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행성의 기록
라오서 지음, 홍명교 옮김 / 돛과닻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양이 행성의 기록>은 청나라 말에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만주족 출신 작가 라오서가 문학잡지 현대에 발표한 과학환상소설 형식의 정치 우화이자 풍자소설인 <묘성기(猫城記)>를 우리말로 옮긴 책입니다. 19328월에 연재를 시작하여 19334월에 완성되었습니다. 역시 펀트래블의 중국근대문학 기행을 앞두고 공부삼아 읽어보았습니다.


당시 상하이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이 조계지를 둔 세계적인 무역도시였고,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상업중심지였습니다. 그 무렵 청나라는 극도의 혼란과 정치적 불안에 빠져 있었습니다. 일본은 1931년 류타오후에서 철로를 폭파시키는 자작극을 벌여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세웠고, 이듬해에는 상하이 사변을 일으키면서 중국을 침략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고양이 행성의 기록>은 화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탄 중국인이 화성을 대기권에 진입하던 중에 사고를 당해 불시착하면서 시작됩니다. 우주선을 운전하던 친구는 사고로 죽고 화자만 살아남았습니다. 친구는 묻어주기도 전에 몰려든 독수리에 뜯어 먹히고, 그 와중에 몰려온 고양이 얼굴을 한 묘인에게 끌려가게 됩니다.


묘인들은 300년 전에 도입된 미혹 나무의 잎에 의지하게 되면서 먹을 것을 생산하는 일은 물론 만사를를 제쳐놓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미혹 나무를 재배하고 관리하는 일은 최우선적인 일입니다. 황제도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뒷전이고 정부관리 역시 임무를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결국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게 되고 외국의 침략을 받으면서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당시의 중국의 시대상을 화성에 빗대고 묘인들은 중국사람들을 외국인들은 상하이 조계지에 모여 살던 외국인들을, 묘인국에 쳐들어 온 외국군은 일본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우주선은 소련이 1957년에 쏘아 올린 스푸트니크 1호 인공위성이며, 역시 소련이 유리 가가린이 최초의 유인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여행에 성공하게 되면서 인류의 우주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라오서가 우주선을 타고 화성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1865년에 발표한 <지구에서 달까지>, 허버트 조지 웰스가 1898년에 발표한 화성인의 침공을 다룬 <우주전쟁>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두 작품이 우주과학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처럼 라오서 역시 화성의 실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화성에 묘인이 살고 있다는 설정이나 미혹나무 등 작물의 재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물론, 화성에 대기에 대한 설명도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회색빛 하늘을 봤다. 흐린 날씨는 아니지만 회색 공기로 가득했다. 햇빛이 강하지 않았다고 할 순 없다. 무척 더웠기 때문이다.(13)”라고 설명했지만, 화성의 대기는 희박한데 그나마 95%가 이산화탄소이며, 질소 3%, 아르곤 1.6%이며 산소는 극소량에 불과합니다. 대기 온도는 평균 영하 63입니다. 낮최고는 20이지만, 대기가 희박하여 열을 품지 못하기 때문에 밤에는 빠르게 떨어집니다. 극지방에서는 영하 140까지 내려갑니다.


혼탁, 질병, 불결, 혼란, 어둠 등으로 대표되는 묘인들 사회에서도 이를 개선하려는 묘인들이 존재합니다. 화자가 화성에 처음 도착하여 만났던 따시에의 아들 사오시에 같은 인물입니다. 이들은 미혹나무도 먹지 않고 사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분투를 하지만 황제를 비롯한 정부고관들은 물론 대중들까지도 미혹나무에 현혹되어 듣지 않습니다. 심지어 외국군이 쳐들어오자 황제는 가장 먼저 도망가고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도 외국군에 투항하러 갑니다. 하지만 외국군은 투항한 묘인군사들까지도 모두 죽여버립니다.


<고양이 행성의 기록>의 행간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라오서는 그렇듯 희망이 없어보이는 당대의 사람들을 누구보다 사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66823일 베이징시문학예술계연합회가 주최한 문혁집회에 참가했을 때, 열여섯 살 남짓의 여학생들이 몰려와 작가들을 무릎 꿇리고 주자파’, ‘잡귀사신’, ‘반동문인이라는 검은 팻말을 목에 걸고 구타를 하는 등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다음날 새벽 라오서는 집을 나서 자금성 서북쪽 모퉁이에 있는 타이핑 호수로 가서 투신하여 67세를 일기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전하기로는 1968년 노벨문학상 위원회의 최종 투표에서 후보에 오른 라오서를 1위로 뽑혔다고 합니다. 주중스웨덴대사는 위원회의 위탁을 받고 라오서를 찾았지만 이미 2년 전 사망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위원회는 수상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중국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는 중국계 프랑스 작가 가오싱젠(高行健)2000년에 수상했고, 중국 국적의 작가로는 모옌(莫言)2012년에 받았으니, 문화대혁명이 아니었더라면 중국은 44년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의 죽음 - 수전 손택의 마지막 순간들
데이비드 리프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후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부모님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시는 과정을 지켜본 자식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는지 궁금한 적이 있습니다. 병명을 알려드리고 치료방향에 대해서도 같이 의논을 할 것인가도 궁금합니다. 제 경우는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의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치료방향도 직접 결정하시도록 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미국의 미국의 소설가이자 문예 평론가 그리고 사회 운동가인 수전 손택의 아들 데이비드 리프가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느낀 다양한 심경을 정리한 책입니다.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 <타인의 고통> 등을 읽으면서 수전 손택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한 면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주장에 공감하는 점도 많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특히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으면서는 질병. 특히 결핵, 암 그리고 에이즈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해석에 반대한다>를 통하여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이미지나 은유 등의 해석을 덧씌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으면서 그녀 역시 나름대로의 해석한 결과를 담아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녀는 마흔 두 살이 되던 해 유방암으로 진단받아 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죽음>을 읽고서는 65새 되던 해에 자궁유종으로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았고, 생애의 마지막 해에 진단받은 골수이형성증후군에 병발한 급성백혈병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골수이형성증후군은 말초혈액에서 적혈구, 호중구, 혈소판 등이 감소하면서 감염 혹은 출혈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급성백혈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질환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혈구세포의 돌연변이가 축적되거나, 특정 유전질환 혹은 재생불량성빈혈 환자에서 생기는 원발성 골수이형성증후군이나, 암질환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시행하는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의 합병증으로 오는 경우 이차성 골수이형성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수혈 등 보존적 치료를 하면서 혈액암의 발병을 감시하거나 조혈모세포 이식수술과 같은 적극적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의 원제목이 <Swimming in a Sea of Death>인 것처럼 질병으로 투병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였던가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런 대목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투병 기간 몇 달 동안에, 어머니를 어떻게든 위로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신 우리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 수 있다는 이야기나 암 투병 이야기는 하면서, 죽음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23)” 그 이유는 어머니는 살아온 대로 돌아가셨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며, 어머니도 언젠가는 죽는 존재라는 사실과 화해차지 못한 채로, 그런 고통을 겪었는데도.()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카네티와, 위대한 시 새벽의 노래(Aubade)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종교적 위안, 여타의 정신적 속임수에 대한 경멸을 노래했던 필립 라킨(Philip Larkin)과 한편에 섰다.


심지어는 페루의 위대한 시인 세자르 바예호()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언제까지나 살고 싶어, 꼼짝 못 하고 누워만 있더라도. / 왜냐면 전에도 말했고 다시 말하지만 / 삶은 아무리 넘쳐도 모자라니까! 그렇게 많은 세월에도, / 언제까지나, 아주 많이 언제, 언제, 언제까지나!(129)”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옛말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어머니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본 데이비드 리프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가끔 차라리 어머니 대신 내가 죽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일까? 그런 면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일 뿐이다.(143)”


이야기 막바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에 뒤라스의 공포보다는 브레히트의 평정심을 얻었기를 빌어 보았자 그것은 기껏해야 사랑의 표현일 뿐, 속 빈 강정보다 나을 것 없는 소리다. 확신하건데 이런 감상은 어머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며, 어머니가 그런 감상을 경멸하는 것은 정당했다. 어머니는 그 본질을 꿰뚫어보았을 테니까. 그것은 계속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위안이라는 것을.(153)”


여기서 말하는 뒤라스의 공포와 브레히트의 평정심은 이렇습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말년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리라는 사실과 화해할 수 없다.(151)” 그런가하면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병실에서 마지막 나날을 보내면서도 놀라운 연작시를 섰다고 합니다. 병실밖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 아무 것도 잘못될 게 없지. 이제 나는 내가 떠나고 난 뒤에 지저귈 지빠귀의 노래도 즐길 수 있다네.” 손택은 어느 날 일기에 “‘를 초월하지 않는 한 죽음은 견딜 수 없는 문제다.”(151)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음 속을 걷다
베르너 헤어조크 지음, 안상원 옮김 / 밤의책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뒷표지에 적힌 '내가 걸어서 파리에 간다면 그녀는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구절 때문에 베르너 헤어초크의 <얼음 속을 걷다>를 구입해 읽었습니다.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제작자, 배우이자 작가인 베르너 헤어초크는 197411월 말 파리에 있는 친구로부터 로테 아이스너의 병세가 위중하여 곧 죽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서, 곧바로 뮌헨을 출발하여 파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로테 아이스너는 1960년대 들어 새로운 영화운동을 전개한 의식 있는 젊은 영화인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대내외적으로 알려준 평론가였습니다. 신세대 영화인들에게 독일 영화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 지금은 안된다. 이 시점에 독일 영화계가 그녀를 잃을 수 없으며 우리는 그 죽음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7)'라고 생각했으며, 걸어서 파리까지 가면 그녀가 살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헤어초크는 1123일 뮌헨을 출발하여 1214일 아이스너를 만나게 됩니다. 파리는 뭔헨에서 842 km 떨어져 있습니다. 하루 40km씩 걷는다면 20일이 걸립니다헤어초크는 뮌헨에서 파리까지의 여정을 기록했다는데, 당시에는 출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4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읽으면서 특별한 감동이 일어 출간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20여 일의 여정을 걸어서 가는 만큼 숙식 문제가 가장 큰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헤어초크가 숙식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여 일의 일정의 대부분은 노숙을 하거나 빈집 혹은 헛간에서 잠자리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잠겨진 문을 부수거나 창문을 깬 경우도 있다고 했고, 잠자리를 마련한 곳에서 물품을 훔쳐냈다고도 했습니다. 우유를 사 마시고 빈 곽을 흐르는 강물에 버리기도 한 것을 보면, 솔직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윤리 도덕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준비 없는 갑작스러운 출발이었고, 걸어서 가는 만큼 휴대할 수 물품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기에 의복도 넉넉하게 챙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씻거나 의복의 세탁도 여의치 않아 금세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가는 곳마다 주민들의 주목, 아니 감시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시골의 경우 그런 경향이 심했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호기심에 몰려들고, 어른들은 숨어서 지켜보았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피해서 진창 같은 풀밭을 가로질러 갔다고 했다의복 세탁에 무심한 것처럼 위생에도 무심한듯, 예를 들면 풀밭 위로 흐르는 실개천의 물을 마시기도 한다. 물론 대체로 물을 사먹은 등하다.


걸으면서 보고 느낀 점을 적었는데, 기막힌 대목이 많다. 예를 들면, 폭풍이 얼마나 거셌는지, 눈이 밭고랑 속에 내려앉을 새도 없었다.(45) 오늘 아침, 밤은 익사한 채 차가운 회색 파도에 실려 다가왔다.(37) 등입니다.


옮긴이는 이 책을 옮기면서 구소련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1986년작 영화 <희생>을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어느 승려가 산에 죽은 나무를 심고 매일 의식을 치르듯 나무에 물을 주었습니다. 지극정성이면 하늘도 감동하다던가, 그렇게 3년이 지냐 뒤에는 죽은 나무에서 꽃이 만발하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헤어초크가 무모해보이는 여정을 시작한 것은 기적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는 것. 위독하다던 78세의 아이스너는 이해. 헤어초크의 간절한 소망이 하늘에 닿았던지 던지 그해의 고비를 넘기고는 8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헤어초크가 뮌헨에서 파리로 가는 동안 날씨는 별로 부조를 해주지 않아, , 강풍, , 우박도 모자라 엄청난 폭풍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왠만하면 걷기를 포기함 직한데 헤어초코는 중단하지 않고 꿈을 관철해냅니다. 이 정도의 뚝심이라면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토, 그렇게 시작된 편지
김훈태 지음 / 북노마드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이다혜의 <교토의 밤 산책자>를 읽었던 것처럼 교토에 관한 글을 한 꼭지 쓰기 위해 읽은 책입니다. <교토, 그렇게 시작된 편지>는 출판기획 일을 하는 작가가 서른이 되던 해에 회사에 사표를 내고 부산을 떠나 오사카를 거쳐 교토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교토로 여행을 떠난 이유는 분명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인생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마음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대체물을 찾기 위해서였던 듯합니다. 이런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여행은 인생의 나이테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해. 봄부터 가을까지 같은 속도와 질감으로 부드러운 살을 찌우다가 추운 겨울이 되면 성장을 잠시 멈추고 안으로 견고해지는 시간, 그것이 나이테잖아. 여행은 그렇게 내부로 견고해지는 시간이야.(26)”


작가는 부산을 출발하여 교토에 도착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첫 번째 편지 오사카 행 슬로보트를 타다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교토로 향하기에 앞서 미얀마와 핀란드가 후보로 꼽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교토가 최종 낙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토를 떠날 때까지 쓴 모두 열네 통의 편지에 교토에서 보낸 시간들을 요약하였습니다. 편지의 형식을 취하다 보니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글을 썼는데 마치 독자가 편지를 받아 읽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열네 통의 편지는 아마도 교토에 있는 어느 찻집에서 썼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편집기획을 담당했던 까닭인지 문체도 담백하고 간략하면서도 다양한 자료를 끌어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편지에는 작가가 교토에서 가본 장소들, 숙소는 물론 가모가와, 기요미즈데라, 료안지와 로젠인, 긴카쿠지와 철학의 길, 우토로 마을과 같은 유명한 곳은 물론 유명하지 않은 곳을 포함하여 찻집과 음식점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미셀이라는 찻집은 아침을 먹고 편지를 쓴 장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커피에 대하여 진심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이 책이 출간된 2년 뒤에 나온 <핸드드립 커피 좋아하세요?>라는 책도 작가가 쓴 것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요즈음 국내외의 장소에서 한 달을 보내는 한 달 살기가 유행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는 일찍이 교토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본 것 같습니다. 작가가 소개한 숙소에 머물면서 작가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교토를 즐겨보기를 한 달 동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런던, 파리, 비엔나 등에 이어 한 달을 살아보고 싶은 곳으로 교토가 추가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써볼 요량인 교토에 관한 글에서는 일단 가모가와, 기요미즈데라, 긴가쿠지 그리고 인근에 있는 철학자의 길 등이 다루어지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다혜의 <교토의 밤 산책자>와 김훈태의 <교토, 그렇게 시작된 편지>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입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작가가 묵은 숙소에 주인은 물론 찻집과 식당 등을 비롯하여 여행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나누고, 전자우편 주소를 주고받는 등 인연을 이어가기로 한 것을 보면 여행을 제대로 하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유여행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수확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지막 편지에서는 작가가 교토에서의 생활을 소개하는 누리사랑방의 글을 보고(아마도 교토에서 보낸 편지가 아니었을까요?) 작가가 머무는 숙소에 찾아온 여성하고 나눈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 여성은 작가에게 왜 교토에서 한 달이나 머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하여 그냥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에게 같은 질문을 했는데, ‘사연이 있어요, 정리해야 할 것도 있고요.’라고 해서 더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여성은 덧붙여서 인생의 목표와 의미를 찾아야 한다.(278)’라고 했답니다. 작가는 자신도 잃어버린 의미를 찾아 교토에 혼자 왔음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무언가의 의미를 찾기 위해 굳이 해외로 나가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낙타샹즈 황소자리 중국 현대소설선
라오서 지음, 심규호 옮김 / 황소자리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월로 예정된 여행사 펀트래블의 중국근대문학기행을 준비하면서 읽게 된 라오서(老舍)<낙타 샹즈>입니다. 북경에 사는 인력거꾼 샹즈의 비참한 일생을 그린 이 소설은 당대 하층민의 삶과 그를 둘러싼 사회 부조리를 날카롭게 묘파해 비판적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낙타 샹즈>1930년대의 북경을 배경으로 합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고 화북지방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한인(漢人)들이 생존과 독립운동을 위해 북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북경은 명(1368-1644)과 청(1616~1912)의 수도였으며 중화민국 초기, 그리고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입니다. 따라서 1930년 무렵에는 전통적인 고도(古都)의 모습과 함께 근대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상업, 교육, 문화 시설이 확충되었고, 서구 문물이 유입되면서 사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북경의 한인 사회도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작가는 왜 주인공을 인력거꾼으로 삼았을까요? 아마도 인력거꾼의 속한 하층민들의 사회로 보여줄 수 있으며 인력거를 이용하는 상층민이나 북경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보여줄 요량이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북경의 인력거꾼들은 처한 상황에 따라 24시간 활동을 했던 것도 주요한 장치가 아니었을까요?


샹즈(祥子)는 농촌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부모를 여의고는 물려받은 몇 마지기의 척박한 땅마저 잃게 되자 열여덟이 되던 해에 북경으로 이주해왔습니다. 처음에는 튼튼한 몸과 성실함을 밑천으로 힘을 팔아서 먹고사는 일이라면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인력거를 끌면 쉽게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북경의 인력거꾼들도 여러 패거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야기의 주요 무대가 되는 류쓰예의 인화차창과 같은 인력거 차고에서 임대하거나 자신의 인력거를 가지고 거리에서 손님을 태우는 경우입니다. 인력거를 임대하는 경우에는 계약에 따라 사납금을 내야 합니다. 입주하여 주인의 인력거를 끄는 경우도 있습니다. 샹즈는 이런 상황을 모두 겪어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인화차창에서 먹고자면서 인력거를 임대하여 길거리 영업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루 번 돈으로 도박을 하거나 술을 마셔 탕진하는 다른 인력거꾼들과는 달리 허리를 졸라매고 돈을 모아 자신의 인력거를 장만하여 여유 있게 영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돌면서 위험한 행선지로 가는 손님을 기피할 때, 몇 곱의 돈을 내겠다는 손님을 받았다가 군인들에게 사로잡혀 인력거도 빼앗기고 잡부로 차출된 것입니다. 군인들에게 맞아가면서 끌려다니다가 어느 날 적의 공세를 피해 달아나는 군인들의 눈을 속여 낙타 몇 마리를 끌고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렇게 얻은 낙타를 전쟁통에 제값을 받지 않고 팔아치우면서 샹즈는 낙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인화차창으로 돌아갑니다.


인력거 끌기에 운명을 걸었던 샹즈이지만 인화차창으로의 회귀는 그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형편 없는 주인집에 전속 인력거꾼으로 들어가 하인처럼 살기도 하고, 젊잖은 교수의 전속 인력거꾼이 되기도 하는데 혁명의 와중에서 곤경에 빠지기도 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못생긴 탓에 결혼하지 못하고 노처녀로 늙어가는 류쓰예의 딸 후니우의 눈에 들어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류쓰예의 인화차창을 물려받게 될 거라는 기대는 물 건너가고 후니우와 빈민가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게 됩니다. 후니우는 샹즈를 독접하려 욕심을 부리고 낭비벽이 심했는데, 샹즈의 아이를 가졌다가 출산을 하면서 난산으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온 샹즈의 인생관이 바뀌게 됩니다. 다른 인력거꾼보다 낫지도, 더 나쁘지도 않은, 그냥 인력거꾼다운 인력거꾼이 된 것입니다.


결국 체면을 소중히 여기고 강인하게 꿈을 좇던 사람, 자신을 사랑했고 독립적이었던 사람, 건장하고 위대했던 샹즈는 얼마나 많은 장례식의 일꾼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 이기적이며 불행한 인간, 사회적 병폐의 산물이며 개인주의의 말로에 선 그 영혼이 언제 어떻게 땅에 묻힐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376)”라는 결말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샹즈를 비참한 죽음에 까지 몰고 가지 않은 것은 아마도 작가가 창조한 인간 샹즈에게 베푼 일말의 은전이라고 할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