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천국, 쿠바를 가다 - 세계적 의료모범국 쿠바 현지 리포트
요시다 타로 지음,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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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의료체계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아무래도 마이클 무어감독의 2007년 작 영화 <시코>가 개봉된 다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체계를 쿠바식 무상의료체계와 비교하여 충격을 안겨준 영화입니다. 당시 쿠바식 무상의료체계를 우리나라에 도입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쿠바의 의료체계에 대하여 알려진 바가 많지 않던 터라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바는 없습니다만,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마침 년초에 쿠바를 여행할 기회가 있어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는데, 정말 쿠바에서는 무상으로 진료를 받고 있고, 서구식 무상의료체계에서 드러나는 진료대기의 문제도 없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꿈의 의료체계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도, 여전히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은 남았습니다. 일본 나가노현 농업대학의 요시다 다로교수가 쓴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는 쿠바의 무상의료체계에 대한 송가라는 느낌과 함께 저자가 행간에 남긴 의미들이 제가 가지고 있던 의문을 키워준 것 같습니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쿠바가 사회주의혁명에 성공하고, 냉전시대에 소련에 밀착하여 미국정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오랫동안 경제제제를 받아왔습니다. 최근 미국과 국교를 재개하고 있어 낙후된 쿠바경제가 회생의 기회를 맞았다고 합니다. 사실 현대의학은 이미 자본집약적인 산업의 경지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따라서 동원할 자산이 충분치 않았을 쿠바의 의료수준이 경지에 올랐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에서는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점과 맞았다는 점을 같이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책은 모두 네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의료전달체계의 기본이 되는 1차의료를 담당하는 쿠바의 지역예방의료는 저변이 넓고 단단하게 구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의사들이 자유롭게 직장을 선택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쿠바의 의학수준을 다룬 생명공학 부문에서의 성과를 보면 놀랄만하지만, 이 영역의 전반적인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의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이런 성과를 통하여 만든 의약품을 해외에 수출하여 막혀있는 외화의 취득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대체의학을 육성하는 것도 미국 등 서구사회가 대체의학을 추구하는 것과는 관점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구사회의 대체의학은 현대의학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한 틈새시장 같은 것인데, 과학적으로 효능이 입증되지 않아서 주류의료체계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쿠바가 시도하는 대체의학은 제2차 세계대전 무렵의 일본이나 전후 중국 공산당이 채택했던 전통의학으로 무너진 현대의학 체계를 메웠던 시도에 가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쿠바는 의료를 통하여 라틴아메리카지역의 중심에 서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재난의 현장에 대규모의료진을 보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그리하여 의료를 통한 국제협력을 꾀하는 전략인 듯합니다. 인구 1100만 정도의 국가에서 연간 1만 명이 넘는 의사를 배출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한명의 의사를 교육시키려면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1960년 쿠바혁명이 일어난 직후 새로 배출된 의사는 330명이었습니다. 쿠바 최대의학교인 아바나의과대학에는 2만8천명이 재학하고 있다고 합니다. 쿠바의 의학교육이 6년제임을 고려한다면 년간 5천명이 졸업하고 의사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쿠바의 의사수에 대한 자료를 보면 21세기 초반에 인구 1천명당 5명을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뿐 만아니라 2012년 세계 68개국에 파견된 쿠바 의료인력은 의사 1만5천명을 비롯하여 3만9천여 명에 달했는데, 여기에는 베네주엘라에 파견된 쿠바의료인력 3만명은 제외한 것입니다. 베네주엘라정부는 대신 하루 9만 2천 배럴의 석유를 공급했습니다. 구 소련이 무너지고 쿠바에 대한 지원이 끊어진 것에 대한 대응전략이기도 합니다.(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4385)


사회주의국가 쿠바가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의학교육의 산물인 의료인력을 국내에 재배치하는 전력으로서의 무상의료체계를 자본주의 국가에서 채택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재난현장에 투입되었다는 의료봉사단을 구성하는 의사들의 경력을 따져보았을 때도 응급의료에 대한 경험이 얼마나 충분했는지 의문이 들었다는 정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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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의 해부
테렌스 데 프레 지음, 차미례 옮김 / 서해문집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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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주제 사마라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http://blog.joins.com/yang412/13929327>를 읽으면서 인간이 극한상황에서 과연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도 서로 협력해서 극복하기보다는 손톱만큼의 힘을 가지로 타인을 위협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타인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는가 하면 타인을 감싸는 존재가 나뉘는 현상이 과연 일어날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와 스탈린이 저지른 참담한 숙청과정에서 인간으로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비참한 처지에 몰렸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그 참상이 어땠는지를 적나라하게 적은 기록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끔찍해서 소개되지 않았거나 소개되었더라도 제가 읽기를 피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정신과의사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http://blog.joins.com/yang412/5396723>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살아남기 위하여 인간성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를 소개하였습니다. 하지만 <생존자>에서는 정말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대우할 수 있는 것인지, 차라리 그들을 편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인간이 가장 무서운 존재인 것 같습니다.


생존자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남긴 기록들을 광범위하게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인용을 읽어가면서 정말 그랬을까? 혹시 기록한 사람이 기억을 하지 못하거나 왜곡된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의 기억의 오류가 점차 확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는 홀로코스트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고전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방대한 자료를 취합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자는 먼저 문학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생존자, 즉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남은 사람들을 경우를 검토합니다. <페스트>, <수선공>,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연옥>, <암병동> 등입니다. 인간이 죽음에 몰리는 다양한 상황을 망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영웅으로 추앙받는 시대는 끝이 났다고 단언합니다. 생존의 의미가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생존자란 “인간으로서의 행동방식을 영위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은 채 공포와 절망을 견디어 낸 사람, 즉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살아남은 사람(30쪽)”이라고 정의합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살아남기 위하여 누군가 타인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단서를 붙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어서 저자는 소설 속의 인물이 아닌 자신이 겪은 일을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살아남으려 노력한 사람들의 기록을 정리합니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남기는 이유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나와 경험을 함께 했던, 그러나 이제는 말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나는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79쪽)”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의무감 때문에 죄의식을 느낄 수가 없었다고 토로하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감정은 상당히 흔들리는 듯합니다. 뇌의식을 논한다는 것은 살아남았기 때문에 죄의식을 느낀다는 것인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하여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힌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 경험은 대체로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적지 않았던 듯합니다. 실제로 <생존자>를 읽어가다 보면 행간에서 묘한 느낌이 오기도 합니다.


어떻든 생존자들이 일관되게 술회하는 점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닥친 운명에 순응해서는 결국은 정신이 피폐해지기기 때문에 기회가 될 때마다 단장을 하고, 먹을 것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은 빅터 프랭클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두 가지 선택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스스로를 건사하는 것도 힘든 판에 남의 사정을 챙길 생각은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겪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자가 더 큰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읽어가다가 책장을 덮고 싶은 생각이 몇 차례나 일었지만, 끝가지 읽어냈던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인간은 인간이엇 위대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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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늘 아픈가 - 건강 강박증에 던지는 닥터 구트의 유쾌한 처방
크리스티안 구트 지음, 유영미 옮김 / 부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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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만, 최근에는 몸이 예전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9년 전에 불어난 체중을 줄이기 위하여 시작한 걷기가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소소한 불편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가 봅니다.


몸이 보내는 소소한 신호를 무시하는 것은 잔병을 키울 수도 있어서 문제가 되지만, 정말 소소한 신호에 목을 매는 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의학이 산업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는 자칫 불필요하게 큰돈을 지출한다거나 건강염려증이라는 불치(?)의 병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는 편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판단해서 병원에 갈 것인지 아니면 대증적인 치료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의학을 공부한 덕을 보는 셈입니다.


이번 주에 소개하는 <나는 왜 늘 아픈 가>는 건강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안내하는 좋은 지침서입니다. 저자는 의학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독일의 신경과 의사 크리스티안 구트 박사입니다. 50살을 앞둔 저자 역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에서 건강검진을 받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현대인의 건강 강박증을 진단하고 대안적 건강 가이드를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든 건강검진을 위하여 가정의학과 선생님을 만나게 된 저자는 검진의가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과 문제제기에 속수무책이었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담배는 피우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해도, 젊어서부터 무절제하게 마셔온 술이나 잘못된 식생활이 늙었을 때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대사이상 검사, 심장 검사, 전신 내시경검사 등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검사를 마치던 날 저자는 검사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퇴근 후 와인으로 자축하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한 잔으로 시작한 와인이 두병으로 끝이 났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저자는 혼자 사는 모양입니다. 와인이 두병이 될 때 잔소리하는 아내가 없었던 것 같아서 말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된 저자는 내친 김에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고민하였다고 합니다.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술과 기름진 음식을 포기하고 세계 최장수 노인으로 등극하는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죽음에 굴복하여 수도사처럼 사는 금욕적인 삶을 포기하고 지금처럼 즐겁게 살다가 보기에도 끔찍한 몰골로 죽음을 맞을 것인가? 저자가 보기에는 어느 것도 매력적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제3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고, 그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그런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의학이 내세우는 무조건적인 약속을 신뢰하고 따를 것인가? 과연 얼마나 예방이 가능하고, 얼마나 건강해질 수 있을까? 운동, 영양, 유전자 검사, 예방… 나는 이런 문들을 좀 더 캐어 들어가고 싶었고, 이런 일로 가장 이득을 얻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나인지, 의사인지, 건강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인간 이성인지.(16쪽)” 현대의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을 읽을 때 저 나름대로 저자의 의도를 짚어보려고 노력합니다. 비전문가가 경험으로 체득한 바를 바탕으로 현대의학을 맹목적으로 부정하는 경우이거나, 전문가이면서도 특정 요법을 강조하는 경우라면, 일단 경계태세를 갖추고 읽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나는 왜 늘 아픈 가>의 경우는 두 가지의 어디에서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단 중립적인 시각으로 건강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왜 늘 아픈 가>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장수, 건강한 노년, 운동, 음식, 흡연, 중독, 대체요법, 감염, 건강검진, 유전자검사, 남녀의 성적 차이, 하이테크 의료서비스, 신종질환, 인터넷 건강정보, 약품 등입니다. 주제는 같지만 논의 대상을 달리한 경우도 있어서 모두 23꼭지로 된 이야깃거리는 어느 하나 소홀한 것이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장수’에 제일 관심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장수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장수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문상을 다니다 보면 돌아가신 분들의 연세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본이 7순이고 9순인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오래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015년 우리나라사람들의 평균수명은 남성은 78.5세이고 여성은 85.1세입니다. 1970년 남성의 평균수명은 58.7세, 여성의 평균수명은 65.6세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변화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고 우리나라의 의학기술이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한데 힘입은 것입니다.


평균수명의 확대로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노화입니다. 노화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암이나 고혈압 당뇨, 치매와 같은 만성질환으로 고통 받을 가능성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저출산과 겹쳐서 노령인구의 비중이 빠르게 커지면서 사회적 부담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노년층을 부양할 젊은이들이 오히려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사회적 갈등의 수위도 같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는 그렇다고 쳐도, 사회와 개인의 공동문제라고 할 건강의 문제에 관해서는 제가 하고 있는 업무와도 관련이 있으니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건강하게 늙어가는 것은 장수보다 더 큰 희망사항이 되고 있습니다. 건강한 노년을 위해서는 젊어서부터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식생활은 물론 운동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관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개인의 건강상태에 간여하는 요인은 식생활이나 운동 이외에도 유전적 소인이나 환경적 요인까지 복잡하게 개입되어 있고, 제시되는 근거라는 것도 집단으로 구분하여 비교한 통계적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한계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적 의미는 분명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도 기름진 음식을 탐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 저자이지만, 적어도 음식물의 섭취량을 조절하는 것보다도 음식물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건강한 음식이 꼭 비쌀 필요도, 맛없을 필요도, 심지어는 건강할 필요도 없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제목만 뽑아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의도를 충분하게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 비타민은 충분히, 2. 고기는 적당히, 3. 단것은 신중하게, 4. 유기농 식품을 우선적으로, 5. 물은 충분히, 6. 알레르기 유발 식품은 멀리, 7. 식사는 균형 있게, 8. 식품 표시 확인도 조심스럽게, 9. 아무튼 먹으라, 등 입니다. 체중을 조절하기 위하여 밥을 굶거나 먹은 것을 도로 토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에너지 욕구를 잠재우려는 시도는 결코 환영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니 ‘더 빨리 저세상으로 하게 될 것’이라고 잘라 말하는군요. 다시 말해서 ‘살고자 한다면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라. 그리고 기왕이면 맛있게 만들어 먹으라’고 합니다.


대체의학에 관하여 두 꼭지나 할애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자리 잡고 있는 대표적인 대체의학은 동종요법입니다.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치료한다(like cures like)”라는 원리를 바탕으로, 건강한 사람에게 투여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고통 받는 환자에게 같은 물질이나 치료제를 사용하는 치료법으로 1796년에 독일의 의사 사무엘 하네만이 이론을 세웠습니다. 동종요법에는 치료제를 매우 소량 투여해도 치료효과를 나타낸다고 하는 용량이론이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성분이 복합되어 있어 어느 성분이 유효한지 분명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독일에서 동종요법이 대중의 호응을 얻은 것은 의외입니다. 저자도 인용했습니다만, 유럽사회가 광우병공포에 떨고 있던 20세기 말 영국 사람들은 특정위험물질이 제거된 쇠고기를 먹고 있을 때에도 독일 사람들은 쇠고기를 멀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완전하게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을 때까지는 피한다는 것인데,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동종요법이 지식인들에게까지 신뢰를 주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저자는 ‘헛똑똑이’들이라고 에둘러 말합니다. 나아가서 더 혁신적이고 소비자들에게 먹힐 수 있는 치료요법을 개발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몇 가지 조언을 적었습니다. 1. 옛 전통을 참조하라, 2.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질병 개념을 개발하라, 3. 근사한 어휘를 사용하라, 4. 연구비가 많이 투입된 논문을 인용하지 말라, 5. 치료에 별난 도구를 활용하라, 등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통할 것 같지 않습니까?


제가 요즘 하고 있는 일 때문인지 유전자검사에 관한 대목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하였습니다. 금년 들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그동안 환자 본인의 부담으로 검사가 이루어지던 유전자검사의 상당수가 급여대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급여대상으로 전환된 유전자검사들은 유전성질환의 원인이 되는 것들도 있고, 암환자에서 발견되는 비유전성 유전자검사들도 있습니다. 유전자검사들은 비용이 천차만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급여 청구되고 있는 유전자검사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유전자검사가 이렇게 많이 시행되고 있었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급여가 되지 않는 유전자검사를 하느라 환자들의 부담이 엄청났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유전자검사가 꼭 필요한 경우에 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들고 있습니다. 유전성 질환을 의심한다면 환자의 가족 가운데 같은 질환을 앓은 사람이 있는가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은데 그런 정보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는 왜 늘 아픈 가>의 저자는 유전자검사의 유용성과 한계를 정확하게 짚고 있습니다. 유전자검사를 통하여 환자와 가족들이 유전성 질환에 걸릴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의사는 치료자가 아니라 예언자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환자는 자신의 주치의가 예언자보다는 치료자의 역할을 잘 하기를 바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유전자검사가 질병의 발생을 예측하는데 있어 아직까지는 완벽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질병은 단일 유전자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유전자들이 서로 얽혀 영향을 나타내야 할 뿐 아니라, 문제는 유전자 이외에도 질병의 발병에 간여하는 요소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유전자를 통하여 질병의 발병을 예측하는 것 역시 통계적 자료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저자도 인용했습니다만,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30퍼센트에서는 ApoE 유전자의 변이가 발견됩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의 10퍼센트에서도 ApoE 유전자의 변이가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ApoE 유전자의 변이가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을 3배 높인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정상인 사람에서 ApoE 유전자의 변이가 관찰되었을 때, 이 사람에게 나중에 알츠하이머병이 생길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치매를 보이는 환자에서 ApoE 유전자의 변이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치료법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유전자검사의 결과가 살아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족쇄처럼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살면서 모르는 것이 약일 수도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유전자검사가 바로 그런 경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3꼭지의 이야기가 모두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옮긴이의 탁월함이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의학독일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너무 딱딱해서 읽는 재미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 잘 읽힙니다. 저자가 쓴 독일어 문장 자체도 재미있을 것 같으면서도 역시 번역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건강문제에 강박증이 있는 분에게도 치료효과가 탁월할 것으로 생각되며 일반 독자 역시 현대의학의 민낯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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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집사 - 집사가 남몰래 기록한 부자들의 작은 습관 53
아라이 나오유키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4.0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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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집사>를 받아들고서 떠오른 의문은 ‘이 시대에도 집사라는 직업이 있는가?’였습니다. 궁궐 같은 집 현관에서 막 도착한 주인을 맞는 근엄한 표정의 집사는 과거시대의 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집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예 그런 집사를 보내주는 회사가 있다는군요. 우리나라는 아니구요. 이웃 일본에서 2008년에 버틀러&컨시어지 라는 집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집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로는 식사 준비와 운전기사 역할은 물론, 재무와 스케줄 관리, 비즈니스 자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양입니다. 문제는 아무나 그런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 회사의 집사서비스를 받으려면 ‘총자산 500억 원 이상, 연 수입 50억 원 이상’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군요.


이런 부자들은 특별한 무엇이 있어서 남의 나라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삶이 좋을 지는 별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남다른 부를 쌓을 수 있었던 특별한 점은 과연 무엇이었는지는 조금 궁금한 것 같습니다. <부자의 집사>는 바로 그런 궁금증을 기록한 책입니다.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53가지의 특별한 습관을 투자비결, 소비원칙, 인간관계, 금전철학 등 4가지로 구분하여 정리했습니다. 저자가 모셨다는 100여명의 부자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인데도 특별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는 것인지 모호하기도 합니다.


부자들의 53가지 습관을 읽다보면 나도 저런 순간이 있었는데 싶습니다. 예를 들면 주식이나 부동산을 파는 시점을 결정하는 원칙 같은 것 말입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집을 팔려고 하는데 집값이 마구 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결정한 가격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 밑에서 꺽이더니 이번에는 마구 떨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집을 팔지 못하고 전세로 내놓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다음에는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 팔려던 집값의 두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팔기로 결심한 시점에서 임자를 결정했습니다. 물론 팔고나서 집값이 계속 올랐지만, 산 분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아서 저도 만족했던 적이 딱 한 번 있습니다. 집을 사고 파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절감하고 업으로 할 일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부자들은 그런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10원짜리 동전의 가치를 알고서 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읽고는 많이 놀랐습니다. 저도 언젠가 10원짜지 동전의 실질가치가 명목가치보다 높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10원짜리 수집하기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화폐를 매점매석하는 것은 범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요? 부자들은 무엇을 살 때 일시불로 사는 습관이 있다는데 저 역시 그런 편입니다. 그리고 경기가 불황일 때라고 해서 지출을 줄이지 않은 편인데, 싼값에 호사를 즐긴다는 부자들과는 달리 내가 무언가를 사면 누군가 행복해질 것 같다는 소박한 생각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자가 되지 못하는가 봅니다. 적어도 부자가 가지고 있다는 습관을 몇 가지는 가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부자들의 인간관계에서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몇 가지 습관을 꼭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계를 맺는 방법이라던가 그렇게 맺은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는가 하는 것들입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연하장입니다. 젊었을 적에는 새해가 되면 연하장을 직접 고르고 문구도 직접 써서 보내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메일로, 그 다음에는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가름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금년 말부터는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연하장을 구해서 평소 존경하는 분들게 보내드려야 하겠습니다.


정리해보면 딱히나 부자가 되어보겠다는 생각은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좋을 것 같은 습관 몇 가지는 챙겨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책읽는 이에 따라서는 부자가 되기 위한 책읽기도 되겠지요. 다만 걱정이 되었던 것은 부자들의 내밀한 것들을 결코 발설하면 안되는 집사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가 이렇게 부자들의 비밀을 까발리고도 사업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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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당한 자의 시선 - 원주민의 관점에서 본 스페인의 아스테카 정복 현대의 지성 160
미겔 레온-포르티야 엮음, 고혜선 옮김, 앙헬 마리아 가리바이 킨타나 나우아틀어번역, 알베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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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멕시코 지역을 지배하던 아즈텍제국(제국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이 불과 500여명의 병사를 이끄는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하여 멸망하였다는 사실이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단편적으로 알기로는 스페인군이 보유한 대포 등 당시 원주민들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신무기의 위력 때문이라고 했지만, 정복자와 원주민은 수적으로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인해전술로 대응했더라도 충분히 격퇴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코르테스가 유카탄반도에 상륙했을 때 그곳에 잡혀 살던 헤로니모 데 아길라르와 마야여인 말린체를 얻었던 것이 행운이었던 것 입니다. 아길라르는 마야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였고, 말린체는 나우아틀어를 구사할 줄 알았기 때문에 스페인어-마야어-나우아틀어로 이어지는 통역으로 아즈텍인들과의 대화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나아가 결정적이었던 것은 유카탄 원주민들 사이에 내려오는 케찰코아틀 신화입니다. 케찰코아틀은 아스텍신화에 나오는 날개달린 뱀의 형상을 한 신으로 뱀은 땅의 권력을 뜻하고 날개는 하늘의 권위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풍요와 평화의 신으로 알려진 케찰코아틀신이 전쟁의 신의 음모로 쫓겨나고 말았던 것인데, 아즈텍사람들은 케찰코아틀이 하얀 얼굴을 하고 돌아온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아즈텍사람들은 코르테스를 처음 만났을 때, 다시 온 케찰코아틀로 착각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쩌면 말린체로부터 케찰코아틀신화를 듣게 된 코르테스가 소문을 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알려진 것들의 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원주민 관점에서 본 스페인의 아즈텍 정복과정을 정리한 <정복당한 자의 시선>입니다. 아즈텍문명은 잉카문명과는 달리 문자가 있었기 때문에 기록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나우아족이 그림과 이야기로 적은 다양한 기록들을 정리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나우아틀 시인들이 남긴 정복에 대한 시가(詩歌), 작가 미상의 <1528년 틀라텔롤코 역사>, 사아군 신부가 집대성한 <플로렌스 고문서>, <틀락스칼라 화첩>, <아우빈 고문서> 등이 있다고 합니다.


아즈텍사람들의 기록을 보면 스페인군이 어림도 없는 군사력으로 압도적 우위의 아즈텍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멕시카-테노치트틀란과 속국들 사이에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되어온 앙금과 아즈텍의 마지막 왕 모테쿠소마의 오판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코르테스는 초반에 접전을 했던 원주민 부족을 유럽에서 가지고 온 신무기로 제압하면서 이들을 복속시켰고, 복속시킨 부족의 전사들을 결집시켜 멕시코로 진격해 들어갔던 것입니다. 즉 500여명으로 상륙했지만, 이내 아즈텍의 본거지를 지키는 군사력에 맞먹는 수준으로 군세를 키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틀락스칼라와 테츠코코 사람들이 대표적인데, 거기에는 이들 부족들에게 전해 내려온 케찰코아틀신화가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즈텍제국의 마지막 왕 모테쿠소마의 오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코르테스가 도래하기 10년전부터 있었던 몇 가지 심상치 않은 징조들은 제국의 멸망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믿었거나, 혹은 케찰코아틀신화를 믿었거나, 모테쿠소마왕은 백인들이 해안에 상륙했다는 소문을 듣고는 이들을 경계하기보다는 영접하는 입장을 취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체가 분명치 않을 때는 확인될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비슷한 시기에 전란을 겪었던 조선의 선조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모테쿠소마왕이 보낸 금으로 세공된 선물은 코르테스의 욕심을 자극했을 것이며, 아즈텍제국은 멸망시켜야 할 대상에 불과하였고, 유럽인 시각에서 보기에 희생제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즈텍 사람들은 야만인으로 보여 전교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살육의 대상이거나....


처음 테노치트틀란으로 영접해 들였던 스페인 군인들이 아즈텍 신전의 축제가 있던 날 끔찍할 살육을 저지르자, 아즈텍 사람들도 더 이상 이들을 영접해 모셔야 할 신이 아니라 싸워야 할 대상으로 보았던 것이고 치열한 전투 끝에 이들을 물리쳤지만, 추가로 도착한 스페인군으로 재무장한 코르테스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복당한 자들의 시선>에서는 스페인 사람의 도래를 암시하는 징조에서부터 아즈텍문명을 도륙한 정복과정이 마무리되기까지의 끔찍하고도 슬픈 과정을 잘 정리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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