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브레인
양은우 지음 / 이담북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인문을 지양하는 [북소리]에서도 자기계발 혹은 조직관리 등에 관한 책을 소개한 적도 없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이유는 이번 주 [북소리]에서 조직관리에 관한 독특한 시각을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이 분야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조직관리에 관한 이론서들이 대체적으로 사회과학 혹은 심리학에 기반한 것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양은우의 <워킹 브레인>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조직관리의 기본 원칙들을 뇌과학으로 설명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고 보았습니다.


저자는 일리노이주립대학교(UIUC)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한 뒤 25년에 걸쳐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에서 전략기획업무를 수행했고, 그 후로는 기업컨설팅과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KMA(한국능률협회)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기업경영을 뇌과학에 접목한 이론을 개발 중입니다. <워킹 브레인>은 그 첫 번째 결실이라고 하겠습니다. [북소리] 독자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뇌과학은 이해가 쉬운 분야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과학에 대한 학문적 배경이 없는 저자가 조직관리 이론과 어느 정도는 접목에 성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보건의료분야의 사정 역시 일반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기업의 궁극적인 존재이유가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에 있다고 한다면 오늘날처럼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경영환경 속에서는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닐 것입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짚고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기업경영의 기본 이론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체계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품질 좋은 제품을 대량생산하여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시장을 개척하려 부지런히 노력만 하면 어느 정도는 성공할 수 있는 경쟁체제였다.” 하지만 앞으로의 기업경영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치열한 경쟁체제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합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결국 사람이 내놓는 것이므로 기업경영의 핵심이 일관리에서 사람관리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경과학 분야가 최근 이룩한 괄목한 연구성과를 기업에 접목한 뉴로마케팅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처럼 사람의 관리 역시 두뇌의 특성을 이해해야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추론이 성립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인간 두뇌의 작동기전과 생물학적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여야만 개인이 가진 잠재력과 가치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조직관리 이론의 요체라고 할 리더십, 소통 그리고 조직문화 등 세 가지 영역의 이론들을 뇌과학적 방법으로 검증해낸 것입니다. 각각의 영역에서 다섯 가지의 대표적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먼저 브레인 리더십에서는 멀티태스킹, 공정성, 자극, 공감, 그리고 즐거움 등의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창의적인 사람은 다양한 분야의 앎을 끊임없이 추구하여, 그것들을 연결하여 혁신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창의력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성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두뇌는 내외부의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최근까지도 멀티태스킹 능력이 조직에 기여하는 바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업무효과를 얻기 위하여 멀티태스킹 능력이 뛰어난 구성원에 주목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멀티태스킹이야말로 사람의 두뇌 특성을 거스르는 대표적 행동이라 사실이 심리학이나 신경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속속 발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와 흡사한 구조를 가진 컴퓨터 작업을 통하여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컴퓨터에 여러 개의 창을 띄워놓고 작업을 병행하다보면 처리속도가 떨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작업이 중단되는 심각한 상황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신경세포들을 신경섬유로 연결하는 신경망을 통하여 사고하고 상황을 처리하는 인간의 두뇌도 마찬가지입니다. 멀티태스킹을 하는 동안 사람의 의식은 여러 가지 과제에 분산될 수밖에 없는데, 흔히 모든 과제에 동시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은 사실 이들 과제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가지 과제만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 비하여 사고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멀티태스킹의 문제가 집중력과 주의전환 능력이 떨어지는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인지능력의 저하로 인하여 사고력과 판단력의 감소로 이어지게 되면 상황은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멀티태스킹은 A급 인재를 B급인재로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 뇌과학에 기반한 조직관리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흥미로운 대목도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성추행이나 섹스스캔들에 시달리는 이유를 대뇌에서의 호르몬 분비로 설명합니다. 지위감이 높아지면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분비가 왕성해지면서 스트레스 호로몬인 코르티솔의 수준이 떨어지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높아져 강한 모습과 자신감이 드러나게 되는데, 성적 충동이 증가하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브레인 리더십에서는 언제나 바른 자세를 견지하고, 조직구성원을 공정하게 대할 것을 요구합니다. 누군가와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구성원이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모든 직원을 공정하게 대하고 있는가’를 비롯한 11가지의 질문으로 구성된 체크리스트를 활용하여 주기적으로 확인해보기를 권합니다. 창의적 사고는 틀에 박힌 듯한 업무형태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업무와는 거리가 먼 분야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를 권합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뿅’하고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분야의 앎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무실의 분위기도 중요합니다.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공감하는 분위기, 즐거운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창의적 아이디어의 바탕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해 보여 조직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나 의심스러운 분위기에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기업들에서 입증된 바 있습니다.


두 번째 주제인 브레인 소통에서는 분노, 칭찬, 표현, 구체화, 자발적 참여 등 소통에 관한 이론을 뇌과학으로 설명합니다. ‘브레인 소통’에서는 두뇌의 정보입수와 재구성 과정 등 정보처리 과정과 그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다루었습니다. 제가 공직에서 일할 때 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신경과학적 이론으로 풀어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몸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오감을 통하여 받아들여 뇌로 보내고 그에 대한 판단을 운동신경을 통한 반응으로 나타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조직의 하부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정확하게 조직 상부에 전해지지 않거나, 혹은 전해진 것들에 대한 대응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 조직은 죽어있는 조직이라고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자는 ‘소통은 공감을 통하여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기술’이라고 정의하고, 소통의 궁극적 목적은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킴으로써 상대방으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절반만 옳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기 전에 상대방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상대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야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제대로 이해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브레인 소통편에서는 칭찬을 제대로 하는 법이 흥미를 끌었습니다. 흔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잘못된) 칭찬은 고래를 멸치로 만들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잘 했어, 역시 네가 최고야’, ‘당신이 없으면, 안돼!’, 혹은 ‘자네는 정말 성실해’, ‘얘는 참 얌전하고, 말을 잘 들어요’ 같은 칭찬을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일까요? 칭찬의 궁극적 목적은 자발적인 동기를 부여하여 업무에 대한 의욕을 끌어올리고 업무성과를 향상시키는데 있다고 본다면, 때로 칭찬을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칭찬을 할 때는 일의 성과가 아니라 과정에 대한 칭찬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과가 조금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만족스럽다면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과정을 이해하고 칭찬을 하게 되면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구성원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자네가 최고야’, ‘자네가 없으면 안돼’와 같이 막연하게 칭찬을 하면 그로 하여금 자만심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에 칭찬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체적 사항을 콕 짚어서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구성원의 사기를 고려하여 잘못한 것을 언급하지 않고 칭찬일색으로 가는 것도 잘못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야단을 치라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 고쳐야 할 것도 반드시 짚어서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조직관리 원칙입니다.


마지막 주제 ‘브레인 조직문화’에서는 무한경쟁, 집단 괴롭힘, 스트레스, 수면부족, 업무과중 등 직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을 다루었습니다. 최근에 많은 조직에서 추진하고 있는 성과연봉제는 현상에 안주하려는 소극적인 구성원들을 자극하여 성과를 높이겠다는 취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쟁을 통하여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려는 당근책이지만, 잘못하면 개인과 조직을 멍들게 하는, 득보다 실이 많은 제도라는 주장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직장만하더라도 집단지성의 요람이라고 말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집단의 힘을 이용함으로써 시너지를 극대화해 더욱 큰 성과를 얻고자 한다(221쪽)’라는 것입니다. 즉 집단의 힘으로 성과를 올렸는데, 그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의 업무성과로 변환시켜 구성원들 마다 차별화된 보상을 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결국 동료들은 협업을 통하여 성과를 극대화하는 동반자가 아니라 밟고 넘어야 하는 경쟁자로 인식하도록 만들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개인별 성과를 측정하는 방법이 공정하지 않다면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제도의 앞날은 뻔하다 하겠습니다.


구성원 간의 경쟁과 경직된 상하구조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조직의 효율적 운영에 커다란 장애가 됩니다. 물론 일정 수준의 스트레스는 개인을 자극하여 일을 효율적으로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만, 일단 한계를 넘어선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부정적 효과를 나타내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유발한 원인을 해결하기 위하여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사고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양이 고갈되고 사고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므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고력과 집중력이 저하되는 원인으로 저자는 신경세포의 파괴 및 재생의 억제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는데, 이 부분은 조금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신경세포가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뇌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수용체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밖에도 신체운동과 두뇌활동과의 관계에 관한 우렁쉥이의 사례나 쥐의 수중미로실험 결과해석 등은 조금 보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구성원들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진정한 리더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려면 두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그에 기반을 둔 관리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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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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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 세상사가 내 일이 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나쁜 일이 한꺼번에 몰려들면 세상이 왜 나만 못살게 하냐면서 한탄만 할 뿐 무엇을 어떻게 수습할지 망연해지기 마련입니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의 처녀작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의 주인공 사라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마흔을 목전에 둔 11년차 광고 디자이너 사라는 그럭저럭 잘 살아온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 식대로라면 딱 아홉수, 그것도 모진 아홉수에 걸린 셈입니다. 중요한 광고주와의 프레젠테이션이 있는 날 지하철에 노트북을 두고 내리지 않나, 긴장과 쌓인 피로 때문에 졸도를 한 것도 모자라 10년을 동거해온 잘 생긴 스페인 남친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면서 헤어지자고 합니다. 알고 보니 벌써 2년이 넘도록 새파란 어린 것과 사랑놀음을 하고 헤어질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 설상가상으로 스페인에 사는 아버지는 말썽꾸러기 남동생 때문에 하던 책방 문을 닫아야 할 판에 집까지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만, 사라는 정신줄을 놓을 지경입니다.


그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있다고 한 것처럼 사라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말하는 고양이 시빌이 나타난 것입니다. 시빌이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특별한 고양이 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사라는 시빌과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시빌을 사라의 생각을 읽어내기도 합니다. 그걸로 보아서는 시빌은 사라의 상상의 산물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사라는 시빌의 도움으로 위기를 헤쳐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시빌은 별난 고양이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니면 모든 고양이가 시빌처럼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고양이가 사람을 길들였을 뿐 아니라 사람을 입양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고양이들이 수천년 동안 삶의 길을 걸으면서 너희 인간들을 인도해왔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착각의 정도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개나 고양이를 이뻐해주면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생긴다더니 딱 그 짝입니다.


하지만 시빌은 특별한 고양이임에 틀림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먹을 땐 먹는 데 집중하고, 걸을 땐 걷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거’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멀티태스킹이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들은 집중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성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시빌은 사라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먼저 길을 걸으면서 지나치는 다양한 색깔들에 집중하도록 합니다. 이어서 파란색에 집중하고, 그 다음에는 초록색, 노란색… 그리고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모든 색을 관찰하도록 합니다. 이는 색체의 세계로 들어가는 훈련으로 다양한 색깔이 서로 녹아드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책깔에 이어서 소리, 냄새, 촉감, 등 오감에 대한 훈련이 이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판단하지 않고, 평가하지도 말고 그저 관찰만 하라는 것’입니다. 훈련은 고되었고, 인내심도 바닥을 보이며 지친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시빌은 바로 그 불편함을 관찰할 것을 요구합니다. 좌절감과 쉬고 싶은 욕구, 근육의 아픔까지 음미해보라는 것입니다. 판단하지도 말고... 즉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마음속 모든 것을 모두 열어 보이면 마음을 옥조이던 고통의 사슬이 슬그머니 풀리는 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정말일까요?


병가가 끝나고 회사에 다시 나가는 날 아침 시빌은 사라에게 고양이 명상과 스트레칭을 가르쳐줍니다. 가지가지 하는 고양입니다. 심지어는 사라를 채식주의자로 만들기까지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사라는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 심지어는 소싯적 꿈꾸었던 작가수업을 시작하기에 이릅니다. 그 첫날 사라가 컴퓨터에 입력한 글은 바로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의 첫부분입니다. 이 소설은 마치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옮긴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작가의 경력을 보면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세상사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끌탕을 하면 손해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다보면 해결방안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굳이 말하는 고양이를 불러내지 않아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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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 - 무엇이 과학인가
팀 르윈스 지음, 김경숙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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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의심이 가는 사안을 논의할 때 과학자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잊혀가고 있습니다만, 2008년 광우병파동이 일었을 때,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우는 과학자들로 인하여 사람들이 갈팡질팡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라고 주장하던 소위 전문가들은 ‘위험할 수는 있지만, 이미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위험수준이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을 사이비전문가라고 매도하는데 주력했던 것도 대중들의 신뢰를 얻으려는 수작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각설하고, 과학이 일반대중의 신뢰를 얻게 된 것은 그동안 과학이 이루어낸 놀라운 업적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의 서문을 잠시 인용하면, “과학적인 방법은 아득한 과거나 먼 미래의 비가시적인거나 무형인 사건에 대해서도 견해의 일치를 끌어낼 수 있을 만큼 누구나 인정하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려운 결정을 할 때마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지 여부를 묻게 된 것입니다.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는 과학의 오늘날의 위치에 오르게 되기까지를 설명합니다. 즉, 과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합니다. 유명한 물리학자 파인만박사도 “새에게 조류학이 도움이 안되는 것처럼 과학자에게도 과학철학이 도움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을 보면, 과학철학은 과학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도 많은 모양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인슈타인박사는 “과학의 역사적․철학적 배경을 알고 있으면 대부분의 과학자가 지닌 문제인 현세대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철학적 통찰력이 가져다주는 이 자유야말로 진정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을 단순한 장인 혹은 전문가와 구별해주는 것 같다.”라고 말해 과학철학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다음의 국어사전을 보면, 철학(哲學)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인생관, 세계관 따위를 탐구하는 학문. 원래 진리 인식(眞理認識)의 학문 일반을 가리켰으나, 중세에는 종교가, 근세에는 과학이 독립하였다.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미학 등의 하위 부문이 있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과학의 뿌리가 철학에 닿고 있으니, 학문이 추구하는 근본 목표는 동일하나, 대상과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철학이 사유를 통한 진리탐구 즉 주관적 학문이라고 한다면 과학은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차이가 있겠습니다. 최근에는 주관적 학문 영역까지도 과학적 접근방식을 이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의 저자 팀 르윈스는 케임브리지대 과학철학 교수로 과학철학뿐 아니라 생물철학과 생물윤리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케임브리지대 장하준교수는 추천의 글에서 ‘특히 생물학 분야의 과학이론이 가지는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깊이 고려하는 전문가로 유명하고, 그의 명쾌한 강의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마음에 걸리기도 합니다. ’인기‘라는 단어에 알레르기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도 어려운데, 그 어렵다는 철학이 융합된 과학철학에 관한 책을 읽으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북소리]의 독자들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그동안 이 분야의 책들을 읽어보셨을 터이니 말입니다. 이 책은 ‘과학이란 무엇인가’와 ‘과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해당하는 각각 4개의 질문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옮긴이는 역자서문에서 친절하게 그 내용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먼저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 짓는 기준은 무엇인가?(1,2장), 과학이란 시간을 통해 계속해서 발전하는 것인가, 아니면 한 시대를 풍미하는 특정 문화처럼 어떤 시대에 권위 있게 받아들여지는 어떤 사고의 유형(패러다임)인가?(3장), 과학은 우리에게 있는 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가? 아니면 과학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의존해 있는 것일까?(4장), 과학이 과연 가치중립적일 수 있는가?(5장), 과학과 도덕의 관계는 어떠한가?(6장), 또 다른 도덕적 주제인 인간 본성의 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7장), 마지막으로 소위 말하는 ‘과학적인’ 세계관, 즉 인간사를 포함한 모든 세계 현상이 인과관계로 설명이 돼 있을 뿐만이 아니라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입장을 받아들였을 때 과연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8장) 등입니다.


저자는 귀납법과 연역법으로부터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합니다. 논리학의 대표적인 방법론들이 근대 과학적 방법론으로 차용되었던 것입니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귀납적 방법은 여러 사례들에 대한 객관적 관찰과 실험을 통해 얻은 자료로부터 공통점을 추출하여 일반적인 원리를 찾아냅니다. 반면 연역적 방법은 이미 알려진 원리로부터 수학적․논리적 추론을 통해 개별 사물의 이치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정된 표본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의 일반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를 규명해야 하는 경우에 귀납적 방법론을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됩니다. 특히 과학의 영역에서 귀납법은 믿을 수 없는 추론방법이라고 칼 라이문드 포퍼는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포퍼는 대표저서 <추측과 논박>에서 역사를 통하여 인간이 과학적 지식을 축적해온 과정을 철학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오래 전에 [북소리]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추측과 논박1; http://blog.joins.com/yang412/12845276>에서는 ‘추측’이라는 표제 아래 과학적 논리를 세우는 과정에 중심을 두었고, <추측과 논박2; http://blog.joins.com/yang412/12845385>에서는 ‘논박’이라는 표제로 묶어 과학적 논리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정리하였습니다. 과학은 베이컨 이래로 중요한 철학적 화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으나, “과학은 그것의 관찰적 기초나 또는 귀납적인 방법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데 반해, 사이비 과학과 형이상학은 사변적인 방법이나 또는 베이컨이 말했듯이 ‘마음의 기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특징지어진다는 것(칼 라이문드 포퍼 지음, 추측과 논박 2권, 24쪽)”이라는 일반적 견해에 포퍼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과학에서 귀납적 접근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는 포퍼는 일종의 연역적 방법론을 대안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즉, “귀납적 추리에 의존하지 않고 과학을 한다면 과학적 일반화가 참되다는 결론은 절대로 합리적으로 내릴 수 없는 반면, 특정 일반화가 거짓이라는 결론은 내릴 수 있게 된다(40쪽)”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포퍼의 견해를 ‘반증주의’라고 합니다. 포퍼의 주장은 일견해서 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 때문에 다양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중간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과학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다는 말은 어떤 경우에는 증거자료에 개방적이고 창의적이고 또 예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과학자들은 경주마처럼 눈가리개를 하고 있을 때 가장 큰 발전을 이룬다.(68쪽)” 다만 포퍼의 반증주의가 아니더라도 지적설계이론이나 동종요법이론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는 비판적 평가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토마스 쿤을 포퍼의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흔히 과학적 이성주의와 과학적 진보주의를 제안한 포퍼와는 달리 쿤은 과학적 사고의 변화가 이성적이라거나, 과학 자체가 진보한다는 생각을 부정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쿤은 분명 과학이 진보한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과학이론의 변화가 이성적이라고 여겼다는 점을 저자는 분명하게 합니다. 과학에 대한 쿤의 새로운 철학은 <과학 혁명의 구조; http://blog.joins.com/yang412/12595326>에 담겨 있습니다.


과학사학을 전공한 쿤은 과학이 발전한 과정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개발된 방법에 따라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던 사실들이 확인되면서 추론에 의하여 세워졌던 이론을 뒷받침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까지 통용되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지금까지의 이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론이 제기되어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과학의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실들이 누적되다보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은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회현상에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런 현상을 과학혁명이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저자는 과연 ‘과학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는가?’하는 의문에 대하여 ‘그렇다’라고 하는 ‘과학적 실재론’이 맞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려면 세 가지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첫 번째는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인 ‘미결정성’ 이론의 도전을 막아야 하고, 두 번째는 과학적 실재론의 유일한 지지 이론인, ‘기적은 없다’ 논증을 살펴보아야 하며, 세 번째로는 ‘비관적 귀납’으로 알려진 논증을 정면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근본적으로는 과학적 실재론자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과학사를 돌아보면 과거의 과학이 실패한 사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과학이 틀린 것으로 판명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과학적 통찰력에 대한 판단 자체가 회고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과학적 실재론자가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즉, 과학자의 임무는 탐구대상에 대하여 보다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옳으며,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2부에서는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다각적으로 논의합니다. 그 첫 번째로는 ‘사전예방의 원칙’의 원칙입니다. 사전예방의 원칙이 기술발전을 저해하고, ‘유령 위험’에 대해 과민하게 규제적인 반응을 보이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건강이나 환경에 잠재적으로 크게 해가 될 수 있는 위험을 다룰 때는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안전한 것이 낫겠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저자는 안전과 관련된 정책을 결정할 때, 근거가 되는 과학적 연구성과에 대한 평가를 책임지고 있는 과학자들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한 생명윤리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저자는 자연도태를 결정함에 있어 생물은 이타적인가 아니면 이기적인가 하는 의문에 도전합니다. 진화론을 제창한 다윈은 이타주의가 진화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http://blog.joins.com/yang412/12583563>에서 진화론의 설명하기 위하여 어떤 형태로든지의 이기주의가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에 대한 논란을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서 집단의 특성을 담은 문화적 유전자 미멤이 실재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저처럼 미멤의 실재에 대한 논란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조만간 정리된 이론이 나올 것 같습니다. 마지막 주제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내용인데, 아직까지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행동이 결정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과학적 제국주의를 우려하고, 과학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과학이 발전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라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과학철학이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합니다. 다만 과학적 연구결과를 해석함에 있어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과학의 의미는 무엇인가?’하는 질문은 과학이 혼자서 답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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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다섯 가지 상품 이야기 -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그리고 석유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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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인류가 처음 나무에서 내려온 것 자체부터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류는 근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었기 때문에 뭔가 바꾸어보는 짓을 쉽게 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도전이 지금의 인류가 있게 한 동력이었을 것이구요.


그렇다면 세상을 바꾼 무엇은 무수하게 많을 터인데, 굳이 다섯 가지를 골라 보았다고 해서 호기심이 동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섯 가지를 고르는데 있어 무슨 원칙이 있었던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저자는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 등 다섯 가지 상품이 세상을 뒤흔든 대표적인 상품으로 골랐습니다. 소금은 모든 문명의 발상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점에서, 모피는 시베리아 개발과 북아메리카 서부 개척의 동력이었다는 점에서, 보석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충돌한 근본적 이유가 되었다는 점에서, 향신료는 근대의 시작을 유발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석유는 현대사회의 핵심적 에너지원이라는 점에서 골랐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피나 보석이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생각에는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다섯 가지 상품의 이면에는 공통적으로 유대인들의 철두철미한 장삿속이 깔려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저자가 오랫동안 코트라에서 일하면서 쌓은 경제현장의 느낌과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의 상술에 대한 연구에서 기획된 것으로 보입니다. 관심이 특정한 부분에 쏠리다보면 겪을 수 있는 부작용도 보이는 듯합니다. 즉 시야가 좁아져 다른 요소의 작용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적어지며, 모든 현상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등의 부작용말입니다.


첫 번째 주제가 된 소금 역시 모든 문명의 현장에 소금을 얻을 수 있는 곳과 관련을 가지고 있지만, 소금이 문명기원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자가 인용하는 자료 역시 저자의 시각에 부합하는 쪽으로 재해석하는 느낌도 있을 뿐 아니라, 자료의 정확도에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서해도 들어가는 세계 5대 갯벌로 지목된 캐나다의 동부는 북쪽에 있는 허드슨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베네치아가 아드리아해안가 염전에서 대량으로 만든 천일염을 알프스 지역에 공급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고, 이를 주도한 것이 베네치아의 유대인으로 지목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드리아해에서 소금을 대량으로 생산한 것은 오늘날의 두브로부니크를 중심으로 한 라구사공화국으로 베네치아와 오랫동안 경쟁하던 관계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반도 내에서도 피사, 피렌체, 제노바 공화국 등과도 지중해의 해상무역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지 소금이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부가 스페인으로부터 쫓겨난 유대인들이 주도한 염장 청어산업으로부터 기인했다는 것도 의문입니다. 스페인의 기독교 국가들이 레콩키스타에 성공한 이후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을 쫓아냈던 것은 사실입니다. 쫓겨 간 유대인들은 네덜란드에 자리를 잡고 양모 등을 소재로 한 직물산업과 금융, 유통 등의 상권을 장악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다섯 가지 상품 가운데 소금과 모피의 경우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과거에 중요한 상품이 되었을 수 있겠습니다만, 다른 상물에 관해서는 별도 언급이 없는 것도 형식면에서 빠져 보인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글의 흐름을 깨트리는 속되거나 거칠어보이는 서술이 있어 조금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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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진가들 - 사진의 결정적인 순간을 만든 38명의 거장들
줄리엣 해킹 지음, 이상미 옮김 / 시공아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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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곁들인 글을 쓰다 보니 좋은 사진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무작정 많이 찍어 그런대로 괜찮은 사진을 골라보기도 합니다만, 여전히 갈증을 풀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에게 사진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는 부분입니다.


줄리엣 해킹이 쓴 <위대한 사진가들>은 사진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의 삶을 정리한 책입니다. 런던에 있는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에서 사진 분야의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고 있어 사진 분야의 역사에 조예가 깊은 저자의 장점을 잘 살렸다고 하겠습니다.


‘들어가며’를 마무리하면서 적은 기획의도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의도는 독자들로 하여금 예술사와 관련해 전기가 가지는 장점과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떠올리게 하기 위함이다. (…) 이제는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을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아닌,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하는 두 개의 무대로 바라보아야 할 때다.(9쪽)” 즉, 전기와 그 사람의 작품세계의 조화를 이루어보겠다는 취지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저자는 기획의도를 잘 살렸다고 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사진작가의 삶이나, 그 삶에서 도출해낸 사진예술에 대한 사진작가의 철학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글 속에 잘 녹여진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사진작가의 삶을 논하기에 앞서, 그 사진작가의 사진을 준비하고, 글 중간에도 몇 점의 대표작을 곁들이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그 사진들에 대한 설명이 빠져있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모두 38명이나 되는 사진작가들이 저자의 취재 대상이었던가 봅니다. 아무래도 잘 모르는 분야라고 해도 익숙한 이름이라고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정도에 불과해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저자는 180년이라는 사진의 역사에 등장한 무수한 사진작가들 가운데 후세에 인정받은 전기적 자료를 활용하다보니 제한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사진작가들은 분명 비범한 이미지를 창조해낸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가장 위대한 사진작가들이라는 것은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삶에서 찾아낼 수 있었던 공통점이라고 하면, 바로 사진이야말로 자신이 삶을 바칠 운명이라고 여겼다는 점입니다. 폴 스트랜드의 필림 이미지를 본 앤설 애덤스가 “마치 아기 예수를 만난 동방박사와 같은 전율을 느꼈다”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가하면 마거릿 버크화이드의 삶에서는 아이들의 재능을 어떻게 발견하고 살려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너는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던 반면, 어머니는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고, 쉬운 길을 택하지 말며, 꾸준히 노력해서 이루어라(522쪽)’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별 생각 없이 사진을 찍곤 하는 세태에서 “촬영을 할 때 피사체의 명시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했다(33쪽)”는 다이안 아버스의 철학은 참고할만한 경구도 있습니다. 프루스트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눈에 띈 대목도 있습니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다시 이야기로 만들어낸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전기 작가 조지 D. 페인터는 “그는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대체했다”라고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작가 루이스 캐럴이 사진분야에서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루이스 캐럴은 옥수퍼드 대학교의 교수였던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의 필명이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정리해보면 시대를 살아간 위대한 사진작가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위대한 사진가들>은 자라는 아이를 둔 부모에게는 아이교육에 대한 생각을, 그리고 성장기에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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