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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의 해부
테렌스 데 프레 지음, 차미례 옮김 / 서해문집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주제 사마라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http://blog.joins.com/yang412/13929327>를 읽으면서 인간이 극한상황에서 과연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도 서로 협력해서 극복하기보다는 손톱만큼의 힘을 가지로 타인을 위협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타인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는가 하면 타인을 감싸는 존재가 나뉘는 현상이 과연 일어날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와 스탈린이 저지른 참담한 숙청과정에서 인간으로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비참한 처지에 몰렸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그 참상이 어땠는지를 적나라하게 적은 기록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끔찍해서 소개되지 않았거나 소개되었더라도 제가 읽기를 피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정신과의사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http://blog.joins.com/yang412/5396723>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살아남기 위하여 인간성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를 소개하였습니다. 하지만 <생존자>에서는 정말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대우할 수 있는 것인지, 차라리 그들을 편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인간이 가장 무서운 존재인 것 같습니다.
생존자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남긴 기록들을 광범위하게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인용을 읽어가면서 정말 그랬을까? 혹시 기록한 사람이 기억을 하지 못하거나 왜곡된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인간의 기억의 오류가 점차 확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는 홀로코스트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고전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방대한 자료를 취합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자는 먼저 문학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생존자, 즉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남은 사람들을 경우를 검토합니다. <페스트>, <수선공>,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연옥>, <암병동> 등입니다. 인간이 죽음에 몰리는 다양한 상황을 망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영웅으로 추앙받는 시대는 끝이 났다고 단언합니다. 생존의 의미가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생존자란 “인간으로서의 행동방식을 영위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은 채 공포와 절망을 견디어 낸 사람, 즉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살아남은 사람(30쪽)”이라고 정의합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살아남기 위하여 누군가 타인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단서를 붙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어서 저자는 소설 속의 인물이 아닌 자신이 겪은 일을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살아남으려 노력한 사람들의 기록을 정리합니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남기는 이유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나와 경험을 함께 했던, 그러나 이제는 말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나는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79쪽)”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의무감 때문에 죄의식을 느낄 수가 없었다고 토로하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감정은 상당히 흔들리는 듯합니다. 뇌의식을 논한다는 것은 살아남았기 때문에 죄의식을 느낀다는 것인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하여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힌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 경험은 대체로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적지 않았던 듯합니다. 실제로 <생존자>를 읽어가다 보면 행간에서 묘한 느낌이 오기도 합니다.
어떻든 생존자들이 일관되게 술회하는 점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닥친 운명에 순응해서는 결국은 정신이 피폐해지기기 때문에 기회가 될 때마다 단장을 하고, 먹을 것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은 빅터 프랭클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두 가지 선택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스스로를 건사하는 것도 힘든 판에 남의 사정을 챙길 생각은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겪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자가 더 큰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읽어가다가 책장을 덮고 싶은 생각이 몇 차례나 일었지만, 끝가지 읽어냈던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인간은 인간이엇 위대한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