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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당한 자의 시선 - 원주민의 관점에서 본 스페인의 아스테카 정복 ㅣ 현대의 지성 160
미겔 레온-포르티야 엮음, 고혜선 옮김, 앙헬 마리아 가리바이 킨타나 나우아틀어번역, 알베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지금의 멕시코 지역을 지배하던 아즈텍제국(제국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이 불과 500여명의 병사를 이끄는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하여 멸망하였다는 사실이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단편적으로 알기로는 스페인군이 보유한 대포 등 당시 원주민들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신무기의 위력 때문이라고 했지만, 정복자와 원주민은 수적으로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인해전술로 대응했더라도 충분히 격퇴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코르테스가 유카탄반도에 상륙했을 때 그곳에 잡혀 살던 헤로니모 데 아길라르와 마야여인 말린체를 얻었던 것이 행운이었던 것 입니다. 아길라르는 마야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였고, 말린체는 나우아틀어를 구사할 줄 알았기 때문에 스페인어-마야어-나우아틀어로 이어지는 통역으로 아즈텍인들과의 대화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나아가 결정적이었던 것은 유카탄 원주민들 사이에 내려오는 케찰코아틀 신화입니다. 케찰코아틀은 아스텍신화에 나오는 날개달린 뱀의 형상을 한 신으로 뱀은 땅의 권력을 뜻하고 날개는 하늘의 권위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풍요와 평화의 신으로 알려진 케찰코아틀신이 전쟁의 신의 음모로 쫓겨나고 말았던 것인데, 아즈텍사람들은 케찰코아틀이 하얀 얼굴을 하고 돌아온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아즈텍사람들은 코르테스를 처음 만났을 때, 다시 온 케찰코아틀로 착각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쩌면 말린체로부터 케찰코아틀신화를 듣게 된 코르테스가 소문을 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알려진 것들의 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원주민 관점에서 본 스페인의 아즈텍 정복과정을 정리한 <정복당한 자의 시선>입니다. 아즈텍문명은 잉카문명과는 달리 문자가 있었기 때문에 기록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나우아족이 그림과 이야기로 적은 다양한 기록들을 정리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나우아틀 시인들이 남긴 정복에 대한 시가(詩歌), 작가 미상의 <1528년 틀라텔롤코 역사>, 사아군 신부가 집대성한 <플로렌스 고문서>, <틀락스칼라 화첩>, <아우빈 고문서> 등이 있다고 합니다.
아즈텍사람들의 기록을 보면 스페인군이 어림도 없는 군사력으로 압도적 우위의 아즈텍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멕시카-테노치트틀란과 속국들 사이에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되어온 앙금과 아즈텍의 마지막 왕 모테쿠소마의 오판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코르테스는 초반에 접전을 했던 원주민 부족을 유럽에서 가지고 온 신무기로 제압하면서 이들을 복속시켰고, 복속시킨 부족의 전사들을 결집시켜 멕시코로 진격해 들어갔던 것입니다. 즉 500여명으로 상륙했지만, 이내 아즈텍의 본거지를 지키는 군사력에 맞먹는 수준으로 군세를 키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틀락스칼라와 테츠코코 사람들이 대표적인데, 거기에는 이들 부족들에게 전해 내려온 케찰코아틀신화가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즈텍제국의 마지막 왕 모테쿠소마의 오판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코르테스가 도래하기 10년전부터 있었던 몇 가지 심상치 않은 징조들은 제국의 멸망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믿었거나, 혹은 케찰코아틀신화를 믿었거나, 모테쿠소마왕은 백인들이 해안에 상륙했다는 소문을 듣고는 이들을 경계하기보다는 영접하는 입장을 취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체가 분명치 않을 때는 확인될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비슷한 시기에 전란을 겪었던 조선의 선조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모테쿠소마왕이 보낸 금으로 세공된 선물은 코르테스의 욕심을 자극했을 것이며, 아즈텍제국은 멸망시켜야 할 대상에 불과하였고, 유럽인 시각에서 보기에 희생제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즈텍 사람들은 야만인으로 보여 전교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살육의 대상이거나....
처음 테노치트틀란으로 영접해 들였던 스페인 군인들이 아즈텍 신전의 축제가 있던 날 끔찍할 살육을 저지르자, 아즈텍 사람들도 더 이상 이들을 영접해 모셔야 할 신이 아니라 싸워야 할 대상으로 보았던 것이고 치열한 전투 끝에 이들을 물리쳤지만, 추가로 도착한 스페인군으로 재무장한 코르테스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복당한 자들의 시선>에서는 스페인 사람의 도래를 암시하는 징조에서부터 아즈텍문명을 도륙한 정복과정이 마무리되기까지의 끔찍하고도 슬픈 과정을 잘 정리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