 믿게 만드는 순환구조를 만들게 됩니다. 저자의 권위를 너무 의식하다보면 비판적 책읽기가 어려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책읽기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럼 비판적 독서를 어떻게 하는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저자는 비판적 책읽기의 시작은 ‘이해’라고 했습니다. 책을 이해하려면 문장 단위로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차’라는 지도에 따라 중요한 부분과 그렇지 못한 구분을 구별하면서 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의 설명이 모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적절하게 질문을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분명치 않은 것이 누구에게 질문을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의문을 가지고 읽어가다 보면 저자가 책 읽는 이를 위한 설명이 뒤따를 것이고, 그 설명으로도 의문이 해소되지 않으면 저자나 혹은 관련 분야의 전문가에게 물어볼 일입니다.


참고로 루이스 세뿔베다가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서 소개한 흥미로운 책읽기 방법을 소개합니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런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연애소설 읽는 노인 45쪽, 열린책들 2009년) 물론 연애소설이기는 합니다만, 생각해볼 점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옛날 천자문을 음독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듯 합니다. ‘한 가지 책을 백번 쯤 되풀이해서 읽으면 분명치 않던 의미가 저절로 환해진다’라는 옛 선비의 독서법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본격적으로 비판적 책읽기 방법으로 넘어가면, 일단 의심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의심이 있어야 비판이 가능한 것입니다. 다음 단계는 주장, 이유, 근거 그리고 전제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하여 읽은 내용을 잘 요약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다음 단계는 주장에 들어있는 실질적인 논리를 비판하는 일입니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종합해보면, 1. 이유와 주장의 상관관계를 검토한다, 2. 이유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타당한지 판단한다, 3. 그 주장의 전제는 무엇인지 파악한다, 4.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등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201쪽). 중요한 점은 누군가를 비판할 때는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판이 제대로 되려면 오류를 피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는 다섯 가지 오류의 원인을 들었습니다. 1. 바로 직전 원인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류, 2. 눈에 보이는 원인만으로 판단하려는 오류, 3. 결과와 원인을 균등하게 하려는 오류, 4. 좋아하는 결과에 원인을 맞추려는 오류, 5. 진영논리에 매몰된 오류, 등입니다.(214-218쪽) 제목만 읽어도 어떤 의미인지 개략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아이젠버그 경영대학원의 토마스 키다교수가 <생각의 오류; http://blog.joins.com/yang412/12081937>에서 밝힌 오류를 초래하는 5 가지의 인간의 천성이 생각의 오류를 낳는 다는 주장을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1. 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2. 확인하고 싶어한다, 3. 삶에서 운과 우연의 일치가 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4.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5.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6. 잘못된 기억을 갖고 있다. 등입니다.


마지막 결정적으로 중요한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누군가의 주장을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고 나의 주관을 확실하게 세우는 일입니다. 그 일은 자신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즉 누군가의 주장을 의심하고 판단한 다음에 가지게 된 나만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점검하는 단계인 것입니다. 나아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점, 책을 읽은 후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비판적 책읽기의 화룡첨정은 독후감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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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정리의 힘 - 세계의 엘리트가 매일 10분씩 실천하는 감정회복습관
구제 고지 지음, 동소현 옮김 / 다산3.0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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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일이 많아졌습니다. 여러 부서에서 하는 일을 도와주는 일이 입소문(?)이 난 탓인지 조금씩 늘어난 것입니다. 때로는 일이 겹치기도 해서 시간을 안배하느라 고심할 때도 있고, 자연스럽게 외부의 일을 줄여서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묵묵히 일을 해도 되련만 공연히 티를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있던 중에 안성맞춤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긍정심리학스쿨을 설립하고, 감정회복습관과 회복탄력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구제 고지의 <감정 정리의 힘>입니다. 최근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선택된 주제였다고 합니다. 지진이나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 혹은 리먼사태로 인한 금융위기 상황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요소로 지목된 것입니다. 기업에서도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의 하나로 감정회복습관을 꼽고 있다고 합니다.

옛말에 호랑이 등에 올라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형식의 위기상황을 마주치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아주 실무형인 듯합니다. 대부분의 책이 문제사항을 정의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그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만, 저자는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서 ‘감정회복습관트레이닝’을 먼저 설명하고, 감정회복습관의 특징을 들고, 이어서 감정정리를 도와주는 세 가지 습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감정정리를 도와주는 일곱 가지 기술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와 감정 정리의 힘을 설명합니다.

감정회복습관 트레이닝은 역경을 이겨내는 힘을 키우기 위하여 긍정심리학을 바탕으로 개발된 것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회복 능력을 일깨워 고양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감정회복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은 회복력, 완충력, 그리고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감정 정리를 도와주는 세 가지 습관으로는 1. 부정적인 연쇄반의 고리를 그날그날 끊어내는(비우는) 습관, 2. 스트레스를 느낄 때마다 감정회복근육을 단련하는 습관, 3. 가끔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습관을 들었습니다.

감정정리를 도와주는 일곱 가지 기술로는 1. 부정적인 감정의 악순환에서 벗어난다, 2. 쓸모없는 ‘고정관념’을 길들인다, 3. ‘하면 된다’고 믿는 ‘자기 효능감’을 높인다, 4. 자신만의 ‘감정’을 살린다, 5. 정신적 지주가 되는 ‘서포터’를 만든다, 6. ‘감사’라는 긍정적인 감정을 키운다, 7. 힘들었던 과거의 체험으로부터 의미를 찾는다 등입니다. 제목만으로도 개별 기술의 윤곽이 머리에 그려질 정도입니다. 저자의 설명은 더 구체적이라서 쉽게 이해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고정관념의 경우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추방하고, 이치에 맞는 경우에는 수용하며, 중간인 경우에는 길들여서 변화를 꾀한다고 합니다.

1장은 감정회복습관의 전체적인 틀을 소개하고, 2장부터 4장까지는 비우기, 단련하기, 성찰하기 등 세 가지 습관을 고양시키는 구체적인 기술을 설명하는 각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우기는 그야말로 스트레스의 원인을 바로 해결하는 습관입니다. 첫걸음은 스트레스 혹은 분노하는 이유를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운동을 하거나 글로 정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단련하기는 명상을 통하여 호흡을 안정시키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일입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일은 중요한 습관이기도 합니다. 성찰하는 일은 치열하게 일을 하는 가운데 시간을 쪼개서라도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조직의 리더들은 공간, 여행, 그리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사치라고 생각합니다만, 감정회복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조직의 리더들은 특히 혼자만의 시간을 쪼개어 스스로를 돌아볼 뿐 아니라 현안을 깊이 천착한다고 합니다. 살다보면 보고 듣는 것에 대하여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신에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하는 후회를 하게 됩니다. 어떤 상황을 맞아도 불끈하고 감정이 끓어오르지 않는 방법은 역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몸에 익히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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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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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벼르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습니다. 언젠가 시각장애우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기 위하여 눈을 가리고 길에 나서는 체험을 해보았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한 것과는 정말 다르게 어렵더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실명을 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본 사람은 있을까요?


주제 사마라구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세상을 그려냈습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실명을 하고, 그 남자와 접촉한 모든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실명을 하는 상황입니다. 마치 들불보다 빠르게 전파되는 전염병처럼 그저 같은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실명을 한다는 설정은 분명 의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급성 전염병이라고 해도 잠복기도 없이 발병하거나, 모든 사람이 발병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한 여자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발병이 아주 늦추어지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이 도시를 다스리는 책임자는 급성 전염병의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일단 발병한 사람을 모두 붙들어다 격리시키는 강력한 질병통제 체계를 수립하고, 심지어는 환자와 접촉한 사람까지도 발 빠르게 격리하는 조치를 취하지만, 이 병의 전파력은 발병하는 순간 통제력을 마비시키는 독특한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어떻든 눈먼 사람들을 모아놓은 곳에서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지키는 사람들의 지나친 경계태세로 인하여 환자가 죽어가고, 격리는 했지만, 간병은커녕 그들이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음식과 생필품의 제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필연적으로 악의 무리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주도되던 격리생활이 폭력적인 인물이 등장하면서 왜곡되면서 인간을 비참한 지경으로 몰아갑니다. 쥐꼬리만큼 배급되는 식품을 힘으로 장악하고 금품을 요구하거나, 심지어는 성폭행을 일삼으면서 인간임을 회의케 만드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힘은 묘하게 균형을 맞춘다는 자연계의 변치 않는 원리가 있습니다. 어느 한 편이 상황을 장악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격리시설 안에서도 힘을 휘두르던 집단이 분명 나약해 보이는 한 여성에 의하여 무너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시 희생을 강요당하던 여성에 의하여 불타 죽고 맙니다. 희생을 강요당하던 사람들은 그 사이에 탈출에 성공하지만, 이미 시설을 감시하던 군인들 모두가 눈이 멀어 철수한 상황입니다. 결국 도시의 기능이 마비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무정부상태에서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격리시설에서 같은 병실을 사용하던 일곱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면 생존을 모색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나아집니다. 결국은 처음 실명이 급성전염병처럼 번지는 상황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정말 이럴까 싶을 정도로 바닥까지 추락하지만, 그 가운데서 유일하게 병에 걸리지 않은 한 여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희망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래서 인간세상이 살맛나는 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눈먼 사람들의 시력이 발병했던 것처럼 갑자기 돌아옵니다. 그 구원의 공간은 안과의사의 집입니다. 이런 상황은 의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증상이 갑자기 나빠지는 전염병에서는 고비를 넘기는 순간 빠르게 회복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저자는 익명 속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려했음인지 등장인물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도시에 급성 전염병이 시작할 즈음에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통제능력을 보여주었던 정부가 후속조치에는 전혀 이성적이지 못한 점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전문가 집단은 무엇을 하는지 그저 군을 동원하여 격리하는데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메르스의 확산사태를 떠올린 것은 공연한 일이었을까요? 읽어가면서 점점 심란해지는 자신을 느끼던 힘든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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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 개정판 Meaning of Life 시리즈 11
어빈 얄롬 지음, 임옥희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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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에 [북소리]코너를 시작하고 두어 달쯤 지난 다음이라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강원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시는 김선희교수님의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 http://blog.joins.com/yang412/12474996>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하여 철학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모색해본다는 내용입니다. 리뷰를 마무리하면서 어빈 얄롬교수의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싶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당시에는 책이 절판되어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추측에 머물렀던 것인데, 이번에 읽어보니 확신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인연도 있고, 책을 읽어보니 생각거리가 많아서 [북소리]에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어빈 얄롬는 세계적인 정신과 의사이자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정신과의 명예교수입니다. 정신의학분야의 전문서적도 저술하는 한편 심리치료에 관한 베스트셀러 소설의 작가로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미에 붙여둔 작가노트에는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가 사실과 허구를 잘 엮어낸 팩션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1882년의 빈은 정신요법의 메카이기도 했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적 구성요소인 니체의 절망, 브로이어의 정신적 고뇌, 안나 O(베르타 파펜하임), 루 살로메, 브로이어와 프로이트의 관계, 정신분석 치료법의 동향 등은 1882년 당시 실재했던 사실들이라고 합니다.


출판사가 요약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정신분석 기법이 아직 등장하지 않은 1882년, 성공한 의사 요제프 브로이어는 환자 베르타 파펜하임에 대한 강박적 욕망과 중년의 위기로 절망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그에게 묘령의 여인 루 살로메로부터 은밀하게 한 무명 철학자를 치료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환자는 바로 만성적인 편두통과 발작, 루 살로메와의 실연으로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던 니체였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니체는 치료를 거부하고, 브로이어는 생각 끝에 기발한 거래를 제안한다. 자신의 절망을 니체가 철학으로 치유하고, 니체의 질병은 자신이 의학으로 치료하자는 것. 니체가 이를 수락함으로써 두 사람은 ‘대화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속마음을 감춘 채 치열한 지적 공방을 벌이며 마음의 벽을 높게 쌓던 두 사람은, 차츰 가면을 벗고 각자의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우정이 깊어지는 가운데 브로이어는 마침내 니체의 철학적 상담을 통해 자기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실존적 불안의 실체를 직시하게 되는데….” 이야기의 전개가 물 흐르듯 유연하고, 상황마다의 심리묘사가 뛰어나서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책을 읽고 난 다음에도 여운이 길게 남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우선은 김선희교수가 주장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브로이어박사는 아내와 함께 베네치아를 여행하는 동안 루 살로메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헤어진 친구 니체교수가 절망으로 자살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그의 절망을 치료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브로이어박사는 절망을 의학적 증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모호하고 부정확하며 관념적인 것이라서 의학적 치료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로이어박사가 니체교수를 맡게 된 것은 아름다운 루 살로메의 부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루 살로메는 브로이어박사와 니체교수의 만남을 주선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루 살로메와의 만남과 이별에서 니체는 환희와 절망을 오갔고, 절망을 딛고 일어나 창조를 일구어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루 살로메가 가진 묘한 재능이 일조를 한 셈인데, 그녀는 당대의 수많은 창조적 인물들의 내면에 불을 질러 자극하는 특출한 능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니체가 그랬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랬던 것입니다. 니체와 루 살로메의 관계는 고명섭기자가 <니체극장; http://blog.joins.com/yang412/12970004>에서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고명섭 지음, 니체극장 311-351쪽, 김영사, 2012년).


니체교수를 진찰한 브로이어박사는 그의 지독한 편두통치료를 위하여 입원을 제안하는데, 편두통을 빌미로 니체교수의 자살의도를 확인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정작 니체교수가 치료를 거부하고 떠나려 하자 자신의 절망을 니체교수가 철학으로 치유하고, 니체교수의 편두통은 자신이 의학으로 치료해보자는 기발한 제안을 하게 됩니다. 브로이어박사의 절망은 안나 O라는 익명의 젊은 여자환자에게 빠져들었다가 아내의 강압으로 관계를 정리한 뒤에 생긴 것으로 설정하고 니체교수에게 치료를 부탁한 것입니다. 그런데 니체교수와 대화를 이어면서 설정했던 절망이 실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의학의 길에 들어서면서 환자와의 감정이 깊어지는 것에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적절한 관계로 윤리적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환자와의 관계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어떻든 니체교수는 브로이어박사의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철학이 인간의 관념적 문제에 대하여 해결방안을 내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응용철학의 영역을 시도하는 셈입니다. 환자진료를 두고 간섭하는 아내와의 갈등이 깊어가고 있는 브로이어박사에게 니체교수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버리고 자기 인생을 탐구하는데 바쳐야 한다’(288쪽)라고 하면서 사고실험을 해볼 것을 권유합니다. 드디어 브로이어박사는 프로이트박사에게 최면요법을 부탁하게 됩니다. 스스로 최면상태에 들어 니체교수가 권유한 자유로의 도피를 경험하려는 것입니다. 최면상태에서 브로이어 박사는 아내 마틸데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집을 떠나 안나O가 입원하고 있는 요양원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향하던 마음이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돌아섭니다. 다음은 아내의 성화로 해고했던 에바를 만나 도움을 얻고자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이미 돌아섰다는 것을 확인하였을 뿐입니다. 브로이어박사가 향한 곳은 이야기가 시작된 베네치아입니다. 베네치아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 자신을 변모시키기 위하여 수염을 깍고 적당한 옷가지를 찾지만 그는 결국 아내 마틸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브로이어는 부자집 딸인 마틸데와 결혼함으로써 사회적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었지만, 반대급부적으로 아내가 자신을 구속한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녀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 그는 다른 여자들, 다른 삶을 경험할 자유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아내를 떠나 자유를 얻은 상황에서 또 다른 구속을 찾아 안나O 그리고 에바를 찾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진실을 선택해야 한다’라는 니체교수의 조언대로 아내와의 결혼은 자신이 결정한 선택인 만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결국 브로이어박사는 니체교수의 철학적 사유를 통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절망을 치유하는데 성공한 셈입니다. 우리 시대에서 많은 브로이어박사를 만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자신의 절망이 잘못된 생각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찾게 되었다고 말한 브로이어박사는 그동안 접근하지 못하던 문제, 니체교수에게 비슷한 문제는 없는가 묻습니다. 루 살로메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라고 압박한 것입니다. 니체교수도 루 살로메와의 관계를 털어놓으면서, 브로이어교수가 안나O와의 관계로 인한 절망을 치유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신 또한 루 살로메와의 관계로 절망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브로이어박사 역시 루 살로메의 요구로 자신이 니체교수의 진료를 맡게 되었다고 고백하자 니체교수가 발작을 일으킵니다. 니체교수를 진정시킨 다음 두 사람은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습니다. 그 과정에서 루 살로메의 실체를 깨닫게 된 니체교수는 눈물을 흘립니다. 루 살로메가 허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니체교수는 자신의 눈물에 대하여 홀로 죽어가는 것에 대하여 브로이어에게 말하면서 역설적으로 안도감을 느꼈으며, 그러한 느낌을 브로이어와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강렬한 감동 때문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철학자의 눈물을 일반인과는 그 의미까지도 다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에 있어 눈물을 마음을 정화시키는 치료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브로이어박사와 니체교수의 이야기에서 욕망의 허상을 깨닫게 된 것도 큰 깨달음입니다만, 어느 의사에게도 중요한 두 가지를 다시 새긴 것도 수확입니다. 의사-환자와의 관계는 적절한 거리가 중요하다는 점은 앞서 말씀드렸고, 두 번째 중요한 점은 의사가 환자의 질병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방식입니다. 니체교수는 만난 브로이어박사는 90분에 걸쳐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철저하게 진찰을 합니다. 정리해보면, “우선 환자가 자기의 병에 관해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들은 다음 체계적으로 각각의 증상을 조사했다. 증상의 처음 양상,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 치료에 대한 반응을 기록했다. 다음 단계는 몸에 있는 모든 기관계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머리끝에서 시작해 점점 내려와 발끝까지 샅샅이 살폈다. (…) 이와 같은 기능검사는 환자의 기억과 일일이 대조를 거쳐 아무 것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했다. 브로이어는 심지어 이미 진단을 확신하는 경우에도 그 어떤 것도 빼먹지 않았다. 다음으로 환자의 병력을 주의 깊게 살폈다. 환자의 어린 시절 건강 상태, 부모와 형제들의 건강상태, 직업 선택, 사회생활, 군 복무, 지리적 이동, 식습관과 여가 시간 선호도 등 생활의 다른 측면들을 샅샅이 살폈다. 마지막 단계는 통찰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지금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었다.(90-91쪽)”


여기 요약한 내용만을 보면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에서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에서 환자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이유로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중심으로 포괄적인 검사를 진행하고 검사결과에 따라서 문제를 압축해 들어가는 접근방식이 우리나라의 의료현장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와 관련하여 검사실 검사에 대한 브로이어박사의 견해는 참고할 만합니다. “빈 의대에서는 자네에게 뭘 가르친 게야? 오감으로 검사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프로이트박사? 실험실 테스트는 잊어버리게. 그건 유대인 의학이야. 실험실 결과는 자네가 이미 오감으로 검사한 것을 확인해주는 것뿐일세.(130쪽)” 요즈음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검사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에 이세돌기사와 대국에서 승리함으로써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알파고의 다음 목표가 의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환자를 두고 누가 빠른 시간에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가를 두고 시합을 한다면 이런 방식의 진료에 익숙해진 우리나라의 어느 의사도 알파고를 이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니체교수의 수많은 저작물에 담긴 내용을 인용하고 있는데, 지나치게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보로이어박사가 니체교수를 처음 진찰할 때 <즐거운 학문>에 나오는 ‘죽은 자의 최후의 보상은 더 이상 죽지 않으리라!’라는 대목을 인용합니다.(115쪽). 아마도 제가 읽은 <즐거운 지식>이 같은 책이 아닐까 싶어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저자가 인용한 대목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농담, 음모 그리고 복수’라는 제목으로 된 독일식 압운의 서곡과 모두 5부로 구성된 <즐거운 지식>은 아주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짧은 경구의 형식을, 어떤 것들은 엽편소설(葉篇小說)처럼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를 읽고 난 느낌을 정리해보면, 가볍지 않은 두께만큼이나 생각거리가 많은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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