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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 각국 도시 생활자, 도시의 이면을 관찰하다
로버트 파우저 지음 / 혜화1117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도시 탐구기>는 각국 도시생활자이자 탐구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 교수가 쓴 책입니다. 1961년 미국 미시간 주에 있는 앤아버에서 태어난 그는 언어학을 전공하여 모국어인 영어 이외에도 한국어, 일본어,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몽골어를 공부했고, 한문과 라틴어, 북미 선주민 언어, 중세 한국어도 따로 익혔다고 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언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세계 곳곳에서 짧게는 1년반, 길게는 13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대구, 전주 등과의 인연이 가장 길었고, 일본에서는 교토, 도쿄, 구마모토 그리고 가고시마에서도 살았습니다.
그는 태어난 도시 앤아버에서 시작하여 자신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도시에 관한 그의 인상을 <도시 탐구기>에 담았습니다. 개인적인 기록도 아니고 여행안내서도 아니며, 도시를 소개하거나 분석하는 책도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인상이나 단순한 느낌보다도 그 도시를 이루는 역사적 배경, 지향성,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늘 궁금했던 나로서는 어떤 도시에서나 생활자이면서 동시에 관찰자의 시선으로 탐구하듯 지켜봐왔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도시 산책자입니다. 특히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로 썼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역과정에서 뒤틀릴 수도 있는 저자의 생각을 오롯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읽어가다 보면 그가 살았던 도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가운데 역사를 비롯한 우리나라와 관련된 사실들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는 영국이 아일랜드를 식민지배하면서 영국에 충실한 지배계층을 배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에 경성에 제국대학을 설립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적었습니다. 오랜 식민지배를 겪고나서 아일랜드어가 소멸단계에 접어든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한국어를 지키고자 했던 위대한 사람들을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진정한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는 결국 사람이 만들고,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우리 스스로가 만든다’고 이야기한 그는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지향점을 만들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도시관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면서 ‘자기만의 도시사’를 기록해보기를 권했습니다. 저 역시 경관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제가 살았던 장소에 대한 기억을 정리해 보려하는데, 그 내용의 방향을 정하는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이 책에 담긴 도시는 미국, 일본, 한국, 아일랜드, 영국 등 5개국의 14개 도시입니다. 아일랜드는 더블린, 영국은 런던, 그의 모국인 미국은 앤아버, 라스베이거스, 프로비던스 등 3곳, 일본은 도쿄, 구마모토와 가고시마, 교토 등 4곳인데 우리나라는 서울, 대전, 전주와 대구 등 4곳입니다. 그는 14개의 도시들을 그가 살았던 순서에 따라 그의 도시사를 정리해낸 것입니다. 언어학을 전공한 탓에 낯선 고장에 가면 그곳만의 언어를 배우려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늘리려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합니다.
그가 살았던 도시들 가운데 가고시마와 구마모토를 제외하고는 짧게라도 제가 방문한 적이 있었고, 제가 적어온 여행기에서도 다루었기 때문에 제가 기록해오고 있는 여행기를 보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교토와 도쿄는 앞으로 기획하고 있는 책을 쓰는데 많이 인용할 내용을 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각 도시의 이야기에 곁들여 있는 많은 흑백사진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해서 옛 생각이 나게 해주었습니다. 혹자는 천연색 사진을 실었더라면 했지만, 저는 오히려 흑백사진이 더 강한 인상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2024년에 이 책의 개정판 <도시독법>을 내면서 우리나라의 부산과 인천에 대한 이야기를 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