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의 연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로맹 가리의 마지막 작품 <노르망디의 연>을 고른 것은 긴 꼬리를 매단 연이 노란 하늘에 떠있는 표지 그림이 독특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였습니다. 물론 지난해 다녀온 노르망디에 대한 추억 한 자락도 깔려있지 싶습니다.


이야기는 클레리(Clary)라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노르망디에 속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히려 벨기에에 가까운 아주 작은 마을로 보입니다. 이야기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부모를 여의고 연을 만드는 장인 앙브루아즈 플뢰리와 함께 사는 뤼도비크의 성장소설처럼 시작합니다. 뤼도는 비상한 기억력과 뛰어난 암산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선생님들의 걱정거리가 됩니다.


열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뤼도는 숲에서 금발의 소녀 릴리를 만나게 됩니다. 폴란드 귀족가문의 딸입니다. 두 사람을 엮은 인연의 고리가 단단했던가 봅니다. 4년의 기다림 끝에 재회하게 되면서 가까워지게 되고, 폴란드에 있는 릴리의 집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브뤼노, 한스 등과 함께 릴리를 둘러싸고 경쟁하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뤼도가 사는 클레리 마을에도 독일군이 진주해옵니다. 독일군에 협력하는 프랑스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드러나지 않게 독일군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도 적지 않았던가 봅니다. 뤼도 역시 기억력과 암산의 재능을 바탕으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하는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세평으로 독일군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삼촌 앙부루아즈 플뢰리와 가까운 요리사 마르슬랭 뒤프라는 자신이 식당 클로 졸리를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클로 졸리는 금세 독일군 고위층이 모이는 장소가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뒤프라가 독일에 부역을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뒤프라의 목표는 프랑스 요리의 영속성을 지키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뤼도가 파리에 잠시 머물 때 만났던 쥘리 에스피노자부인은 신분을 세탁하고 독일군 고위층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기밀을 빼내 뤼도에게 전합니다. 그 정보는 런던으로 보내지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면서 좌절과 피로가 극에 달하는 순간마다 뤼도는 폴란드에서 헤어진 릴리를 소환하곤 합니다. 꿈속에서 뤼도가 릴리에게 건네는 모르겠어. ‘희망으로 산다라는 오래된 표현이 있잖아. 그런데 난 희망이 우리로 인해 산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233)”라는 말은 독일군에 저항하던 프랑스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나타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릴리가 한스와 폰 틸러 장군과 함께 클레리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릴리의 가족이 폴란드를 탈출해서 프랑스에 오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릴리는 뤼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선 살아남아야 했고, 내 가족을 구해야 했어..... 이해하지, 뤼도?300)” 뤼도는 릴리를 이해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마을 사람들은 릴리의 머리카락을 잘라냅니다. 전후 독일에 부역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노르망디의 연>을 읽다보면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독일군에 저항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독일군에 부역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기밀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경우도 있었던가 봅니다. 실제로 독일군 내부에서도 광기의 전쟁을 멈추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전후 프랑스에서는 부역자 처단의 광풍이 불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던 것은 부역의 진실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역자 처단에 앞장 선 사람들이 오히려 부역자일수도 있었지 않았을까요?


로맹 가리는 이야기를 더 잘 말할 수는 없겠기에라고 끝을 맺습니다. 로맹 가리는 이 작품을 발표하고 얼마 뒤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남긴 글에서 자신의 죽는 이유를 더 잘 말할 수는 없겠기에에서 찾으라 했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431) 그러니까 <노르망디의 연>은 로맹 가리가 스스로를 완성한 작품인 것입니다. ‘노르망디의 연은 독일군에 점령된 프랑스 사람들이 띄운 희망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 섬 -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https://blog.naver.com/neuro412/222045590302>로 만났던 스위스 사회학자이자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인 장 지글러 교수의 신간 <인간 섬>을 읽었습니다. 중동,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주하기 위하여 목숨을 건 난민들을 유럽사회가 어떻게 대하는가를 고발하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연전에 스페인-모로코-포르투갈을 여행할 때 역시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목숨 건 이주행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https://blog.naver.com/neuro412/221396359004). 그리고 이듬해에는 터키를 여행할 때, 이즈미르에서 묵은 적이 있습니다. 차창 밖으로 지나는 초라한 몰골을 한 사람들이 바로 시리아 등지에서 몰려온 난민들이라고 했습니다(https://blog.naver.com/neuro412/221409725465. 그 무렵 이즈미르 해안가에서 발견된 소년의 주검은 유럽사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에 난민을 할당하는 조처를 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뒤인 20154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그리스와 협약을 맺고 에게해에 흩어져 있는 섬들 가운데 터키 연안에 있는 5개의 섬(레스보스, 코스, 레로스, 사모스, 키오스)를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분쟁지역(hot spot)으로 지정하였습니다. 공식명칭은 ‘1차 접수 시설입니다.


이야기는 그리스에 속하는 섬, 레스보스에서 시작합니다. 그리스의 섬이라고는 하지만, 그리스 본토에서는 멀리 떨어져, 터키의 코앞에 있는 섬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즈미르에서 멀지 않은 섬입니다. 터키는 아직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는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이기 때문에 일단 그리스에 들어가면 다른 유럽연합국가로 이주할 수가 있습니다. 중동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가장 짧은 경로이기 때문에 난민들이 도전하는 코스이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북쪽에서는 주로 지중해를 건너는 경로를 찾는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이면 그리스의 무장경찰들이 해안을 순찰하고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있는 난민들을 색출하여 모리스에 있는 수용소로 데려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용소는 험한 바다를 건너온 이들이 몸을 쉴만한 장소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터키와 레스보스 섬 사이의 바다는 북대서양조약기구와 프론텍스 소속의 함정이 순회하고 있습니다. 이들 함정은 터키에서 레스보스로 향하는 이주민들이 탄 보트를 안전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트가 레스보스로 향하지 못하게 밀어내는 (pushback) 작전을 펼치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보트가 전복되어 배에 탄 이주민들이 익사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구조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동아일보의 이샘물 기자가 쓴 <이주행렬; https://blog.naver.com/neuro412/221941923175>에서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실상을 조금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주민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세상에 태어나 사는 장소에서 한발 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모두 이주민이 되는 셈입니다. 생각해보니 저 역시 이주민이었던 적이 있더라구요.


저자는 유엔이 정한 난민보호와 관련한 협약을 소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의 유입을 차단하려는 유럽 국가들의 행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난민들이 이주를 희망하는 나라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제주에 들어온 예멘의 난민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근본적으로는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누군들 고향을 등지고 싶겠습니까? 생명이 위협받는 끔찍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환자
재스퍼 드윗 지음, 서은원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이야기들은 괴기스럽거나 음모와 폭력이 배경에 깔려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보면 정신질환에 대한 서구사회의 인식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정신병원이 정신질환자를 사회에서 격리시키기 위한 시설로 만들어졌던 것이라서 외진 곳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정할 때 정신의학과의 경우는 환자를 치료하다보면 의사가 환자가 될 것 같다는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정신의학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져서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 개인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원을 둘러싼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미국 코네티컷 주에 있는 어느 주립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그 환자>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의사들이 참여하는 MDConfessions.com이라는 웹포럼에 게재된 나는 어쩌다 의학을 포기할 뻔했는가라는 제목으로 올려놓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실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서문을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내가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나 자신이 미쳐버린 건지 현재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아 이 글을 쓴다.” 마치 실화인 것 같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만하다는 생각이 들수록 기괴합니다.


이야기는 명망 있는 의대를 졸업하고 혹독한 전공의수련을 마친 우수한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잘 알려지지도 않고, 재정도 열악한 주립 정신병원에서서 일을 시작합니다. 약혼녀의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 하나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정신의학을 전공하게 된 배경에는 망상형 조현병을 앓던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수용된 후 정신의학계의 추악한 면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표현으로 본다면 필자가 과연 정신의학을 전공한 것 맞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정신질환자는 병원에 입원시키지, 수용한다고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조기에 외래진료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도심에 정신의학과 의원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가족과의 유대를 긴밀하게 하는 것이 치료효과를 좋게 할 것이므로, 정신병원의 접근성도 좋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환자>의 무대가 되는 정신병원은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모양입니다. “도로를 벗어나 복잡하고 음산한 샛길 중 첫 번째 길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나마 미리 지도를 출력해오지 않았더라면, 구불구불 산길을 헤매며 병원이 위치한 구릉지대를 찾는데 몇 시간은 허비했을 것이다.(19)”


세상과 격리된 정신병원 안에서도 근무자들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병실에 격리된 환자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진료기록부마저 없어서 의료진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그 환자의 존재를 알고 있는 환자였습니다. ‘의료진을 미치거나 자살하게 만든 접근 금지 환자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만큼, 이 환자는 위험한 존재 맞을까요? 여섯 살에 처음 입원하여 30년 동안 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환자는 진단불명이었습니다. 진단을 정하지 못하면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환자가 보이는 증상을 중심으로 대증요법을 해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병원은 환자의 병명을 결정하고 적극적인 치료를 통하여 완치시킬 의지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제로 달려있는 의료진을 미치거나 자살하게 만든 환자의 비밀은 환자와 접촉한 의료인에 관한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을 알고 있으며, 그 비밀을 이용하여 의료인을 조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초현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사실은 이야기의 끝부분에 등장하는데, 환자의 존재 자체가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과연 그 환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야기를 모두 읽은 느낌은 동그랑 땡이었습니다.


모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작가 미상이라고는 합니다만, 이 이야기가 20세기 폭스사에서 영화로 만들기로 확정되었고, 20개 국가에서 출판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계약의 주체가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작가가 신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고 보는 점입니다. 결국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스트 레터
이와이 슌지 지음, 문승준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등단 작품을 내고는 후속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라스트 레터>는 등단 작품을 내놓고 오랜 침묵 끝에 후속 작품을 내놓게 된 작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등단 작품과 후속 작품 모두 작가 개인의 삶, 특히 연애사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것도 헤어진 연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등단 작품은 청춘시절 사랑을 하고 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련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변변한 작품도 써내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헤어진 연인의 뒷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오랜만에 열린 동창회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참석한 동창회에는 그녀의 여동생이 나왔습니다. 그녀의 여동생은 그녀를 쏙 빼닮아서 모든 동창들이 그녀가 온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아니고 여동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여동생은 끝까지 언니 행세를 했는데,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것이 사달이 나고 말았습니다.


사실 여동생은 학창시절부터 선배인 그를 좋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동생의 고백을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고향을 떠나 큰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두 사람은 사랑을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가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혼까지도.... 그랬던 그녀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녀의 여동생은 동창회에 언니의 죽음을 알리러 나왔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언니 행세를 하는 여동생에게 언니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여전히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냈던 것을 남편이 보게 되었고, 여동생 부부 사이에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휴대전화를 망가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하게 되었던 것이고, 그는 언니의 고향집으로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그 편지는 언니의 딸과 여동생의 딸이 같이 개봉하여 보게 됩니다. 세상을 하직한 어머니에게 온 편지라 하더라도 어른들에게 알리지 않고 개봉하는 것은 조금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결국 여동생과 재회하게 된 그는 나중에서야 언니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그리고 언니의 삶을 재구성하게 됩니다. 이야기의 큰 흐름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태양은 가득히>를 인용합니다. 주인공 톰 리플 리가 부자 친구 디키 그린리프를 살해하고 그의 행세를 하면서 우아한 생활을 만끽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우리에게는 르네 클레망 감독이 1960년에 영화화한 <태양은 가득히>에서 세기의 미남이라는 평가를 받는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톰을 연기했다는 것, 그리고 영화음악입니다.


그는 죽은 전 연인에 관한 뒷이야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연인을 빼앗아간 남자가 음습한 욕망을 품은 형편없는 인간이었다는 사실과 연인의 결혼생활이 불행했다는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그 남자는 톰이었고, 그는 디키였던 것입니다. 다만 그 남자의 목표는 톰과는 달리 그가 아니라 그의 연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형편없는 글 솜씨로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리라 착각한 것 아니냐는 아픈 약점을 지적합니다.


그는 결국 세상을 떠난 연인에게 바치는 마지막 편지처럼 뒷이야기를 쓰기로 한 것 같습니다. 그 뒷이야기가 바로 <라스트 레터>인 셈입니다. 마지막 편지의 끝은 중학교 졸업식에서 그와 함께 쓰고 그녀가 읽은 졸업생 답사였습니다. 중학생의 글 솜씨다운 내용이라는 생각입니다. 장래의 꿈을 적시하지 않고 물음으로 남겨놓은 점이 남다르다고 할까요?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므로 미리 정해서 거기에 매일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이 답사를 두 아이에게 유언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헤어진 연인이 연결해준 인연으로 두 번째 작품을 내놓게 되었다는 작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기다린 끝에 모인 회사 내 독서회가 드디어 1년 활동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열명으로 시작한 모임은 하계휴가 기간을 건너뛰고 매달 한권씩 읽고 느낌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마지막 작품은 신예 이미예 작가님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입니다. 독서회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읽을 기회가 없었을 그런 작품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치유 환상소설이라고 정의한 이 소설의 성격은 꿈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뭉클하고 따뜻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작가께서는 잠과 꿈에 관심이 많지만, 여전히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무지 알 수 없는 어제와 오늘 사이의 그 신비로운 틈새를, 기분 좋은 상상으로 채워 넣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리고 점점 상상이 현실과 사랑스럽게 밀착하는 것을 느끼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7)’고 합니다.


이야기는 잠이 들어야만 입장이 가능한 세계입니다. 그 세계에는 잠든 이들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장소들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이 백미라고 합니다. 이야기는 꿈속 세계에서 젊은이 들이 선망하는 일터,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에 입사하게 된 페니가 꿈을 사고파는 사업을 파악하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사실 잠이 들어도 꿈을 꾸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대부분 사람들은 잠을 자는 동안 꿈을 꾼다고 합니다. 다만 꿈의 내용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않는 경우에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꿈의 그런 특성을 잘 살려 이야기의 뼈대를 만들어낸 작가의 이야기 구성능력이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작가님에 따르면 꿈은 시간이 신이 자신의 해오던 일을 세 명의 제자에게 물려주는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시간을 다스리는 신이 있다고 하는 대목에서 미카엘 엔데의 <모모>가 생각났습니다. 시간이라는 무형의 존재는 지나간 시간(과거), 지금의 시간(현재), 그리고 다가올 시간(미래)로 나누기는 합니다만, 그 경계는 모호합니다. 현재인가 싶었는데, 바로 과거가 되고, 미래인가 싶었는데 금세 현재가 되는 것이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신은 세 명의 제자에게 각각 원하는 바에 따라 미래와 과거, 그리고 현재의 시간을 다스리는 일을 맡기게 됩니다. 그런데 가장 사랑하는 제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현재의 시간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는 현재의 시간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도록 요청했고, 다만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만큼은 자신이 다스리도록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말입니다.


시간의 신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그들의 그림자가 대신 깨어 있도록 해주도록 합니다. 그 이유는? “밤새 대신 경험한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은 (과거에 매달려 있는) 연약한 이들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꿈을 좇는) 경솔한 이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이튿날 아침이면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도와줄 것(23)”이라고 합니다.


독자들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신입직원 페니와 함께 꿈을 제작하고 파는 과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꿈이 무형의 것이기는 하지만, 사고파는 것이므로 구매한 꿈에 대한 대금을 어떻게 정산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꿈이라는 환상의 세계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인 만큼 사기꾼도 나옵니다만, 강력범죄 만큼은 등장시키기가 조심스러웠나 봅니다. 하지만 그런 사건을 당한 피해자가 어떻게 정신적 충격을 이겨나갈 수 있는지도 보여주었더라면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상상 속의 세계이지만, 백화점의 이름이나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외국어 일색인 점도 아쉽네요. 게다가 그 이름에는 무슨 사연이 담겨있다는 정도는 귀띔을 해주었더라면 금상첨화였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