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 - 삶이 흔들릴 때 나를 잡아주는 힘
사이토 다카시, 박성민 / 시공사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에서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어깨너머로 배운 탓인지 동양의 고전을 읽어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왔던 것 같습니다. 평생에 한번은 <논어>를 읽어보아야 한다는데, 최근 들어 책읽기에 몰입하면서 자연스럽게 <논어>를 주해서를 읽을 기회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논어>는 주해서는 물론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의 사이토 다카시교수의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논어>를 비롯한 동양고전을 요즘의 책을 읽듯 한번 쓰윽 읽어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몇 번이고 거듭 읽어야 느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그런 과정을 밟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저자는 <논어>를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가 될 수 있도록 책읽는 이가 흥미를 느낄만한 주제를 골라 쉽게 풀이를 했다고 합니다.


모두 다섯 장으로 구분한 책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1 몸 밖으로 흘러넘치는 지혜, 2. 거침없는 행위, 경계 없는 사고, 3. 피하지 말고 뛰어들어 즐겨라, 4. 쓸모 있는 인격, 5. 인간의 축을 바로 세워라, 등인데, 이런 제목을 보면 저자가 <논어>에서 어떠한 것을 느낄 수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논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논어에서 인용하고 있는 사례 등을 비롯하여 당시의 사회상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논어>의 주해서를 읽어보면 그런 배경들을 설명하면서 공자님 말씀을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전 중국어는 떼어 쓰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해석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공자님 말씀을 해석하는데 있어 주해자의 주관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덕은 외롭지 아니하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라고 푸는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의 의미를 저자는 “여러 덕은 따로따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 각각은 틀림없이 서로 이웃하고 있으며, 하나를 익히면 그 옆에 또 하나의 덕이 따라올 것이다.”라고 이해한다고 풀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하나를 익히면 또 하나의 덕이 따라올 것이라고 복잡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을 터이니 덕을 지키는 것에 힘겨워하지 말라’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공자께서 동이에서 살고 싶어 하셨다고 하는 것은 전국시대 말에 활약한 공빈이 <동이열전>에서 ‘동이는 예의바른 군자의 나라라고 일컬을만하다[동방예의지 군자국야(東方禮義之 君子國也). 그래서 우리 선대 어른 공자께서도 동이에서 살고자 하셨으며 누추하다고 여기지 않으셨다[오선부자 욕거동이 이불이위(吾先夫子 慾居東夷 而不以爲陋)]’라고 한 대목을 인용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논어> 「자한편」을 ‘군자가 그곳에 살면 무엇이 비천할 게 있겠느냐?’라고 대답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조선이 동이의 후손임을 의식한 해석은 아닐까요? 공자께서 동방의 이민족이 사는 땅으로 가서 살겠노라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그런 수준이 낮은 비천한 땅에 가서 어쩌려고 그러십니까?’라고 물은 것에 대한 답변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말입니다.


저자는 공자님을 이해하는데 있어 <논어>에 국한하지 않고 비슷한 시기의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말씀을 담은 <대화편>을 썼음을 인용합니다. 그리고 보니 <논어>와 <대화편>은 그 성격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책의 내용은 공자나 소크라테스가 한 말을 제자들이 정리하여 책으로 꾸민 것이 공통점입니다. 이 둘을 비교하면서 저자는 <논어>가 짧은 반면 플라톤의 저작이 방대한 이유가 사물을 탐구하는 의식 자체의 차이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짧은 저의 생각으로는 어떤 사안을 표음문자인 서양언어로 설명하려면 길어질 수밖에 없지만, 표의문자인 한자는 간략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의 원제목을 <논어력(論語力)>으로 한 것은 <논어>가 주는 생동하는 힘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이 책으로 <논어>의 진경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다만 논어를 이해하는 길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노부 선생님, 안녕 오사카 소년 탐정단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고 보니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 <가면산장 살인사건>에 이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으로는 벌써 세 번째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큰 아이의 독서취향 덕분이기도 합니다. 한때 푹 빠졌던 추리소설이지만 요즈음에는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시노부선생님, 안녕!>은 <오사카 소년탐정단>의 속편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작가가 <오사카 소년탐정단>의 제1화 「시노부선생님의 추리」를 썼던 것이 등단 이듬해였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여고사인 시노부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작을 7년여에 걸쳐 써서 두 권의 책으로 묶어낸 셈입니다. 시노부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작은 이번으로 끝낼 계획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세월이 흘러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초등학교 선생님이고 조연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상황이라서아마도 젊은이를 주독자층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이야기의 구성이 단순하고 복선을 많이 두지 않아서 추리를 쉽께 따라가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읽기에는 다소 맥빠지는 감이 없지 않지만, 빠르게 읽히고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사카라는 지역의 특성을 살아보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만, 주인공인 다케우치 시노부 선생님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보면 직선적이고 시원시원한 것 같습니다. 시노부선생만 해도 “얼굴이 동글동글하게 생긴 미인이지만, ‘오사카 변두리에서 자란 탓에 말투는 빠르고 거칠고, 행동거지는 빠릿빠릿하지만, 촌스런’ 활달한 선생”이라고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 전혀 그려지지 않은 것을 보면 제가 일본사람들과 별로 교류가 없는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아는 일본사람들도 꽤나 있었는데, 학계를 떠나면서 조금씩 정리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노부선생님, 안녕!>에는 모두 여섯 건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학교로 돌아온 시노부선생이 교육현장에 다시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시노부선생님의 부활」이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시노부선생님은 공부중」을 비롯한 네 건의 사건은 학교를 떠나 대학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건들이며, 「시노부선생님의 상경」은 대학으로 위탁교육을 떠나기 전에 가르쳤던 제자들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선생이 다루는 사건들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 물론 강도 살인과 같은 강력사건도 있지만 절도처럼 복잡하지 않은 사건도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일본에서는 정말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일반인과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정부가 사설탐정제도를 인정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집에서 두 번째로 궁금한 것은 시대적 배경이 언제인가 하는 점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의 범죄수사물을 보면 각종 전자장비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보유한 첨단수사기법을 가지고 증거를 채집하고 분석하여 범행을 입증하고 있는데 반하여, 이 책에서는 흔해빠진 CCTV의 동영상조차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얇지 않은 부피이지만 여섯 개의 사건이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사건부터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책은 첫장부터 끝까지 독파하는 맛이 있는데, 이 책이야말로 독파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습니다. 한여름 더위를 쫓는데 한 몫을 할 수 있는 책읽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김형숙 지음 / 뜨인돌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북소리]에서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을 잇달아 소개하는 것이 마음에 쓰이기는 합니다. 책읽기에도 우연이란 것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제가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은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버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는 있습니다. 그래도 ‘죽음’처럼 오랫동안 입에 올리기를 꺼려하는 금기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주 소개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지난주에 소개한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http://blog.joins.com/yang412/14142077>이, 작가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예술가들의 죽음에 관한 일화를 통하여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사색을 담았다고 한다면, 이번 주에 소개하는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은 병원, 특히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인이 경험한 죽음들에 얽힌 사연과 그 죽음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병원은 도시에서 대표적으로 죽음이 일어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을 쓴 저자는 저와는 띠동갑이라는 것과 어쩌면 같은 병원에서 잠시 스치듯 일했을지도 모르는 공통점이 있는 듯합니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만났던 옛날 방식의 죽음과 사뭇 달라진 요즈음의 죽음을 같이 경험한 특별한 분이라고 하겠습니다. 70년대 말에 의과대학을 졸업한 저 역시 응급실 근무를 하면서 적지 않은 죽음을 만났습니다. 대부분 병원에서 운명하지 않고 죽음에 임박해서는 댁으로 모셔가곤 했습니다. 객사한 주검은 집으로 들이지 않는다는 우리네 전통 때문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초상을 치른다는 것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체면이 서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장례식은 한 집안의 문제가 아니라 온 동네가 나서야 해결되는 마을의 큰 행사였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부대끼며 정을 나눠온 이웃을 작별하는 의례일 뿐만 아니라 아무리 대가족이라고 해도 장례절차는 힘에 부치는 일이었기 때문에 서로 도와주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훨씬 많아서 이웃의 힘든 일에 힘을 보태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생각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라는 것이 돌아가신 분을 모시고, 문상 온 분들을 대접하고, 출상하는 과정이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웃에 주검이 누워있다는 사실을 주민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세태의 변화에 맞추어 장례절차를 대행해주는 장례식장 사업이 발전하고, 장례절차를 안내하는 장례지도사라는 전문직종이 생겨나기까지 했습니다. 더욱이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은 예약이 안될 뿐더러, 병원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공간을 내기도 어려워 임종을 앞둔 환자를 병원으로 모시는 해괴한 현상이 생긴 것입니다.


<도심에서 죽는다는 것>은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자연스러웠던 죽음을 추억한다’라는 제목의 첫 번째 장에서는 저자가 중환자실 간호사가 되기까지의 삶을 요약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물세개의 사연을 각각 ‘중환자가 된다는 것, 나에 대한 결정에서 배제된다는 것’, ‘중환자실에서 죽는다는 것, 이별이 어렵다는 것’, ‘죽음 이후, 당신이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일’, ‘다른 가능성’ 등의 제목으로 구분하여 중환자실에서 맞는 죽음에 얽힌 문제를 짚고 있습니다.


제1장에서 저자는 자라면서 겪은 죽음들을 되돌아보면서 지금은 우리가 일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죽음들보다 그때의 죽음이 훨씬 인간적이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 산마을에서는 어린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그리 이상스런 일만도 아니었다.(22쪽)”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예전의 시골에서는 집안 어른이 죽음을 맞는 과정에 어린아이들을 동참시키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갑자기 통보되고, 엄숙하고 황망한 가운데 치루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죽음이란 특별하지 않았을 뿐더러 일상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께서 죽음을 준비하신 과정은 저에게도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단지 중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치매 혹은 암과 같이 치명적인 진단이 결정된 경우, 대부분의 의료진과 가족들은 이 사실을 환자에게 알릴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병명을 알리지 않는다고 해도 눈치가 빠른 환자들은 치료과정에서 자신의 병명을 유추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오히려 환자가 자신이 병명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한 웃지 못 할 상황도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환자에 따라서는 병명을 감추는 것이 옳은 선택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모든 환자들이 스스로 왜 죽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리는 과정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알리게 되면 치료과정에서 환자의 적극적 참여가 가능해지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는 결정도 환자 스스로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제2장 ‘중환자가 된다는 것, 나에 대한 결정에서 배제된다는 것’에서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환자가 고립되고, 소외되고, 배제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공포에 빠지거나, 침묵하거나, 심지어는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도 있어 의료진을 힘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온 가족과 죽음의 과정을 함께 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생각에 크게 공감합니다. 공교롭게도 저의 부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뇌졸중으로 입원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뇌출혈로, 어머님께서는 뇌경색으로 각각 입원하셨는데 불행하게도 고비를 넘기지 못하셨습니다. 신경외과를 하는 막내 동생이 주치의를 맡았고, 서울에 살고 있는 나머지 3형제들은 주말마다 내려가 한 주일 동안의 병세도 알아보고 시간을 같이 보냈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그만 이별여행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두 분 모두 퇴원이 힘들 수도 있다고 예감하셨던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는 희망을 불어넣어드리려고 힘을 썼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예감대로 되고 말았던 것 입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늘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이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게 되는 상황을 더 두려워한다.(34쪽)”라고 적은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였습니다. 지난 해에는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는데, 오랜 투병 끝에 임종에 가까워지면서 중환자실 입실을 권유받았습니다. 그때 가족들은 의논 끝에 차라리 1인실로 옮기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평소 비싼 입원료 때문에 1인실 이용을 거부하셨던 장인어른께서도 마지막에는 참 잘했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은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중환자실보다는 시간이 되는대로 찾아온 가족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서는 이와 같은 이별이 어렵다는 사례들은 제3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죽음이 일상처럼 일어나는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면서 안타까운 죽음을 많이 지켜본 탓인지 저자는 자연스럽게 호스피스간호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과 맞서 싸우는 곳이 중환자실이라고 한다면 호스피스는 그야말로 평안한 가운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호스피스란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와 그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행위로서, 환자가 남은 여생 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삶의 나머지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하도록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으로 도우며 사별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경감시키기 위한 총체적인 돌봄(126쪽)”이라고 정의합니다.


저자는 특히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온 것 같습니다.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를 상정하여 평소에 자신의 입장을 밝혀둔다면 가족들은 물론 의료진도 진료방향을 결정하기가 쉬워질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말기환자에서 심폐소생술을 비롯하여 의미가 없는 고가의 적극적 치료제를 투입하는 것은 짧은 생명의 연장 이외에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의미 없는 연명치료는 하지 않도록 사전에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둘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다양한 항암치료제가 개발되어 임종에 이를 때까지 항암제를 투여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생에 대한 환자의 욕망과 가족들의 의무감, 그리고 의료진의 안타까움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심평원에서 준비하고 있는 사망률평가에서 말기암환자에서 적극적 치료를 하지 않은 기간을 설정하는데도 이견이 많은 것은 이런 상황 때문인 것입니다.


특히 제4장에서는 장기기증과 관련한 뇌사자의 사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뇌사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장기기증을 적극적으로 권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보라매사건 이후로 뇌사자라 할지라도 연명수단을 인위적으로 제거할 수 없게 되었지만, 생명이 유지되는 동안에 장기적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뇌사자라고 하더라도 장기기증 의사를 밝히게 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힘든 가정에서 뇌종양에 걸린 동생이 뇌사상태에 빠지자 신부전으로 고통 받는 형이 동생의 신장을 이식받기를 희망하지만, 노모는 치료비를 걱정할 수밖에 없던 사례에서 결국은 동생의 정신질환의 증상이 문제가 되어 이식을 논할 필요가 없게 된 사례를 두고 저자는 만약 동생이 사정을 알게 되었다면 장기이식에 동의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기도 합니다.


의료현장은 같은 상황을 두고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해진 답이 있을 수 없다는 열린 생각으로 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장 ‘다른 가능성들’에서는 열린 생각으로 상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새삼 되짚어보고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응급수술을 중단시킨 할머니가 자기 고민의 시간을 거친 뒤에 수술을 받아들이게 된 사연에서는 분초를 다투어야 할 상황에서 환자에게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잘못과 함께 환자의 의사결정권이 재삼 강조됩니다. 분초를 다투는 수술이라면 더더욱 불필요한 갈등으로 시간을 지연하는 불상사를 피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임종을 맞는 어머니에게 병원의 금기를 깨고 어린 아이에게 면회를 허용한 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어머니로서도 눈을 감지 못할 일이며, 아들 역시 오랫동안 정신적 상처로 남을 수도 있는 생이별을 막은 참 잘한 일 같습니다. 우리는 때로 규정에 매몰되어 인간을 상실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도심에서 죽는다는 것>을 읽고서 이 책을 읽은 분 가운데 병원의 중환자실에 대하여 오해를 하실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는 말씀을 사족처럼 덧붙입니다. 예를 들면 중환자실이 수술을 준비하는 장소, 혹은 수술 후 회복을 위한 장소로 오해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임종을 앞둔 환자가 죽음을 준비하는 장소라고 오해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당연히 중환자실은 말 그대로 중환자들이 집중치료를 받는 곳입니다. 당연히 중환자가 많기 때문에 죽음을 맞는 환자도 많습니다만, 고비를 잘 넘겨 일반병실로 옮겨가는 환자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다만 저자는 중환자실에서 불행하게도 고비를 넘기지 못했던 환자들에 더 마음이 쓰였던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죽음을 되돌아보면서 당시의 자신의 역할에서 아쉬움은 없었는지를 짚어보았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중환자실이 그야말로 중환자를 위한 시설로 운영되고 있고, 그에 대한 특별한 수가가 지불되기 때문에 그저 수술을 준비하거나 수술 후 회복을 기다리는 곳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합니다.


저자가 중환자실에서 드물지 않게 생기는 죽음을 모아 살펴본 것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가 고통스러운 처치를 받으면서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아야 하는가 고민해보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만약 당신이라면 가족들과 떨어져 다가오는 죽음을 맞고 싶으시겠습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가게의 돈 버는 디테일 - 성공하는 가게의 무조건 팔리는 비법
다카이 요코 지음, 동소현 옮김 / 다산3.0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의 리뷰클럽을 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책을 읽을 기회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책을 고를 때는 관심 분야의 책으로 쏠리는 현상이 있기 마련이어서 책읽기에도 편식이 생길 수 있고, 그러다보면 편견이 생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심을 두지 않던 분야의 책에서 신의 한 수를 배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카이 요코의 <작은 가게의 돈버는 디테일>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사실은 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경영의 요체를 작은 규모의 가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전문 경영자문가의 도움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을 작은 가게의 사장님들이 어떻게 경영을 개선할 것인가 하는 요점을 배울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가게를 열 생각이 아직은 없는 저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비슷한 성격의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하고 있어 그때 도움이 써먹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기업의 경영자 및 간부들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모델 강좌를 제공하는 주식회사 채러티의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돈 버는 건, 사실 어렵지 않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고 합니다.


<작은 가게의 돈버는 디테일>이 일반적인 경영기법을 설명하는 책들과는 다른 독특한 점은 소규모 가게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 이외에도 또 있습니다. 바로 스토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동경에 있는 도쿄타워 부근 골목에서 수프카레를 주메뉴로 하는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공 요스케와 부근에 사무실과 집이 있는 사쿠라코가 이야기를 통해서 경영의 요체가 전수되는 형식인 것입니다. 즉 설교조의 딱딱한 내용이 아니라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읽는 이들도 핵심을 깨닫게 되는 형식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가게를 연다는 욕심이 앞서다보면 목이라던가 경영의 목표, 방식 부문에서 중요한 대목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물론 호황을 누리는 가게도 있지만, 문을 열었다가 오래되지 않아 손님이 줄어들고 결국은 문을 닫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요스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럭저럭 2년 반은 버텨왔지만 더 이상 가게를 지탱할 수 없을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밤늦게 찾아든 사쿠라코가 끝내주는 구원투수였던 셈이니까요?


사실 식당을 시작하면서 꼼꼼하게 원가를 계산하고 손님의 회전을 늘리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장님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요스케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카페를 열었던 셈입니다. 진즉 문을 닫았을 터이나 그래도 수프카레와 착하다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기에 버텨왔던 셈입니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비법을 따로 정리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목에 어느 정도는 냄새를 풍기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를 들어봐야 이해가 가는 셈이니 말입니다. 첫 장에 요스케의 문제점을 짚고 있습니다. 다양한 메뉴를 자랑하지만, 그로 인하여 원가율이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임대료가 높은 가게에서 원가율도 높은데다가 식사 후에 커피까지 제공하여 소수의 단골은 확보를 했지만,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원가율이 높으면 회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조언이 주어집니다. 즉 수익을 낼 수 있는 영업구조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사쿠라코가 경영자문을 통하여 얻은 사례를 통하여 요점을 알려주는데 예를 들면 미끼를 통하여 구매가 이어지도록 만든다거나, 일회성 구매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구매가 이루어질 수 있는 판매전략을 구축하라는 것, 여유를 가지고 치밀하게 단계를 거치도록 한다거나, 심지어는 고객의 충성도를 높여 활용하는 방안, 후발업체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장벽을 높이는 전략, 그리고 경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가게운영이 어려우십니까? 그렇다면 <작은 가게의 돈버는 디테일>을 한 번 읽어보시지요. 분명 길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 빈의 동네 책방 이야기
페트라 하르틀리프 지음, 류동수 옮김 / 솔빛길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빈여행을 준비하고 있기에 눈에 띄었는지도 모릅니다. 조용한 동네 입구에 있는 고풍스러운 작은 서점이라도 눈에 띌까싶어서 골랐습니다. 작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뮌헨에서 태어나 빈에서 성장한 작가는 빈대학에서 심리학과 역사를 공부하고서, 아마도 서점에서 일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역시 서점에서 일하는 친구와 함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시회에 갔다가 소개받은 남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남편의 본거지가 함부르크인 까닭에 함부르크로 이사를 했던 것인데, 여름휴가 때 찾은 빈의 한 동네에서 서점 하나가 문을 닫게 되었다는 공고를 붙인 것을 보고서는 응찰했던 것이 덜컥 낙찰을 받으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다시 빈으로 돌아와 동네서점의 주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요즘에는 인터넷서점을 통하여 대부분의 책을 구하고 있고 매주 동네 도서관을 찾아 책을 빌어서 읽고 있습니다만, 오랜 옛날에는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동네서점을 드나들었습니다. 퇴근길에 들르거나, 혹은 저녁을 먹고 산책삼아 서점에 가서는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의 책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선채로 신간소설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것이 인터넷서점에 밀려 동네서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발길이 멀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내와 인연이 된 것도 서점때문이었는데, 약속시간이 조금 남아서 들렀던 서점에서 구입했던 책이 알고 보니 제목이 달라서 몰랐지만 이미 읽은 책이었던 것입니다. 아내가 책을 바꾸어주겠다고 제안하는 바람에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만남이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 책에는 동네서점을 경영하는 중요한 요점이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독서에 대한 인식이 오스트리아와 우리나라가 다르다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어떻든 시도해봄직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오스트리아 역시 아마존이라는 괴물에 밀려 동네서점들이 차례로 문을 닫아가고 있는 사정은 비숫한가 봅니다. 하지만 아마존의 운영체계에 숨겨진 문제점들이 언론을 통하여 알려지게 되는 시점에 맞물려 새로운 운영방식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통하여 수년 만에 2호점을 내는 기염을 토하였을 뿐 아니라, 다양한 책을 섭렵하면서 쌓인 독서내공을 바탕으로 추리소설을 출판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을 위한 소식지를 만들고, 홈페이지를 통한 인터넷 주문도 받는 등 동네서점에서 대형서점으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동네서점으로서의 주민친화적인 관계가 흐려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생깁니다. 서점이 동네 사랑방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시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서점에서 일하려면 도제과정을 통하여 수련을 받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즉 서점에서 일한다는 것이 그저 손님이 골라서 내미는 책을 돈받고 파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손님의 독서 성향을 파악하여 신간이 나왔을 때 적시에 소개하거나, 고객이 궁금증을 풀어주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년간 출간되는 책이 4만 종류가 넘는다고 합니다. 한해 200~300권 정도 읽는 제 경우도 1%도 읽지 못하는 셈입니다. 종류가 하도 많다보니 잘 팔리는 책이거나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책에 대한 정보만이 제한적으로 알려지는 것도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서점이 출판정보를 파악해서 단골들에게 제공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행사를 흔히 만나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출판사가 주도하는 행사인데, 유럽에서는 서점과 출판사가 공동으로 기획하는 경우도 많은가 봅니다. 특히 동네서점에서도 이런 행사를 개최하는데 작가와 단골들의 성향을 잘 아는 서점 주인이 연결하기 때문에 저자와 책읽는 사람들 사이에 깊은 교감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