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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역사
에밀리 프리들런드 지음, 송은주 옮김 / 아케이드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학위를 마치자마자 세부전공을 배우기 위해 찾았던 곳이 미국 중북부의 미네소타대학병원이었습니다. 병원은 미니애폴리스에 있었지만, 집은 한국에서 공부하러 온 분들이 모여 살던 러더데일에 있었습니다. 쌍둥이도시를 구성하는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2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미네소타 곳곳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런 인연이 닿아서 찾아낸 에밀리 프리들런드의 소설 <늑대의 역사>입니다. 미국의 도시들 가운데 미식축구, 야구, 농구, 하키 등 4종목의 프로팀을 보유한 곳은 별로 없습니다만, 미네소타의 쌍둥이도시는 4종목의 프로팀을 보유하고 있었고, 농구팀의 이름이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입니다. 팀버울프는 북미대륙의 숲에 사는 늑대의 일종입니다.
<늑대의 역사>에서는 숲에 사는 늑대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미네소타 북부의 화이트우드에 있는 작은 연못가에 살던 열네 살 소녀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화이트우드가 어디쯤인지 찾아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미네소타 북서쪽에 있는 파고에서 남동쪽에 있는 쌍둥이도시를 지나 헤이스팅스에서 아이오와 주로 건너가 동진하다가 미시간 호수가 있는 투리버스에서 끝나는 10번 도로의 어디쯤인 듯합니다. 8학년에 부임한 역사교사 그리어슨 선생님의 눈에 띄어 역사오디세이의 학교대표를 맡게 되는데 주제를 늑대의 역사로 정한 것입니다.
이야기의 큰 틀은 동급생인 릴리와 그리어슨 선생님을 둘러싼 소아성애의 문제와 화자의 집에서 호수 건너편에 있는 페트라와 레오의 아들 폴을 돌보는 일을 중심으로 진행이 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등장하는 베미지, 덜루스, 그랜드래피즈, 쌍둥이도시인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등 익숙한 지명은 물론 폭설이 쏟아졌다거나 이름도 생소한 호수가 수도 없이 등장하는 등 만 개의 호수를 주의 상징으로 하는 미네소타를 떠올리게 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연극 <우리 읍내>, 헨리 제임스의 소설 <나사의 회전>, <태양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Sun)>로 익숙한 미국의 록밴드 도어스 등이 등장하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1979년 무렵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소설은 ‘과학’과 ‘건강’의 두 부분으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과학 부분은 십대 시설의 화자가 겪은 이야기가, 건강 부분은 화자의 성인 시절의 이야기로 엮였습니다. 화자인 린다는 페트라와 그녀의 아들 폴이 호수 건너편으로 이사 올 때까지 집과 학교에서 고립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른이 되어 “나무 하나하나, 수년 전 산림청이 줄을 딱 맞추어 심어놓은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다 달라 보였다. 더위에 흠집에서 수액이 배어나온 것이 있는가 하면, 가지가 부러져서 숲속에 땅속요정 같은 얼굴을 남긴 것도 있었다. 숲은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그저 보고 걷기만 할 수 있는 일종의 유치원이었다.(401쪽)”라고 어린 시절의 숲에 대하여 회고합니다.
그녀는 동급생인 아름다운 원주민 소녀 릴리와 새로 온 그리어슨 선생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긴밀한 관계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어슨 선생이 릴리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리어슨 선생님이 소아성애자라고 알려지면서 조사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폴이 덜루스를 다녀온 뒤에 병을 얻어 갑자기 사망하면서 페트라와 레오는 아동학대의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됩니다. 화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과정에서 두 사건에 대하여 증언을 하는 장면이 잠깐씩 나옵니다.
고립된 환경에서 자라게 된 화자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하여 정서적으로 조화롭게 성장하지 못하게 되는데, 대신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지나치게 자신과 연결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학교생활에서는 릴리와 그리어슨 선생과의 관계에 몰입하고 집에서는 페트라, 레오 그리고 폴과의 관계에 몰입하게 됩니다. 다만 폴의 죽음은 오래도록 충격으로 남아 장성한 뒤에 쌍둥이도시에 자리를 잡았다가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성장소설 가운데 심리적 도덕적 성장소설이라는 의미의 독일어 빌둥스로만(bildungsroman)이라는 범주의 책으로 분류됩니다.
화자가 페트라와 레오 그리고 폴과 함께 덜루스로 놀러가는 장면에서는 제가 부모님을 모시고 덜루스(미네소타에 살 때는 둘루스라고 했습니다)에 놀라갔던 장면들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덜루스에 있는 개폐교를 비롯하여 항구 풍경, 철도박물관 등을 구경했고, 덜루스 북쪽에 있는 스플릿록에 있는 등대도 구경했습니다. 이듬해 가을에는 수피리어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캐나다와의 국경을 넘어오기도 했습니다. 미네소타에서 2년 가까이 살면서 두루 돌아보았기 때문에 <늑대의 역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장소들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