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평전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32
도가와 신스케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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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와 신스케의 <나쓰메 소세키 평전>은 조만간 떠나게 될 일본근대문학기행을 주관하는 펀트래블에서 출발을 앞두고 보내준 책입니다. 여행 중에 있을 로쟈 이현우선생의 강의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뜻으로 보입니다.


근대일본문학을 전공한 가쿠슈인대학의 도가와 신스케 명예교수는 소세키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소세키는 학교에서는 수재였고, 대학교수로서도 소설가로도 성공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평에 무관심하면서 주어진 현재의 직무에 충실하면서도, 안주하고 않고 느닷없이 뜻을 바꾸거나 심지어 직업을 바꾸기도 하는 독특한 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그가 어떤 생애를 어떻게 살았는지 상세히 짚어보고자 한다.’라고 했습니다.


여행을 앞두고 <나의 개인주의>를 비롯하여 <도련님> 등을 읽으면서 나쓰메 소세키의 삶과 작품의 분위기를 조금 익혀보았습니다만, <나쓰메 소세키 평전>을 통하여 출생으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소세키의 삶을 조명하고, 가족 및 교우관계 그리고 작품의 내용과 성격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소세키의 작품 대부분의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는 것도 그의 작품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산시로>를 읽어볼 생각입니다.


불안한 성장과정이라는 첫 번째 장에서 그에게는 어떤 목적을 위해 오로지 어떤 일에 몰두하는 일면과, 그와 모순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진로를 순식간에 바꿔버리는 일면이 병존한다.(20)”라고 했는데 저의 삶을 돌이켜보면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의 강연록을 묶은 <나의 개인주의>를 읽으면서 개인주의란 자기본위로 생각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소세키의 개인주의는 도의상의 개인주의로서 타인과 자신을 동등하게 놓고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상호주의적 개인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비상시국이 아니라면 개인주의가 국가주의에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고 읽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군국주의가 자리잡아가던 당시 일본사회의 분위기에서는 쉽지 않은 이야기였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1900년 런던에 유학할 무렵의 편지를 보면 일본과 러시아가 무력을 행사하는 것에 반대를 분명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만주 지배에 대하여는 반대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 역시 일본인이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런던에 유학 중이던 소세키가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는 러시아 쪽 새소식을 듣고는 만약 전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일본으로 직접 공격해가는 것은 결코 득책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조선 땅에서 자웅을 겨루는 게 좋을 거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조선 입장에서는 엄청난 민폐일 거라고 생각했다.”라는 내용을 본국으로 보내는 편지에 적었다고 합니다.


당시 열강들의 눈에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본이 귀속되어 있는 땅으로 전쟁을 벌여도 된다고 생각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씁쓰레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세키는 전쟁이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무력에 호소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러일전쟁의 승리로 호들갑을 떠는 일본 국내의 분위기조차 싫어했다고 합니다.


<나쓰메 소세키 평전>의 중반으로부터는 소세키의 첫 번째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부터 작품 소개가 시작됩니다. 작품의 성격은 물론 작품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까지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해당 작품들을 읽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미 읽어본 <도련님>에서는 주인공이 의기에 투철하고 하녀 기요에게도 다정다감한 인물로 읽었는데, 이 책의 저자는 도련님과 기요가 모자관계일 가능성을 암시하였을 뿐 아니라 도코에서는 놀림거리이던 주인공이 지방의 학교에 부임해서 그곳 학생들로부터도 놀림거리가 되자 이를 참지 못한다는 부분에 대하여 도쿄라는 간판을 내세우면서 학생들을 몰아 부친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타교 학생들과 싸움이 붙었을 때 학생들을 보호하려 싸움판에 뛰어들고부터는 학생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을 보면 적적한 평가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산시로>를 더 읽어볼 예정입니다. 앞으로 더할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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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역사
에밀리 프리들런드 지음, 송은주 옮김 / 아케이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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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를 마치자마자 세부전공을 배우기 위해 찾았던 곳이 미국 중북부의 미네소타대학병원이었습니다. 병원은 미니애폴리스에 있었지만, 집은 한국에서 공부하러 온 분들이 모여 살던 러더데일에 있었습니다. 쌍둥이도시를 구성하는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2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미네소타 곳곳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런 인연이 닿아서 찾아낸 에밀리 프리들런드의 소설 <늑대의 역사>입니다. 미국의 도시들 가운데 미식축구, 야구, 농구, 하키 등 4종목의 프로팀을 보유한 곳은 별로 없습니다만, 미네소타의 쌍둥이도시는 4종목의 프로팀을 보유하고 있었고, 농구팀의 이름이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입니다. 팀버울프는 북미대륙의 숲에 사는 늑대의 일종입니다.


<늑대의 역사>에서는 숲에 사는 늑대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미네소타 북부의 화이트우드에 있는 작은 연못가에 살던 열네 살 소녀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화이트우드가 어디쯤인지 찾아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미네소타 북서쪽에 있는 파고에서 남동쪽에 있는 쌍둥이도시를 지나 헤이스팅스에서 아이오와 주로 건너가 동진하다가 미시간 호수가 있는 투리버스에서 끝나는 10번 도로의 어디쯤인 듯합니다. 8학년에 부임한 역사교사 그리어슨 선생님의 눈에 띄어 역사오디세이의 학교대표를 맡게 되는데 주제를 늑대의 역사로 정한 것입니다.


이야기의 큰 틀은 동급생인 릴리와 그리어슨 선생님을 둘러싼 소아성애의 문제와 화자의 집에서 호수 건너편에 있는 페트라와 레오의 아들 폴을 돌보는 일을 중심으로 진행이 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등장하는 베미지, 덜루스, 그랜드래피즈, 쌍둥이도시인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등 익숙한 지명은 물론 폭설이 쏟아졌다거나 이름도 생소한 호수가 수도 없이 등장하는 등 만 개의 호수를 주의 상징으로 하는 미네소타를 떠올리게 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연극 <우리 읍내>, 헨리 제임스의 소설 <나사의 회전>, <태양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Sun)>로 익숙한 미국의 록밴드 도어스 등이 등장하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1979년 무렵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소설은 과학건강의 두 부분으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과학 부분은 십대 시설의 화자가 겪은 이야기가, 건강 부분은 화자의 성인 시절의 이야기로 엮였습니다. 화자인 린다는 페트라와 그녀의 아들 폴이 호수 건너편으로 이사 올 때까지 집과 학교에서 고립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른이 되어 나무 하나하나, 수년 전 산림청이 줄을 딱 맞추어 심어놓은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다 달라 보였다. 더위에 흠집에서 수액이 배어나온 것이 있는가 하면, 가지가 부러져서 숲속에 땅속요정 같은 얼굴을 남긴 것도 있었다. 숲은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그저 보고 걷기만 할 수 있는 일종의 유치원이었다.(401)”라고 어린 시절의 숲에 대하여 회고합니다.


그녀는 동급생인 아름다운 원주민 소녀 릴리와 새로 온 그리어슨 선생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긴밀한 관계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어슨 선생이 릴리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리어슨 선생님이 소아성애자라고 알려지면서 조사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폴이 덜루스를 다녀온 뒤에 병을 얻어 갑자기 사망하면서 페트라와 레오는 아동학대의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됩니다. 화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과정에서 두 사건에 대하여 증언을 하는 장면이 잠깐씩 나옵니다.


고립된 환경에서 자라게 된 화자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하여 정서적으로 조화롭게 성장하지 못하게 되는데, 대신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지나치게 자신과 연결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학교생활에서는 릴리와 그리어슨 선생과의 관계에 몰입하고 집에서는 페트라, 레오 그리고 폴과의 관계에 몰입하게 됩니다. 다만 폴의 죽음은 오래도록 충격으로 남아 장성한 뒤에 쌍둥이도시에 자리를 잡았다가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성장소설 가운데 심리적 도덕적 성장소설이라는 의미의 독일어 빌둥스로만(bildungsroman)이라는 범주의 책으로 분류됩니다.


화자가 페트라와 레오 그리고 폴과 함께 덜루스로 놀러가는 장면에서는 제가 부모님을 모시고 덜루스(미네소타에 살 때는 둘루스라고 했습니다)에 놀라갔던 장면들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덜루스에 있는 개폐교를 비롯하여 항구 풍경, 철도박물관 등을 구경했고, 덜루스 북쪽에 있는 스플릿록에 있는 등대도 구경했습니다. 이듬해 가을에는 수피리어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캐나다와의 국경을 넘어오기도 했습니다. 미네소타에서 2년 가까이 살면서 두루 돌아보았기 때문에 <늑대의 역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장소들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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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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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안긴 작품이라고 합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国境いトンネルをけると雪国であったくなった信号所汽車まった)”로 시작하는 구절이 유명한데, 국경(國境)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쉽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국경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나라와 나라의 경계를 의미하는 것인데 한나라 안에서 국경이 있을 수 있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국경의 긴 터널은 군마현과 니가타현을 잇는 조에츠선의 시미즈(淸水) 터널이며, 신호소는 츠치타루역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조에츠선 열차가 시미즈 터널을 왕복했을 터이나, 요즘에는 신 시미즈 터널이 생겨서 시미즈 터널은 니가타에서 군마로 가는 열차가, 신 시미즈 터널은 군마에서 니가타로 가는 열차가 이용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설국을 가려면 신시미즈 터널을 지나야 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는 국경(國境)이 나라간의 경계를 의미하지만 일본에서는 메이지시대에 페번치현(廢藩置縣)하면서 도도부현(都道府県)을 설치하기 전까지는 도와 국의 중간에 해당하는 쿠니()이라는 행정구역이 있었다고 합니다. 군마현과 니가타현은 옛날에 각각 코즈케쿠니(上野國)와 에치고쿠니(越後國)였다고 합니다. 두 쿠니의 경계가 조예츠(上越) 국경(國境)이었다는군요.


두 번째 의문은 굴을 경계로 하여 세상이 온통 눈으로 뒤덮인 경치가 등장하게 된 연유입니다. 소설 <설국>의 배경인 니가타현은 일본에서 가장 눈이 많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시베리아 기단에서 발생한 추운 북서풍이 동해를 건너오면서 수분을 많이 가지게 되는데, 에치고 산맥을 넘으면서 눈을 뿌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바람이 품은 동해의 수분은 모두 니가타 현에 눈으로 뿌려지고 산을 넘어 군마현에 이르면 쏟아낼 눈이 없어 건조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군마현과 니가타현의 경관이 다를 수밖에 없겠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니가타현에 있는 유자와(湯沢온천에 있는 다카한 료칸에 머물면서 <설국>을 집필하였다고 합니다. 서기 1075년에 개업하여 무려 950년의 역사를 가진 다카한 료칸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소설과 영화 <설국>에 관련된 자료를 비롯하여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실제로 묵었던 방이 보존된 자료관이 있는데 내부수리를 거친 금년부터는 숙박객에게만 공개된다고 합니다. 곧 유자와를 찾아가는 여행길에서 볼 수 없다고 해서 아쉽네요.


<설국>의 내용은 고전무용 비평가이자 프랑스문학을 번역하는 남자 주인공 시마무라(島村)가 글을 쓰기 위하여 니가타로 가는 기차에서 맞은편 좌석에 앉은 요코와 조우하게 됩니다. 그리고 니가타의 온천장에서 부른 게이샤 고마코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천방지축인 고마코와 관계가 깊어지면서 요코와도 연결이 됩니다. 고마코는 동기(童妓) 시절 몸값을 내준 남편이 죽은 뒤에 온천에 들어왔는데, 춤을 가르쳐주는 스승의 아들인 유키오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게이샤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딱히 정한 바는 없지만 유키오와 짝을 이루었으면 하는 선생님의 암묵적인 암시가 있었던 듯합니다. 그런가 하면 요코(葉子)는 유키오의 새로운 애인으로 유키오를 돌보기 위해 간호사 공부를 했는데, 유키오가 죽은 뒤에 온천에 정착한 것입니다.


온천장에서 게이샤를 불렀을 때 처음 만난 고마코는 시마무라가 부르지 않아도 그의 숙소에 찾아오곤 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리는 무엇을 느끼면서 관계가 깊어집니다. 그렇다고 시마무라가 온천장에 오래 머무는 것도 아니고 글쓰는 작업을 할 때면 찾아와 고마코를 만나곤 합니다. 고마코와의 만남이 헛되고 보람 없음을 알면서도 그저 마음이 가는 탓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고마코의 집에 갔을 때 처음 온천장으로 가는 열차에서 만난 요코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유키오에 대한 지순한 사랑에서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에 매혹되기 시작합니다. 유키오를 돌보는 고마코와 요코의 정성도 유키오가 죽음을 맞으면서 헛되고 말았지만 두 사람의 지극정성이 순수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세 사람 사이의 모호한 관계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마무리되지 않고 오히려 고치창고의 영화관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 추락한 요코를 고마코가 뛰어들어 안아서 내오는 것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대목은 물론이고, 세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진전되는 가운데 작가가 묘사하는 온천장의 풍경이야말로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기를 쓰고 있다는 고마코에게 헛수고라고 하면서 ()이 울릴 듯한 고요가 몸에 스며들어 그만 여자에게 매혹당하고 말았다. 그녀에게 결코 헛수고일 리가 없다는 것을 그가 알면서도 아예 헛수고라고 못박아 버리자, 뭔가 그녀의 존재가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졌다.(38-39)”라는 대목도 눈길을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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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
하야시 후미코 지음, 이상복.최은경 옮김 / 어문학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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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다녀올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하야시 후미코 기념관을 찾아가는 일정이 있습니다. 동행할 예정인 로쟈 이현우선생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도쿄는 일본의 근대문학이 태동한 곳이라고 합니다. ‘이야기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과 사회적 맥락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고 합니다하야시 후미코의 <뜬구름>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서 종전 후 몇 년 뒤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야기는 동해 쪽에 있는 후쿠이현의 쓰루가에서 시작합니다. 인도차이나의 다랏트에서 일하던 여주인공 유키코가 패전 후 하이퐁의 수용소에 머물다 귀환선을 타고 쓰루가에 도착한 시점입니다. 하이퐁에 모여든 일본여성들은 간호부, 타자수, 사무원이 섞여 있었지만 대부분 위안부였다고 합니다. 쓰루가에 도착해서 조사를 받는 동안 다랏트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는 유키코입니다. 전쟁이 한창이었지만 다랏트에서의 생활은 전쟁을 잊게 해줄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유키코가 인도차이나까지 흘러가게 된 것은 고향인 시즈오카에서 일하기 위하여 도쿄로 올라와 형부의 남동생 이바 스기오의 집에서 살기 시작한 일주일 만에 성폭행을 당하고, 전쟁을 치르느라 힘들어진 삶을 바꿔보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면밀하게 따져보고 삶을 결정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변화를 주는 그런 성격으로 보입니다. 다랏트에서는 삼림기사 도미오카와 가노의 관심을 받게 되지만 유키코는 유부남인 도미오카와 사랑을 하게 됩니다. 나스메 소세키와 무사노고지 사네아쓰에 심취한 가노보다는 톨스토이 풍의 도미오카가 더 멋있어 보였던 모양입니다.


다랏트에서는 달콤했던 사랑도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삶이 녹녹치 않은 탓인지 절절하지만은 않아보이는 도미오카에 여전히 미련을 가지는 유키코입니다. 그러면서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바의 집에 잠시 머물다가 이바씨의 살림을 훔쳐 독립합니다. 우연히 미군 죠를 만나 도움을 받지만 여전히 도미오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도미오카는 산림청을 퇴직하고 사업을 시작하려 하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에 좌절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럴 때는 유키코를 만나 다랏트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위안을 찾기도 합니다만, 도미오카는 결국 유키코와의 동반자살을 꿈꾸고 이카호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오세이를 꼬여 도쿄로 돌아오면서 유키코와 거리를 두게 되고, 유키코는 이바와 다시 엮여 오히나타교라는 사교집단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키코는 삶이 막막해진 사람들을 끌어들여 착취한 금전을 훔쳐 달아나고 오세이를 살해한 남편을 도와주고 있던 도키오카와 함께 가고시마 남쪽에 있는 야쿠시마로 도망친 끝에 그곳에서 병을 얻어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패전한 나라의 바닥인생들을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구나 싶으면서도 승전국에서는 어떤 인간상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 사는 일은 어디나 비슷해서 승전국이라 해도 팍팍한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실려 물결이 흐르는 대로, 혹은 구름이 흐르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도미오카와, 힘든 여건 속에서도 빈틈을 찾아 삶을 바꾸어가는 유키코의 삶이 어울리게 되는 것은 운명의 실타래가 그리 얽혀있기 때문일까 생각해봅니다. 뜬구름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적어도 지켜야 할 삶의 도리 같은 것에는 별반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합니다. 이 또한 패전이 안겨준 충격 때문이었을까요?


그래서 작가는 도미오카는 마치 뜬구름 같은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언제 어디로 사라지는지도 모르게 사라져갈 뜬구름이다.(461)”라고 이야기를 마무리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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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도련님 - 문예 세계문학선 031 문예 세계문학선 3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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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다녀올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만나게 될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집이 집에 있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도련님>에는 도련님’, ‘깊은 밤 고토 소리 들리는구나그리고 런던탑이 실려 있었습니다.


표제작인 도련님1906년에 발표되었다고 합니다만, 언제가 만나보았던 인물처럼 친근해 보입니다. 주인공은 초등학교 때 학교 건물 2층에서 뛰어내려 허리를 삔 적이 있는데, 친구가 거기서 뛰어내릴 용기는 없을걸? 이 겁쟁아라는 소리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나이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상황이면 뛰어내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형이 부모님의 재산을 정리해서 나누어주었고, 화자는 집안일을 도와주던 기요하고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같이 살게 됩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는 도쿄를 떠나 시코쿠에 있는 시골 중학교에 수학교사 자리를 추천받아 부임하게 됩니다. ‘도련님의 이야기는 시코쿠의 시골 중학교에 부임한 신참 수학교사가 고참들과 학생들의 텃세를 이겨나가는 과정을 다룬 일종의 성장소설인 셈입니다. 이곳에서 보여주는 화자의 성품은 어렸을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면 타고난 것으로 바뀌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참교사를 골탕 먹이려는 학생들의 태도를 보면 세월이 흘러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시골 아이들이라서인지 더 꾸밈이 없는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당시 학생들 가운데 늦게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초임 선생님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도 많았던 것이었을까요? 도쿄에서 온 선생님이라서인지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학교는 물론 동네에까지 금세 소문으로 퍼지는 것을 보면 많이 조심했어야 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골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선한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많지 않는 선생님들이 서로 맞지 않는 선생님은 멀리하는 일종의 편가르기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보면 어느 동네이건 시대를 달리해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인간의 본성이 그런가 봅니다. 그래서 도련님을 읽으면서 충분히 공감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도련님이라는 제목이 궁금했습니다. 가정부인 기요가 화자를 부르는 호칭에서 온 것이라면 장성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도 도련님이라고 하는 것이 맞나 싶었는데,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을 도련님,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네사 샌님이라고 하던 의미와 같은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깊은 밤 고토 소리 들리는구나는 일종의 유령소동입니다. 요즘에는 유령이니 귀신이니 하는 존재를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만, 옛날에는 혹시(?)하는 생각이 들던 시절도 있습니다. 결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만 막상 그런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다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 런던탑은 템즈강 북쪽에 있는 고성으로 초기에는 웅장한 궁전으로 왕실 거주지로 사용되다가 12세기 초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감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7년전에 영국과 아일랜드를 여행할 때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만, 저자 역시 영국 유학시절 런던탑을 방문했을 때 자신이 직접 겪은 것처럼 이야기를 했지만, 이야기 끝에 하숙집 주인의 농담 한 마디에 작가의 공상이 무너져내렸다고 하면서 사실을 런던탑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를 각색하여 소설을 구성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떻든 세 작품 모두 잘 읽히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래 전에 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도 몰입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잘 만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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